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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38) 조선의 원시림 김장혁
2024년 04월 05일 10시 54분  조회:61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울고 웃는 고향 제5장


                  6. 조선의 원시림
 
 
     나무가지들에는 시허연 눈이 더부룩이 쌓여 있다. 박달나무도 탁탁 얼어터질 엄동설한이 다가왔다. 여우도 추워 눈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면서 발을 동동 구를 맵짠 추위가 덮쳐왔다. 화로불도 품 속으로 기여들 지경으로 매섭게 추웠다.
    마을 사람들은 길수가 경찰국청사공지 삯전을 주지 않아 아침을 먹으면 저녁쌀이 없어 근심하면서 하루를 삼추와 같이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길수는 집에 일본 경찰국장과 기생 년들까지 불러다가 흔전만전 먹고 마시고 큰 잔치를 벌렸다.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모두 욕설을 퍼부었다.
    "저 우멍눈을 까마귀 파먹었으면."
     "어서 썩어질게지."
     길수는 영팔과 수길 등 졸개들을 데리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벌목에 나오라고 을러멨다. 그의 말대로라면 통나무를 벌목해 우시장에까지 실어가면 꼭 삯전을 준다고 했다.
    성칠은 크게 희망을 걸지 않으면서도 사냥도 하지 못하게 하는 판에 칠백과 덕성, 최동욱 등과 함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산으로  벌목하러 올라갔다.
    요즘 삼림분주소 야마모도 소장은 사냥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낮에는 삽살개처럼 졸개들을 데리고 산에서 벌목공들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누가 사냥을 하나 살피였다. 밤에는 마을로 싸다니면서 어느 집에서 혹시 산짐승을 사냥해 끓여 먹나 집집이 기웃거리면서 가마뚜껑까지 일일이 열어보았다.   
    스르륵 스르륵 톱질소리에 턱턱 도끼질소리에 조용하던 원시림이 시끌어워졌다.
     “넘어간다!” 
     여기저기서 아름드리나무가 쿵 쿵 넘어갔다.
     사기 나서 “넘어간다!”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넘어가는 나무에 사람이 다칠 까봐 소리치는 소리였다.
     마을 사람들은 넘어간 통나무를 집짓기에 좋을 만큼 토막 내 소 발기에 실어 산 아래에 끌어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마차나 소수레에 실어 우시장 경찰서 사무청사 공지에 실어갔다.
    산골마을 영월동은 벌목 일에 끌려온 사람들로 붐비었다. 집집마다 다른 마을사람들이 몇몇씩 들었다. 저기 버치 골에는 저목장이 들어앉아 아름드리 통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겨우내 몇 달 벌목하니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며 우중충하게 서있던 원시림은 거의 벌거숭이로 돼버렸다. 산도 옷을 홀랑 벗은 까까머리처럼 민둥산으로 보기 싫게 변해갔다.
    “제길 할, 나라에서 몇 십 년이고 몇 백 년이고 부동림이라고 법령을 내리더니 결국 섬나라 오랑캐들이 좋은 노릇을 했네그려."
     성칠이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쉿-”
    칠백이 턱으로 산기슭 쪽을 가리켰다.
    야마모도소장이 가죽채찍을 감아쥐고 졸개들과 함께 눈에 푹푹 빠지며 이쪽을 흘끔흘끔 살피면서 다가왔다.
    설겅설겅
    성칠과 칠백은 마주 앉아 톱질했다.
    “요로씨이(좋아)” 
    야마모도는 원숭이 엉덩이 같은 낯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깍- 깍-”
   야마모도의 멋들어진 모자에 까마귀 똥 꽃이 허옇게 피었다.
   성칠이 하늘을 쳐다보니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지나가면서 똥을 내리쏜 것이 틀림없었다.
   “바까(바보) 새끼!”
   야마모도 소장은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까마귀를 쳐다보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는 모자를 벗어보고 까마귀 똥을 옆에 선 나무에 대고 문질렀다. 똥이 벗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넓게 똥칠이 돼버렸다.
   “제길 할!”
   야마모도 소장은 모자를 홱 팽개치더니 뒤따라 온 졸개의 모자를 벗겨 쓰고 가버렸다.
   졸개는 귀를 싸쥐었다가 옆에 선 졸개와 칠백이를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칠백의 털모자를 빼앗아 쓰고 가버렸다.
   김칠백은 수림 속으로 사라져가는 야마모도와 졸개들을 노려보다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였다.
   “개자식들, 아무 때건 도끼로 대갈통 찍어놓지 않는가 봐.”
   칠백은 도끼자루에 침을 퉤 뱉어 틀어쥐더니 통나무를 탁탁 내리찍었다. 도끼밥들이 사처로 튕겨 눈 위에 툭툭 떨어졌다.
   “일본 사람들은 이젠 기운봉이나 치마봉 수림의 주인행세를 하는구나. 경찰국 청사를 짓는 데 무슨 나무를 이렇게 많이 쓴다니?”
   성칠의 말에 칠백은 투덜거렸다.
    “내 사촌형 룡천이가 말하던데 철길과 길 닦는데도 쓴다더이.”
   칠백의 말꼬리에는 경상도 사투리 줄줄 묻어나왔다.
   “개자식들, 우리를 생각해 철도를 놓는 척 해도 자기네 좋은 노릇을 하려는 게 아니고 뭐냐?"
   “글쎄 말인기여.”
   “가만.”
   성칠은  톱질을 하다가 손을 멈추고 칠백에게 물었다.
   “네 사촌형은 뭘 하는 사람이냐?”
   그러자 칠백은 사위를 둘러보더니 성칠의 귀에 대고 귀속 말을 했다.
   “룡천은 경주 큰아버지네 맏아들인기여. 내 죄를 짓고 이 마을로 도망쳐 온 후 소식이 끊어졌댔어. 몇해 전 어느 날 밤중에 나를 찾아오지 않았겠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장백산에 다니면서 사냥한다던데 친구들도 꽤 많은 것 같더이.”
   “음, 언제 만났으면 좋겠다. 함께 사냥도 하고. 이게 어디 지긋지긋해 일본 사람들의 수하에서 살겠냐?”
   “그러지. 이제 형이 오면 만나게나.”
   그들은 말을 마치자 톱질을 슬슬 해댔다.
   이윽고 아름드리통나무가 흔들거렸다.
   성칠과 칠백은 엉거주춤 일어났다.
   “넘어간다!”
   산악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아름드리통나무가 다른 나무 가지들을 내리깔며 꽈당 쿵 넘어졌다.
  이때 통나무를 살피던 칠백이 소리쳤다.
  “아니, 이거 벌레 먹은 통나무 아냐!”
   성칠이 여겨보니 톱으로 벤 나무 밑둥 여기저기에 손가락만큼 한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우비니 톱밥 같은 나무가루가 나왔다. 이윽고 까만 대가리에 누런 색을 띤 손가락만큼 굵은 벌레가 묻어 나왔다.
  “아니, 이 흐물흐물한 벌레가 이 큰 아름드리통나무를 파먹었단 말인가?”
   성칠이 놀라자 칠백이 성칠의 귀에 대고 쑤군거렸다.
   “이런 나무로 경찰국 청사를 어떻게 짓는대? 쾅 무너져뿌려!”
   성칠은 피뜩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벌레를 벌레구멍에 되 넣고 나무가루로 잘 막아주었다.
   “왜?”
   의아한 칠백의 눈길에 성칠은 귀속 말로 "쉬-" 하고 식지를 입에 대고 사위를 살폈다.
    “장차 알 도리가 있을 거야.”
   그는 도끼로 나무가지를 툭툭 쳤다.
    칠백도 알았다는 듯이 벌레구멍난 자리를 피해 도끼질했다.
   “그런데 말이야. 벌레가 얼어 죽지 않을까?”
   “아니야. 이 벌레는 춘하추동 나무구멍에서 살아온 끈질긴 놈이야. 우리 도끼나 톱에 죽지 않으면 얼마든지 겨울을 살아 나갈 수 있어.”
    “오, 그래? 잘 됐어.”
    “쉿-”
   성칠은 입가에 식지를 댔다.
   칠백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 둘은 무슨 묘책이나 생각해낸 듯이 시름놓고 다른 나무를 찾아가 밑 둥에 대고 톱질만 부지런히 슬슬 했다.
   한참 후 칠백이가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자네가 사냥하러 간 틈을 타서 길수가 은녀를 부엌데기로 들여갔잖아. 그런데 전번에 득호와 짜고 들어 응삼을 몽둥이로 쳐 눕혔다고 해. 득호와 은녀는 한바탕 두들겨 맞고 한평생 종살이를 해야 한다데이.”
   “그게 될 말인가?”
   성칠은 성나서 씩씩거렸다.
   칠백은 톱질을 멈추고 산기슭을 내려다보았다.
   소가 엄청나게 큰 통나무를 수레에 싣고 내리막을 받지 못하는지 덕성과 덕팔, 상호, 백룡 등 십여 명 장년들이 통나무를 멜대목도로 메고 산기슭으로 내려갔다. 덕성이 첫소리를 먹이면 모두들 소리를 받으면서 발을 맞춰 힘겹게 내려가고 있었다.
 
   백년 묵은 통나무라
   허기영차
   썩둑 잘라 죽였어
   허기영차
   산 것보다 무거워라
   허기영차
   고향 떠나기 싫은가?
   허기영차
   가기 싫어 뻗치는가?
   허기영차
   무겁기도 무겁다
   허기영차
 
   고향 땅 떠나가면
   허기영차
   오랑캐 섬나라서 썩으리라
   허기영차
   오호 서럽다
   허기영차
   이제 가면 언제 오냐?
   허기영차
   얼씨구 서럽다
  허기영차
  절씨구 서럽구나
  허기영차
 
   목도소리를 듣고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 내쉬었다.
   이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치면서 웬 장년이 다가오더니 칠백에게 인사했다.
   “동생, 벌목해?”
  칠백은 반가워 그 사내를 와락  끌어안았다.
  “히야(형),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더니.”
  칠백은 몸을 돌리더니 성칠에게 인사시켰다.
  “인사해. 우리 마을 힘장사 성칠 형이야.”
  “내캉 한 고향 마을에 살던 사촌형 룡천이야.”
   성칠은 룡천과 악수를 나누었다.
    “나니까(뭐야)?”
   그들이 머리를 돌려보니  헌병 가메다가 영팔과 수길을 꼬리에 달고 다가오고 있었다.
   가메다는 별나게 볼때기에 검은 사마귀에 털 한 모숨이 나 있었다. 하여 사람들은 그 놈을 털 한모숨이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칠백은 턱으로 털 한 모숨을 가리키면서 룡천에게 도끼를 쥐어 주었다.
   “저 가메다는 대단히 교활한 놈이야. 일하는 척 해.”
    칠백의 귀속말 뜻을 알아챈 룡천은 도끼로 나무 가지를 툭툭 치는 시늉을 했다.
   가메다는 채찍을 쥐고 거들먹거리면서 세 사람과 통나무를 번갈아보았다.
    “야, 이 놈들아, 아까부터 겨우 나무 한대를 벴냐? 엉?”
   털 한 모숨은 다짜고짜로 채찍을 휘둘러 성칠의 잔등을 내리쳤다. 날아드는 채찍을 받아 거머쥔 성칠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때 뒤따라온 영팔이가 발길을 날려 성칠의 아래 배를 걷어찼다. 성칠은 날아드는 발을 받아 쥐어 내동댕이쳤다. 영팔은 바람개비처럼 저쪽에 날려가 눈속에 머리를 보기좋게 처박혔다.
   “엉, 이 놈들, 언감 도감께 손을 대?”
  수길이 눈깔에 불길이 이글거렸다.
   룡천이 도끼를 놓고 두 팔을 벌리고 나서며 말리였다.
   “다들 왜 이래? 우리 부지런히 일하면 끝 난 거 아뇨?”
    수길은 주먹을 내리우더니 의아한 눈길로 룡천을 쏘아보았다.
   “넌 어느 마을에서 온 놈이야?”
   “저 뒤쪽 가마골에서 왔소.”
   “오, 그래?”
   수길은 도끼를 거머쥔 성칠과 칠백의 눈길에 이글거리는 불길을 보고 바삐 그 자리를 떴다.
   “부지런히 일하게나.”
   영팔은 눈구덩이에서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성칠에게 주먹을 쳐들고 흔들어 보이면서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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