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림의 랑만적인 밤거리는 연분홍 네온등이 반짝이면서 진짜 황홀한 불야성을 이루었다. 무더운 삼복지간 열대야에 찜통 같은 집 안에 갇혀 있을 수 없는지 에어콘을 시원히 틀어놓은 다방이나 백화점 같은 곳에 손님들로 붐빈다. 심지어 행인들은 무더위를 피해 지하철에도 쓸어들어갔다.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무료로 에어콘의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열대야를 보내려고 했다.
나영은 아쉬운대로 종호와 지영과 갈라져 성림을 데리고 집으로 가야만 했다.
그녀는 종호와 려향을 둘러보면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오늘 냉면도 맛있게 먹고 얘기도 잘 들었습니다. 아주 즐거운 저녁 고마워요.”
종호는 나영의 손을 살짝 잡아 주면서 말했다.
“종종 이런 파티 가지기오.”
나영은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반겼다.
“네. 좋아요. 다음엔 제가 파티 마련하죠. 답답하면 서로 한담도 하고 좋을 거 같아요.”
지영은 옆에서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영을 바라보았다.
허나 나영의 얼굴이 자기 쪽으로 돌아서자 지영은 화기애애한 표정을 지으며 아닌 보살을 떨었다.
“아쉬우면 성림이를 재워놓고 나오던지.”
“안돼!”
성림이 엄마를 손을 꽉 붙잡고 몸까지 탈면서 떼를 썼다.
“엄마, 날 혼자 두고 어딜 나와? 안돼!”
나영은 성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성림을 두고 어디로 나와? 자, 리사장님, 전 가요.”
나영은 지영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분부했다.
“오랜만에 리상님 만났을 때 전번에 내 하던 말도 좀 나누고 그래라.”
그녀는 지영이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손으로 입을 꽉 막고나서 종호 쪽을 찔끔 눈짓했다.
나영은 제자리에 돌아와 종호와 섭섭한 작별의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아쉬운대로 성림의 잡고 네온등불빛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지영은 나영한테서 눈길을 천천히 돌리더니 작별인사를 했다.
“저도 돌아가야겠어요.”
종호는 못내 아쉬웠다.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리 려향까지 셋이 커피숍에 가서 한담 더 하면 어떻소? 금방 성림이 때문에 할 말을 다 한 거 같잖은데.”
“글쎄요.”
지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좀 망설이다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갑시다. 2차는 제가 쏘지요.”
“아니, 내 어찌 지하 아가씨들한테서 얻어먹겠소? 난 종래로 아가씨들의 돈지갑을 열게 하지 않았소. 가기오. 오늘은 내가 마련한 파티 아니고 뭐요.”
그들은 누가 쏘든간에 좌우간 보근의 근사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에어콘의 시원한 바람이 힐링이 될 정도로 열대야 무더위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확 해소해주었다.
연분홍네온등이 번쩍이는 어둑시그레한 음악커피숍에서는 심수봉의 쓸쓸한 노래소리가 은은히 흘렀다.
종호는 지영과 려향을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려향이 카운터에 가서 커피를 예약했다.
이윽고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가 쟁반에 커피 석잔을 들고 디똥디똥 다가왔다.
“맛있게 드세요.”
아가씨는 깎듯이 인사했다.
“네- 맛있게 들겠어요.”
종호는 탄력 있는 몸을 돌려 나가는 아가씨 잔등에 대고 인사말을 했다.
종호는 이쁜 지영과 마주 앉아 커피를 드노나리 어쩐지 저도 몰래 혈액순환이 잘 되고 기분도 저으기 좋은 감이 들었다.
종호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몇장을 꺼냈다.
“아까 성림이 때문에 다 말하지 못했는데. 이걸 읽어보오. 이건 낡은 관념을 고치자는 취지에서 쓴 글이오. 초고인데 수개의견이나 보충할게 있으면 좀 얘기해주오.”
“네- 봅시다.”
지영은 속으로 리사장님은 진짜 관념 쁠랙홀에 빠졌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녀는 종호의 손에서 종이 몇장을 받아들고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와- 참 좋아요. 낡은 관념은 로인들이나 젊은이들이나 다 고쳐야지요. 이 문장이 나가면 사람들이 눈을 뜨게 해 낡은 관념 쁠랙홀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어줄 거 같아요.”
지영은 커피잔을 들어 종호한테 내밀었다.
“자, 축하해요. 히트칼럼이 세상에 태여난 걸. 이 칼럼을 잡지에 내면 좋을 거 같아요.”
려향이 말했다.
“저도 그 초고를 봤는데. 저희들 젊은 계층도 눈이 밝아지는 감이 들던데요. 잡지에 낸 후 온라인에도 널리 올리지요.”
지영은 박수까지 쳐댔다.
“참 좋아요. 꼭 온 사회 사람들 속에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날 거예요.”
그녀는 뒷말을 이었다.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요. 참고해 보충하면 좋을 거 같아요. 지금 로인들과 자녀들은 가치관, 소비관, 자녀교양관 그리고 생활습관, 양로방식 등 여러 면에서 관념 차이가 있지요. 옛날 로인들은 몇십년 아글타글 돈을 벌어서 년세 들어서야 집을 사고나서 백발을 휘날리면서 “아, 나에게도 끝내는 자기 집이 있게 됐구나.”라고 감탄하지요.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손에 쥔 돈이 없으면서도 부모의 돈을 가져가거나 몇백만원 대부금을 맡아서라도 근사한 집을 먼저 사놓고 들지요. 젊은이들은 으리으리하게 꾸려놓은 인생의 락을 향수하면서 돈을 벌어 몇십년 후에 천천히 집값을 갚을 궁리를 합니다. 빚을 다 문 날이면 “난 끝내 집값을 다 물었구나.”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옛날 로인들과 현시대 젊은이들의 소비관념이 다른 점이지요. 옛날 로인들은 낡은 소비관념에 의해 먼저 집값을 만드느라고 거의 반평생을 집 같은 집에서 살지 못하였습니다. 늙은이들이 자기 집을 마련했을 때는 좋은 세월이 다 흘러지나가고 황혼을 맞는 비극이 기수부지입니다. 때문에 로인들도 낡은 소비관념을 버리고 현시대 젊은이들에게서도 새로운 소비관념을 배울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일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돈이란 거미줄에 얽매워 향수하지 못하고 살겠습니까!”
려향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었다.
“호호호. 그게 별로 아빠를 두고 하는 말인 거 같아요. 아빠는 손에 쥔 돈이 없다고 여직껏 벽에 곰팽이 끼는 반토굴 같은 셋집에서 살면서 이래요. 이전에 너네 엄마하구 아빠는 결혼초기에 이런 반토굴집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우린 남의 닭굴자리에 구들을 놓은 셋집에 첫날이불을 펴고 살았어. 이래요.”
종호는 머리를 점점 숙이었다.
한참 후 그는 머리를 천천히 들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이 칼럼을 꼭 세상에 공개해야겠소. 숱한 사람들이 낡은 관념의 쁠랙홀에서 기여나오게 해야겠소.”
나영은 커피잔을 내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들지요.”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는 댕그랑 커피잔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 귀맛좋게 들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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