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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황혼 제4권(72) 불여우의 꼬리 김장혁
2024년 11월 10일 11시 08분  조회:10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장편소설 황혼 제4

             김장혁
 
     72. 불여우의 꼬리
 



   종호는 악처 량옆에 딱 붙어 있는 여경들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여경들은 한족 같았다.
   종호는 류려평만 알아듣게 조선말로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하루 장백산 기슭에 꼬리 긴 토끼 한마리가 나타났지. 그 놈 토끼는 다른 토끼들과는 달리 꼬리가 특별히 길었고 엄청 덩치가 컸지. 그래서 원시림동산 경찰인 멍멍이가 그 토끼를 보고 ‘왜 그렇게 꼬리 긴가?’고 물었지. 그러자 토끼는 자기는 벨지끄 토끼 돼서 덩치도 크고 꼬리도 길다고 했지. 또 자기는 알프스산의 이슬만 먹고 살아서 마음이 이슬처럼 맑고 깨끗하고 붉다 못해 눈마저 새빨갛게 됐다고 했지.”
    류려평은 종호를 쏘아보며 픽 코웃음쳤다.
    “그만. 쇠고랑이를 차고 언제 그런 얘기 들을 새 있어. 발목이 아파 죽겠어. 오늘 찾아온 요건만 말해.”
   그러건 말건 종호는 계속 이야기했다.
    “어느날, 원시림동산 곰이 바위돌 밑에 숨겨 놓은 사슴 고기를 어느 놈이 도적질해갔지 뭐야. 경찰 멍멍이는 흡흡 냄새를 맡더니 곰한테 토끼 입에서 사슴 고기 냄새 난다고 고발했지. 그런데 곰은 멍멍이경찰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어. ‘초식동물인 토끼가 사슴 고기를 도적질해 뭘 하겠는가?’고 했지. 심지어 토끼는 증거도 없이 아무나 문다고 멍멍이를 산중대왕 백두호랑한테 고발했지. 멍멍이경찰은 밤잠을 자지 않고 아름드리미인송 옆에 숨어 있으면서 바위돌 밑에 있는 사슴고기를 누가 훔치는가 살폈지. 그런데 밤중에 땅 밑에서 누가 바위돌 밑으로 굴을 파는 소리가 들렸지. 멍멍이경찰은 산중대왕 호랑이와 코끼리, 곰한테 달려가서 알렸지. 모두들 달려와 보니 바위돌 밑에 굴이 펑 뚫리지 않았겠어. 그런데 굴 어귀에 누런 털이 부숭부숭한 기다란 꼬리가 드러나지 않았겠어. 멍멍이경찰이 그 길다른 꼬리를 딱 밟았지. 곰은 꼬리를 쥐어 힘껏 당겼어. 웬걸, 굴에서 끌려나온 놈을 찬찬히 보니 원래 도적놈은 그 놈의 꼬리 긴 토끼 아니겠어?”
    류려평은 십중팔구는 자기를 빗대 욕하는 얘기라는 걸 눈치챘다.
    “그만하지 못해? 내 무슨 세살짜리 앤가 해? 누굴 빗대고 욕하는 거야?”
    그러나 종호는 계속 얘기했다.
    “산중대왕이 그 꼬리를 쥐어 훌 당기니 가죽이 쭉 벗겨지지 않겠어? 원래 그 놈 꼬리 긴 토끼는 토끼 가죽을 쓴 불여우가 아니였겠어? 곰은 불여우의 꼬리를 밟고 산중대왕은 불여우의 배때기를 콱 밟았어.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여우의 배때기 터지면서 사슴 고기 터져 나오지 않았겠어. 허허허.”
   종호는 이야기를 마치고나서 류려평 눈치를 뚫어지게 쏘아보면서 불여우에 빗대여 비난했다.
   “이 동화는 한 조선족작가가 쓴 동화요. 어째 이 동화 줄거리를 얘기했는지 알만 하오? 자기 한 짓을 곰곰히 생각해 보오. 불여우가  아무리 토끼가죽을 쓰고 착한 척 해도 꼬리 길면 아무 때든지 꼬리를 밟히기 마련이오. 바위돌 밑에 파묻어둔 사슴고기랑 훔친 것도 다 드러났소. 아무리 자기 전부 인생을 땅 밑에 파 묻어 둬도 다 백일 하에 드러나기 마련이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걸 아오.”
   류려평은 속이 떼끔해났다.
    (저 놈 무슨 소리야? 려향한테 아빠 산소에 파묻은 비밀을 알아챘는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지금 날 썰매떼기하는 거야.)
    악처는 서서히 침착성을 회복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무슨 허튼 소리 치오? 그래 어쩔 셈인가? 툭 찍어놓고 말해.”
   종호는 단도직입적으로 요건을 말했다.
   “떼를 작작 쓰고 당장 리혼수속을 하기오.”
   픽!
   류려평은 퉁사발눈을 부라리면서 코웃음쳤다.
    “안돼. 절대 리혼 안해? 이젠 몇번 말했어? 살인미수죄를 들씌워서  총살맞게 물어먹고서도 리혼해달라고? 경찰들을 데리고 와서 위협하면 리혼할 거 같애? 쳇, 어림도 없어. 리혼은 내 자유야.”
    악처는 절대 종호 앞에서 기 죽은 표정을 보여선 안되였다. 그럼 진짜 꼬리 드러날게 아닌가?
   종호는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당신을 물어먹었다고? 난 지금까지 당신 죄를 경감시키려고 그랬소. 당신도 알지만, 처음엔 당신이 내 링겔병에 뭘 주사해넣지 않았다고 했지. 산소호흡기도 내 절로 뗐다고 하잖았소? 그후 당신은 려향과 면회할 때 당신이 살인미수죄를 졌다고 말해야 당신이 한국 법정에서 판결받게 되면 중국에 인도되지 않는다고 하잖았소? 당신은 려향을 통해 날 보고 도와달라고 비난사정까지 하지 않았소. 그래서 당신의 살인미수죄를 사실대로 말하게 됐지. 지금 와서 날 물어먹었다고 억울하게 굴겠소? 또 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남편을 살해하려 한 숱한 단서를 남겼소.”
    종호는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않고 경고했다.
    “당신 부정축재 얼마나 되오? 그래 그 많은 집이랑 재물을 다 나와 함께 나눠가질 생각이오? 당신 무기징역을 받거나 사형 받으면      그 재산 다 누구게 될 거 같소?”
    그 한마미 한마디 말은 모두 비수로 돼 류려평의 심장을 찔렀다. 류려평은 더 숨을래야 숨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저 놈이 내 부정축재 내막을 다 아는가? 아니야, 절대 알 수 없어. 지금 나를 썰대떼기 하는 거야. 흥! 늙은 너구리 같은 놈. 누굴 얼리려고? 난 꼬리 긴 토끼처럼 그렇게 쉽게 꼬리 드러나지 않을 거야. 흥!)
    류려평은 아닌 보살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고, 미안해 어쩌겠니? 당신 그렇게 안해를 보호한 것도 모르고 억울하게 굴다니? 원, 참.”
     악처는 퉁사발눈으로 종호의 표정을 핼끔 훔쳐보며 지껄여댔다.
     “그래요. 하루 밤 부부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우린 조강지처 아닌가요? 부부간에 무슨 원쑤 졌는가요? 관건적인 시각엔 그래도 자기 안해를 보호할 거죠?”
    종호는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 조강지처? 퉤! 네년은 무대랑한테 독약을 먹여 죽인 반금련이야!  세상에 둘도 없는 악처,  네년은 한평생 날 사기쳤어! 날 속이고 류덕재하고 살아서 려향까지 낳지 않았는가? 아직도 누굴 속이려고 들어?)
    종호는 괘씸한 생각 같아선 귀썀을 한대 찰싹 갈겨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내심을 드러내 보여서는 안되였다. 그는 어떻게 하나 꾹 참고 류려평을 얼리고 닥쳐서라도 리혼수속을 이끌어내야 했다.
    류려평은 무서운 주산알이었다. 때문에 종호는 리해득실을 따져가면서 류려평을 손을 들게 해야 했다.
    “당신은 유일한 희망이 무남독녀 류려향이 아니오? 그런데 그 재산이 려향 걸로 될 거 같소? 리혼하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는 걸 알아두오.”
    “류려향이라니?”
    류려평은 태연자약한 척 하면서 부정축재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않고 왕청 같은 말을 지껄여댔다.
    “불시에 왜 리려향을 류려향이라고 지껄이는가?”
    종호는 악처의 옷을 활 벗겨버렸다.
    “려향이 원래 류씨네 딸인데 어째 이상하오? 당신 말처럼 려향이 전주 리씨네 딸이 되기보다 한고조 류방네 후손이 되면 얼마나 좋소? 당신네 류씨네 더러운 족보에 올리면 또 기적이 아닌가?”
    류려평은 제 쪽에서 도적놈이 “도적이야!” 하는 적반하장 격으로 떠들어댔다.
    “아니, 무슨 미친 소릴 줴치오? 지금 려향은 내 바람 써서 낳은 딸이란 말이오?”
   종호는 한술 더 떴다.
   “당신이 젤 잘 알잖소? 이미 전번 면회 때 려향을 시켜서 DNA검사까지 하게 하잖았소?”
    순간 류려평은 등곬에 소름이 쫙 끼쳤다.
    (아니. 저 놈이 저걸 어떻게 다 알아? 이젠 끝장이야. 저 놈이 구치소 놈들을 매수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겠는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낮게 한 말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저 놈이 또 썰매때기 할 수도 있어.)
    류려평은 인차 침착성을 회복하고나서 물었다.
    “그래 리혼하면 려향의 성을 우리 류씨네 성으로 고치게 할 예산인가?”
    “내 새끼 아닌데. 왜 우리 신성한 전주 리씨 성을 타게 하겠소? 당신네 류씨네 더러운 족보에 올리오.”
    류려평은 철면피하기로 짝이 없었다. 낯짝이 두껍기로 돼지 언덩짝 같았다.
    “그렇게 하기오. 이제부터 려향은 리려향이 아니라 류려향이란 걸 알어.”
   종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류려평을 쏘아보면서 조소했다.
    “류려평, 류려향, 진짜 에미 딸인지? 자매간인지?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겠구나. 이제 색마 류덕재 행장한테 걸려들면 또 애비 딸인지, 처제와 처형 관계 되겠는지도 몰라. ㅋㅋㅋ.”
    류려평은 벌떡 일어나 쇠고랑이를 찬 손을 휘둘러 종호를 칠 상 했다.
    “누굴 모욕해?! 네놈이 감히 우리 한고조 류방의 후대를 릉욕해? 제 명에 썩어질 거 같아?”
    종호는 류려평을 손으로 찌를듯이 손가락질해대며 을러멨다.
    “건 널 두고 하는 소리야. 지금까지 살아온 걸 생각해 봐라. 네년이 그런 소리 듣지 않게 됐는가? 세상 오누이 사이에 바람 피워 애까지 만들어놓고, 창피한줄도 몰라? 이 세상에서 대갈 쳐들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내 창피해 못 살겠다.네 같은 걸 이때까지 안해라고 믿고 산 내가 바보지. 원, 참.”
악처는 더러운 몰골이 다 드러났다. 이젠 불여우의 긴 꼬리를 더 숨길 데도 없게 됐다.
    악처는 머리를 툭 떨어뜨리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었다.
    악처 머리 속에서는 우뢰가 꽈르릉 치고 번개가 번쩍였다.
    그녀는 베아링처럼 속궁리를 굴렸다.
    (난 이젠 끝장났어. 난 죽든지 말든지, 한평생 감옥에서 살든지 말든지 관계없어. 허나 려향만은 내 대신 향수하면서 살게 해야 해.      그런데 저 바보 내 밑바닥을 다 파 본 거 같아. 이래서 류덕재 그랬겠다. ‘젤 위험한 적은 곁에 있다.’ 그래서 류덕재는 저 놈을 죽여 살인멸구하라고 날 한국에 보냈는데. 저 놈을 죽이지 못한게 후회막급이야. 진짜 큰 후환이야. 려향의 앞날을 위해 저 놈을 죽여버려야 했는데. 이걸 어쩌는가?)
    그때 종호가 악처한테 정색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권고하는데. 내 리혼하자고 할 때 리혼하기오.”
    류려평은 실오리만한 희망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당신은 마음씨 착하지 않고 뭐요? 리혼하더라도 려향은 해치지 않지?”
    종호는 바로 앉으면서 똑똑히 말해두었다.
    “길러준 정이 있는데 왜 려향을 해치겠소?”
   류려평은 려향의 앞날을 위해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길러준 아버진 양아버지 아니고 뭐요? 리혼해도 우리 재산을 려향한테 넘겨주는게 옳지 않소?”
   종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도 알지 않소? 난 이제껏 재물엔 털끝만치도 관심없이 살아왔소. 당신 전부 인생을 어디다 어쨌든지간에 난 관심이 없소. 전번에 리혼청구서에 밝힌 것처럼 다만 46평방메터 짜리 집만 내 가져야겠소."
    여탐관은 픽 코웃음쳤다.
    "리종호 사장님, 재산이 참 많군요. 제 노릇도 못하는 바보 같은게. 고까짓 쥐 구멍 같은 집도 재산이라고 옴니암니 따져? 리혼하면 걸레도 가위로 베서 나누는 구두쇠도 있다더니. 참, 당신 가소롭기 짝도 없어!"
   종호는 정색해 엄중경고를 했다.
   "그 집은 내 정신로동의 대가 원고료로 산 집이니까. 난 아주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기념이야. 허나 넌 집이 아무리 몇채 돼도 모두 시한폭탄인줄 알아라.”
   류려평은 퉁사발눈이 화등잔이 돼 횡설수설했다.
   “당신 지금 날 위협해? 혹시 내라는 긴 꼬리를 잘라버리자고 리혼하려는 건 아닌가?”
   종호는 더 길게 말하기도 싫었다.
    “어떻게 생각하든 다 좋아. 당신도 머저리는 아닌데, 려향의 앞날을 생각해도 그렇고 모든 걸 생각해 봐도 리혼하는게 좋을게오. 이젠 애들처럼 떼질쓰지 마오. 리혼하는데 동의하지?”
    순간 류려평의 머리 속에서는 번개처럼 주산알이 튕겼다. 아무리 주산알을 요란하게 튕기면서 따져 보아도 리혼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들어섰다.
   류려평은 희죽이 웃기까지 하면서 목구멍에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리혼에 동의하오.”
   종호는 벌떡 일어나며 한어로 말했다.
   “그럼 당장 민정국에 가서 리혼수속을 하기오.”
   류려평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량옆에서 자기 팔을 딱 잡은 여경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어디로 가? 창피해 죽겠다.”
   여경이 날카로운 눈길로 류려평을 쏘아보았다.
   “창피한줄 알면 왜 그런 죄를 저절렀는가?!”
   종호는 여경들 보고 부탁했다.
   “김호 대대장을 불러주겠소?”
   이윽고 김호 대대장이 소회의실에 들어섰다.
   종호가 김호 대대장한테 말했다.
   “리혼수속을 하러 민정국에 피뜩 갔다가 와야겠소. 류려평이 창해하는데. 발목의 쇠사슬만 풀어주면 안되겠소.”
   그러자 김호 대대장이 여경들한테 시원히 말했다.
    “그러오. 손목에만 쇠고랑이를 채워가지고 나와 여경들이 압송해 민정국에 가면 되오.”
    “그렇게 합시다. 아무리 죄수래도 인권과 자존심을 지켜줘야지.”
   종호는 김호 대대장과 여경들과 함께 경찰차에 류려평을 데리고 민정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이제야 리혼 딜레마에서 서서히 해탈되는 감을 느끼었다. 아니, 새 세상이 활짝 열리는 감이 들었다. 순간 무엇 때문인지 예순도 넘은가슴마저 몹시 설레이었다. 그는 저도 몰래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해탈감도 잠시뿐이었다. 불현듯 그의 눈 앞에 불여우의 긴 꼬리가 디룽디룽 걸려 그네를 뛰는 것 같아 또 다른 고민의 심연에 빠져들어가는 감이 들어 저으기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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