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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황혼 제4권(61)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악처 김장혁
2024년 10월 20일 10시 30분  조회:6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황혼 제4

           김장혁
 
   61.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악처
  

     “저승사자”가 앞으로 나간 후 얼마 안 있어 비행기는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더니 활주로에서 내달렸다. 이윽고 비행기는 기수를 건뜻 쳐들더니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종호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자못 설레이었다. 퇴직한 후 몇해만에 고향에 돌아가게 돼 자못 감회가 별스러웠다.
    타원형 유리창문으로 솜뭉치 같은 하얀 꽃구름이 둥실둥실 다가왔다가도 뒤로 날려갔다.
    비행기는 일정한 고도에 오르자 반듯이 기체 균형을 잡더니 평온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 앞에서 나영이 여기저기 살피면서 뒤좌석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여경이 딱 붙어 따라왔다.
    종호는 나영이 자기를 쉽게 찾으라고 좌석에서 우쭐 일어섰다.
    나영은 종호 옆에 다가오자 주춤 멈춰섰다.
    “카시모도, 내 남편 철석한테 리혼청구서와  성림을 봐달라고 전해주세요.”
    나영은 미리 준비한 종이 두장을 꺼내 종호 앞에 내밀었다.
    “뭐야?”
    나영이 여경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리혼청구서와 편지입니다.”
    여경은 종이 두장을 쇠고랑이를 찬 나영의 손에서 홱 채다가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조선어로 씌여져 있어 눈은 있어도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었다.
    여경은 특급좌석쪽을 되돌아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최국장님, 여기 오겠습니까?”
    “왜 그래?”
    최혜영 국장이 우쭐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숱한 여객들의 눈길이 여경과 나영한테 쏠렸다.
    최혜영 국장은 다급히 다가왔다.
    저쪽에서 류려평과 여경들도 이쪽으로 머리를 쳐들고 돌아보았다. 류려평의 퉁사발눈에서는 별스런 빛이 섬찍하게 번떡이었다.
    그녀들은 종호와 나영이 서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여경과 최혜영 국장이 주고 받는 말을 다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오?”
    최국장의 묻는 말에 여경은 나영의 손에서 빼앗은 종이 두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지 이 분께 넘기 건데요.”
    류혜영은 종호와 나영을 번갈아 쏘아보더니 종이를 받아쥐어 들여다보고 여경한테 넘겨주었다.
    “리혼청구서와 남편한테 쓴 편지구만. 문제없소. 이분은 신문사 리부사장이오. 돌려주오.”
    “예. 알았습니다.”
    여경은 최혜영 국장과 종호가 나란히 앉아 담소하는 걸 보았기에 그들이 그저 이만저만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녀는 종호한테 군례까지 척 붙이고 나서 종이 두장을 종호한테 되넘겨주면서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금방 너무 조폭하게 대했는데 널리 량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종호는 종이장을 받아 호주머니에 잘 건사하면서 여경의 언행에는 개의치도 않았다.
   “괜찮소.”
    여경이 나영의 등뒤를 떠밀었다. 진짜 시에미 역정에 개 배때를 차는 격이었다.
    “화장실 가겠다더니, 참, 걸엇!”
    종호는 나영한테 말했다.
    “금심하지 마오. 자주 면회하러 갈게.”
    종호는 나영이 근심할가 봐 성림이 중한 심장병과 코로나에 걸렸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그는 돌아서서 묵묵히 두 손에 쇠고랑이를 찬 채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가는 나영의 가녀린 등뒤를 바라보았다. 순간 저도 몰래 콧   마루가 시큼해남을 어쩔 수 없었다.
     종호는 자리에 되앉아 이슬이 촉촉이 맺힌 눈을 슬며시 감았다.
    “나쁜 놈, 제 명에 썩어지는가 봐라. 흥!”
    이때 귀에 익은 앙칼진 녀인의 욕소리 다가왔다.
    종호가 눈을 번쩍 떠보고 깜짝 놀랐다.
    류려평이 퉁사발눈깔로 그를 무섭게 쏘아보며 욕하며 살진 입술을 마구 깨무는 것이 아니겠는가.
    “종호, 비행기에서제 녀편네하고는 위안하는 말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흥, 저 갈보년과 련애를 잘 하는구만. 네놈이 진작 저 갈 보년과 살자고 리혼하자는 거 모를 거 같애? 저년과 재혼하자고 부랴부랴 리혼청구서를 만들어가지고 날 찾아왔지?  난 리혼 안하겠어. 너네 년놈들이 내 벌어놓은 걸 흔자만자 쓰면서 사는 거 보자구 리혼할 거 같애? 리혼청구서를 돌려달라. 갈기갈기 찢어버릴테야. ”
    류려평은 쇠고랑이를 찬 손을 들어 당장 종호를 칠 상 했다. 그러나 종호는 개 짖는 소리를 들었는둥 만둥 잠잠히 앉아 있었다.
    사실 류려평은 이 시각에 더 없는 절망감과 위기감을 느꼈다. 종호와 나영이 뭐라고 주고 받는 걸 보자 류려평은 눈에서는 질투와 격분에 찬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마구 물어뜯어놓고 싶었다.
    그때 여경이 류려평의 뒤잔등을 떠밀며 제지했다.
    “욕설을 작작 퍼붓고 걸엇! 언제 화장실까지 가겠어?!”
    류려평은 씩씩 거리며 억지로 떠밀려 뒤로 걸어갔다.
     그때 나영이 여경한테 압송돼 맞은 쪽에서 다가왔다.
     “개쌍년!”
    갑자기 류려평은 쇠고랑이를 찬 두 손을 쳐들어 나영의 머리를 내리쳤다.
    “가랭이를 찢어 죽일 개쌍년, 녀년이 감히 우리 집 재산을 넘보는 거야?!”
    류려평은 악귀처럼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쥐여 뜯어놓았다.
    불시에 일어난 사변에 여경들은 깜짝 놀랐다.
    “닥쳣!”
     “그만 두지 못할까?!” 
     여경들은 단말마적으로 나영을 쥐어 뜯는 악귀 같은 류려평의 량팔을 겨우 뒤로 비틀어 제지시겼다. 기내 안전원과 공중아가씨들도 달려와 여경들을 도와 류려평을 제압해 특급좌석으로 떠밀었다.
     나영은 머리에서 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 볼을 적셨다. 평소에 볼우물을 옴폭 파던 볼에, 그 곱던 수척한 볼에 피와 머리카락에 한데  엉켜 붙어 보기도 구차했다.
    여경들은 류려평을 특급좌석에 물앉혀 놓은 후 쇠고랑이를 하나 더 꺼내 류려평이 손목에 찬 쇠고랑이와 안전벨트에 절컥 채워놓았다. 류려평은 이젠 앉은 자리에서 한치도 꼼짝 못하게 돼버렸다.
    여경은 나영을 류려평과 건너편 특급좌석에 앉혀놓았다.
    나영은 팔받치개를 탁탁 치면서 울분을 토해냈다.
    “개쌍년, 내 입이 터지면 류덕재하구 네년은 죽는다, 죽어!”
    공중아가씨들은 최혜영 국장의 분부를 받고 림시구급약통에서 운남백약 지혈제를 꺼내 머리 상처에 쳐주고 소독솜으로 머리의 상처와 볼에 묻은 피를 처치해주고 붕대로 터진 머리 상처를 이리저리 동여매주었다.
    숱한 여객들의 눈길이 앞쪽 특급좌석에 앉은 류려평과 나영한테 쏠렸다. 여기저기서 불평에 찬 목소리 들렸다.
    “오늘 별난 것들과 함께 다 비행기를 탔다.”
    “부부간인 모양잉지? 리혼이구 뭐구 하는 거 보면.”
    “글쎄 말이야. 창피하지도 않은 모양이지? 비행기에서 싸우다니? ㅉㅉㅉ.”
    “저년은 무슨 죄를 졌기에 저랠까?”
    “아마 죽을 죄를 졌는 모양이지?”
    “글쎄 말이야. 한국에까지 와서 잡아가는 걸 봐라.”
    주위의 어떤 여객들은 종호를 흘끔흘끔 곁눈질했다.
    종호는 너무나도 창피해 눈을 지긋이 감아버렸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걸 알았는지 류려평은 악마로 탈바꿈했구나. 이빨을 쁙쁙 갈면서 나영한테 행악질하는 거 봐라. 사람 같은가? 진짜 이젠 인성이라곤 꼬물만치도 없구나.)
    종호는 생각할수록 섬찍해났다.
    (저년이 이제 또 무슨 짓거리를 할지 몰라. 나를 죽어라고 무함할 수도 있어. 만단의 사상준비를 해야겠구나.)
    이때 앞좌석에서 또 소란이 벌어졌다.
    “화장실에 보내달라! 오줌깨 다 터진다!”
    류려평이 또 고래고래 고함쳤다.
    “아무리 죄수라도 그렇지. 바지에 오줌을 싸래?! 저승사자 같은게, 씨, 경찰들은 인도주의라곤 꼬물만치도 없어?! 너네도 같은 녀자 아닌가? 어쩜 이리 지독해? 항의한다! 항의해!”
    최혜영 국장은 하는 수 없어 여경들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오.”
    여경들은 하는 수없이 안전벨트에 채운 쇠고랑이를 풀고 류려평을 다시 압송해가지고 화장실 쪽으로 갔다.
     그러나 여경들은 이번에는 류려평이 다른 짓거리를 못하게 두 손을 뒤에 가져다 쇠고랑이를 절컥 채웠다.
    류려평은 종호 가까이에 다가가자 또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제 노릇도 못하는 바보, 네 놈 바보를 만나 한평생 개고생한 거 생각하면 원통하다. 원통해! 물독이 떵떵 우는 셋집에서 엄동설한에 물을 길어먹으면서 산 거 생각하면 이빨에서 다 신물이 난다. 신물이 나. 몸서리쳐진다. 이 개새기야!”
    이때 종호 등뒤에서 또 악처의 고함소리 들렸다.
    종호는 보기 창피해 류려평을 되돌아보지도 않았다. 보나마나 이를 악물고 고함칠게 뻔하지 않는가.
    “소리치지 말엇! 여객들의 휴식에 영향준다.”
     여경이 제지시키며 류려평의 등뒤를 떠밀었다.
     그러나 류려평은 온 기 내 떠나가게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이 조금만 경제적으로 만족시켜 줘도 내 그렇게 고생했겠어? 불알 차고 어디 남편 구실이나 했는가? 그 불알 떼서 개나 줘라!”
     류려평은 한족이나 조선족이나 다 들으라고 고의로 천천히 걸으면서 한어와 조선어를 섞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렁이 나가는지 모르고 횡설수설 고함쳤다.
     그러나 여경들은 류려평의 입을 틀어막는 수도 없어 악처가 악다구니질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불알이 하나 밖에 없어가지고 그 즛살에 젊고 이쁜 년들을 넘써 봐?! 흥! 삶은 소대가리 웃다가 꾸러미 다 터지겠어. 썩달걀 하나 가지고 저년과 속살을 섞을 거 같애? 고자 같은게, 어림도 없어. 그 개불알이 썩어 떨어지지 않는가 봐라. 개 좆 같은 궁리 작작 해라! 이제 앉은 개 조지 불거지지 않는가 봐라! 하나 밖에 없는 불알도 죄를 만나 썩어떨어지지 않는가 봐라! 네 놈은 제 새끼 하나도 낳지 못하고 화장텀에 가서 타 죽지 않는가 두고 봐라! 개새끼! 제 명에 썩어지는가 봐라!”
      종호는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누워서 침 뱉으면 제 낯에 떨어진다는 걸 알아라.”
     경찰도 류려평을 떠밀면서 제지시켰다.
     “입 다물지 못해?!”
     그러나 류려평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면서도 작정한듯이 단말마적으로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나를 살인미수죄로 몰아넣고 총살하고 저 갈보년과 콱 잘 살아라!”
    류려평은 쇠고랑일을 찬 두 손을 쳐들어 나영과 종호를 번갈아 가리키면서 악귀처럼 떠들어댔다.
    “저년은 문화국 최정호 국장과 바람 피운 갈보년이란 걸 모르는가? 저년은 전람관 공금을 탐오한 죄가 두려워 최정호 국장을 따라  일본과 한국에 도망쳤다가 붙잡힌 년이야…”
    나영도 머리에 피 묻은 붕대를 감은 채우쭐 일어나 뒤쪽에 대고 맞불을 놓으며 소리쳤다.
    “그 개쌍년 말을 믿지 마십시오! 세상 미친 년입니다! 제 나그네도 죽이자고 한 악처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악처입니다.”
    여기저기서 쑤근거리는 소리 들렸다.
    그러자 류려평은 뒤쪽에서 앞에 대고 고함쳤다.
    “저년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람쟁입니다. 군스나 몇인지 모릅니다. 문화국 최국장과 바람 피우던게 이젠 또 여기 앉아 있는 이놈, 신문사 리종호 사장놈과 눈이 맞아 바람 피웠다. 나와 리사장은 아직 리혼도 하지 않았어. 너네 년놈들은 중혼죄를 졌어. 어디 죽을 때까지 해보자!”
    바빠맞은 여경들은 최혜영 국장과 안전원의 지시대로 허연 수건을 가져다가 류려평의 입을 틀어막았다.
    류려평은 몸부림치며 야단쳤지만 더는 소리치지 못했다.
    그제야 기내가 좀 조용해졌다.
    종호는 기내 숱한 따끔한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는 것을 얼굴 따갑게 느꼈다.
    여기저기서 별난 소리 다 들렸다.
    “저런 녀편넬 만나면 개고생하겠다.”
    “한족녀펴넨 얻을게 아니다이.”
    "한족녀편네들은 다 저래. 나그네하구 쎄냥 한단 말이오."
    "진짜 악처란 말이 맞는 거 같소."
    종호는 너무나도 창피해 두 눈을 꼭 감고 깊은 사색에 잠겼다.
    외나무다리에서 악처를 만난 종호는 세찬 파도에 맞아 충격을 받았다. 그 세찬 파도는 종호한테 수많은 귀띔도 해주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앞으로의 대책도 서서히  가닥이 잡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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