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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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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4)
2015년 11월 25일 09시 48분  조회:215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정든 고향
       여우도 추워 눈물을 흘리는 맵짜게 추운 동지섣달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마당의 묵은 백양나무 가지에서 알락까치 두 마리가 앉아 꽁지를 달싹이면서 까까까 우짖다가 땅바닥에서 먹이를 찾아 미친 듯이 기어다니는 족제비를 보자 놀란 듯이 황급히 북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성희는 마당에 바람 쏘이러 나왔다가 꼬부장한 허리를 펴고 눈 위에 손을 얹고 저 멀리 북쪽으로 날아가는 까치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북쪽에서 무슨 기별이 오려나? 아침부터 까치가 울어?”
아닌 게 아니라 글쎄 그날 아침에 뜻밖에도 간도에서 육촌시동생 석은이 찾아오지 않았겠는가. 석은은 최구장네 맏사위였는데 최죽순과 결혼한지 얼마 안 돼 간도로 들어갔던 것이다. 석은은 상우와 나이 차는 많지 않았지만 8촌 작은할아버지 벌이 되는 양반이었다.
“에이유, 작은 할아버지 왔구먼. 그래 간도에서 잘 보냈소?”
상우가 반갑게 인사하면서 위방에 자리를 권했다. 안 식구들도 일일이 인사를 올렸다.
상우의 처 지새금이 죽 두 사발에 시라지 장국 두 사발을 올린 밥상을 들어 들여왔다.
“밥을 들면서 천천히 얘기해줍소.”
석은은 따끈따끈한 죽을 후후 불며 먹으면서 말했다.
“간도는 확실히 듣던 소리같이 땅이 많고 사람은 적구 살기 좋은 곳이네. 큰형님과 이상조카들이 장지주네 밭을 석 짐 붙이고 황무지를 한 서너짐 일궜는데 조 열 마대를 넘게 냈네. 조선 지주들만은 간도 한족지주들은 인심이 후하네. 중국지주들은 소작료도 절반 밖에 받지 않네. 황무지를 일군 밭에서 난 곡식은 2할만 가지구 8할은 큰형님 네를 주었어.”
“야, 세상에 그런 지주도 다 있소? 우리 여기서야 지주가 8할을 가져가고 나면 죽물도 먹기 힘들지 않고 뭐요?”
정지에서 석은의 말을 엿듣던 기준의 아내 최사련은 “간도가 정말 그렇게 좋으면 가야 하겠구나.” 하고 감탄했다.
석은은 뒷말을 매듭지었다.
“웃새집 큰 형님 네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버드나무숲 속에 육간 집까지 척 지어놓고 기다린다. 기준은 소서구에 육간 집을 지어놓았어. 큰형님네는 날 보고 고향에 가면 자네하구 상훈에게 간도로 들어오라고 기별하라고 했네. 집이고 뭐고 빚으로 다 처리한 후 가마만 빼가지고 들어오면 된다고 하더라. 두만강이 떵떵 얼어붙었을 때 어서 간도로 들어갈 차비를 하게나. 내 이제 웃새집 상훈에게도 기별하겠다.”
상우는 그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다.
“집안 조상들의 산소에 쓸 문중전(门中钱)을 변돈으로 300원 꿨다가 빚더미에 깔려 죽을 지경입구마. 밭이 없어 농사를 쫄딱 했지 문중전까지 다 썼지. 이젠 어떻게 살아갈 방법이 없습구마. 간도로 들어가야겠습구마.”
정지에서 지씨는 어글어글한 눈을 슴벅이며 시어머니와 함께 남편의 말을 듣더니 길쭉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본가 집 근심을 했다.
“그런데 시집을 따라가면 우리 본가집은 어찌 하겠습둥?”
사련은 맏며느리 손을 잡고 매만지면서 “애기네 근심하지 마오. 가기 전에 가마골에 기별해서 본가집도 간도로 들어가자고 하오.”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제야 지씨는 안도의 한숨을 호 내쉬었다.
상우는 석은을 따라 웃새집으로 반달음쳐 갔다.
한참 후 헐금씨금 돌아온 상우는 어머니와 토론했다.
“웃새집 큰형님네도 간도로 들어가자고 합디다. 그런데 빚 꾼들이 문제입니다.”
사련이 말하기도 전에 지새금이 수를 내놓았다.
“별 근심도 다 하오. 돈이 없는 걸 손가락을 빼주겠습니까? 빚 군들이 오면 ‘헌 집과 빈 궤짝을 훌 내놓고 우린 이것 밖에 없소. 마음대로 가져가오.’ 하고 간도에 가버리면 다지.”
병완과 기준과는 달리 너무 어진 상우는 너부죽한 이마를 숙이면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했다.
“어떻게 낯을 들고 살겠소. 사람이 양심 없이. 이후에 누가 우리한테 돈을 꿔주자고 하겠소?”
그러나 새금은 계속 두덜거렸다.
“간도로 쫓아와서 빚을 받겠으면 받으라지. 흥.”
사련은 옆에서 듣다가 동감을 표시했다.
“며느리 말이 옳다. 집을 주구 간도에 가서 빚을 물겠다구 해라.”
상우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사련과 새금은 옷궤에서 누더기 몇 벌을 보에 싸놓고 쌀독을 다락다락 긁어 길에서 먹을 주먹밥을 짓기 시작했다. 상우는 뒤울안에 돌아가서 지게를 메다가 집안에 들여다 정지 벽에 기대 세워 놓았다. 뒤이어 그는 마루에 나가 기둥에 달아매놓은 종자기장이삭묶음 두개를 풀어 들여다 지게 우에 올려놓았다. 급히 떠나면서 두고 갈까봐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었다.
이튿날 날이 푸름히 밝자 사련과 새금은 덮고 자던 이불 세 개를 개여 보에 쌌다.
월금은 눈이 동그래 “엄마, 우리 정말 이 집을 던지고 갑니까?” 하고 물었다.
“그래. 빚으로 주고 어서 가버리자.”
월금은 아까워 집안 대들보랑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풍설이 이는 날에도 성남집 기준이네가 간도로 들어간다는 기별을 듣자 집안 집 빚 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몰려들었다.
“아니, 집안 조상들의 산소에 쓸 돈을 다 먹어 치우고 훌 가면 어쩌오?”
상우는 성난 사자처럼 떠드는 빚 꾼들에게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간도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 문중전을 다 물겠습구마.”
그러나 억대우 같은 집안 집 사내는 곧이듣지 않았다.
“간도에 가면 낟알이 하늘에서 막 쏟아져 내린다오? 듣기나마 좋지. 언제 빚을 갚는다고 그래. 흥!”
상우는 지새금이 옆에서 옆구리를 콕콕 찌르자 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어데서 그런 용기 났던지 어진 성격과는 달리 나왔다.
“우린 가진 게 이것뿐입구마. 집과 돌밭 밖에 없소. 빚 대신 마음대로 가져가오.”
그러자 빚 꾼들은 “와야!” 소리와 함께 달려들어 서로 가정기물을 빼앗을 내기 했다. 물독을 메가는 이로, 함지를 이고 가는 이로 야단법석 했다. 나중에는 사내 여럿이 바 줄을 집 기둥에 매 “허이야 차!” “허기영차!” “하나, 둘, 셋!” 하고 한창 바줄 당기기를 했다. 이윽고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집이 훌러덩 무너졌다.
순간 기둥을 빼가는 이로, 대들보를 메가는 이로, 문짝을 빼가는 이로 보기 흉측할 지경으로 살벌했다.
한 빚 꾼이 지게에 얹은 가마에 손을 대려고 하자 상우는 두 팔을 벌려 말렸다.
“너무 하지 않소? 우리 간도에 가 뭣에 끓여먹고 살겠소? 가마만은 놔두오.”
그 빚 꾼은 스스로도 지나쳤던지 “그래, 간도에 가서 빚을 꼭 물어라. 안 무는 날엔 간도에 가서 가마까지 빼 갈 줄 알아라. 흥!” 하고 말했다.
정말 가난이 죄였다. 가난하면 친척도 쓸 데 없었다. 야속한 세사이여서 세상 뜬 조상의 산소에 돌을 사서 얹을지언정 산 친척에게 죽물을 사먹으라고 챙겨주는 친척은 없었다.
월금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매서운 날씨에 새뽀얀 먼지 속에 허물어져서 뜯어가는 고향 집을 보다가 머리를 돌려 외면하더니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어린 상순은 삽으로 괭이로 호미를 빼앗아 한 아름 묶어 메고 가는 빚 꾼들을 주먹을 쥐고 쫓아가 엉덩이를 마구 때렸다.
“이 새끼야, 남의 삽을 왜 가져가니? 씨.”
그러자 빚 꾼은 내려다쏘아보면서 호통 쳤다.
“요놈새끼, 못된 쇄지 엉덩이에서 뿔이 난다더니 애비를 닮아서 못 되냥 한다이. 그만두지 못하겠니?”
빚꾼이 계속 주먹질을 해대는 상순을 뒤발 질을 했다. 상순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엉엉 울었다.
상우가 황급히 뛰어가며 새된 소리를 쳤다.
“아무리 빚을 졌다고 어린 걸 이게 뭐요?”
사련도 누더기 보를 던지고 달려와 상순을 껴안으면서 눈물을 탐방탐방 쏟았다.
“어린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오? 남도 아니고 집안 집 어른들이. 흑흑.”
이때 최구장이 경숙이랑 자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아니, 이거 간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는가? 기어이 고향을 버리고 간도에 가야 살 수 있나요? 쯧쯧.”
최구장의 말에 사련은 누더기 보따리를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사돈어른 빚 대신 집과 가정기물을 처리한 후 인사나 하고 가자고 했습구마.”
최구장은 하얀 수염을 흩날리면서 눈보라 속에 무너진 성남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살벌한 정경에 도리머리 질 했다.
“아야, 이게 웬 일인고? 사돈어른이 어떻게 지은 집인데.”
최구장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더니 최사련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헌데 경인은 압니까?” 하고 물었다.
최사련은 “맏딸과 사위한테 기별할 새도 없이 떠납니다.” 하고 대답하고는 귀속 말로 말했다.
“좀 늦게 서둘면 한길수라도 오면 어찌 합니까? 가다가 불붙이에 들려 알리고 가겠습니다.”
그제야 최구장은 “그럼 무사히 가세요.” 하고 작별인사말을 했다.
경민과 경욱도 허리굽혀 인사했다.
기실 최사련은 개성 최 씨여서 최구장과는 사돈이자 본가집인 셈이어서 한 마을에서 수십 년 간 아주 정 들대로 든 사이였다.
이때 명옥이 뛰어왔다.
“상순아, 어데 가니?”
상순은 주먹으로 두 눈을 비비면서 울먹울먹해 겨우 말했다.
“이사해.”
명옥은 동갑인 송아지친구 상순에게 자꾸 물었다.
“우리 할아버지 서당에 와서 공부하지 않을래?”
상순은 두 볼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두 주먹으로 눈을 비비며 흑흑 흐느껴 울었다.
“울지 말라. 먼 길을 가겠는데 눈물에 낯이 얼겠다.”
그제야 상순은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고 흑흑 흐느꼈다.
명옥은 상순의 손을 잡으면서 “이 다음 고향에 놀러오라.” 하고 말했다.
상순은 목이 메여 말은 못하고 머리만 끄덕였다.
이때 근형은 바람개비를 돌리면서 달려왔다.
“상순아, 어데 가니?”
상순은 머리를 숙이고 “응.” 하고 목안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사련은 상순의 코밑에 흐르는 허연 콧물을 닦아주면서 달래였다.
“우리 막내아들 상순아, 더 울지 마라. 이담 커서 꼭 고향에 돌아오자.”
근형은 상순을 보고 “너 어째 운주하에서 타던 썰매를 가지고 가지 않니?” 하고 말했다.
그러자 상순은 수깃했던 머리를 쳐들더니 허물어진 집터로 달려갔다.
“썰매, 내 썰매를!”
상순이 두 손을 내밀어 허물어진 폐허를 가리키면서 울자 상우가 말리였다.
“어데서 썰매를 찾는다고 그러니? 썰매를 어디까지 가지고 간다고? 가자.”
상우가 손을 잡아끌자 상순은 몸을 뒤 탈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내 설매를!”
“간도에 가면 더 좋은 걸 만들어줄게. 그 먼 간도로 어떻게 가지고 간다고 그래? 가자.”
상우가 하는 말에 상순은 별수 없이 입이 따발을 걸만큼 내밀고 돌아섰다.
상우는 폐허를 둘러보다가 물독을 놓았던 자리에서 쪽박을 주어 상순에게 주면서 “넌 이걸 가지고 가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상순은 “이걸 해 뭘 하오?” 하고 물었다.
상순은 “이 쪽박으로 가다가 물도 퍼 먹잔 말이다. 손바닥에 물을 퍼 먹겠니?”라고 했다.
근형은 자기가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놀던 바람개비를 상순에게 주면서 “이걸 가지고 놀면서 가라!”라고 했다.
그제야 상순은 양손에 쪽박과 바람개비를 쥐고 번갈아 보면서 기분이 조금 돌아섰다.
사련은 근형이 너무 귀해 얼굴을 만져주면서 “이담 간도에 오면 함께 놀아라.” 하고 말했다.
“예. 잘 가라. 상순아.”
“응.”
근형을 뒤이어 명옥도 애고사리 손을 흔들었다.
“고향에 놀러오라.”
“응, 너네두 간도로 오라. 우리 함께 썰매랑 타면서 놀자.”
그들은 서로 갈라지기 아쉬워하며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끄덕였다.
성남 집 서쪽에 자리 잡았던 웃새집도 빚 꾼들에 의해 허망 무너졌다. 흩날리는 먼지와 눈보라 속에서 김수월이 상훈과 며느리를 데리고 휘청거리면서 길을 떠나고 있었다.
서쪽에서 웃새 집 상훈이가 “빨리 떠나가자!” 하고 소리치며 손을 저었다.
어진 상우는 빚 꾼들의 흉측한 몰골들을 보고 성이 날대로 나서 얼굴이 지지벌개 소리쳤다.
“엄마, 가깁소. 간도로 가면 빚 꾼들이 보기 싫어 고향으로 다신 돌아오지도 말기요.”
그러자 빚 꾼들은 간도로 떠나가는 상우 쪽에 대고 주먹을 휘둘러댔다.
“빚을 다 물지 않고서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간도에 쫗아가서라도 꼭 빚을 받아오지 않는가 봐라!”
“염치없는 놈 새끼들이! 흥.”
사련은 아들며느리와 딸을 데리고 야속하게도 빚받이 친척들의 욕지거리와 콧방귀소리 속에서 쓸쓸하게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상우는 언 주먹밥주머니를 넣은 가마를 지게에 얹어 지고 눈길로 빠드득빠드득 무거운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옮겨 디뎠다. 최사련은 누더기보따리를 이고 어린 상순의 손목을 잡고 따라 걷고 지새금과 월금은 이불을 싼 보따리를 하나씩 이고 뒤따랐다.
상순은 바람개비를 쥐고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허물어진 고향집터와 근형 그리고 명옥을 되돌아보면서 앙기장 앙기장 눈을 빠드득빠드득 밟으면서 고향을 떠나갔다.
근형과 명옥은 상순이네가 눈보라 속에 자그마한 흑점으로 아른거릴 때까지 눈으로 바랬다.
최구장과 경숙 등은 사돈들을 고향에서 떠나보내고 허무한 감이 들었다.
그는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에 나가더니 두 팔을 벌리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몸부림치는 황야의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쳤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 탯줄을 묻은 고향, 잘 살아보려는 희망과 꿈을 심었던 고향을 하루아침에 떠나다니. 아, 참 기막히고 가슴 아픈 일이로다. 창천이여, 세상이 왜 이다지도 험악한가!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에서 살려는 버러지 같은 창생들을 도와주옵소서!”
4. 고난의
대지를 봉쇄한 겨울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가지를 무섭게 울리면서 눈보라를 휘몰아쳤다. 눈 깊은 운주하 강반을 휩쓸어 산과 언덕에 부딪치는 설한풍은 그 소리만 들어도 등곬이 싸늘해지게 했다. 감때사나운 엄동설한 앞에서 만물이 부르르 몸부림쳤다.
을씨년스레 눈이 오다가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고향을 떠난 상우와 상순의 마음은 오리, 오리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운주동을 벗어나 불붙이에 있는 어금의 집에 이를 무렵에 성희가 허리를 펴고 걸어온 눈길을 되돌아보았다. 운주동의 산과 들을 눈에 다 담아가려는 상 싶었다.
“안 돼, 이렇게 떠나 갈순 없어.”
성희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사련은 급히 부축했다.
“어머니, 시아버님이랑 모두 간도에 계시는데 가시지 않으면 어찌 하십니까?”
성희는 사련의 팔을 뿌리치며 고함쳤다.
“아니야. 본가 집 성군 오라비와 명호 조카, 병수 손자를 한산면 고향에 두고 이렇게 갈 수 없어. 그 애들을 보고 갈란다.”
성희는 무릎까지 풍풍 빠지는 눈을 헤집고 운주동 쪽으로, 아니, 남쪽으로 마구 가려고 들었다.
“난 고향으로 돌아가 봐야 해. 본가집 아버님 산소에 가봐야 돼. 이 운주동에 시집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고향을 떠나 천 리 밖 두메산골에 온 것만 해도 그런데 이제 두 번 째 고향을 버리고 간도에 가? 말도 안 돼.”
함지랑 지게에 진 상훈이가 성희를 붙잡으면서 말렸다.
“할머니, 왜 이럽둥? 한길수의 패거리가 들이 닥치기 전에 빨리 명천을 떠나야 합구마. 여기서 이럴 새 어디 있습둥?”
상우는 지게를 벗어 작대기로 받쳐놓고 헐금씨금 돌아와 성희를 말리였다.
“할머니, 우리 뭐 고향을 영영 떠나는 게 아닙니다. 이제 간도에 가서 농사를 잘 지어 돈을 벌면 조선에 돌아옵시다. 그때 작은 외할아버지와 삼촌을 찾아보면 안 됩니까?”
그러나 성희는 도리머리 질 하며 상우와 상훈의 어깨를 마구 조겨 댔다.
“이 철없는 것들아, 내가 이제 살면 몇 해를 살겠나? 훌쩍 고향 떠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누가 알아?”
성희가 서럽게 울자 사련과 수월도 따라 눈물을 흘리었다.
그렇다, 그들도 본가 집을 고향에 두고 어찌 가고 싶지 않겠는가. 지어 본가 집에 들려 간도에 간다는 말도 못하고 떠나는 그녀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할머니-”
상순은 할머니 허벅지를 붙잡고 쳐다보면서 엉엉 울었다.
성희는 정신 나간 여인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한산 고향엔 못 가더라도 영월동에는 들려 가자. 어떻게 지은 팔간집인데 두고 가. 그 좋은 물레방아랑 어떻게 해?”
상우는 할머니를 위안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랑 간도 버드나무숲속에 육간 집을 지었다지 않습둥?”
“난 안 가.”
사련이 성희를 부축하면서 “어머니, 우리도 어머니와 같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바늘 가는데 실이 간다고 시아버님이 계신 데 가야지 않겠습니까?” 하고 한마디 했다.
그 말에 성희는 한 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더니 도리머리 질 하다가 간신히 북으로 걸음을 천천히 떼였다.
그녀는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 바늘이 가는데 실이 따라가야지. 아이유, 하늘도 무심하지. 이 불쌍한 것들을 고향에서도 살지 못하게 하다니. 쯧쯧.”
그녀들은 정말 그랬다. 지새금이가 운주동 동북쪽에 있는 가마골 본가 집에 기별하고는 누구도 본가 집에 간도로 간다는 기별을 할 새도 없이 고향을 부랴부랴 떠났던 것이다.
한참 후 그들은 불붙이에 있는 어금네 집에 들리었다.
경인이 가시집식구들을 반갑게 맞아들였다.
“할머님, 오늘 우리 집에서 푹 쉬고 내일 가십시오.”
성희는 “그래, 쉬고 가지.” 하고 반가워했다.
상우가 손사래를 저었다.
“우린 빨리 명천 바닥을 벗어나야 하오. 길수 패거리가 눈치 채고 쫓아오면 오도 가도 못하고 봉변을 당할 거요.”
어금은 본가집에서 간도로 다 떠나가게 되자 코마루가 시큼해나 왼손으로 막고 벽 쪽으로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였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닦고 나서 돌아서서 어머니 손을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엄마, 고향을 떠나가면 언제 보겠습니까?”
사련도도 눈물이 글썽해 사위 눈치를 살피다가 어금에게 귀속 말을 했다.
“너희들도 간도로 가자.”
그러나 어금은 도리머리 질 했다.
“어째?”
어금은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시아버님이 죽물을 먹으면서라도 고향에서 살잡구마.” 하고 안타까워했다.
서너 살 되는 근덕이 어금에게 안기면서 “엄마, 울지 말라는데도.”라고 하며 어머니 얼굴의 눈물을 애고사리 손으로 닦아주었다.
“에이고, 요 거 귀여워 어쩌겠니?"
사련은 근덕을 안고 얼굴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윽고 일곱 살 난 상순은 서너 살 차 밖에 안 되는 외조카 근덕과 집안에서 좋다고 뛰놀았다.
한참 후 상훈이 일어나며 “모두 떠나기요. 어둡기 전에 병풍치기를 건너서 신설동을 지나가야 하오.” 하고 말했다.
모두들 일어나는데 사련은 자기 맏딸을 두고 가기 아쉬워 일어는 났지만 차마 바깥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얘야, 사위.”
그는 딸과 사위를 불러놓고 당부했다.
“자네들도 여기서 살기 바쁘면 간도로 오게나.”
“알았습니다.”
서로 마음 아픈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상우와 상훈은 지게를 지고 아낙네들은 보꾸러미를 이고 눈보라가 사납게 기승을 부리는 산길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떠나갔다. 불붙이 산정까지 근덕을 업고 따라 나온 어금은 남편과 함께 본가집식구들이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간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물을 줄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리며 손을 저었다.
해질녘에 그들은 몇십길이나 되는 절벽으로 둘러선 병풍치기 밑으로 빠져나가 신설동에 이르렀다.
“큰집에 들리어 하루 밤 자고 떠나자.”
상우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혹시 또 큰할아버지랑 연루시키지 않겠는지? 전번에도 아버지 때문에 자위대에 잡혀가 혼났는데.”
“설마 그놈 새끼들이 여기까지 쫓아오겠냐? 죽이겠으면 진작 운주동에 쫓아와 열 번도 죽였겠다.”
성희의 말에 모두들 얼어든 몸을 녹이게 되여 좋아들 했다.
그런데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상우는 저 멀리 큰집 앞마당에서 총을 메고 큰할아버지한테 꽥꽥 고함치는 자위대 놈들 서넛을 발견했다.
“상우네 꼭 여게 들렸지?”
“말해!”
“그 놈 새끼들을 붙잡기만 해봐라. 종아리를 분질러놓겠다.”
그 소리에 상우는 뒤돌아보며 나직이 소리쳤다.
“빨리 수림 속으로 피합시다.”
모두들 화들짝 놀라 눈 덮인 수림 속으로 헐금씨금 도망쳤다.
한참 도망쳐 신설집과 몇 백 미터 떨어진 눈 덮인 산정의 수림 속에 들어갔다. 신설집 쪽의 산기슭을 내려다보니 총을 둘러멘 자위대 놈들이 마을 어귀고 어디고 죽 늘어 서 있지 않겠는가.
상훈은 어둑어둑해지는 수림 속을 둘러보더니 지게를 나무에 기대 세워놓고 상우에게 물었다.
“오늘 밤은 어데서 잔다니?”
상우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눈 굴을 파고 마른 나무 잎을 깔고 이불을 덮고 눈을 붙이네 합시다.” 하고 말했다.
모두들 서로 쳐다보면서 쑤군거렸다.
그는 지게를 벗지도 않은 채 “형님, 빨리 길을 다그칩시다.” 하고 말했다.
그때 상순은 “형님, 난 맥이 없어 더 걷지 못하겠소.” 하고 떼를 썼다.
상우는 어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지게를 벗어 나무에 기대 세웠다. 그는 아내한테서 누더기이불을 달라고 해 몇 벌로 겹쳐 개이더니 지게에 얹은 가마 위에 펴놓았다.
“자, 상순아, 지게에 올라가 앉아라.”
상순은 “야, 좋다 야.” 하고 형님이 붙잡고 있는 지게 위로 기어 올라갔다.
상우는 동생이 지게우의 이불 위에 올라앉자 지게를 지고 일어나더니 길을 떠났다. 그런데 그것도 한참 가자 상순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밤에 온 몸이 얼어들어 춥다고 야단쳤다. 상순은 얼어드는 손이 시려 째진 바람개비를 들고 쳐다보다가 눈 덮인 수림 속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형님의 부탁대로 물을 퍼 먹으려고 쪽박만은 손이 시려도 꼭 쥐고 있었다.
그들은 신설동과 한 십리 떨어진 산속에서 눈구덩이를 파고 마른 나무 잎을 깔고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어린 상순은 어머니 품에 안겨 어찌나 곤하였는지 인차 코를 골며 잠들었다.
눈 굴 밖에서는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쳤다…
그들 여덟은 배고프면 언 주먹밥을 꺼내 먹고 갈증이 나면 산속의 눈을 움켜 쥐여 먹거나 쪽박으로 지나가던 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퍼 마시면서 북으로, 북으로 걷고 또 걸었다.
보름 동안이나 걸어서 새해 1월 중순 어느 날 오후에야 겨우 두만강변에까지 이르렀다. 상우 일행 여덟은 회령에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회령을 에둘러 산줄기를 따라 강 하류 쪽으로 걸어갔다.
“야, 두만강이다.”
상훈은 기뻐 소리쳤다.
그러자 상우는 “소리치지 마오. 누가 듣겠소.” 하고 말리였다.
그들 일행은 마중 나오기로 한 기준과 창준이 기별한대로 강변 버드나무 숲속에서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
“아이고, 배고파 죽겠다.”
상순이 눈 바닥에 폴싹 물앉으면서 상을 찡그렸다. 상우가 서쪽하늘을 쳐다보니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가 넘어가자면 둬 식경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언 주먹밥마저 다 떨어져서 두만강을 건넌 후 낯선 만주국에 가면 중국말도 모르지 어데서 죽물도 얻어먹지 못하면 소서구까지 어떻게 가겠는가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상우는 쪼그리고 앉은 상순을 보고 “얘, 배고프면 전번처럼 월금 누나랑 함께 이 쪽박을 들고 저 산 아래 마을에 가서 밥을 좀 얻어다 먹으렴.” 하고 말했다.
상순은 쪽박과 산 아래 마을을 번갈아보면서 물었다.
“이 쪽박 들고 가면 또 밥을 줄까? 형님과 함께 갈까? 혹시 개 달려들면 힘이 센 형님이 누나보다 낫겠는데.”
사련은 상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타일렀다.
“형님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혹시 한길수 놈의 졸개들을 만나면 잡아갈 게 아니야? 허나 너랑 어린애니까 조만해 알아보지 못한다. 애들이 밥을 좀 얻어먹자면 불쌍해 더 잘 줄 거야.”
그러자 상순은 발딱 일어나면서 “누나 가기요.” 하고 월금의 손을 잡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월금과 상순은 쪽박을 들고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
산 아래 첫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자 웬 사내가 내다보더니 침을 퉤 뱉으면서 욕지거리를 해댔다.
“에이, 퉤, 또 강을 건널 거지들이 왔구나. 우리 집엔 밥이 샘처럼 솟는가 하는 모양이지. 하루에도 거지들이 몇이 오니. 없다, 없어. 저쪽 부자 집에 가 봐라.”
상순은 입이 뾰로통해 월금 누나를 쳐다보았다.
월금은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가자, 저 아래 집으로 가보자.”
그 집은 꽤나 잘 사는지 토성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대문어귀에 다가가기 바쁘게 왕, 왕, 왕 개 짖는 소리와 함께 황둥개가 뛰쳐나왔다.
월금은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황둥개는 한대 얻어맞고 깨갱거리면서 대문 안쪽으로 뒷걸음 질 치면서 왕, 왕, 왕 짖어댔다.
“누가 우리 황둥개를 때려? 에헴.”
안에서 건 가래를 떼는 소리가 나더니 뚱뚱한 영감이 대문어귀에 나타났다. 그러자 황둥개는 주인에게 다가가 꼬리를 흔들면서 더 짖지 않더니 주인의 태도가 어떤가 지켜보았다. 주인이 욕하면 황둥개는 당장 달려들 것만 같았다.
“너네는 어데서 온 놈들이야?”
상순은 까만 머루알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배고파서 밥을 좀 얻어먹자고 왔습니다. 이 쪽박에다 잡숫다가 남은 밥이라도 있으면 한바가지만 줍소.”
"누룽지를 주어도 됩구마."
뚱뚱보는 상순과 월금을 힐끔 곁눈질해보더니 “보아하니 먼 길을 온 것 같구나. 쯧쯧. 오너라.”
월금은 부자가 뜻밖에 밥을 줄 것 같아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황둥개도 주인이 자기 대가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월금의 오누이를 대하는 태도가 상냥한지라 더 짓지 않고 그들 오누이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어대며 따라 토성 안으로 들어갔다.
부자는 쪽박을 들고 들어가더니 조금 있어 한바가지 밥을 꼴딱 담아가지고 나왔다. 뒤에서 주인집 아낙네가 젖은 누룽지도 두 덩이나 더 들고 나와 월금과 상순에게 쥐어주었다.
“에이고, 이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떠돌며 고생이구나. 얼어 죽지 않겠니? 불쌍해라. 이런 애들을 두고 어미는 어데 있을까? 쯧쯧.”
“또 간도로 들어가는 집 애들 같소. 아무리 그러니 애들을 혼자 두만강 가에 내보냈겠소?”
뚱뚱보부자가 짐작해 하는 말이었다.
부자라고 다 깍쟁인 건 아니었다. 이 집 부자는 인심이 후한 편이였다.
월금은 밥을 담은 쪽박을 받아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잘 먹겠습구마.”
상순도 누룽지덩이를 들고 누나처럼 인사했다.
“고맙습구마.”
상순은 누룽지를 맛있게 먹으면서 산으로 올라왔다. 월금은 꽤나 묵직한 쪽박바가지를 들고 해시시 웃으면서 산으로 톺아 올라왔다.
그들 오누이가 산으로 올라오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고 상우가 마중해 내려가 쪽박의 밥을 받아들고 올라왔다.
토끼꼬리만한 겨울해가 꼴깍 넘어갔다. 그들은 오누이가 얻어온 묵은 밥으로 요기나 하고 두만강 맞은편만 주시해 살폈다.
한참 후 때마침 대안의 버드나무숲속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상우는 지게를 지고 일어나면서 “가기요. 아버지네 마중하러 와서 저기서 기다리고 있는 거 같소.”하고 말했다.
그러자 사련은 “이젠 살았구나.” 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상순은 두만강을 건너면서 빤들빤들한 얼음 강판을 보자 두 발로 짤짤 미끈다 쪽박을 얼음 위에 대고 밀어본다 하면서 뛰놀며 건너갔다.
“야, 썰매나 있었으면 여기서 타면서 놀았으면 좋겠다야.”
상순이가 떠들어대자 상우는 “쉿- 빨리 가자.” 하고 재촉했다.
그러자 사련은 누더기보따리를 인 채 상순을 제꺽 업고 부랴부랴 치마 자락에 비파 소리 나게 반달음쳤다.
어린 상순은 엄마 잔등에 업혀서 종알거렸다.
“이 빤들빤들한 얼음에 팽이도 뱅글뱅글 치면서 놀았으면.”
사련은 잔등을 되돌아보면서 “언제 그런 궁리를 다 할 새 있니?”라고 했다.
“엄마, 난 손이 시리우. 이 쪽박을 두만강에 던질까?”
그러자 상우는 “야, 던지다니? 길에서 이 쪽박신세를 얼마나 보았니?” 하고 말하더니 상순의 손에서 쪽박을 빼앗아 지게우의 가마 안에 달랑 올려놓았다.
사련은 상순의 손이 얼까봐 팔소매 안에 넣고 끈으로 팔소매를 꽁꽁 매놓았다.
그들이 약속대로 모닥불에서 강 하류 쪽으로 한 1 리 떨어진 곳으로 두만강을 건너가자 눈 덮인 버드나무숲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버지! 삼촌!”
상훈이가 제일 먼저 기준과 창준을 알아보고 지게를 진 채 마주 달려 나갔다.
“할머니도 왔니?”
“예. 작은 엄마도 다 왔습니다.”
기준은 마주 달려 나오면서 “엄마! 아주머니!” 하고 소리치며 달려와 넙적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다.
“엄마, 그간 이태 동안이나 보살펴드리지 못한 이 불효자식을 용서합소.”
창준도 달려와 어머니한테 큰 절을 올렸다.
“엄마, 무사했습둥?”
성희는 기준과 창준의 잔등을 툭툭 치며 한탄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무사히 살아 있으니 됐어. 이 어미 너희들 얼마나 근심했는지 알고 그려?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두만강을 훌쩍 건너 왔으니 언제면 또 고향땅에 돌아가겠어? 응?”
기준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엄마,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농사를 많이 지어 돈을 벌어가지고 고향에 돌아가 엄마를 모시고 잘 살겠습구마.”
성희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말이 그렇지 언제 조국에 돌아가? 외가집 식구들은 언제 만나겠어? 외삼촌이랑 외사촌동생이랑. 쯧쯧.” 하고 푸념 질을 끝이 없이 했다.
“아버지! 이태동안 무고했습둥?”
상우가 지게를 세워놓고 큰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절을 올렸다. 그러자 상훈과 월금, 상순 등도 모두 상우를 따라 큰절을 올렸다.
“응. 빨리 이 곳을 벗어나가야 해.”
기준의 말에 모두들 두만강변 버드나무 숲속에서 부랴부랴 빠져나갔다. 기준은 아예 어머니를 훌 업고 눈가슴을 헤쳐 나가며 걸음을 다그쳤다.
창준과 기준은 집식구 여덟을 이끌고 재빨리 오랑캐 령을 넘어섰다. 칼날같이 맵짠 설한풍이 기승스레 불어쳐 언 얼굴을 긁어가고 숨이 헉헉 막혔다.
“어째 간도 눈보라가 더 맵짜네.”
성희는 기준의 잔등에서 허리를 구부정하고 기침을 콜록콜록 했다.
기준은 “간도의 겨울은 고향보다 퍽 춥습구마.” 하고 말하며 씨엉씨엉 걸음을 다그쳤다.
그래도 성희는 기준의 넙죽한 잔등에서 기침을 콜록콜록 깇었다.
그때 월금은 두 팔을 쳐들고 어정어정 걷는 상순을 보고 이상해 “얘, 넌 왜 그렇게 느리게 어정어정 걷느냐? ” 하고 말했다.
사련이가 상순을 내려다보았다.
“엄마, 얘 바지에 오줌을 쌌습구마.”
“응?”
상순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팔소매를 매놔서 손을 꺼내지 못해 바지에 오줌을 쌌습니다.” 하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에구머니나!”
“쯧쯧.”
사련과 월금이 상순의 바지를 만져보니 오줌에 얼어서 바지가 꼬댕꼬댕 얼어 말이 아니었다.
“에이고, 그래서 어정어정 걸었구나. 쯧쯧.”
상우는 상순을 제꺽 지게에 올려놓고 걸었다.
상순은 지게 위에서 추워나자 “형님, 모닥불이라도 피워 옷을 말리어 입구 가기요.” 하고 종알거렸다.
사련이 옆에서 상순의 몸에 이불을 감아주면서 “조금만 이를 악물고 참아라.” 하고 말했다.
옆에서 기준의 잔등에 업히어 가던 성희는 중얼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이 철없는 것아, 이 눈 가슴 속에서 어데서 나무를 주어다 모닥불을 피우는 기여?”
기준은 집식구들이 잠자리를 근심할 까봐 일부러 높은 소리로 말했다.
“내 마중 나올 때 명동교회당의 김하규한테 잠자리를 말해놨으니까 모두 금심하지 말구 빨리 걷기요. 이제 서너 시간만 걸으면 명동교회당에 도착하오.”
그들은 온 밤 걸어 밤중에 명동교회당에 이르렀다.
김하규는 구면이 된 기준이네 일가를 극진히 대접했다.
기준은 잠들어버린 상순의 언 바지를 벗겨가지고 부엌에 내려가 활활 피어오르는 장작불에 말리었다. 얼었던 바지가 녹으면서 김이 몰, 몰 피어올랐다.
기준이네 일행 열은 명동교회당에서 하루 밤 푹 자고 이른 아침에 죽을 들고 다시 길을 떠났다. 상순은 마른 바지를 입었는지라 좋아서 용케도 걸음을 잘 걸었다.
그들은 물레방아 골의 원삼이네 집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온 하루 걸어 삼봉동 고개에 올라섰다. 골 안을 따라 북쪽을 내려가면서 올망졸망한 움막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저 먼 북쪽에 진수해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져가는데 이제두 한 35리 걸어야 했다. 그런데 김하규가 준 언 주먹밥도 거덜이 났다.
월금은 주린 배를 걷어안고 비칠거리면서 겨우 걸었다.
“아버지, 배고파 이젠 더 걷지 못하겠습구마.”
기준은 월금의 곁에 와서 “그래도 이를 악물고 걸어야 한다. 물앉으면 얼어 죽고 만다.” 하고 말하고 나서 한숨을 푸 길게 내쉬었다.
성희는 손녀의 언 얼굴을 만져주면서 걸었다.
“요 어린 것도 이젠 보름 너머 걷지 않았어?”
기준은 못마땅한 눈길을 월금에게 주면서 “자꾸 응석을 부리게 하지 맙소. 열대여섯 살이나 먹었으면 이젠 어린애 아닙구마.” 하고 말했다.
그는 앞에서 아장아장 걸어 나가는 상순을 가리키면서 “상순을 봐라. 얼마나 장하게 잘 걷는가?” 하고 치하했다.
이때 뒤에서 서너 사람들이 아주 빨리 걸어 기준이네를 점점 가까이 따라잡았다.
기준이가 몸을 돌려 뒤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저분들이 석철 칠촌숙 아니오?”
그 말에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확실히 석철이네 부부가 어린 아들 보준을 데리고 석은을 따라 삼봉동 고개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래사랑집 시삼촌네구나.”
사련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기준과 창준이네 일가는 모두 석철과 석은에게 인사를 올렸다.
“칠촌숙 무사하오? 고향에서 서로 토론도 하지 않고 떠났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여기서 딱 만났구먼.”
기준의 말에 석철은 이상 조카네를 둘러보면서 “글쎄 말이요.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소. 잘 됐소.”
이때 상순이가 뛰어와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배고픕구마.” 하고 종알거렸다.
사련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뜸 눈치 챈 석철은 지게를 내리워 받쳐놓으면서 말했다.
“여기 언 주먹밥이 남은 게 있소. 우리 여기서 나눠 먹고 소서구까지 가기요.”
석철의 아내도 반색하면서 지게에서 언 주먹밥덩이랑 마늘과 고추장이랑 내려놓았다. 상순은 체면을 차릴 새 없이 언 주먹밥덩이를 두개나 양손에 쥐고 오도독오도독 씹어댔다.
“굶고 보면 양반이 없다지 않소. 빨리 먹기요.”
이리하여 그들 두 집안 집에서는 삼봉동 고개에서 극적으로 만나 석철이 준 언 주먹밥을 나눠 먹은 후 풍설이 이는 을씨년스러운 겨울추위를 무릅쓰고 또다시 길을 떠났다.
5. 고향 생각
기준이네 일행 열은 그날 밤 아홉시쯤 되여서야 눈보라가 윙윙 휘몰아치는 태평강 반의 아름드리나무숲속에 자리 잡은 큰집에 도착했다. 벌건 적송으로 지은 육간 방틀 집은 꽤나 아담해보였다. 그 집을 짓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한것은 집터를 준 값으로 장학산은 자기 집을 먼저 지어달라고 생떼를 썼다. 어쩌는 수 있는가? 마음이 후해보이던 장학산이 깍쟁이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야.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봄부터 여름까지 농사일을 뒤에 밀어놓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서구 어귀에 고래등 같은 집을 지어놓고 높다란 토성까지 쌓아올리지 않으면 안됐다.   
“아유, 집이 정말 좋구나.”
월금이 감탄하면서 집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갔다.
“둘째손녀가 왔구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병완이 상길을 데리고 마루 위에 나섰다.
“할아버지!”
상순이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 병완에게 안겼다.
“오, 우리 막내손자도 왔구나.”
창준과 기준 일행은 모두 병완 앞에 넙적 엎드리면서 큰절들을 올렸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오, 그래, 무사히 왔으면 됐다. 추운데 어서 집안에 들어오라.”
병완은 점잖게 절을 받고 손으로 집안을 가리켰다.
모두들 집에 들어갔다. 상길은 아버지와 어머니 품에 번갈아 안기면서 응석을 부렸다.
창준은 상길을 번쩍 들어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막내아들이 다 컸구나.” 하고 말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병완이 집안에 장작불을 많이 때놓아서 큼직한 집안이 훈훈했다. 사련이가 등불 아래로 피뜩 여겨보니 시아버지도 이젠 더부룩한 구레나룻에 턱수염에마저 흰서리가 내리어서 고향에서 보던 때보다 퍽 겉늙어보였다.
석철과 석은 형제 내외간이 애들을 데리고 집에 잠간 들리었다가 병완에게 인사하러 찾아왔다.
“형님, 그간 무사했습니까?”
“오, 반갑소. 작은집 육촌 동생네도 왔구먼. 옛날부터 팔촌이 한 구들이라는데 참 잘 됐소. 우리 여기서 함께 잘 살아 보기요. 그래 고향형편은 어떻소?”
병완이 인사하면서 석철 형제간에게 위방에 맞아들여 윗자리를 권했다.
석철은 병완이가 이상인지라 아래 자리에 앉았다.
석철은 도리머리 질 하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말도 마오. 우리 집에서 떠나기 전날에 일본 놈의 개 같은 한길수랑 숱한 졸개들을 끌고 운주동에 와서 야단쳤소.”
병완은 눈썹까지 곤두세우고 들었다.
“그래, 어쩌던가?”
석철은 언성을 낮추더니 이렇게 귀속 말로 나직이 말했다.
“형님이랑 지은 경찰국이 무너졌다고 생 야단쳤소.”
“어허, 그렇게 빨리 무너질 줄은 몰랐는데. 거 참 잘 됐다, 잘 됐어. 한 5년은 가겠나 했는데.”
병완은 그 기쁜 소식을 듣고 기준과 창준을 둘러보면서 왼눈을 찔끔 했다.
“지붕틀이 툭 끊어졌다오. 아마 이번 큰 눈에 무게가 실리면서 지붕틀이 견디지 못한 거 같소. 기둥도 벌레가 먹어 다 기울었소.”
기준과 창준은 너무도 기뻐 턱수염을 슬슬 만지면서 통쾌하게 껄껄껄 웃었다.
“그래 한길수 어찌던가?”
옆에서 석은이 입을 열었다.
“어찌 하겠소? 경찰국의 일본 놈들과 한길수 패거리들은 큰집형님네 삼부자가 벌레 먹은 통나무로 집을 지어서 경찰국이 무너졌다고 떠들고 다니었소. 하늘 끝까지라도 찾아가 붙잡는 날이면 칼탕을 쳐놓겠다고 했소.”
석철은 너무한 말을 하는 것 같아 동생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괜찮아. 계속 말하게나.”
석철은 도리머리 질 했다.
“형님네 며칠 전에 몽땅 달아나서 붙잡지 못하게 되자 대신 큰집 병권 형님 일가를 놔두지 않겠다고 야단쳤소. 불붙이에 있는 어금이랑 무사할지 모르겠소.”
그 말에 상우는 “그래서 우리 큰집에 들리려 했을 때 일본 놈들이 자위대 놈들이 큰집에 와서 야단쳤겠구나. 전번에도 큰집 할아버지를 붙잡아 갔소. 상철 형님의 아내 머리를 총 박죽으로 쳐놓아서 골병이 들었을 겁니다.”라고 했다.
병완은 머리를 숙이고 곰방대에 담배를 쑤셔놓고 부시를 켜 달아 길게 쭉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후 내뿜었다.
석은은 “형님네 때마침 잘 떠났소. 거기 있었다간 큰 봉변을 당했을 거요.” 하고 말했다.
병완은 한참 궁리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전에도 창준과 기준에게 말해두었지만 절대 우리가 명천에서 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이름도 애명을 불러라.”
그러자 석철은 아쉬운 듯이 말했다.
“야, 난 그래도 우리 여기 후에 큰 마을이 되면 고향의 이름을 따다가 영월동이라거나 운주동이라고 짓자고 했는데 다 틀렸구먼. 형님 말대로 자칫하면 한길수놈새끼 명천이나 운주동이라는 마을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여기까지 쫓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네.”
병완은 머리를 조금 들더니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을 함흥촌이라고 부르고 우린 함흥에서 왔다고 하기요.”
석은은 대뜸 동의해 나섰다.
“그게 좋겠소. 함흥촌, 함흥촌이라. 거 이름이 참 좋소. 그러지 않아도 한길수 새끼랑 형님네를 찾지 못하니 우리를 보고 대지 않는 날엔 잡아가겠다고 했소. 그래서 이번에 우리 형님네도 이번에 나를 따라 불시에 들어왔습니다.”
창준은 석철을 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석은은 기준과 창준을 돌아보면서 “이상 조카들의 애명이 뭐던가? 알아야 이후에 말이 엇나가지 않지.” 하고 물었다.
창준은 “내 애명은 문칠이고 기준은 경칠이요.” 하고 말했다.
기준은 뒷말을 이렇게 덧붙였다.
“상우는 김우라고 부르고 상순은 김순이라든지 김진이라고 부르면 되오.”
“알았소.”
석철과 석은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병완의 삼부자는 밤중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병완은 창준과 기준을 보고 “병권 형님네 근심스럽구나.” 하고 근심하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기준은 “큰아버지도 간도로 들어 올 게지. 이전에 내 고향을 떠날 때 권고했는데 병이나 보면서 고향에서 살 궁리를 합디다.” 하고 말하면서 길쭉한 얼굴을 가로 저었다.
그러자 창준은 “일본 놈들의 성화에 큰아버님도 꼭 간도에 들어 올 겁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들 삼부자는 오래 동안 이 말 저 말 하며 한숨을 푸푸 내쉬다가 밤중에야 겨우 눈을 붙이네 했다.
이튿날 병완은 아침숟가락을 들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흑흑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아버지, 자손들이 다 무사히 왔는데 왜 우십니까?”
기준이가 의아해 하는 말에 병완은 가래 같은 손으로 눈물을 닦더니 머리를 들어 자손들을 둘러보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따뜻한 온돌에 앉아 밥술을 들게 되니 고향 명천의 언 땅에 계시는 아버님하구 할아버님, 조상님들 생각에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구나.”
그제야 자손들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모두 밥상에 놓고 병완을 정색해 바라보았다.
병완은 산등성이 같은 넙죽한 어깨를 들먹이면서 말했다.
“간도에 온 후 난 풍설이 일거나 소낙비가 내릴 때나 고향 땅에 모셔두고 온 아버님하구 할아버님 그리고 조상님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저 눈보라치는 고향 성남 언 땅에 모셔둔 아버님을 생각하면 가슴을 째지게 피눈물이 흐른다. 지금 우린 일본 놈들과 그 개다리 한길수에게 쫓기는 형편에서 고향에 돌아가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이후에 누구든지 고향 명천 땅에 돌아간다면 꼭 아버님과 할아버지,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가 꼭 그간 조상들의 산소를 모시지 못한 것을 사죄하고 인사를 드려라.”
기준과 창준은 이구동성으로 “알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상훈과 상우도 이구동성으로 “근심하지 마십시오.” “꼭 조상님들의 산소를 잘 모시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죄꼬만 상순이가 좋다고 숟가락을 쥐고 구들에서 퐁퐁 뛰면서 “할아버지, 이 담 내 크면 꼭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릴게요.” 하고 말해 모두들 웃음을 겨우 참았다.
병완은 상순을 오라고 손짓해 무릎에 앉혀놓고 귀여워 길쭉한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상길은 열 살이나 되였는지라 어른스레 상순의 옆에 앉아서 쌔물쌔물 웃기만 했다.
그제야 모두 아침숟가락을 들었다. 간도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일가 식구들이 몽땅 한 구들에 앉아서 식사를 하자 그간 보름 넘어 걸은 피곤이 다 사라지는 듯이 웃음꽃이 피어났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창살을 무섭게 두드리면서 기승을 부렸다.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비술나무가 우거진 눈 덮인 황야에 외롭게 자리 잡은 집은 야밤에 굶주린 승냥이의 울음소리까지 들리어 적막함과 공포감이 온 집안을 칭칭 휘감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926년 희망의 새 봄이 왔다. 병완 일가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고향에서 가져온 씨앗을 뿌려 배불리 먹고 살리라는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간도 황야에 봄 장군이 다가오자 기세 사납던 동장군도 무릎 꿇더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은세계를 방불케 하던 황야의 눈보라를 윙윙 휘몰아치며 기승스레 파도치던 눈 바다가 사라졌고 얼어서 탁탁 튀던 땅도 따뜻한 봄볕에 뾰족뾰족 돋아나는 새 싹을 어린애들처럼 껴안고 흥겨운 봄노래에 웃음 짓고 있었다.
소서구의 남산에는 연분홍 천지꽃이 만발하여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여 하나의 커다란 천지꽃 산더미를 방불케 했다. 종달새가 남산 하늘에서 날아예며 지종지종 풍작을 기약하는 새 봄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병완의 일가 사내들은 모두 괭이로 나무를 뿌리 채로 찍어내고 누런 황무지에 밭을 일궜다. 아낙네들은 부식토를 버치에 이어 날라다 밭고랑에 편다, 고향에서 가져온 옥수수와 기장 씨앗을 뿌린다 하며 분주했다. 그들은 새 희망과 함께 생명의 씨앗을 황야에 일군 밭에 심었다.
기준은 괭이질을 하다가 서서 골 어귀의 장지주네 집을 가리키면서 “장학사라는 지주는 인품이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조선 고향의 지주들은 소작료로 8할씩 받지 않고 뭐입둥? 그런데 밭에서 난 곡식을 딱딱 절반씩 나눠가집니다.” 하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자 병완은 “그 것보다도 황무지를 개간한 땅에서 난 곡식은 8할을 우리가 먹게 하니 얼마나 대단한 양반이냐?” 하고 덧붙였다.
창준은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이렇게 황무지가 가득하니까 인심도 낼만도 한 거죠. 우리 부지런히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 조선 고향에서 진 문중전을 이자까지 싹 물 거 같습구마.” 하고 동을 달았다.
병완은 “그럼 오죽 좋겠느냐?”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앗! 뱀!”
기준이가 괭이질하다가 발목을 붙잡으면서 물앉았다.
병완이 보니 꺼먼 점이 박힌 얼룩 독사가 대가리를 쳐들고 기준한테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 놈 뱀이!”
병완이 괭이로 찍으려 할 때었다. 기준은 손을 붙잡았던 손으로 꼿꼿이 쳐든 독사의 대가리를 덥석 잡아 홱 뿌리쳤다. 그때 병완이 괭이로 독사의 목을 콱 내리찍었다. 독사는 꼼짝 못 하고 목이 끊어졌다. 그래도 그 놈의 독사는 의연히 꾸불거렸다.
창준은 황급히 달려가 기준의 발목을 꽉 잡고 입을 뱀에게 물린 상처에 대고 독이 든 피를 몇 번 빨아 뱉어냈다. 뒤이어 자기 옷자락을 쭉 찢어 뱀에게 물린 기준의 상처 발목을 아래 위 꽉 동여매주었다.
병완은 기준을 보고 “빨리 뱀에게 물린 자리에 오줌을 눠라.”고 재촉했다.
기준이 괴춤을 잡고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상우와 사련의 얼굴에는 근심스러운 그림자가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야, 곱다. 엄마, 저 앞산 꽃은 무슨 꽃이오?”
이때 셈이 들지 못한 상순이가 아버지가 독사에게 물린 것도 모르고 묵밭에서 세투리를 캐다가 남산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사련은 “천지꽃이다. 우리 고향 명천에서는 천지꽃이나 철쭉꽃이라고도 한다. 얼마나 예쁜 고향의 꽃인데 여기서도 철쭉꽃이 피였구나.” 하고 말했다.
“엄마, 저 남쪽 산을 무슨 산이라고 하오?”
그러자 괭이로 묵밭을 일구던 기준이가 “그 산을 할아버지는 고향의 천지꽃이 많이 핀다고 천지꽃산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하고 대답했다.
“아, 천지꽃산의 천지꽃이 정말 곱습꾸마. 가서 꽃을 꺾어 오겠습니다.”
“에이고, 놀 궁리만 하다나면 언제 제 밥값을 하겠냐?”
어머니의 핀잔에 상순은 함지안의 능재를 가리키면서 종알거렸다.
“내하구 누나 한 함지나 캤는데도.”
“오, 그래 우리 막내아들 장하다. 그래야 밥값을 하지.”
그러자 월금과 상순은 “야, 가서 꽃을 꺾으면서 놀아도 된다.” 하고 천지꽃산 쪽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조것들을 어찌 하겠냐? 천지꽃산에 범이나 승냥이들이 드나드는데도.”
기준은 개암나무를 찍어내고 묵밭을 일구다가 괭이를 버리고 애들이 근심돼 쩔뚝거리며 쫓아갔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애들은 천지꽃산 기슭에 달려가 천지꽃을 꺾어 꽃다발을 틀어 머리에 쓰고도 모자라는지 천지꽃을 둬줌씩 꺾어들고 뛰놀았다.
병완과 창준은 쉴 참도 된지라 애들을 따라 천지꽃산에 달려 올라갔다.
어른들이 산으로 달려 올라오자 나무숲속에 엎드려 애들을 노려보던 승냥이들이 겁을 집어 먹고 슬금슬금 달아났다.
병완은 천지꽃산에 올라가더니 돌멩이를 쥐여 뿌리면서 승냥이들을 쫓아버렸다. 어른들의 돌 총 질에 곰들도 숲속에서 안 되겠다싶어 엉기적엉기적 도망쳤다.
기준과 창준은 애들을 불러 온 후 산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병완은 산마루에 서서 먼 남쪽을 바라보면서 긴 한숨을 후 내쉬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아버지, 뭘 근심합니까?”
병완은 눈물이 글썽해진 눈을 남쪽하늘에서 천천히 뗐다.
“청명이 다가오니 고향에 계신 조상님들의 산소 생각이 난다. 지난해부터 청명이나 한식에나 조상님들에게 제도 올리지 못하는 불효를 저질러서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모르겠구나.”
기준은 아버지 아픈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버지, 근심하지 마시오. 일본 놈들 때문인 거 조상님들도 양해할 겁니다. 언젠가 고향에 가면 그때 꼭 용서를 구합시다.”
병완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는 천지꽃산 동쪽 골짜기 어귀 나무숲속에 자리 잡은 자기 집 앞의 높다란 토성을 유심히 내려다보더니 기준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저 토성 안 부자 집은 굉장하더구나. 무슨 식구가 그렇게 많은지 열 간 집도 모자라서 옆에 사랑방을 짓고 또 앞마당에 저렇게 숱한 곁방을 짓는다니?”
기준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글쎄 말입니다. 요즘에는 숱한 일군들을 어데서 데려왔는지 토성바깥에다가 우물을 팝디다.” 하고 시답잖아 했다.
병완은 피씩 코웃음을 쳤다.
“토성 바깥에다 우물을 파면 제 집에서 물을 긷기는 불편하겠는데. 하긴 우리 집에서 길어 먹기는 좋겠더라.”
“토성안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본적은 없소만 그 우물물을 길어먹으라고 하겠는지 두고 봐야지요.”
병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한 쉼 숨을 돌린 후 월금과 상길, 상순을 데리고 천지꽃 산에서 내려와 황무지개간에 일손을 다그쳤다.
점심에 기준이네 일가는 서까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죽물을 후루룩후루룩 마시었다.
“에이고, 이런 죽물을 먹고 한 쉼만 괭이질 하구 나면 배 훌쭉해 어떻게 일하겠습니까?”
상우의 말에 사련은 월금과 상순이랑 캐온 능재를 데워 시 멀건 죽물에 담아 상에 올렸다.
그러자 상우는 데운 능재를 저가락으로 집어 우물우물 씹으면서 “이제야 죽거리가 있구나.” 하고 말하며 맛있게 먹었다.
“우리 상순이 장하다. 쌀이 모자라는데 많이 보탬이 되는구나.”
기준은 상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상순은 흐뭇해 걀쭉한 얼굴을 갸우뚱하며 죽 그릇을 들어 호로록 마셨다.
상우는 집 기둥과 대들보를 돌아보더니 의아해 했다.
“이 집을 짓느라고 고생했겠습니다. 그런데 어째 큰집처럼 적송으로 짓지 않고 소나무로 지었습니까?”
기준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이 산골에 적송이 어디 그리 많니? 그래 큰집만 홍송으로 지으라고 했다. 소나무도 모자라서 저 천지꽃산 남쪽에 있는 패용천산과 칼산에까지 가서 헤맸다.” 하고 대답했다.
상우는 그제야 “예-큰집을 적송으로 잘 지은 게 옳습니다. 할아버지를 모시는데.” 하고 찬탄했다.
낮잠도 쉴 새 없이 병완 일가는 몽땅 괭이와 호미를 들고 소서구 막바지에 나갔다. 기준은 괭이를 휘둘러 비술나무와 개암나무를 뿌리 채로 뽑아냈다. 어떤 때에는 괭이에 걸려 뿌리가 잘 뽑아지지 않자 베적삼 팔소매를 훌훌 걷어붙이고 두 손으로 나무를 휘여 잡고 힘을 끙 쓰며 쥐어 당겼다. 팔뚝에 힘줄이 불끈불끈 튀어나오게 힘을 쓰더니 기준의 키만큼 한 나무가 송두리 채 뽑혀 나왔다. 벌써 기준의 베적삼잔등은 땀에 후줄근히 뱄다. 상우는 원래 어질고 말수가 적어 진종일 별로 말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괭이로 나무뿌리를 빼내고 누런 흙을 파헤쳐 밭고랑을 만들었다. 사련과 지새금은 남정들이 뽑아낸 나무랑 개암나무랑 소나무랑 끌어다 한쪽에 쌓아 놓고 밭고랑에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황무지에서 뽑아낸 나무를 말리면 여름쯤에는 땔 수 있을 것 같았다.
장학산 지주는 골 막바지까지 올라와 병완 일가가 황무지를 일구는 것을 바라보면서 흐뭇해 중국말로 중얼거렸다.
“허허, 저 소같이 부지런한 실농군들을 만나서 소서구 황무지가 숱한 밭으로 돼가는구나. 잘 살 날두 멀지 않겠다. 허허허. 숱한 곡식을 거둬들이면 어떻게 건사하지? 곡식창고부터 더 지어야 하겠군.”
병완 일가는 이 봄에 황무지에 밭을 일궈 가문의 문중전을 꾼 빚을 다 물고 배불리 먹고 살 새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올라 이른 아침 해살을 맞으면서 나가 달을 이고 집으로 돌아 오군 했다.
해가 저문 천지꽃산에서 뻐꾸기가 뻐국 뻐꾹 봄소식을 전하며 노래하고 있었다. 그 봄기분과는 달리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굶주린 승냥이들이 무섭게 울부짖고 어둠속에서 악착스러운 야수들의 눈에서 비치는 불빛이 여기저기 왔다갔다 달아 다녀 소서구에 공포의 밤기운을 더했다.
한 여름이 되자 병완네 일가가 땀 동이를 부어 일군 소서구의 황무지 밭에서 고향에서 가져온 옥수수와 기장, 조이 희망의 씨앗들이 움트더니 어느덧 무릎까지 올라오게 자라 파란 이파리들이 넘실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더욱이 기준이네 일가가 천지꽃산 중턱까지 일군 몇짐 되는 감자밭에 탐스러운 연분홍 감자 꽃과 하얀 감자 꽃이 넘실거려 흐뭇하게 했다. 소서구 양지바른 북쪽산비탈에는 창준이네가 일군 황무지 밭에 고구마넌출과 호박넌출이 쭉쭉 활개 치며 뻗어 나가고 있어 기분을 돋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고향을 떠나 간도 황야에서 악착스레 황무지를 점점 많이 일궈나가며 살려고 안간힘을 다해 모지름을 쓰는 병완 일가를 상징하는 상 싶었다.
쉴 참에 병완은 기준이네 밭쪽에 와서 남쪽하늘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병권 형님은 무사히 있는지 모르겠구나. 일본 놈 새끼들과 한길수 새끼 못살게 굴 건데.”
기준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글쎄 말입구마. 우리에게 연루돼 큰아버지랑 꼭 고생할겁니다. 인편에 함흥촌에 들어오라고 기별하깁소.”
병완은 저 멀리 남쪽 하늘 끝까지 겹겹이 겹쳐 펼쳐진 산마루 줄기들을 하염없이 눈 뿌리 시리게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구나. 집식구들을 이 천지꽃 산에 다 불러오라.”
기준은 아버지가 청명과 추석 때처럼 천지꽃산에서 뭘 하려는 것을 알고 집식구들을 몽땅 불러왔다.
병완은 남쪽 하늘을 향해 합장배례하고 눈물을 머금고 목청을 가다듬어 말했다.
“고향 명천에 계시는 아버님, 어머님, 조상님 여러분,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떠나와 제때에 산소를 돌보지 못하는 이 불효자식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 일가 자손들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인사드립니다.”
모두들 병완을 따라 고향 명천 쪽의 남쪽 하늘을 마주하고 큰절을 아홉 번씩 드렸다.
병완은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감고 한참 고향과 부모를 생각에 묵념에 잠겼다.
한참 후 병완은 자손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다음 누구든지 고향에 가게 되면 꼭 아버님과 어머님, 조부모님과 조상들의 산소에 가토하고 제를 지내라.”
자손들은 이구동성으로 “예. 꼭 제사를 올리겠습구마.” 하고 대답했다.
병완은 창준, 기준과 오래도록 고향 회포를 토로했다.
기러기들이 줄지어 남으로 남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병완이네는 날개가 돋히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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