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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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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
2015년 05월 14일 16시 07분  조회:215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3장 운주동




        1. 경성 힘장사




        어느 날 하늘에서는 거위털 같은 함박눈이 푸실푸실 니렸다. 그러나 성칠은 말을 타고 눈길을 헤치면서 사냥 길에 나섰다. 검둥이는 여느 때처럼 앞에서 코로 킹킹 냄새를 맡으면서 달려 나갔다.
      성칠은 재수 없어 명천군 산골에서 박달령까지 넘으면서 고생했건만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성칠은 한길수가 은녀를 빼앗아 갈 예산을 하는 눈치가 보이는지라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그럭저럭 꿩 사냥이나 하면서 들어 가다나니 명천의 원시림도 벗어나고 경성군 주을면의 어떤 눈 덮인 산기슭에 이르렀다. 명천의 산보다는 달리 잔나무가 우거졌을 뿐이었다.
     그때 웬 중년사나이가 애들 둘을 데리고 무릎이 펑펑 빠지는 산기슭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냥군인가?)
     산에서 젤 두려운게  야수보다도 사람을, 특히 사냥군을 만나는 것이다. 
    순간 성칠은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쥐고 경계의 눈초리 꼿꼿해졌다. 그런데 중년사나이와 애들은 손에는 총도 없이 빈 손이 아닌가?
     (그럼 나무군인가?)
    그런데 손에 낫도 도끼도 들지 않고 맨 바 줄만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그 사내는 산 속의 나무들을 둘러보더니 어깨의 바줄을 벗어 애들에게 건네주었다. 뒤이어 그 사내는 팔뚝만하고 대여섯 길만큼 한 나무를 손으로 잡고 “윽!” 하고 어깨로 떠밀어서 툭 끊는 것이었다.
     애들이 나무를 척척 모아 놓고 바 줄로 꿍꿍 묶어놓는 것이었다.
      (정말 괴력을 가진 힘장사구나.)
     칠성은 말에서 내려 말고삐를 잡고 스적스적 다가가면서 인사를 건네었다.
     “여보시오. 과연 힘장사구먼. 도끼도 쓰지 않고 이 실한 나무를 어깨로 툭툭 끊다니. 쯧쯧쯧.”
     성칠은 혀를 끌끌 찼다.
     그 사내는 손을 마주 툭툭 쳐서 눈을 털면서 성칠과 적토마를 엇갈아보면서 말했다.
       “어데서 온 양반인지는 모르겠소만. 우린 대대로 이 지방에서 살면서 도끼를 쓸 줄 모르고 땔나무를 했다오.”
      성칠은 그 사내를 우러러보며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알고 지내기오. 난 명천군 상우남면 운주동의 사냥꾼 김성칠이오.”
      그 사내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경성군 주을면 용천동 리원삼이오. 이 애들은 내 맏이 장활과 둘째 장은이오. 얘들아, 어서 인사해라.”
      애들은 낯선 성칠을 힐끔 쳐다보더니 어색하게 그저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리원삼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시골에서 자란 애들이라서 수줍음을 많이 타 인사할 줄을 잘 모르오.”
     성칠은 저 산 아래 바라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여기 멧돼지나 호랑이 같은 큰 야수들이 출몰하지 않소?”
     리원삼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으면서 넉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여긴 멧돼지랑 호랑이랑 많소. 여름과 가을 한철에는 그 놈의 멧돼지하구 곰 성화로 감자농사와 옥수수농사를 망쳐먹는 때가 많소. 그런데 온 마을에 사냥총 한 자루 없으니 그 놈들을 어디 당해내겠소?”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원삼은 성칠의 아래위를 살펴보더니 뒤말을 이었다.
     “이보시요. 먼 곳에서 왔는데. 자, 누추한 대로 우리 집으로 가서 토장국이나 먹고 사냥을 하오.”
     성칠은 그러지 않아도 언 주먹밥을 먹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헤매느라고 시장기가 들었다. 그리하여 리원삼의 집에 가서 잠간 쉬고 싶었다. 황차 황소처럼 우람지게 생긴 리원삼이가 사내대장부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러기요.”
      리원삼은 어깨로 사발 밑굽 같은 나무 몇 대를 더 떠밀어 툭툭 끊어 큰애의 손에서 바 줄을 받아쥐어 대여섯 대씩 묶어 두 단을 만들었다.
     이때 둘째 장은이가 손에 눈덩이를 쥐여 형 장활에게 뿌렸다. 면바로 장활의 낯에 맞아 눈만 팬들거렸다.
    “이 새끼, 어디 덤벼봐라.”
      맏이는 동생에게 연속 눈을 쥐여 뿌렸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원삼이 눈을 뚝 부릅뜨자 애들은 그제야 머리를 수굿하면서 손에 쥐였던 눈을 버리고 손을 톡톡 털었다. 그리고 땔나무 하나씩 골라잡고 산 아래로 끌고 내려갈 잡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성칠은 원삼에게 권고했다.
      “나무 단을 말 잔등에 싣고 가기요.”
     그러나 원삼은 사양했다.
      “아니, 그만두오. 산에서 말보다 내 어깨가 낫소.”
     성칠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때 원삼은 긴 머리 태를 목에 몇 번 감고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어 비볐다. 뒤이어  그 큰 나무 단을 두개나 “엇차!” 소리와 함께 단번에 오른쪽 어깨에 척 둘러메고 산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가기오.”
    성칠은 입이 함박만큼 딱 벌어졌다.
    “아니, 그러지 말고 내 말 배때에 한단씩 달아매면 되오. 저 죄꼬만 애들이 어떻게 나무를 끌고 간다고 그러오.”
    원삼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일없소. 그 애들도 어려서부터 나무를 끌고 내려가 놔서 괜찮소.”
    원삼은 나무단을 두 단이나 메고 눈 덮인 산비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성칠도 힘을 꽤나 썼지만 원삼의 로지심 같은 괴력에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무단을 메고 눈 덮인 산비탈을 평지를 걷듯 내려가는 원삼의 억대우 같은 뒤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애들이 끌고 내려가는 나무 두대를 바로 묶어 말안장에 매여 끌고 원삼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검둥이는 버릇처럼 성칠의 앞에서 귀 벌쭉해서 달려 나갔다.
     원삼은 중도에서 한 번도 숨도 돌리지 않고 산기슭까지 내려가 한 헐고 낮은 초가집 울안에 들어가 나무단을 쾅 메쳤다.
      그는 뒤에서 말에 나무 두 대를 매 끌고 오는 성칠과 두 아들을 돌아보았다.
        “에이, 사람도 끝내 말로 끌고 오네.”
       성칠이 울안에 들어섰을 때 집안에서 키가 작달막한 중년여인이 나왔다.
      “인사하오. 명천군 영월동에서 온 사냥꾼 김성칠이오.”
      “반갑습구마.”
      원삼의 아내는 허리를 굽혀 함경도 말로 인사하고는 집안에 들어가더니 부엌에 내려가 불을 일구고 솥을 부시였다.
      성칠은 적토마 배때에 걸어놓았던 그물주머니에서 꿩 두 마리를 꺼내 들여갔다.
     “자, 사냥을 많이 하지 못하였소. 이걸 끓여 먹기오.”
     “야, 양양 맛있다. 꿩고기 맛있다.”
     “양양 맛있다. 오래오래 맛있다.”
     애들은 알락달락한 꿩을 보자 퐁퐁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이 눈 덮인 산속에서 헤매면서 잡은걸 주다니. 참, 자넨 빈손으로 집에 가겠소?”
      “근심하지 마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냥하면 될게 아니겠소.”
      원삼은 마지못해 꿩 두 마리를 받아 아내한테 주었다.
      그러자 묵직한 꿩 두 마리를 받은 원삼의 아내는 “아니, 두 마리나!” 하고 여간 감탄해마지 않았다.
       성칠은 사냥총을 들고 집안에 들어가 벽에 기대 세워놓고 원삼과 마주 좌석을 정해 앉았다.
      원삼이가 털모자를 벗자 고슬고슬한 양머리가 드러났다. 원삼의 양머리라든가 툭 튀어나온 이마아래 쑥 꺼져 들어간 눈이 사내내장부의 매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때 이르게 이마에 패인 밭고랑 같은 주름살이 지지 않았겠는가. 그 주름살은 풍상고초를 겪으면서 살아온 원삼의 흘러간 인생길을 보여주는 상 싶었다.
       원삼의 아내가 꿩 깃털을 한대씩 뽑아주자 애들은 좋다고 깃털을 기발처럼 쳐들고 밖으로 뛰어나가 깡충깡충 뛰놀았다.
      성칠이 집안을 둘러보니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걸칠 것이 없었다. 덕 우에 놓인 함지와 조왕 쪽에 반지르르한 쌀독 몇 개, 벽 쪽에 놓인 농짝 두개밖에 눈에 뜨이는 것이 없었다. 까래는 따닥따닥 기워 볼품없었다.
     “이 마을에 모두 몇 호 살고 있소?”
       성칠의 물음에 원삼은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 넣고 불을 붙이면서 대답했다.
      “한 십여 호 사오. 내 춘삼 맏형님과 인삼 둘째형님, 무삼 동생도 이 마을에서 사오. 우리 집안은 몇 대를 이어 이 골 안에서 살아왔소. 그런데 죽물이나 겨우 먹는 신세요.”
       성칠은 집안 살림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아까 들으니 강냉이농사나 감자 농사를 믿고 사는 거 같은데 곰과 멧돼지 성화에 어떻게 살겠소?”
     원삼은 가래짝 같은 손으로 무릎 우에 떨어진 담배 재를 털면서 한숨부터 내 쉬었다.
     “살기 어렵소. 황무지를 일궈 강냉이하구 감자를 심어먹고 몇 십리 동쪽으로 나가서 동해바다에서 물고기나 잡아 먹고 살지. 그런데 여름과 가을에는 정말 그 놈 곰 멧돼지 성황에 강냉이 밭과 감자밭이 절단 난단 말이오. 하도 산에 나무가 많아서 땔나무걱정은 하지 않지만 이 골안에서 살기 힘드오..”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술이 서너 순배 돌자 원삼은 우묵한 눈을 슴벅이면서 성칠을 보고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초면강산이지만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무슨 부탁이 있으면 말하오.”
      원삼은 이런 말을 꺼냈다.
      “명년 여름이나 가을에 우리 여기 와서 멧돼지하구 곰 사냥을 해주오. 그 놈의 멧돼지하구 곰 성화에 어디 감자하구 강냉이 농사를 해먹고 살겠소?”
      성칠은 두 말 않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알았소. 꼭 오지."
      원삼은 희쭉 웃으면서 술잔을 쳐들었다.
      "감사하오. 자, 한잔 쭉 들기오."
     성칠은 한장 굽내고 술잔을 밥상에 놓았다.
     원삼은 껌정눈을 슴벅이면서 성칠한테 물었다.
     “손님네 명천은 그래도 우리 여기보다는 살기 괜찮지 않소?”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 거기도 한가지오. 밭이 몇 무 안되는데 그것도 한길수라는 지주네 땅을 붙이는 게요. 소작료를 내고나면 멀건 죽물도 마시기 힘드오. 그래서 나는 일년 사지장철 사냥을 하느라고 산에서 헤매오. 사냥을 하는 게 농사를 짓는 것만 퍽 나으니까.”
       그들은 살림살이 말을 하다나니 마주 앉아 한숨만 푸푸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성칠은 부엌의 솥에서 쌕 김이 쌕 뿜겨 나오는 것을 보자 배를 굶어온 적토마와 검둥이가 생각났다.
     “아차, 깜짝 잊었구먼. 집에 말먹이풀이 좀 없소? 벼 짚이라도 좋소.”
     그러자 원삼은 구척 같은 몸을 움쭐 일으켰다.
     “있소. 사냥꾼이 말을 굶겨서야 안 되지.”
      성칠은 원삼을 따라 나가 벼짚을 한 아름 안아다가 작두에 썩썩 썰어서 외양간의 암소와 함께 말을 먹였다.
      뒤이어 그들이 되들어왔을 때에는 구들복판에 꿩고기국과 막걸리동이 한동이 더 올랐다…
     그날 성칠은 원삼과 함께 꿩고기를 안주하여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막걸리를 두 동이나 마시였다. 원삼 일가도 성칠의 덕에 꿩국을 실컷 먹었다.
     점심상을 물리자 성칠은 원삼이부부가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말을 타고 사냥 길에 다시 올랐다.
      하늘이 무너졌는지 함박눈이 앞을 가리지 못할 지경으로 수림에 무너져내렸다. 검둥이는 킹킹 거리면서 앞에서 달렸다. 


                                 

                                   2. 날강도 삼형제



       성칠이 눈덮인 수림에서 사냥하면서 한 심심산골 마을의 앞산에 이르렀다. 적토마도 하루 동안이나 눈 덮인 산을 달리면서 풀 한줌 먹지 못하여 지칠 대로 지쳤다.
      성칠은 열기라고는 없는 겨울해가 느릿느릿 져 가는지라 산 아래 바라보이는 마을로 내려갔다. 깎아지른 절벽아래 눈 덮인 마을 어귀에  고래등처럼 덩실한 토성 안 집 한 채가 있었다.
      성칠은 마을 어귀에 있는 그 첫 집 대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곱사등이 중년사내가 마주 나왔다. 얼굴은 아주 시끄러워 하는 표정으로 바위돌처럼 퍼러덩덩하게 굳어 있었다.
     “웬 일인가?”
     성칠은 말 잔등에서 뛰어내리면서 대답했다.
     “주인님, 말먹이 벼짚이라도 한 단 있으면 좀 주겠습둥. 말이 온 하루 굶어서 더 갈수 없구만.”
      곱사등이 사내는 적토마를 아래 위 훑어보더니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참 좋은 말이구먼. 말먹이 있고 말구요. 자, 저기 마구간으로 끌고 들어가 매 놓으라구. 말먹이를 내다주리다.”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면서 적토마를 마구간에 매놓았다. 이윽고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소리 마구간쪽으로 다가갔다. 곱사등이 말먹이를 소쿠리에 담아다가  마구간 구유에 쏟아놓았다.
    성칠은 곱사등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고맙소이다. 주인어른, 훗날 내가 사냥을 하게 되면 꼭 그 은공을 갚아드리오리다.”
    곱사등은 퉁퉁하게 생긴 생김새보다는 다르게 아주 해박하고 싹싹하게 놀았다.
    그는 허리를 굽신거리면서개여올렸다.
     “천만의 말씀을요. 지나가던 길손에게도 떡을 대접할 함경북도 인심에 요까지 거야 무슨.”
    곱사등은 성칠의 손을 뜨겁게 잡아 집안으로 끌었다.
    “자, 루추한 우리 집에 왔으니 막걸리라도 한잔 마셔야지요.”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검둥이는 밖에서 망을 보듯이 엉덩이를 땅바닥에 붙이고 귀가 뻘쭉해 꼿꼿이 세우고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성칠이 집안에 들어가 보니 아낙네도 없는 집안이 아주 으리으리했다. 이윽고 성칠이 곱사등과 함께 한창 막걸리를 마실 때였다.
    밖에서 빠드득빠드득 눈을 밟는 어지러운 소리와 함께 검둥이가 짖어대는 소리가 “왕 왕 왕” 났고 말이 “오 호 홍” 하고 호용하는 소리가 났다.
    불길한 느낌이 든 성칠은 벌떡 일어나 벽에 기대놓은 사냥총을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그가 문 밖으로 한발 내디뎠을 때였다. 뒤에서 쉭 바람소리가 났다. 성칠은 휙 몸을 돌려 돌아보았다. 허나 늦었다. 곱사등이 씽 달려나오면서 방망이로 성칠의 뒤통수를 딱 내리쳤다.

    딱! 딱!
   방망이가 이마를 아찔하게 내리쳤다. 순간 성칠은 눈에서 불찌가 일고 몸이 휘청거리었다.
   곱사등은 입술을 깨물고 방망이로 재차 치려고 했다.
     그때 검둥이가 아가리를 짝 벌리고 곱사등에게 다려들었다. 검둥이는 날카로운 톱이로 곱사등이 손목을 물어뜯었다.
      "아이구! 이 놈 개새끼!"
     곱사등은 방망이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검둥이가 짖어대는 소리에 성칠은 정신을 차렸다. 성칠은 뒤 골을 손으로 만지더니 간신히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면서 버티고 섰다.
      그는 눈앞에 검둥이와 싱갱이 질 하는 곱사등을 보자 눈에서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다. 마구간에서 마적과도 같은 괴물의 사내가 둘이나 비수를 뽑아들고 뛰쳐나왔다.
      마구간에서 적토마가 “오 호 홍!” 하고 고함치면서 뒤 발질로 키꺽다리를 차 넘겼다.
    성칠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난쟁이를 소발 통 같은 주먹으로 쳐 눕히었다.
    그는 오른발을 들어 장단지에서 비수를 뽑아들었다.
    말에 채워 쓰러졌던 꺽따리가 일어나면서 비수를 들고 허공 날아 나오면서 성칠의 목을 겨누고 찔렀다.
     성칠은 옆으로 홱 피하면서 발길로 비수를 잡은 그자의 손목을 탁 찼다.
      쒹-
     비수가 마구간 천정에 날아가 꼽히면서 부르르 비명을 지르면서 떨었다.
     성칠은 그자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그자는 배를 끌어안고 “억!” 소리와 함께 앞으로 푹 쓰러졌다.
     성칠은 키꺽다리 허벅다리에 비수를 콱 박았다.
    동료가 쓰러지자 질겁한 난쟁이는 마구간 뒤 문을 박차고 삼십육계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꼬리 빳빳해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자 검둥이한테 귀를 물리어 떨어진 곱사등은 귀를 싸쥐고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했다.
     “제발 살려주오.”
     성칠은 한발을 날려 곱사등의 아래 배를 걷어찼다.
     “아이쿠!”
    곱사등은 아래 배를 붙안고 앞으로 쿵 무릎을 꿇었다.
    성칠은 쪼그리고 앉아 비수로 곱사등의 턱을 쳐들고 위엄 있게 고함쳤다.
     “봐라. 내가 누군가! 명천에서도 한다하는 씨름꾼 김병완의 맏아들이다. 네까짓 세 놈이 아니라 열 놈이라도 달려들어 봐라. 한주먹에 다 때려 죽여 버릴 테다.”
     “아이고, 병완 장수의 선성은 들은 지 오래오. 제발 살려 주오. 저 적토마가 욕심나서 그랬지 장사를 살해하자는 생각은 없었소.”
     성칠은 비수에 묻은 피를 곱사등의 팔소매에 쓱 닦은 후 장 단지 칼집에 찔러 넣고 을러멨다.
    “네놈이름이 뭐냐?”
    곱사등은 구레나룻을 어루만지었다. 그는 성칠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 눈치를 보자 삶의 용기가 났다. 그는 상을 찡그리며 아래 배를 붙안은 채 일어나 앉으면서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난 경성군 주을면 백승만이요.”
     성칠은 머리를 돌려 마구간에 쓰러진 키꺽다리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저건 누구냐?”
    “내 동생 승핵이오. 야, 승핵아, 일어나 형님께 살려달라고 절을 해라. ”
   “아파 일어두 나지 못하겠는데 무슨 놈의 절이요. 형님, 살려줍소.”
      성칠은 또 따지고 들었다.
     “달아난 난쟁이새끼는?”
     “내 막내 동생 승철이오. 이 주을면에서는 우리 삼형제만 나서면 울던 애들도 울음을 그쳤소. 그런데 오늘 적토마를 훔치려고 그만 형님을 몰라보고 건드렸는데 제발 목숨만 살려주오.”
      성칠은 그제야 이마가 아파 손으로 만져보았다. 끈적끈적한 무엇이 만지었다. 손을 내리워 보니 손에는 검붉은 피가 즐벅했다.
     “아이고, 장사, 제발 살려주오."
     "누가 니 형님이야?"
    "난 아직도 장가도 들어보지 못했소. 우에는 칠순에 나는 늙은 엄마가 있소. 내가 죽으면 누가 우리 엄마를 먹여 살리겠소?"
     눈에서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리던 성칠은 피씩 하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가소로운 놈들, 너희들 노모를 생각해 목숨은 살려주겠다. 대신 집에 있는 금은붙이를 몽땅 꺼내 보자기에 싸놓아라. 네놈들이 훔친 금은붙이로 가난한 백성들을 구해야 하겠다.”
     “살았구나.”
    승만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면서 집에 들어가 반들반들한 농궤에서 금빛이 번쩍번쩍하는 금덩이 몇 덩이와 새하얀 은 몇 덩이를 보자기에 싸서 성칠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밖에서 또 검둥이가 짖는 소리와 적토마의 호용수리가 들리었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칠은 사냥총과 금은보자기를 들고 밖에 나섰다. 마을 사람들이 먼발치에 서서 웅성거리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자 성칠은 마루에 올라서서 고함쳤다.
     “이건 승만이 삼형제가 마을사람들과 길손들을 털어 모은 검은 금은붙이입니다. 마을에서 누가 곤난하면 썩 나서시오. 이 금은붙이를 가져다가 쓰시오. 자, 가져 가시오.”
     그러나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옆에서 승만이 쏘아보는데 누가 감히 그 금은붙이를 가져간단 말인가?
    눈치챈 성칠은 이렇게 말했다.
    “알았소. 여기 이 도적놈 승만이 삼형제가 무서워 가져가지 못한단 말이지. 그럼 좋소. 이후에 가만히 명천군 상우남면 영월동에 있는 이 성칠의 집에 와서 금은붙이를 가져다가 써도 됩구마.”
     이때 승만의 키꺽다리동생 승핵이 벌벌 기여마당에 나왔다.
    원래 성칠은 승핵의 요해처를 찌르지 않고 허벅지를 찍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쓰러 눕히기만 했던 것이다.
     성칠은 적토마도 배불리 먹은 것을 보고 마구간에 가서 말 고비를 벗겨가지고 나왔다. 그는 사냥총으로 곱사등이 승만의 구레나룻을 가리키면서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네 놈 삼형제 다시 무고한 길손을 해치기만 해봐라. 내 언제든지 달려와 주리를 틀어놓을 테다.”
    승만은 기가 꺾여 허리를 굽신거리면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예, 예. 다신 안 그러겠소.”
    성칠은 적토마에 뛰어올라 검둥이를 앞세우고 눈길을 달려 그 마을을 떠났다.

    적토마가 뛰어가는 뒤에서는 눈보라가 무서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사납게 불어쳐 절벽아래 눈 덮인 마을을 단숨에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눈보라 속에 삼형제 꿍꿍이는 삼라만상을 감추고 말았다.
           

                   3. 되찾아온 은녀


       토끼꼬리만한 겨울 해가 눈보라 속에서 뒹굴다가 서산으로 그물그물 넘어가고 있었다.
      성칠은 사냥에 나섰다가 경성 산골마을 여인숙에서 날강도 삼형제를 만나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번했다. 그는 살아 집으로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은녀가 되 붙잡혀 한길수 집에 부엌 여로 되들어가지 않았겠는가!
     한길수는 성칠이 준 웅담을 다 달여 먹었지만 신기를 돕지 못했다고 하면서 가짜 웅담에 속았다고 생떼를 썼다. 그는 은녀가 이제도 3년은 부엌 여를 해야 빚을 물수 있다고 강다짐으로 은녀를 끌어갔던 것이다.
    성칠은 분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는 한길수를 찾아가 한바탕 따져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찌나 말리는지 그 자리에 물앉았다.
   밖에서 눈보라가 윙 윙 휘몰아치는 초겨울의 어느 날 달밤이었다.
   검둥이가 요란스럽게 “왕, 왕, 왕.” 요란하게 짖어댔다.
   기준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닌 밤중에 상판이 길쭉한 응삼이 한길수를 부축해 개울을 건너 헐금씨금 올라오고 있었다.
   기준은 집에 들어가 아버지한테 알렸다.
    병완은 황급히 문밖에 나가 마중했다.
    “이거 어떻게 돼 이 밤에 우리 집에 다 오오?”
   한길수는 개화장으로 눈 덮인 땅바닥을 쿡쿡 찌르면서 거들먹거렸다.
   "에헴, 그래 그간 잘 지냈는가?"
   어조마저 전에 없는 친절을 보였다.
   “양, 어서 집안에 들어가기요.”
   병완은 팔을 들어 집 쪽으로 안내했다.
    한길수와 응삼은 아주 거만스레 집에 들어가 틀스레 타리대를 치고 앉았다.
    창준은 길수에게 인사하고 나서 무슨 일로 찾아 왔나 궁금해 눈치를 살폈다.
    응삼은 산더미 같은 병완을 마주 바라보면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이런 우직스러운 놈은 아들과 며느리 말처럼 얼리고 닥쳐야지. 맨 힘으로는 꺾을 수 없어.)
   “에헴, 병완이, 우린 몇 십 년 전에 씨름판에서 익힌 친구지.”
   병완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 듯 하는 그 한마디 말에 한길수를 흘끔 쳐다보았다.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들이 친구 사이에 목숨을 내놓고 아까울 게 있는가? 이게 사내대장부의 의리심이란 말이요. 당신이 이 골 안에 나를 믿고 왔는데 잘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네.”
     선심을 쓰는 그 말에 병완은 해가 서산에서 뜨나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정주에 앉아 두 어른의 말을 듣던 성칠과 창준을 비롯한 온 집식구들도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이상야릇해 했다.
    병완은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담배 물 주리에 담배를 꿍꿍 쑤셔놓으면서 한길수의 뒷말을 기다렸다.
    이때 길수는 번들이마에 돋는 식은땀을 뚝뚝 찍더니 응삼에게 눈짓했다.
    응삼은 보자기에 싼 묵직한 무엇을 척 병완의 앞에 내놓았다.
    “헤헤, 병완 어른, 받소. 이건 우리 주인어른이 겨울나이 쌀이나 사라고 주는 약소한 선물이오.” 
    응삼은 그 자리에서 보자기를 헤쳐 보였다.
     백설같이 번쩍이는 흰 은덩이는 피뜩 보아도 스무 냥은 실히 되는 것 같았다. 은덩이는 등불 빛에 반사돼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한길수 마름질을 십 여 년이나 해온 응삼도 이렇게 많은 은덩이를 선물로 가진 적이 없었다.
    “이건 무슨 은덩이요?”
    한길수는 담배대통을 길게 빨아 퍼런 연기를 후 내뿜더니 말했다.
     “사내대장부끼리 에둘러서 말하지 않겠소. 자네가 우리 집 도감이 돼 주게나. 응삼은 장부나 관리하고 동생이 도감이 돼 날 도와 모든 걸 관리하면 오죽 좋겠나. 년 말에 땅값에서 이렇게 줄게.”
     한길수는 두 손을 펴대더니 엄지손가락 하나를 꼽아 보였다. 뜻인즉 열 분의 하나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참말로 돼지에게 겨를 주고 살점을 먹으려는 심보였다. 병완을 앞잡이로 내세워 영월동의 가난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면서 콩물주머니를 쥐여 짜듯 해보려는 심보가 아닌가!
   “이 은전 받을 수 없소.”
   병완은 은보자기를 길수의 앞으로 쓱 밀어주었다.
   “이 사람아, 난 아주 좋은 뜻으로 주는 게거늘 뭔가?”
    길수는 다시 은보자기를 병완의 앞에 밀어주었다.
    “내가 그만하면 자네를 봐주는 건데 뭐가 모자라나? 이 영월동에서 일인지하 천인지상 자리에 올려 세우겠다는데도.”
    대뜸 길수는 낯에 주름살이 쫙 퍼지더니 병완의 너부죽한 얼굴을 흘금거렸다.
     담배만 뻑뻑 빨던 병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당신네 집에 가서 머슴을 살지 못하겠소.”
    그러자 길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근심하지 마오. 자네를 보고 우리 집에 와 있으라는 게 아니요. 그저 며칠에 한 번씩 일이 있을 때마다 와서 도와주면 되네.”
    병완은 그저 묵묵히 앉아 애꿎은 담배물주리만 뻑뻑 빨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응삼이 혀를 날름거렸다.
   “헤헤, 우리 주인어른은 넓은 마음을 먹고 선심을 쓰는데 이 은덩이를 받아주오. 세상에 후회 약은 없으니까.”
    병완은 응삼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응삼이는 혀를 홀랑 내밀더니 얇은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병완의 얼굴에는 근심에 찬 검은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집안에는 쥐 죽은 듯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병완이가 담배 물 주리를 담배 재떨이에 툭툭 털어 짓눌러 꺼버리고는 쇠 덩이를 콘크리트바닥에 굴리는 듯 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음, 먼저 요구가 있는데 들어주겠는가?”
    길수는 병완의 앞으로 다가앉았다.
    “어디 말해보게나. 내 어련히 들어주지 않을라고.”
   “은녀를 돌려보내주게나.”
   길수의 눈에는 은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아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 은녀를 며느리로라도 삼으려는가? 듣자니 이 집 맏아들과 은녀가 눈이 맞아 돈다던데.”
   병완은 똑바로 한길수를 보면서 정색했다.
    “자넨 생떼 질을 작작 쓰게나. 창렬이 페병에 먹으려던 곰의 열을 주고 빚을 다 물었는데도 약효가 없다고? 당장 은녀를 돌려보내주게나.”
    길수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길수는 병완을 끌어당기려면 그 요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응삼이 옆에서 설설 기면서 슬그머니 길수의 무릎을 톡톡 치면서 뱁새눈을 질끈 감아보였다. 그러자 길수는 마음이 아픈 대로 대답해버렸다.
    “그렇게 합세. 또 무슨 요구가 있는가?”
    “없네. 이 은전은 가져가게. 이게 없어도 난 살만하네. 또 이담에 이자에 이자를 받으려고 들면 난 줄 은덩이가 없네.” 
    “아니, 이 길수가 언제 그렇게 옹졸했다고? 이건 선물로 주는 거네. 누가 빚 문서에 올렸는가? 에참, 그럼 이렇게 결정하구 난 가겠네.”
    병완은 말리지 않았다.
    응삼의 감아버린 듯 하는 뱁새눈에는 간사한 웃음이 어리어 있었다.
   한길수가 은덩이를 두고 가버리자 성칠은 중간 방에서 안방으로 올라와 병완이 앞에 와 앉았다.
    “아버지, 정말로 그 쥐새끼 같은 한길수네 집에 들어갈 예산입둥?”
    병완은 담배 물 주리를 두고도 손 담배를 말아 불을 붙여 물었다.
   “내 뭘 그 자식에게 허리를 굽힐 것 같으냐? 한길수는 나를 얼리려고 잔꾀를 쓰는 것 같아. 흥정은 붙이고 말은 하기에 달렸다구. 먼저 임기응변해 은녀를 빼 내오고 보자.”
    그제야 성칠이 한숨을 후 내쉬었다.
    부자지간에 하는 말을 성희와 하옥도 정지에서 듣고 한시름을 놓았다. 그녀들의 얼굴에서 감돌던 검은 구름이 점차 가시어졌다.
    이튿날 은녀는 새 초롱 속에서 놓여나온 새처럼 겨울바람이 불어오듯 사뿐사뿐 개울물가에 난 길로 하여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에구, 내 딸아, 고생이 많았겠구나.”
    창렬은 마루에 서 있다가 지팡이를 버리고 은녀를 와락 끌어안고 볼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녀는 몇 달 동안이지만 남의 집 종살이를 하여 양기가 죽었고 눈길에도 정기가 없었다. 때 이르게 은녀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이마를 타고 건너갔다.
    뒤따라 나와 딸을 붙안은 명순도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질금 질금 쏟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성칠과 병완도 묵묵히 서로 붙안은 그들 세 식구를 바라보았다.
    창렬의 세 식구는 한참이나 붙안고 울다가 병완 부자에게로 돌아서더니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정말 감사하오. 자네 부자간은 참말 우리 일가의 은인이오.”
    병완은 창렬의 휘어 든 잔등을 툭툭 치면서 위안했다.
    “별말을 다 하오. 우리 집안과 당신네 엄씨네는 세세대대로 형제처럼 지낸 한집안이 아니고 뭐요?”
     엄창렬은 병이 다 나은듯 기침도 멎었다. 지팡이를 버리고 허리를 쭉 펴고 가슴을 쑥 내밀었다. 그는 병완의 부자간에게 안주를 끓여 막걸리라도 대접하려고 장작을 와락와락 안아 부엌에 들여갔다.
     “이러지 말게나. 난 길수네 집에 볼 일이 있으니까 가봐야 하겠네.”
    병완은 말을 마치자 발길을 돌렸다.
    성칠은 허리춤에서 백설 같은 은덩이를 하나 꺼내 창렬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걸로 겨울나이 쌀을 사서 잡숬소.”
    “아니, 자네 이럴 변이라고.”
    창렬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칠은 입에 손가락을 댔다.
     “쉬, 말씀 말고 씁소.”
     그는 은녀를 되돌아보며 눈을 찔끔해보이고는 성큼성큼 개울가로 내려갔다.
     은녀는 문설주를 잡고  믿음직한 성칠의 뒤잔등을 바라보다가 동전으로 눈굽을 찍으며 돌아섰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가늘게 들먹이고 있었다.
    가녀린 어깨 너머 슬픔이 처량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쓸쓸히 쏟아지는 눈발 속에 애틋한 첫 사랑의 싹이 숨어 고개를 숙이고 구슬프게 울고 있지 않는가!





                                4. 꿍꿍이





 
    바깥에서는 아직도 눈보라가 윙윙 사납게 휘몰아쳐 게딱지 같은 초가집들이 날려나 갈 것만 같았다. 엄동설한에 어찌나 추운지 여우가 눈물을 다 흘리고 박달나무가 얼어서 탁탁 터질 지경이었다. 허나 높다란 토성 안에 자리 잡은 한길수의 집 안에는 불을 어찌나 땠는지 봄날처럼 후끈후끈해 다.
    본채에서 응삼은 한길수와 마주 앉아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다.
   그는 뱁새눈이 실눈이 돼가지고 길쭉한 말상을 찌푸리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병완이 우리 집 도감을 하지 않을 거 같소이다.”
     길수는 반쯤 모로 돌아앉으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건 무슨 소리야? 먹은 소 똥을 눈다고 은덩이까지 받았지. 은녀까지 찾아갔는데 안해?”
    그는 속으로 응삼이 괜히 병완이가 들어와 자기 위에 앉는 것을 시샘한다고 여겼다.
    한길수의 속내를 모르는 응삼은 뱁새눈을 콩알처럼 동그랗게 뜨고 정색해 말했다.
    “옛날에 토끼새끼가 용왕을 속여 넘긴 이야기 기억나지 않습둥? 토끼는 거부기 등에 앉아 바다에서 빠져나가 뭍으로 오르자마자 간이고 뭐고 하나도 주지 않고 달아나지 않았고 뭡둥?”
    길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건 다 옛말이지. 병완이 그렇게 쉽게 신의를 저버릴 사람은 아니야. 내가 그렇게 잘 대해주는데 언감 변심한단 말이요?”
    그래도 응삼은 계속 쏭알거렸다.
   “은덩이는 주더라도 은녀는 인질처럼 붙잡아둘 걸 그랬소이다.”
    월선은 길수 옆에 앉아 며느리와 함께 밥상을 손수 거두다가 신경질을 썼다.
     “뭐 어째? 그년을 내보낸 건 잘된 일이야. 그 굼뜬 년을 내보내고 이제 나이도 듬직하고 역빠른 여자를 들여와야네.”
    월선은 밥상을 거두면서 속으로 두덜거렸다.
   (저 나그네 곰의 열을 먹더니 그게 놀랍게 세졌단 말이야. 항상 은녀 몸을 흘끔흘끔 훔쳐보군 하던데 언제 일을 칠지 몰라. 은녀를 첩으로라도 들여앉히기 전에 내보낸 건 잘된 일이야.)
   “닥치지 못할까!”
   한길수가 밥상을 탁 치는 바람에 국물그릇들이 왱그랑 절그랑 부딪쳐 국물이 주르르 구들에 흘러 떨어졌다.
   “제길 할, 은녀를 빼가고도 들어오지 않아만 봐라. 내 살려두는가!”
    길수는 퉁방울눈알을 부라리었다. 번들이마의 피줄마저 노기에 지렁이처럼 살아나 풀떡풀떡 뛰었다.
    뜻밖에도 이튿날에 병완이 또 찾아왔다.
    그는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짓고 길수의 집에 들어와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물었다.
     “오늘 무슨 할 일이 없소?”
    한길수는 응삼을 흘겨보았다.
    (봐, 내 말 맞지? 신의를 저버릴 병완이 아니지? 흥!)
    길수는 병완을 돌아보며 알은체 했다.
    “오, 왔는가? 병완이, 자넨 낯만 보이면 되네.”
    병완은 허리에서 보자기를 풀어내더니 길수 앞에 쓱 밀어주는 것이었다.
    “이건 뭐요?”
    한길수는 우멍눈이 휘둥그래났다.
    “은녀를 내갔으면 됐지. 친구지간에 은덩이는? 어련히 한 주인의 도감이 되지 않을라고.”
    병완의 말에 길수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은덩이를 도로 받자니 자존심에 허락되지 않았고 도로 줘 보내자니 병완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백설같이 반짝이는 은덩이가 아깝기도 했다.
     그때 응삼이 뽀족한 턱을 쳐들고 끼여들었다.
      “주인어른, 정 받지 않겠다면 먼저 받아 둡소.”
    길수는 짐짓 “에끼, 이 사람아, 내 어찌 줬던 걸 도로 받는단 말인가!” 하고 능청스레 아닌 보살을 떨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은덩이를 싼 보자기를 스리슬쩍 응삼의 앞에 밀어 보냈다.
   주인의 눈치를 챈 응삼은 제꺽 그 보자기를 받아 쥐었다.
   “이후에 수고비로 드려도 늦지 않을 것 같소.”
   철주는 병완이 빈 손으로 문 밖을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자기 꾀가 드는 것 같아 속으로 흐뭇해했다.
    한길수는 응삼과 철주를 불러놓고 다음 일을 상논 했다.
    “얘들아, 아무리 봐도 성칠에게 속힌 것 같다. 창렬 네 빚 대신 그 곰의 열을 받아 먹은 게 영 속에 내려가지 않는단 말이야.”
     응삼은 뱁새눈을 간사하게 뜨며 끼어들었다.
    “이젠 병완이 우리 사람이 됐으니 창렬이 누굴 믿고 빚을 갚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번 기회에 창렬을 보고 은녀를 되돌려 보내라고 하든지, 아니면 빚 문서를 다시 꾸며 돈을 내라고 하든지 합세다.”
    길수는 조왕 쪽의 월선과 며느리 눈치를 힐끔 보면서 중얼거렸다.
    “에이고, 빚 문서를 다시 꾸며서야 언제 그 가난뱅이한테서 받아내겠소? 아예 다시 은녀를 붙잡아 오는 게 상책이야.”
    “안돼! 그년을 데려다 첩년이라도 시킬 예산인가요? 이제 내보낸 지 며칠이라고 그년을 또 끌어들인단 말이요? 그저 은녀, 은녀 하면서. 원,  더러운 꼬락서니를 못 보겠어.”
    월선은 구들에서 일어나 호랑이 궁둥이를 흔들면서 발까지 탕탕 구르며 야단쳤다.
    그때 철주가 나서서 난처한 기분을 돌려세웠다.
    “엄마 말에도 도리 있습니다. 이제 은녀를 들여다 앉히려면 병완이가 또 은녀 역세를 들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은 덮어놓고 있다가 우리 빚 문서에 그대로 적어두었다가 아무 때 건 병완이 눈을 감아주게 한 후 받아내면 됩니다. 문제는 병완이 이 마을 가난뱅이들의 역세를 들기에 우리 집에서 빚을 받아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응삼은 그러지 않아도 그 놈 우직한 병완이 자기 우에 와서 누르고 앉는 것이 속에 걸렸는데  한술 더 떴다.
   “아예 저 병완 놈을 없애치우면 우리가 이 마을에서 쥐락펴락 하면서 살겠는데.”
   그러자 철주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누가 듣겠습니다. 이 일은 천천히 의논해봅시다. 그래도 병완이 우리 집에 들어와 도감을 하겠다고 하니 천만다행입니다. 이후에는 창렬의 빚을 받아도 아버지가 나설게 없습니다.”
    “그럼 누굴 내세우겠니?”
    “병완을 내세우십시오. 빚도 받아내고 병완과 창렬을 리간 놀면 일거량득이 아니겠습니까? 흐흐흐.”
    철주 말에 길수는 번들이마를 끄덕였다.
    며칠 후 길수는 병완을 불렀다.
    병완이 길수네 으리으리한 울안에 들어서니 길수가 번들 이마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집 도감이 왔소? 오늘 내 요긴한 일이 있어 자네를 불렀네. 자, 안에 들어가 의논합세.”
   길수는 병완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이런 일이오. 저, 전번에도 말이 있었지만 그 곰의 열이 되면 몇 원이나 되겠소? 그러니 자네가 응삼과 함께 창렬의 집에 가서 빚으로 한 십 원이라도 받아오게나.”
   병완은 건 가래를 떼더니 도리머리질했다.
   “이보,  너무 염치없이 놀지 마오. 그 곰의 열은 우리 성칠이 창렬의 폐병을 떼라고 준 게요. 그걸 가져다 먹고 빚을 받지 않겠다구 했으면 다지. 이제 와서 또 번져 누우면 이후에 영월동의 몇 백 집에서 누가 자네의 말을 믿겠소. 난 그런 일을 돕지 못하겠네.”
    병완은 아예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려고 했다. 길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멍해 앉아서 떠나가는 병완의 떡돌같이 넓은 뒤 잔등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듯 했다.
    길수는 어린 아들 철주의 말을 들어 병완에게 놀림을 당한 듯 하는 감이 들었다.
“제길 할, 병완에게 도감을 맡기니 이 집안 일이 더 시끄러워!”
그 말에 철주의 색시 단춘이 정주에서 입귀를 비쭉했다.
    안방에서 철주는 아버지를 일깨워 주려고 들었다.
    “아버지, 지금 서울이고 어디고 일본 사람들이 게다짝을 딸까닥거리면서 욱실거리고 있습니다. 전번 3월 1일에 조선 사람들이 서울에서 독립하겠다고 ‘만세’를 부르면서 야단쳤습니다. 여기서는 아무도 ‘만세’를 부르지 않았습니까?”
    길수는 우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 명천과 우시장에 내려가니까 몇몇 조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만세!’ 하고 외치더라. ‘만세!’ 하고 소리쳐 뭘 한다니? 쪽발이들이 만세소릴 듣고 도망간다더니?”
     철주는 답답하다는 듯이 머리를 홰홰 돌렸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빼앗았기에 장차 살기 더 힘들게 될 것입니다. 맨 우리 조선 사람들만 살아도 손바닥만 한 땅에서 살기 힘든데 일본 사람들까지 들어와 빼앗아 먹으니 말입구마.”
     한철주는 한숨을 후 내쉬더니 뒷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3.1운동 때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위행진을 했다가 일본 놈들한테 쫓겨 고향으로 피신해 왔습구마. 이다음 이 골 안에도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 같습니까? 지금 우리는 이 마을의 인심을 틀어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을 너무 차리지 말구 인심을 내야 합니다. 병완 같은 힘장사들도 도감자리를 주어서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이 옳습니다. 이거야 말로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이 골 안의 큰 이익을 통 채로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인심이 천심이라고 이 골 안에서 병완에게 인심이 쏠렸기에 자칫하면 이 골 안의 실제 주인은 병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자가 일본사람들과 먼저 손을 잡는 날엔 우리 땅이고 뭐고 다 빼앗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엄중한가? 그런데 네가 일본 사람들과 등을 졌으니 큰일이고나.”
    철주는 개의치 않았다.
    “근심 마십시오. 일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없을 겁니다.”
    아들의 말에 길수는 번들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씃더니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었다.
    한참 후 길수는 선수를 치려고 들었다.
   “그럼 우리가 먼저 명천 고을에 가서 일본 사람들을 친해 놓는 게 옳지 않는가?"
    철주는 입을 함박만큼 딱 벌리었다.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통 채로 먹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자들이 삼림이 우거진 우리 이 골 안을 와서 보면 놔 둘 것 같습니까?”
    “그럼 어찐단 말이냐?”
   아버지가 난감해 상을 찡그리자 한철주는 마른기침을 하더니 뒷말을 이었다.
    “당면에 이 골 안의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빚을 받지 못할 까봐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기실 일본 사람들을 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 말은 일본 사람들을 친해놓자는 게다.”
    그 말에 응삼이가 말대가리를 흔들면서 찬동했다.
    “주인어른의 말씀이 옳습구마. 일본 사람들도 사람이겠지요. 우리가 그자들을 잘 친해놓으면 등에 업고 병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골 안을 쥐락펴락할 수 있습지요.”
    “음.”
   길수는 번들이마를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우멍 눈을 흡떴다가 떼룩거리면서 속궁리를 굴리고 있었다.
   응삼이 길쭉한 말대가리를 길수의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자 길수는 말 이발을 드러내면서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음, 그렇지, 그래. 음, 그 수가 참 좋아. 눈앞에 이익만 볼게 아니구나. 음, 그래, 그거야 말로 돼지들에게 겨를 주고 통째로 잡아 돼지고기를 먹는 격이지. 허허허.”
    토성 안 집에서는 간사한 웃음소리가 끊지 않고 꿍꿍이를 꾸미는 두런두런 말소리 날이 질 때까지 계속 들렸다.  토성 밖에서는 밤  늦게까지 음산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5. 운주동의 검객



     해빛도 따사로운 새 봄이 왔다. 치마봉과 기운봉 기슭에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온 산이 연분홍으로 파랗게 물들었다. 뻐꾹새들이 수림 속에서 뻐꾹뻐꾹 울고 들에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울며 밭갈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운주동 마을 옆의 운주하 개울물이 구름 싣고  파란 하늘을 싣고 조잘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운주동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운봉은 누르스름한 바위와 토색 흙으로 단장한 뭇 산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기운봉의 들쑥날쑥한 갈색바위절벽은 사시장철 구름 속에 안개 속에 잠겨있었다. 안개처럼 물기어린 구름들이 절벽을 씻어 올리다가도 풀렸다. 구름이 천천히 걷히면서 가파른 절벽이  드러나기도 하고 다시 모려오는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기도 하면서 절경을 이루었다.

     천태만상의 구름송이는 기운봉의 허리에 감겨 한참씩 쉬다가는 갈 길이 바쁜지 어디론가 총망히 사라져버렸다. 기운봉과 치마봉에 먹장구름이 감돌고 번개가 산허리를 번쩍 칠 때는 꼭 얼마 안 있어 소낙비가 쏟아지군 했다.
    비온 뒤면 기운봉과 치마봉 사이 산골짜기에서 쿨쿨 솟는 샘물과 비 물이 갈색바위를 부시며 쏟아져 쏜살같이 흘러 운주동 골짜기를 휩쓸며 흘러 신흥동 쪽으로 내달아간다.
    운주하를 따라 내려가면서 몇 백미터씩 내려가면서 드문드문 통나무집들이 스산하게 널려있었다. 그 통나무집들은 대부분 기와나 벼 짚이거나 조 짚 대신 널판자를 기와처럼 지붕에 얹고 못으로 고정시킨 “널기와 집”이였다. 다만 서당을 차린 최구장의 집만은 청기와를 얹은 목조 팔간 집이었다.
     어느 날, 병완은 자식들을 몽땅 안방에 불렀다. 쉰 고개에 오른 병완의 머리에 서리가 새하얗게 내리였다。
     병완은 대통에 담배를 꿍꿍 쑤셔 넣고 붙여 물고 뻑뻑 빨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옛말에 팔촌이 한 구들이라고 우리 집은 커서 사대가 한 구들에서 살아도 된다. 요즘 한길수가 얼리고 닥치고 하는 수작을 봐라. 묵밭마저 더 일구지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살겠느냐? 스물두 넘는 식구들이 한 구들에서 손바닥만 한 돌밭을 믿고선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한다.”
     병완은 눈 굽에 눈물마저 픽 돌았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내린 듯이 뒷말을 이었다.
    “이젠 별수 없구나. 난 맏이 성칠과 함께 여기서 살 테니까 창준과 기준은 운주동에 세간나 살아라.”
     기준은 근심스러워 했다.
     “우리 다 가면 저 길수가 아버지 네를 업신여기지 않겠습둥?”
     병완은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까짓놈들, 흥!"
     성칠이 옆에서 위안했다.
    "나두 있으니까. 근심할게 없다.”
    그리하여 며칠 후 창준과 기준 형제는 상우남면 운주동에 세간나갔다.
     운주동에는 키 넘는 새가 들어 누워 있어 새골이라고도 불렀다. 새밭이 무연하게 펼쳐진 골 안에 창준은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짓고 들었다. 그때로부터 창준네 집안은 웃새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 네는 운주동 웃새집에서 한 300미터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때로부터 기준네 집은 성남집이라고 불리웠다. 
    기준은 맏아들 상우와 맏딸 어금이, 그리고 임신한 아내 사련을 데리고 봄에 누런 잔디가 말라붙은 바위틈새에 듬성듬성 난 묵은 풀에 불을 달아 태워 버리었다. 잔 나무들을 도끼로 찍어낸 후 소대가리 같은 나무뿌리들을 괭이로 파내고 도끼로 패서 집에 날라 갔다.
   기준은 해뜨기만 하면 온 집 식구들을 데리고 바위 틈 사이에 재를 펴 놓고 나무로 구멍을 뚫고 기밀을 심었고 운주하 강변에 일군 황무지 밭에는 감자를 심었다.
    어느 날, 어금은 사철 맑은 운주하 개울물에 빨래하러 나갔다.
    빨래터 개울물이 어찌나 맑은지 조약돌이 다 들여다보였고 물고기 몇 마리가 조약돌 틈새에서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리는 것이 다 들여다보였다.
    어금이 한창 개울물에 빨래를 휑구어 납작한 빨래 돌에 올려놓고 방치로 쨩쨩 칠 때다.
    애래 쪽 개울가 백사장에 머 태가 치렁치렁한 한 총각이 나타났다. 어금은 누군지 똑똑히 볼 새 없이 빨래를 방치로 땅땅 두드려 개울물에 활활 휑궈 버드나무가지에 널어 말리었다.
    그녀는 피뜩 아래쪽을 바라보다가 한 총각이 검술을 익히는 멋진 모습을 보았다.
   “어덴가 퍽 눈 익은데?”
    그 총각은 시퍼런 검로 몸 주위를 휘감으면서 휘두르는데 서리발이 사처로 빛발쳤다. 총각은 훌 뛰어 날면서 칼로 내리찍었다. 두 다리를 앞뒤로 모래바닥에 쭉 펴고 앉았다가도 훌쩍 뛰어 일어나면서 턱을 발로 차는 동시에 옆으로 칼로 가로 찔렀다.
     총각이 검술을 연습하는 장면은 정말 신출귀몰해 보기 장관이었다. 마치 호랑이가 앞발을 쳐들고 구름 속의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가도 구름 속에서 날아 내려오면서 꼬리로 땅을 치는듯하고 닭이 외발로 선후 원숭이가 왼팔을 이마 위에 얹고 해를 가리고 먼 곳을 보는 듯 했다. 꿈틀거리는 용이 대가리를 쳐들고 영용무쌍하게 앞으로 무찔러 나가는 듯이 검을 춤추면서 앞으로 찔러나갔다.
      그 날랜 검술장면을 보다나니 어금은 그만 손에 쥐였던 빨래를 모래바닥에 뚝 떨어뜨렸다.
       “어마나!”
      어금은 화뜰 놀라면서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녀는 인차 모래가 다닥다닥 매달린 빨래를 들고 개울물가에 가서 훌훌 씻어 버두나무 숲에 널어 말리었다.
    이때 허옥실이 봉인을 업은 채 빨래함지를 이고 사뿐사뿐 빨래터에 다가왔다.
    “아니, 언니, 참 오랜만이요.”
    어금은 방치를 놓고 옥실한테로 다가가 빨래함지를 받아 내려놓고 어린애의 볼에 뽀뽀를 했다.
    “아이유, 애기 곱다야, 봉인아, 뽀뽀하자.”
    옥실은 빨래 돌을 바로잡아 놓으면서 “봉인이 이름을 우리 시아버지가 근형이라고 고쳤소. 봉인이라는 이름은 애명이라오. 그래서      우리 요 14대 장손부터는 뿌리 근자 돌림으로 애들의 이름을 짓는다오.”라고 했다.
    “근형이, 그 이름 좋다. 최구장어른이야 훈장이기에 아무튼 이름도 잘 지을 분이죠.”
    그들이 한창 빨래를 하는데 징검다리로 한 총각이 검을 들고 건너왔다.
    어금과 옥실이 여겨보니 칼을 둘러멘 총각은 다름 아닌 옥실의 시동생인 경인이었다. 어금이가 바라보니 아까 저기에서 검술을 익히던 그 총각 같았다. 그리하여 어금은 대뜸 머리를 숙이는데 넙죽한 얼굴이 귀밑까지 홍당무가 돼버렸다.
    “아주머니, 아직 빨래하자면 물이 차갑겠는데 어째 애까지 업고 나왔소?”
    훤칠하게 생긴 경인은 성큼성큼 빨래터에 다가왔다.
    “일없소. 시동생, 검술을 익혔소?”
    옥실은 미소를 지으면서 시동생을 바라보며 빨래를 했다. 그런데 어금은 경인이가 다가오자 머리를 점점 더 수굿하고 몸을 외로 탈면서 빨래를 했다. 어금은 웬 일인지 경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높뛰는 것을 느끼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 챈 옥실은 어금의 어깨를 톡 밀었다.
   “얘, 우리 시동생이야. 은인을 보고서도 모르는 척 해서야 되니?”
   어금은 경인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간 잘 지냈소?”
   경인은 검을 뒤로 가져가면서 인사를 받았다.
   “양, 그쪽에서도 잘 보냈소.”
   그는 서리발치는 칼을 모래바닥에 놓고 개울물에 근육이 울뚝 뿔뚝 한 팔부터 썩썩 씻더니 푸푸 물을 불면서 세수하는 것이었다.
    “어, 시원하다.”
   옥실이 자기 머리 수건을 벗어주려다가 어금의 옆구리를 톡 건드렸다.
    어금은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눈을 곱게 흘기며 옥실을 바라보았다.
     옥실은 어금의 옆구리를 더 세게 서너 번이나 톡톡톡 다쳤다.
     어금은 그제야 별수 없다는 듯이 머리 수건을 벗어 경인에게 내밀었다.
     “옜소. 수건으로 얼굴을 닦소.”
    경인은 인차 그 수건을 받지 못하고 옥실을 건너다보았다.
   옥실은 눈을 찔끔해보였다.
    “아주머니, 이래도 되오?”
    “별소리를 다한다. 초면도 아닌 오랍누이 같은 사이에."
    옥실은 말을 마치자 어금의 눈치를 살피었다.

     어금은 그 자리에 앉아있기 어색해 빨래를 대충 휑구어 꽉꽉 짜더니 함지에 담아 이고 일어났다. 그녀는 몽당치마를 걷어 안은 채 바람이 일게 버드나무숲에 가서 그 곳의 빨래도 걷어 함지에 담아 이더니 머리를 이쪽에 돌렸다.
    “언니, 먼저 집에 가겠소.”
    “응, 그래라.”
    어금은 경인에게 눈인사를 곱게 하고는 머리를 돌려 사락사락 모래를 밟으면서 동네 쪽으로 멀어져갔다.
    옥실과 경인은 토론이나 한 듯이 엉거주춤 일어나서 동네 쪽으로 빨래함지를 이고 몽당치마자락을 휘날리면서 가는 어금의 뒤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참 후 옥실은 빨래를 물에 활활 휑구면서 옆에 앉아 칼자루를 매만지는 경인을 보고 넌짓이 말했다.
   “시동생, 저 어금은 예쁜데다가 마음씨 또 착한 애요. 저 애를 내 둘째동서로 삶았으면 좋겠는데 아주버니 생각에는 어떻소?”
    경인은 외까풀 눈을 끔뻑했다.
    “그럼 오죽 좋겠소? 그런데 명천의 울뚝이라고 소문난 기준이라는 양반이 맏딸을 쉽게 줄까?”
    그러자 옥실은 정색하여 경인을 바라보면서 힘 주어 말했다.
    “걱정하지 마오. 시부모와 말해볼게.”
    경인은 신심이 한 가슴 뿌듯이 생겨났다.
    “글쎄 우리 아버지와 병완 영감은 아주 가까운 사이 돼서 아버지가 나서면 설득시킬 것 같기도 하오만.”
   청명절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모두 한복차림에 지지고 볶은 제물을 갖춰가지고 조상의 산소로들 갔다.
    운주동 뒤 산에는 성처럼 돌담을 쌓은 옛성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옛 성은 고구려 옛성이라고도 했다. 최구장은 그 성안을 명당자리라고 했다. 그 바람에 운주동과 영월동, 신흥동의 사람들은 그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 앞 다투어 산소를 썼다.
     청명이 되자 사람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조상들의 산소에 와서 가토를 하고 제주를 올리고 절을 올렸다.
성안 평평한 산중턱에서는 무당들이 한창 굿을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사람들은 제사를 끝내자 이 곳에 모여들어 무당들이 굿을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요염하게 치장한 무당이 무대에 올라서서 굿을 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천하의 악귀들을 몰아내고 천하의 어진이들을 잘살게 도와주옵소서. 남자귀신이면 지고 나가고 여자귀신이면 이고 가주옵소서. 조상신들이여, 이 불쌍한 후손들을 도와주옵소서. 병마를 몰아내고 오곡이 풍성하게 복을 내리옵소서.”
    무당의 굿이 끝나자 사람들은 제사상에 올렸던 통돼지를 칼로 저며 내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그래야 굿이 잘 든다고 했다.
   뒤이어 악귀를 몰아내는 검술표현이 있었다.
   그때 산소에 갔던 병완이 일가도 굿 구경을 하러 사람들 틈에 끼여 있었다. 검객 경인이 나서서 머리태를 휘날리며 훌 날아오르면서 앞으로 검으로 내찔렀다. 그는 땅바닥에 앞뒤다리를 펴서 대고 앉았다가도 하늘로 훌쩍 뛰어 오르면서 옆으로 찍었다.  발로 턱 차기를 하고 뱀이 굴속에서 나오듯이 앞으로 검을 찌르면서 나가다가도  뒷발질을 하며 몸을 홱 돌려 뒤를 찌르기도 했다.
    그 날랜 장면을 보고 모두들 혀를 끌끌 찼다.  
     어금도 아버지 기준의 옆에서 경인오빠의 서리발치는 날랜 검술표현을 보고 박수를 연신 치였다.
     “잘한다!”
    기준도 그 놀란 검술표현에 고함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장내 숱한 사람들은 경인의 검술솜씨에 연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병완이 기준을 보고 검객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눈에 익은데. 누군지 모르겠냐?”
     기준은 아버지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최구장네 둘째아들이 아닙니까? 전번에 최구장 네 맏아들이 큰잔치를 할 때 신랑의 말고삐를 잡았던 그 총각 말입구마.” 

    병완은 검술재주를 피우는 경인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다. 경인은 곤두박질재주를 부리며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서리발치는 칼로 악귀를 찍어 토막 내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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