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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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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10) 김장혁
2015년 07월 03일 11시 49분  조회:2214  추천:0  작성자: 김장혁
                           


                                               9.
면회



      성칠은 눈보라를 무릅쓰고 우시장 감옥 부근에 이르렀다.
     가시철조망을 늘인 높다란 벽돌담장 정면에 승냥이 아가리처럼 궁형대문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오가는 행인들을 노려보고 있다. 궁형대문 양옆에 일본 헌병 두 놈이 시퍼런 총칼을 비껴 들고  이리 눈깔을 희번뜩거리며 보초 서고 있었다.
     성칠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왜놈 보초병에게 다가갔다.
    철꺽!
    왜놈 보초병이 총창 열십자로 딱 막아섰다.
    “바까요로(바보 놈)! 무슨 일이야?”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수다.”
     일본헌병은 사냥총부터 빼앗아내고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불렀다.
    류강철이 안에서 뛰어나왔다.
    “웬 일인가?"
   그는 억대우 같은 성칠의 아래위를 훑어보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냥총을 들고 감옥에 찾아오다니? 정신 있는가?”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소. 만나게 해주오.”
   “누구요?”
   “운주동 김성칠이오. 김병완, 그 분은 내 아버님이오.”
   류강철은 한걸음 물러서면서 알은 체 했다.
   “아, 힘장사 병완의 맏아들이구먼. 사냥을 잘 한다지? 그런데 소개신이 있어야 면회할 수 있소.”
    “아니, 아버지를 만나보는데 무슨 개떡 같은 소개신이요?”
    “이보, 말조심하라고. 어디라고 큰소리를 땅땅 쳐? 박 면장을 찾아가서 소개 신을 떼 가지고 오오.”
    성칠은 류강철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아버지를 만나려는데 왜 까다롭게 구는가?” 
   류강철은 일본 헌병 모자를 꾹 눌러쓰면서 딱 잡아뗐다.
   “이 양반, 지금 무슨 세월이라고 입술만 나불거리면서 그런 청 들어? 당신 아버진 대역죄인과 같으니까 쉽게 만날 순 없어.”
   류강철은 불난 집에서 한턱 얻어먹으려다가 안되니 휭 하니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호랑이 같은 병완 부자를 잘못 건드렸다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목이 선뜩한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성칠한테 힐끔 곁눈질해보더니 길 건너쪽을 턱짓했다.
    “저길 보오.  박면장이 헌병사무소에 들어가는구먼. 소개 신을 떼 가지고 오게나.”
    성칠은 게딱지 같은 간판이 걸린 헌병사무소로 조끼를 입은 양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달리는 인력거를 피해 길을 달려 건너가 헌병사무소 철창문을 삐꺽 열고 들어갔다.
    사무소 복판 사무 상에는 검은 테 안경을 낀 일본 헌병 소대장 나까노라가 앉아 있었고 맞은 켠 걸상에는 금방 들어간 그 조끼 입은 호리호리한 자가 앉아 있었다.
    사무 상 옆에는 누런 사냥개 누렁이가 귀를 벌쭉거리며 웅크리고 앉아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성칠은 단도직입으로 박성은 면장에게 청을 들었다.
   “저,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는데 소개 신을 떼 줍소.”
  “당신은 누군가?”
   박성은 면장이 성칠의 아래 위를 훑어보면서 물었다.
   성칠은 한걸음 나섰다.
   “영월동의 김병완은 저의 아버님입니다. 보초병들이 소개신이 있어야 면회할 수 있답니다.” 
   박성은 면장은 나까노라 소대장의 눈치를 흘끔 쳐다보더니 성칠에게 낯을 돌렸다.
   “당신의 아버진 참말 영웅호걸이오. 만나려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 지 참말 귀찮소. 당신 아버진 중죄범이어서 만날 수 없소. 언감 한길수 총도감의 눈알까지 빼놓다니. 참, 일본 어른들이 펄펄 뛰는데 낸들 어떻게 소개 신을 뗀단 말이요?”
    성칠이 뭐라고 자꾸 사정하자 나까노라 소대장은 눈알을 부라리면서 고함쳤다.
    “나갓!”
    사냥개도 귀를 쫑긋 세우더니 불티가 뚝뚝 떨어지는 눈깔로 성칠을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성칠은 하는 수 없이 헌병사무소에서 나왔다.
    (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이렇게 힘들게 됐는가? 완전히 일본사람들의 세상으로 됐구나. 일본 놈들이 대대가릴 끄덕이잖으면 아버지도 만날 수 없게 됐군. 흥!)
    그는 맥없이 가게방 기둥에 손을 짚고 기대섰다.
    길 건너 저쪽에 철조망을 두른 높다란 토성이 보였다. 저 토성안의 어느 감방에서 아버지는 고문을 당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을 칼로 저며 내는 것 같았다. 날개라도 달렸으면 높다란 토성을 훨훨 날아 넘어 들어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련만.
    “얘, 잘 만났다.”
    성칠이 머리를 돌려보니 큰아버지 김병권이었다.
    “큰아버지가 어떻게 되여 여기 왔습니까?”
   병권은 흰 수염을 흩날리면서 성칠을 잡아끌었다.
   “먼저 저기 들어가 얘기하자.”
    성칠은 큰아버지를 따라 죽 방에 들어갔다. 그들은 죽을 한 사발씩 청해 후루룩후루룩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버지를 만나 봤니?”
    성칠이 한숨을 후 내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음. 전번에 관준이하구 함께 동생을 만나자구 왔댔다."
   그는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나직이 귓속말을 했다.
    "맨 입으로 말해선 안 돼.”
   뒤이어 허리에서 보자기를 풀어내더니 종이 한 장과 산삼 몇 뿌리를 꺼냈다.
    “치마봉에서 캔 산삼이야. 헌병사무소 소대장에게 몇 뿌리 가져다가 주었더니 이 소개신을 써주더구나. 이걸 가지고 가서 만나자.”
   성칠이 뻘건 도장이 박힌 종이 장을 들여다보니 닭발로 오려놓은 것 같은 일어로 써 놓아서 통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붓글씨로 써놓은 가운데 "中" 자에 들 "野" 자만은 알아 볼 수 있었다. 분명 나까노라이찌로의 친필소개신이였다.
    “소개신이면 면회를 시켜주겠지.”
    “큰아버지, 가 보깁소.”
   병권과 성칠은 양치질할 새도 없이 죽집에서 나왔다.
   그들은 총총히 길을 건너 왜놈 보초병들이 지키는 감옥 대문 어귀에 다시 조심스레 다가갔다.
     왜놈 보초병들도 면목이 있는지라 처음처럼 떽떽거리지 않았다.
    그 놈들은 총창으로 가로 막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쇼까이신!”
   성칠은 소개신을 꺼내 건네었다.
   보초병 놈은 소개 신을 들여다보았다.
   "하이레(들어갓)!"
   그 놈들은 총창을 거두고 양옆으로 물러섰다.
   병관이네 대문 안에 들어서니 벌건 벽돌로 지은 감옥이 나섰다. 문어귀에서 지키는 보초병 놈들에게 소개 신을 내밀자 받아 보더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길을 피해주었다.
    복도에 들어서니 옆의 창문으로 안경을 낀 헌병이 오라고 손짓했다. 안경쟁이 헌병은 소개 신을 들여다보더니 뜻밖에 도리머리 질을 하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그때 병권이 보자기에서 나머지 인삼 몇 뿌리를 꺼내 안경쟁이에게 들이밀었다.
    안경쟁이는 산삼 뿌리를 쥐여 코에 대고 코개처럼 냄새를 맡았다. 대번에 산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 요로씨이, 죠센(조선)산삼!”
   그 자는 병권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아니다까?” 하고 물었다.
   병권은 “아니라니요. 산삼 맞은데요. 웬 말입둥? 산삼 다니까.” 하고 억울해했다.
   “아니다까(형님인가)?”
    “산삼이 맞다니까. 이 얀반이, 참.”
    그때 통역 류강철이 거들먹거리면서 다가왔다.
    “아니, 형내 노할어버지 아닙니까? 헌병선생은 ‘산삼이 아니다’는 게 아니라 ‘형님인가?’고 물었습구마.”
    “오,  그런 걸 난 또. 자꾸 ‘아니다까’ 하니까. 오해했지. 당연히 내가 여기 갇힌 동생을 만나러 온 형이지.”
   류강철은 일본 헌병과 일본말로 뭐라고 쑤군거리었다.
   안경쟁이가 뭐라고 소개신에 쓱쓱 써서 눌러두고 손을 내밀었다.
   “면회 비로 3원을 냈쏘까.”
   류강철이 옆에서 대신 말했다.
   성칠은 옆전을 한줌 쥐여 세여보고 잘라당 사무 상우에 내놓았다. 그러자 안경쟁이는 옆전을 하나하나 세여 사무 상 안에 쓸어 넣고 다른 헌병을 불러 뭐라고 말하더니 병권이와 성칠을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류강철은 병권과 성칠이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 헌병을 따라 갑소. 살림살이나 말하고 다른 말을 하지 맙소. 그러지 않으면 시끄러워집니다.” 
   류강철은 형내와 함께 상우남면 운주동 최구장의 서당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 말을 배워가지고 일본 군을 따라 조선에 돌아와 헌병대 통역을 맡고 있었다.
    성칠은 헌병을 따라 자그마한 면회실로 들어갔다.
    면회실에는 쇠살창을 단 자그마한 창문이 있었다. 이윽고 건너 방에서 무거운 쇠고랑이 소리가 절그럭절그럭 들리었다. 병권과 성칠은 후닥닥 창문 앞에 마주섰다. 이윽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아래 수척하고 상처투성인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한 병완이 나타났다.
    “아버지!”
    “성칠아!”
     병완은 성칠과 병권을 보자 조금 웃음기를 띠면서도 목이 말라서인지 쉬여서인지 온전히 말을 하지 못했다.
    “형님도 왔소?”
    “응. 고생이 많았겠구나.”
    병완은 형을 보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성칠에게 머리를 돌렸다.
    “집 식구들은 무사하냐?”
     “예. 근심 맙소.”
    “마을은?”
    “은녀는 길수네 집에 되들어가고. 벌목한 삯전은 줄 거 같지 않습니다.”
    “오, 그래?”
    병권은 동생의 손을 잡고 부탁했다.
    “동생, 이젠 쉰 고개도 넘었는데 싸움질을 그만 두게나. 한영감과 싸움질해 봤자 먹을 알이 있니?"
    그러나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뒤이어 그는 피진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더니 성칠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말소리를 낮추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기준이 보고 통나무 옹이나 벌레를 조심하라고 해라.”
    “통나무 옹이나 벌레?”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기준이나 창준은 목수니깐. 알아들을 거야."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아버지는 언제쯤 나오게 됨둥?” 
   병완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강철이가 그러던데 무기징역일수도 있다더구나.”
   “이 일을 어쩌는가? 거 한길수의 작간이겠다.”
    병권의 말에 바깥에서 엿듣던 일본 앞잡이경찰 똘만이 문을 떼고 들어와 소리쳤다.
    “면회 중지!”
    통통하게 생긴 똘만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병권과 성칠을 잡아 문 밖으로 끌었다.
    성칠은 똘만의 손을 홱 뿌리치면서 병완에게 머리를 돌렸다.
    “아버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편안히 계십소.”
    병완은 굵직한 쇠고랑이를 채운 팔을 들어 주먹을 으스러지게 꽉 틀어쥐어 보였다. 성칠도 주먹을 쳐들어 보였다.
   병권도 병완을 돌아보고 소리쳤다.
   “다신 싸우지 말구 몸 조심하게.”
   병권과 성칠은 일각도 만나보지 못하고 면회실에서 쫓겨 나왔다. 감옥 대문을 나오면서야 성칠은 아버지께 대접하려고 보자기에 싸 가지고 간 기름떡을 잊고 주지 못하고 나온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그때 때마침 강철이가 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류강철은 한 고향 사람의 면목을 봐주지 않을 수 없어 마지못해 받았다.
    성칠은 류강철에게 후에 인사하겠으니 아버지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병권과 함께 원한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섰다.
    성칠은 큰아버지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하늘에 어두운 구름장이 침침하게 덮쳐 오더니 하얀 눈이 깔린 고향의 대지를 지지누른다. 아마 또 큰 눈이 내리려는 상 싶었다.
 
 
 
 

 
 
 
 
                          제6 포수대


                                1. 남도치



    동녘하늘에 싸늘한 햇빛이 몇가닥 비추고 있다. 뭇산들이 눈 이불을 푹 뒤집어 쓴 하얀 잔등을 드러냈다.
    금방 잠에서 깨여난 성칠은 어제 가메다에게서 수모를 당한 일이 떠오르자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오르내리며 금방 툭 튀어나와 폭발할듯했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쉬면서 억지로 분기를 억눌렀다.
    (룡천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먼저 불을 질러놓고 싸울까 봐 척 막아 나선단 말이야. 쳇!)
   성칠은 도리머리 질을 절레절레 했다.
   탕, 탕, 탕!
   “누군가?”
  “문 열어!”
   분명 영팔의 목소리였다.
   “이른 아침부터 뭔가? 성가시게!”
   성칠과 하옥은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이윽고 성칠이  문을 열었다.
   삼림파출소 야마모도 소장이 군도를 건들거리면서 들어섰다.
   영팔과 통역 류강철이 뒤따라 들어오며 시뿌연 한기를 묻혀 들여왔다.
   “오하이요 고자이마스(안녕하십니까?)”
   성칠은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 그저 머리를 끄덕이면서 자리를 권했다.
   다행히 옆에서 류강철이 통역했다.
   야마모도는 앉지도 않고 뜻밖에 희죽이 웃어 보이며 말했다.
    “김 군, 어제 가메다 너무 했쏘까. 양해하게나. 김군은 명포수라면서? 통나무를 베다니? 참, 오늘부터 황군을 위해 산짐승을 잡아오게나.”
   성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야마모도는 “거 사냥총을 봅세나.” 하고 말했다.
 성칠은 조금 주저하다가 뒷고방에 들어가 사냥총을 벗겨다 주었다.
  야마모도는 한 손에 사냥총을 들고 매만지더니 중얼거렸다.
  “참 좋은 사냥총이구먼.”
  그는 가재수염을 손끝으로 슬슬 만지다가 술잔을 드는 시늉하면서 뇌까렸다.
  “산짐승을 많이 잡아오게나. 저녁에 한잔 마십세.”
  야마모도는 선심을 쓰는 척 하더니 돌아서 나가려고 하다가 몸을 되돌렸다.
  “깜빡 잊었소. 명포수 당신, 여기 영월동 구장 했쏘까네. 우리 황군 위해 일을 많이많이 했소까.”
  성칠은 단마디로 “할 수 없소.” 하고 거절했다.
   (고양이 쥐를 생각해?)
   야마모도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면서 성칠에게 사냥총을 돌려주었다.
   성칠은 넌지시 야마모도 속을 떠보았다.
   "어째 한 총 도감을 시키지 않소?” 
   야마모도는 성칠의 어깨를 다독이며 씨벌였다.
   “한 영감은 끼무라 국장 사람이네. 장차 헌병대 아래 자위대가 서면 대장쯤 시킬 예산인 것 같네. 난 당신들 부자와 같은 힘장사가 많이, 많이 필요했쏘까. 와갔다가(알았는가)?”
    성칠은 도리머리 질을 절레절레 하였다.
   “사냥하러 룡천을 데리고 가도 되겠소?” 
   야마모도는 머리를 끄덕였다.
   “거 가마골에서 왔다는 그 청년 말인가? 데리고 가게. 멧돼지랑 많이많이 잡아오게나.” .
  야마모도 등이 우르르 쓸어나가자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를 어린애들처럼 우습게 보는구나. 더러운 놈들, 흥!”
   성칠은 기준을 찾아가 전날 아버지 감방에서 하던 말을 하고 무슨 뜻인가고 물었다.
   기준은 머리를 수깃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한참 후에야 기준은 머리를 쳐들었다.
   “아버지는 분명 통나무 옹이와 벌레를 암시했소. 이제라두 벌목할 때 벌레 먹은 통나무를 아무도 몰래 표시해 두기오.”
   성칠은 기준과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길을 맞추면서 머리를 끄덕었다. 
   “삯전을 주지 않아보지. 벌레 먹은 통나무로 경찰사무청사를 짓게 해서 와르르 무너지게 해놓자."
   "그러기오."
  한참 후 성칠은 기준과 갈라졌다.
  그는 집에 돌아가 사냥총을 둘러메고 검둥이를 데리고 룡천을 찾아갔다. 그들 둘은  눈 덮인 치마봉 기슭을 에돌아 울울창창한 소나무 밭 속으로 들어갔다.
   영월동 부근의 기운봉(지금의 칠보산 병풍치기 절벽관광지 옆산)은 벌목 바람에 산짐승들이 거의 다 달아났다. 그리하여 머나먼 치마봉(지금 칠보산 장군봉) 근처에 갔던 것이다.
   검둥이가 끼깅거리자 성칠은 사냥군의 특유한 눈길로 사위를 살폈다. 때마침 노루 한마리가 눈이 뒤덮인 수림속에서 그들을 보고    선불맞은것처럼 놀라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그 놈은 눈우로 퐁퐁 뛰면서 아름드리나무새로 좌우충돌하면서 달아났다. 한다하는 사냥군 성칠도 그 놈을 겨냥해 쏠 수 없었다. 그 놈을 산우로 쫓아올라가게 한후 다시 내리쫓아 잡아보려고 했다. 노루란 놈은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짧기에 올리막 보다 내리막을 잘 뛰지 못했다.
    노루가 아름드리나무들을 에돌아 이리저리 깡충깡충 뛰어다니다가 대가리를 반쯤 내밀었을 때다. 룡철이 사냥총을 번쩍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노루가 대갈통을 맞고 쓰러져 버둥거렸다. 검둥이가 씽 달려 나가 바둑거리는 노루를 물어뜯더니 컹컹 짖었다.
   “깍, 깍”
  하늘에서 아름드리나무 끝 초리를 스치면서 까마귀 두 마리가 날아지나갔다.
  “오랑캐들이 자기 선조들로 까마귀 국이나 끓여 먹어라!”
   탕!
   성칠이 쏜 총탄에 떨어지는 까마귀.
   탕!
   룡천이 쏜 총탄에 도망치던 나머지 까마귀가 저쪽 하늘에서 줄 끊어진 연처럼 곤두박질쳐 떨어졌다.
  성칠은 룡천의 사격술에 못내 혀를 끌끌 찼다. 시골사람처럼 아직도 외머리채를 땋아 어깨 너머 늘였지만 침착한 거동과 백발백중하는 사격술은 어딘가 남달랐다.
    이날 그들은 반나절도 되나마나 해서 노루와 사슴, 까마귀 두 마리를 잡아 메고 돌아섰다.
   그들은 치마봉을 에돌아 양지바른 바위 앞에 이르자 잠간 다리쉼을 하느라고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엽초를 굵직이 말아 물었다.
   성칠은 부시를 쳐서 불을 붙인후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 후 내뿜더니 룡천에게 담배 대를 넘겨주었다.
   “룡천이, 전번에 자네가 말렸으니 놔뒀네. 가메다란 놈을 도끼로 대가리를 찍어 놓았을게오.”
   “글케 해선 안 돼.”
   성칠은 이해되지 않아 “어째?” 하고 말하면서 룡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룡천은 성칠을 마주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있자노, 가메다 한 놈 쯤은 찍어 죽이자면 쉽네. 그러나 그 놈을 찍어죽이고 뒷일을 생각했어?”
   “이것저것 다 걱정하다나면 개처럼 매만 맞을게 아닌가? 어디 참고 살겠는가?”
   룡천은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면서 말했다.
   “원쑤는 꼭 갚아야 해. 그러나 복수 시기와 수단을 잘 궁리해야 되네.”
   그들은 둘 다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성칠은 담배를 한모금 길게 빨아 연기를 후 내뿜더니 물었다.
   “듣자니 자넨 남쪽에서 왔다던데 남쪽에서도 일본 놈들이 저렇게 행패 질 하는가?”
   “더 말할 데 있어? 우리 고향에는 이곳보다도 일본 놈들이 더 욱실거리네. 변소간의 구더기보다도 더 욱실거려. 난 경주 바닥에서 게 다짝을 짝짝 끌고 다니는 일본 놈들이 딱 질색이여.”
   룡천은 고향이 있는 저 멀리 남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내  고향은 있자노. 경상도 경주라는 곳이네. 경주는 우리 경주 김씨네 2천여년이나 세세대대로 살아오던 살기 좋은 고장이네. 세상에 천년이나 통치해온 나라가 몇이 있어? 우리 경주 김씨와 박씨, 석씨 세 큰 집안에서 돌아가며 왕질을 하면서 나라를 천년이나 통치해 왔던기여.”
   “오, 그런가? 그 나라 이름이 뭔가?”
  성칠은 호기심이 나서 룡철의 곁에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신라라는 나라네.”
  “신라?”
  룡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천년력사를 자랑하는 신라네.”
   룡천은 천천히 뒤 말을 이었다.
   “내 고향 경주에는 우리 조상들의 뼈와 살이 묻힌 고장이야. 지금도 경주에는 우리 조상 왕들의 산더미 같은 산소가 가득하네. 우리 고향은 여기 함경도보다 날씨가 따스해. 지금도 여기처럼 그리 춥지 않아. 난 여름이면 고향마을에 우거진 참대 숲에서 애들과 함께 숨 박 꼭 질을 놀았제이. 가을이면 집 마당의 감나무에서 빨간 꽃 감을 따서 맛나게 먹었네. 정말 가을이면 고향마을에서는 빨간 꽃 감의 싱그러운 냄새가 풍겼어.”
   성칠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춥고 살기 나쁜 함경도로 왔어? 듣는 말에 의하면 우리 함경도는 옛날부터 정배를 보낸 사람들이 와서 살던 곳이라던데.”
   “누가 그렇게 살기 좋은 고향에서 떠나고 싶어 떠났겠나? 일본 놈들이 우리 고향에 들어온 다음에는 모든 게 끝장났어. 어지간하면 고향을 떠나 천리도 넘게 떨어진 여기 도둑놈이 욱실거리는 함경도에 입북했겠나? 와보니 함경도라고 다 그런 거 아니데. 자네 집을 보니 인심이 아주 후하데이. 저 동북쪽 웅진 정배살이 하던 곳이라데이,  이 곳은 괜찮아. 그래서 우리 사촌형 칠백이두 여기 와서 살잖나? 그러나 고향  떠나면 고생도 많고 자꾸 고향생각 나데이.”
  성칠은 룡천을 따라 한숨을 후 내쉬면서 물었다.
  “그래 어째 그 좋은 고향 떠나왔는가?”
  “어찌 한마디로 다 말하겠어?”
  룡천은 눈물이 글썽해 말했다.
  “자넬 믿고 하는 말이네. 우리 아버지는 일본 놈들을 욕하다가 일본 놈이 휘두르는 군도에 잔인하게 살해됐네.”
  “오, 그래? 괜히 묻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성칠은 남의 아픈 곳을 들춘 것 같아 미안해했다.
   “괜찮아. 일본 놈들은 우리 고향에 들어오자마자 그 마을에서 제일 고풍스럽고 좋은 우리 집을 욕심냈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출소를 앉히겠다면서 집을 당장 내라고 했네. 그러자 우리 아버지는 내지 않겠다고 딱 잡아뗐네. 일본 놈들은 헌병을 끌고 와서 무력으로 우리 집식구들을 쫓아내고 차지하였지. 그러자 아버지는 마당에 서서 일본파출소 소장 놈을 손가락질하면서 욕설 퍼부었지. ‘이 놈 날강도들아, 남이 세세대대로 살아온 집을 빼앗고 잘 살것 같아 이러노?’  이렇게 욕설 퍼부었댔어. 파출소 소장 놈이 군도를 뽑아 손가락질을 하는 오른팔을 쳤어. 오른팔이 끊어지자 아버지는 왼팔을 쳐들어 손가락질을 하면서 계속 욕했어. 그러자 소장 놈은 나머지 왼팔마저 군도로 사정없이 찍었어. 헤이, 두 팔을 다 잃고 마당이 즐벅하게 피를 수태 흘린 아버지는 일본 놈들에게 원한을 품고 숨을 거두었네. 헤이 참.”
   룡천은 너무 슬퍼 아래 말을 잇지 못했다.
  수림 속에서는 눈보라가 무섭게 아우성치면서 불어쳤다.
  성칠은 벌떡 일어났다.
   “자넨 왜 그 좋은 사격술을 가지고 사냥총으로 몇 놈 쏴 눕히지 못했소?” 
   “내캉 왜 아버지 원수를 갚고 싶잖았겠어?. 몇 놈은 해치우구 글케 도망칠 수 있었어. 하지만 어머님이랑 동생들 우짤라고?”
   룡천은 말을 마치자 노루를 둘러메고 떠날 차비 했다.
   “일본 놈들은 무리승냥이들이야. 우리 사냥꾼들도 한데 뭉쳐 일본 놈들을 사냥하는 포수대를 무어야네. 알갔어? 그래야 섬나라 강도 놈들을 쓸어버리고 원수도 갚을 수 있는기여.”
  “일본놈을 사냥하는 포수대?"
  "그래."
   성칠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거 참, 그럴듯해. 나도 포수대에 들어가 일본 놈들과 통쾌하게 싸워 보고 싶네. 이게 어디 일본 놈들의 등살에 마음 놓고 살겠는가? 에이, 참!"
   성칠도 사슴을 둘러메고 사냥총을 왼손에 쥐고 따라나섰다.
   룡천은 산기슭으로 내려가면서 나직이 말했다.
   “우리 힘으로 우시장일대 사냥꾼들로 포수대를 무읍세. 우리두 뭉쳐야 고향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구 편안히 살 수 있네. 자네가 대장을 하구 내가 뒤에서 받들어 줄게.” 
   “아니, 포수대 대장은 자네 하게나.”
   “아니. 우시장 일대에서 자네 가문과 자네 명성이 높네. 자네가 호소해야 사냥꾼들이 모일 수 있네.”
   성칠은 불시에 포수대 말이 나오자 조금 주저하기도 했다.
   “우리 우시장 일대 사냥꾼들이 몇이나 된다고 그러오? 어찌 무리승냥이 같은 일본 놈들을 다 몰아내겠는가? 또 사냥꾼마다 제 궁리를 하겠는데 다 따라오겠는가?”
   룡천은 성칠과 나란히 걸으면서 말했다.
   “우리 혼자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지금 장백산 일대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몇 만 명이나 되는 조선 독립군이 일본 놈들을 간담이 서늘케 하고 있네.”
   성칠은 귀가 번쩍 뜨였다.
   “오, 그래?”
  룡천은 성칠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일본 놈들은 을사조약을 체결한 후 우리 조선을 통 채로 삼키고 있네. 한일합방을 하면서 조선을 일본제국의 속국도 아닌 일본으로 만들고 있어. 지난해 3월 1일에 서울에서 조선 유지인사들이 모여서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운동을 일으켰지. 비록 독립운동은 실패했네. 하지만 온 조선 땅에서 울려 퍼진 ‘조선독립 만세!’ 소리는 망국노로 된 조선 사람들을 뭉쳐 일어서게 깨우쳤어.”
룡천은 걸음을 멈추고 명심해 듣는 성칠을 보고 사위를 둘러 보고나서 천천히 뒷말을 이었다.
    “이준 선생은 화란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까지 참가하여 을사조약이 체결된 내막을 전 세계에 까밝히고 국권을 되찾으려고 하였네. 그러나 간악한 일본 놈들이 미국 놈들과 짜고 들어 꿍꿍이를 꾸미는 바람에 회의장에서 떠밀리어 나오게 됐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자 그는 회장 밖에서 자기 배를 갈라 일제에 대한 조선 민족의 반항심을 보여줬네. 조선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유지인사들이 있네. 수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려고 서당 방에서 계몽운동을 벌리고 있어. 다만 국제 외교 활동을 하거나 ‘3.1’독립운동 때처럼 ‘만세!’만 불러선 나라를 구하지 못해. 총으로 일본 놈들을 몰아내야 해.”
    룡천은 성칠이 귀담아듣는 것을 보고 계속 열변을 토했다.
   “내캉 간도에 가서 들었는데 말이게. 용드레촌을 중심으로 간도에서도 여기 ‘만세’운동영향을 받아 ‘3.13독립’운동을 벌렸더군. 림민호라는 13세 어린이가 교회당에 올라가 독립운동의 신호 종을 온 용드레촌이 다 들리게 울렸다네. 종소리를 듣자 조선 사람들은 거리에 뛰쳐나가서 시위행진하면서 ‘조선독립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네. 그런데 일본 경찰 놈들이 총을 쏘면서 탄압해 실패로 돌아갔데. 숱한 애국지사들이 총탄에 맞아 희생되거나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말았네. 이젠 홍범도장군의 의병대처럼 사냥꾼 포수대를 조직해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과 싸워야 할 때네. 일본 놈들을 내 고향에서 몰아내고 내 나라를 되찾아야 편안히 살 수 있네.”
   룡천은 한날 한시에 불시에 너무 많이 말한 것 같아 그쯤 해 그만두었다.
   성칠은 룡천을 따라 성큼성큼 걸으면서 사냥총을 으스러지게 꽉 쥐면서 속으로 못내 혀를 끌끌 찼다.
  (이 양반  아는 것도 많구나. 그러나 우리 힘으로 무리승냥이 같은 일본 놈들을 몽땅 몰아낼 수 있을까?)
                                
                                      

                                       2.
전우를 구출


       
      성칠은 룡천의 말을 듣고 착잡한 생각에 빠졌다.
    한참 후 그는 무슨 마음을 먹은듯이 위방에 올라가 벽에 걸어둔 사냥총을 벗겨 마른 수건으로 쓱쓱 닦고 탄약과 시퍼런 비수를 꺼냈다.
   그는 비수를 팔소매에 대고 쓱쓱 닦아 엄지로 날을 쓱쓱 훑어보며 윽별렀다.
   (아버지를 감옥에 가둬? 일본 놈새끼들, 가만 놔두는가 봐라.)
   하옥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나는 싸우다가 죽어도 괜찮은데. 참, 부모형제를 연루시키면 어쩐단 말인가?)
   아내 하옥은 남편이 우시장에 갔다 온 후 행동거지가 이상한 감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림자가 물결쳤다. 호랑이 같은 남편에게 후대를 낳아주지 못한 죄책감이 늘 앞서군 하였다. 하여 남편과 바깥일을 묻기도 저어했다. 그러나 요즘 시아버지가 한길수의 눈알까지 뽑아버려 감옥에 갇힌 후 면회하러 갔다 와서 남편의 거동이 심상치 않아 묻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웠다.
    그녀는 위방에 올라가 성칠한테 다가가 큰 마음 먹고 남편에게 물었다.
    “시아버님은 무사하던가요?”
   성칠은 머리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승냥이 굴에 들어간 분이 무사할리 있겠소?"
  하옥은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숨을 호 내쉬었다.
   “혹시 돈을 좀 팔면 아버지를 모셔 내올 수 없을까요?”
   “아버지를 면회하는데도 큰아버지 산삼하구 면회 비까지 냈소. 아버진 무기징역을 받을지도 모르오. 일본 놈들의 앞잡이 눈알을 뽑아 놨으니까.”
    성칠은 사냥총을 벽에 걸어놓고 비수를 장단지 각반 속에 쓱 꽂아 넣었다.
   “이 일을  어쩌는가요?”
   성칠은 아내를 보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여보, 당신은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 많았소. 난 아마 집을 떠나 큰 사냥을 하러 가야 할 것 같소.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수고하오.”
   이전에 성칠은 사냥하러 가도 전혀 작별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옥은 이상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냥을 한 둬달 하면 돌아오겠지요?”
  성칠은 도리머리 질을 절레절레 했다.
   “한두 달로 될 것 같지 않소. 무리승냥이들을 모조리 잡자면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소.”
   이때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어머니가 들어왔다.
   “얘, 아까 내캉 말할 때 무심히 들었던 관데. 먼 곳에 사냥하러 가는가 베?”
   성칠은 엉거주춤 일어나 엄마께 허리를 굽혀 인사하면서 대답했다.
   “예, 엄마, 무사히 있읍소. 일이 있으면 동생들이나 조카들에게 말합소. 엄마, 동생들이 사는 운주동에 이사 가면 좋을 것 같습구마.”
   성희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맏아들을 바라보다가 앉으라고 손시늉 했다.
   “이사 말은 하지도 말어. 이 팔간 집을 어떻게 지은 집이라고 그래? 저 물방아는 어쩌고? 난 이집에서 죽더라도 너 아버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성칠은 어머니와 아내를  번갈아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이때 바깥에서 검둥이가 짓는 소리가 컹 컹 컹 들리고 문을 탕 탕 탕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문 열엇!”
성칠이 위방 문을 열자 허연 한기와 함께 영팔과 응삼, 수길 등이 집안으로 우르르 쓸어 들어왔다. 뒤에 털 한 모숨과 가메다 등 일본 헌병들도 따라 들어왔다.
   영팔이 우쭐해서 성칠을 보고 지껄였다.
   “사냥총을 내놓게.”
    성칠은 벽 밑에 걸어놓은 사냥총을 벗겨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사냥총을 내놓고 뭘 먹고 살라는 거요?”
    “이 놈이, 사냥총을 내놓지 못할까?”
    “안 된다. 벌목 삯전도 주지 않으면서 사냥총까지 내놓으라고? 사냥총은 우리 사냥군들의 목숨이야.”
    “이젠 산짐승도 몽땅 일본 거야. 사냥은 무슨 놈의 사냥? 흥!”
  가메다가 으르렁거리자 앞잡이들이 팔을 걷으며 다가섰다.
  “얘들아, 사냥총을 빼앗아라!”
  영팔의 호령소리에 수길과 응삼이 등 졸개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그들은 성칠의 손에서 사냥총을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벌렸다.
  이때 가메다는 군도를 빼들고 꽥 고함쳤다.
   “빠까요로(멍청아), 이 놈을 묶어!”
   일본 헌병 놈들이 아예 성칠과 사냥총을 한데 바 줄로 꿍꿍 묶어 문밖으로 떠밀었다.
   “여보, 여보!”
  하옥이가 따라 나오면서 소리쳤다.
   “성칠아! 이 놈들아, 내 맏아들 무슨 죄 있다고 마구 잡아가는 거냐?”
   본가집에 놀러왔던 곰순도 정주간에서 뛰어나오면서 소리쳤다.
   “오빠!”
   성칠은 묶인 채 내리막길로 내려가면서 머리를 돌려 어머니와 여동생 곰순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엄마를 잘 모셔라.”
   검둥이도 어데 갔다가 주인이 묶여 가는 것을 보고 일본 놈들에게 달려들면서 왕왕 짖어댔다.
   땅! 땅! 땅!
   일본 놈들이 검둥이에게 사격했다. 검둥이는 날쌔게 피하면서 도망쳤다.
   땅! 땅! 땅!
   갑자기 물레방아 쪽에서 야무진 총소리가 울렸다.
    일본 헌병 두 놈이 눈 바닥에 푹푹 꺼꾸러졌다. 방앗간 뒤에서 몇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렸다.
   땅! 땅! 땅!
   가메다도 권총을 꺼내 맞불질을 했다. 총알이 물레방아 바퀴에 픽픽 박혀 눈꽃을 튕겼다.
   영팔과 수길은 성칠을 활 놓고 다리야 날 살리라고 내리막으로 선불 맞은 노루처럼 도망쳤다.
   “성칠이, 빨리 산속으로 뛰게나!”
  물레방아 바퀴 뒤에서 분명 룡천의 웅글진 목소리가 울렸다.
   그제야 제 정신이 펄쩍 든 성칠은 묶인 채 눈 덮인 산기슭 수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검둥이도 끼깅거리면서 성칠을 따라 뛰어갔다.
   땅! 땅! 땅!
   자지러진 총소리와 함께 성칠의 앞과 뒤에서 눈꽃이 튕기었다. 귀 뻘쭉해 달리는 검둥이 옆의 적송에 총알이 픽픽 박혀 나무껍질이 튕겼다.
   성칠은 이리 저리 적송 사이로 몸을 빼면서 팔자 형으로 달려갔다.
   헌병놈들은 가메다가 군도를 휘두르자 룡천과 성칠을 추격했다.
  갑자기 일본 헌병 한 놈이 “억!” 비명소리와 함께 어데서 날아온 돌멩이에 맞아 이마를 감싸 쥐고 눈 위에 푹 꺼꾸러졌다.
  쒹-
   쒹-
   연속 날아오는 돌멩이에 일본 헌병 몇 놈이 무릎을 안거나 대가리를 붙안고 꺼꾸러졌다.
   그 사이 성칠은 수림 속으로 멀리 달아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웬 사람이 원숭이처럼 나무 가지를 쥐고 구르면서 이쪽저쪽 나무로 건너뛰면서 날아왔다.
   “오빠!”
   성칠은 자기 앞에 귀신처럼 나타난 사람이 진달래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진달래야!”
   진달래는 재빨리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성칠을 묶은 바 줄을 끊었다.
   성칠은 손목을 만지면서 진달래를 보고 적이 놀랐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오빠를 마중하러 왔댔어요. 일본 놈들이 쫓아오기 전에 이 고개를 넘어야 해요. 자, 어서 뛰자요.”
   성칠은 바줄과 함께 눈 우에 떨어진 사냥총을 쥐고 진달래를 따라 산중턱을 따라 수림 속으로 뛰었다.
   “그래 물레방아 간에서 일본 놈들에게 총을 쏜 룡천이랑 아는 사이냐?”
    “그래요. 우린 장백산항일독립군 전우지요.”
    “장백산 항일독립군?”
   “예, 그래요.”
   성칠은 듣기만 해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들이 한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였다.
   골짜기에는 진작 몇몇 독립군 대원들이 백마들의 고삐를 잡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윽고 룡천 등도 일본 헌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왔다.
    성칠은 룡천 등을 보자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고맙네! 자네들이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난 아버지처럼 한평생 우시장감옥에 갇힐 번 했소.”
   “그 놈들은 진작 당신 부자간을 마음 놓지 못했어. 우린 당신을 만나러 가다가 때마침 당신을 결박해가는 일본 놈들과 마주 띄우게 됐네.”
    성칠은 룡천과 진달래를 둘러보면서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나도 장백산 항일독립군에 들겠소. 꼭 아버지와 우리 고향 사람들의 원수를 갚겠네. 나를 받아주오.”
   룡천은 성칠의 쩍 벌어진 어깨를 믿음에 찬 손으로 툭툭 쳤다.
  “좋네. 당신은 진작 우리와 마음을 같이 했다이. 우리 조선 땅에서 우리 부모형제들이 일본 놈들의 철발굽 아래에서 해탈돼 행복하게 살게 하려면 총칼을 들고 일본 놈들을 우리 고향 땅에서, 아니, 우리 조선 땅에서 몽땅 몰아내야 하네.”
   성칠은 룡천의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고맙소. 나를 구해줘서. 나는 독립군에서 솜씨를 보이겠소.”
   룡천은 신임에 찬 눈길로 성칠을 바라보다가 독립군 대원들에게 몸을 돌렸다.
   “우린 우시장 일대 사냥꾼들을 묶어세워야네.  일본 놈들이 우리 목재를 실어다가 경찰국 사무 청사를 짓는 걸 막아야지.”
   성칠은 가슴을 쑥 내밀고 대답했다.
   “근심하지 마오. 내 나서서 꼭 젊은이들을 묶어세우겠네.”
   진달래는 성칠에게 다가와 백마 고삐를 넘겨주었다.
   룡천은 백마에 올라타면서 손을 홱 저었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갑세. 적들이 꼭 추격해올 거야.”
  독립군 대원들은 모두 백마에 올라탔다.
  성칠도 백마에 올라탔다. 검둥이도 주인을 따라 달려갔다.
  한창 독립군 대원들을 따라 달리다가 성칠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룡천이, 이 곳에서 할 일이 있네.”
   룡천도 멈춰 섰다.
  성칠은 입에서 김을 훅훅 풍기면서 말했다.
  “한길수를 가만 놔두고 떠날 수 없어.” 
   “잠시 철퇴하는 거야! 일단 일본 놈들의 추격을 피해야 하이. 전술적인 철퇴를 했다가 다시 기회를 엿봐야 돼.”
   룡천이가 전술적인 철퇴라고 했는데도 성칠은 고집을 썼다.
   “아니야, 이대로 달아나면 눈에 난 발자국을 따라 인차 추격해올 거야.”
  그 말에도 도리 있었다.
  “인마를 갈라서 철퇴하자. 기회가 되면 매복습격도 하자.”
   룡천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달래가 룡천에게 말했다.
   “김 소대장, 내가 바우돌과 억복을 데리고 성칠 오빠와 함께 남으면 어때요?”
   “좋아. 1분대는 진달래 소대장을 따르고 2분대는 날 따르라. 우린 놈들을 각자 따돌리고 사흘 후 치마봉 밑에서 만난다.”
   “옛!”
   독립군은 두 패로 나뉘어 백마를 타고 수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윙윙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수림 속으로 사라지는 독립군 용사들의 종적을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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