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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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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65)
2017년 03월 23일 15시 32분  조회:1607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들면 고향

     서늘한 가을 날씨가 서서히 다가왔지만 함흥 촌은 기쁨의 열기로 들끓었다. 지주를 청산해 집과 밭을 가졌으니 농사꾼들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올해 가을부터는 낟알들 털어 지주에게 소작료를 한알도 바치지 않아도 됐다. 농사꾼들은 밭에서 낟알을 걷어 들여 도리깨로 털어 절구에 찧느라고 땀을 뻘뻘 흘렸다.
      창준과 범호는 토성 서쪽에 정미소를 짓느라고 마치로 못을 땅땅 박는다, 대패질을 한다 하며 뺑뺑 맴돌았다.
용천은 함흥 촌에 오자마자 손호표를 총살하고 지주의 집과 밭을 청산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 속이 꿈틀했다.
    (만약 여기가 경주라면 이 사람들은 우리 집도 청산해 아버지를 죽이고 집과 밭을 나눠 가질 거 아닌 기여? 빨갱이무리에 들지 않길 잘한 기여.)
     그는 진달래와 경주를 기다릴 일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남으로 떠나가고 싶었다. 허나 당분간은 함흥 촌에 눌러 있어야 했다. 그에게는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기로 삼추와 같았다.
(경호와 진달래가 한 열흘이면 장백산으로 갔다가 오겠지. 열흘만 꾹 참고 기다리자.)
어느 하루 용천이 작은아버지 집에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상순이 밥그릇을 담은 보자기를 들고 들어왔다.
“얘, 뭘 또 가지고 왔어?”
상순은 희죽이 웃었다.
“내 아내 달걀비빔밥을 지었습니다.”
“잘 먹겠네. 자네도 여기서 아침을 먹고 가게나.”
“아침 대충 먹고 왔습니다. 인차 촌공소에 가봐야 하겠습니다. ”
상순은 인차 자리를 떴다.
용천은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촌공소로 들어갔다.
이계삼은 금방 촌공소에 들어선 용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 대장, 삼도만 토비들이 대체 모두 몇 명이나 되오? 그 놈들의 정항을 좀 알려주오.”
용천 대장은 두 말 없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삼도만 토비들은 기실 당지 한족지주들과 한족농민 60여명으로 조직된 오합지졸이랑께. 그자들은 순전히 국민당 소교 전보흥이란 자의 민족이간질에 미혹돼 국민당 토비로 된 놈들인 기여. 전보흥 소교는 원래 국민당 정예군의 소교데이."
    상순은 궁금한 걸 물었다.
    "전보흥 소교 생김새 어떤 특징이 없습니까?"
     용천은 좀 생각하더니 인차 대답했다.
"오, 그래. 그 놈 생김새를 알아야 생포하든지 생사를 확인하지. 전소교 턱주가리에 칼자국 같은 흉터가 있더구만."
"키는 큽디까?"
"응. 꽤나 훤칠한 키였어. 항상 일본 놈처럼 일본 군도를 차고 다니면서 행패를 부렸어."
병완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용천이 뒷말을 이었다.
" 그 자는 국민당군 조덕산 영장의 파견을 받고 삼도만 평강 촌에 기어들었다데이. 그 놈은  한족농민들에게 별의별 선동을 다 하데이. ‘공산당 민주연군의 꼬리빵즈(高丽帮子:조선인) 빨갱이들이 지금 우리 한족들을 죽이고 집과 밭을 청산해 빼앗자고 한다.’. 하, 그 놈 선동 진상 잘 모르는 당지 한족들한테 먹혔지 뭐야. 그 놈은 함흥촌에서 조덕산과 조덕림을 총살하고 가옥과 밭을 가난한 농민들한테 나눠준 사실을 들어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이."
이계삼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에끼, 이 사람아, 거짓말을 해도 유분수지. 자네 이 마을에 돌아온 후에 조씨랑 총살했는데 전보흥이 아는지 모르는지 자네 어떻게 알아?"
용천은 살을 붙여 엄중하게 말하다가 꼬리를 밟혔다. 그러나 그래도 대부분은 진실한 정황이었다.
"글세 그 놈이 글케 선동했다니께. 지어 그 놈은 이렇게 군중들을 미혹시켰데이. ‘빨갱이들이 공산공처(共产共妻)를 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한족들 처자들까지 빼앗자고 삼도만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지, ‘우리 한족들은 무기를 들고 조선 빨갱이들을 맞받아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지, 그 놈 주둥이 다 삐뚫어지게 돌아다니며 선동했데이. 그러니까 당지 한족들은 전 소교의 민족이간 질에 놀아나서 집과 땅, 처자까지 빼앗기지 않을락꼬 모두 토비로 돼 무기를 들고 민주연군을 막으려고 나섰어. 그 속에는 진수해 부근에서 달아난 지주들이나 위만 경찰들이나 친일주구들도 많데이. 이 마을에서 달아난 장충국이나 해동분주소 소장 지학구도 있데이. 더구나 이 마을에서 도망친 장축국이란 자의 선동역이 대단했어. 그 놈은 전 소교의 문서와 함께 한족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함흥 촌에서 토지개혁 때 지학사와 조덕림, 제지주랑 숱한 한족지주들을 총살하고 집과 밭을 빼앗아 조선 빨갱이들한테 몽땅 나눠줬다고 떠벌였지. 게다가 지학구 소장 놈도 풍을 치는 바람에 산골 안에서 세상을 보지도 못한 한족 농사꾼들은 진상을 잘 모르고 미혹돼 분분히 국민당 토비무리에 쓸어 들어갔지.”
이계삼과 상순은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후 내쉬었다.
상순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 놈들의 주요 무기는 어데서 얻은 거요?”
이때 허영주도 촌공소로 들어와 용천과 인사를 나누고 구들에 올라와 앉았다.
용천은 아주 흥미진진해 뒤 말을 이었다.
“그 놈들은 전 소교가 국민당 군에서 가지고 온 기관총 서너 정에 장총이 위주이지. 그 외에도 지학구 소장과 같은 위만 경찰 놈들이 파출소나 분주소에서 가지고 간 권총도 몇자루 있지. 그 놈들은 삼도만 일본 삼림경찰 놈들이 도망칠 때 수림 속에서 도끼나 세 가닥 창으로 찍어 죽이고 보총을 빼앗은 것도 있지.”
상순은 머리를 끄덕였다.
“국민당 정예군 놈들도 토비들과 함께 우리 마을에 쳐들어 왔다가 무리죽음을 당했습니다. 고까짓 산골 오합지졸 놈들이 무슨 대단해서.”
그러나 용천은 도리머리 질 했다.
“상순아, 절대 그 놈들을 얕잡아 봐선 안 돼. 그 놈들은 대부대작전을 지휘하던 전보흥 소교 놈의 지휘아래 살아 남을락꼬 악을 딱 쓰고 군사훈련을 했어. 그 놈들은 아마 여기 민병들 못잖게 전투력이 있어. 게다가 그 놈들은 마을 주변에 한 장 길이나 되는 원목으로 장재를 몇 겹으로 두르고 그 바깥에 둬 자씩 되는 뾰족한 나무가시를 촘촘히 박아놓았어. 그리고 목책 안에 또치까를 쌓고 전호를 파서 그런 또치까 사이를 연결해 놓았데이. 집집마다 토성에 총구멍을 냈고 마을 복판에는 사처를 둘러보면서 전투를 지휘할 망루도 통나무로 높게 세웠어. 그 놈들의 말처럼 평강 촌에 들어가는 안도 쪽의 령길과 팔도와 삼도만 소재지로 올라가는 골짜기 길만 막으면 몇 백 명도 평강 촌을 공략하기 힘들어. 토비 놈들은 깎아지른 절벽의 천험을 끼고 있는데다가 평강 촌과 삼십 여리 떨어진 삼도만 소재지의 놈들이 수시로 전화로 연계하면서 서로 접응할 수 있어. 토비들을 소멸하기 그리 쉬울 거 같잖아.”
이계삼과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이었다.
상순은 자신만만해 호언장담했다.
“우리 국자가와 명월구에 민주연군이 몇 천 명이나 있는데 그까짓 놈들을 소멸하지 못하겠소?”
용천은 상순의 호언장담에 냉수를 퍼부었다.
“담력과 용기만으로는 승리할 순 없어. 전술상에선 놈들을 중시해야 해.”
상순은 용천의 그 말을 가슴 속 깊이 명기했다. 그는 민병 연장인 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 감을 느꼈다.
이계삼은 허영주와 상순을 불러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상순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각기 자기 마을씩 보위해선 절대 보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토비를 소멸할 수 없네. 상순인 태수랑, 성수랑 마을의 꼴꼴한 청년들을 데리고 민주연군에 입대하오. 민주연군 대부대에서 오래잖아 삼도만 토비들을 비롯한 동만의 토비들을 소멸하게 되오. 참군해서 토비들을 몽땅 숙청해 버려라. 그 담 마을에 돌아와 지방건설을 하면 어떠오?”
상순은 아무런 고려도 없이 대답했다.
“당 조직에서 수요하면 난 입당할 때 맹세한대로 참군해 목숨을 내걸고 토비들과 싸우겠습니다. 내 이제 마을 청년들을 동원하겠습니다.”
이계삼은 상순의 손을 굳게 잡아 흔들었다.
“당 조직에서는 김 연장을 믿소. 꼭 참군해 토비들을 깡그리 소멸하오!”
상순은 차렷 자세로 군례까지 올렸다.
“옛! 이 서기,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계삼과 허영주는 신임과 기대에 찬 눈길로 상순을 바라보며 두 손을 꽉 잡고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이계삼은 상순에게 조용히 말했다.
“가기 전에 장학산을 잘 살피오. 혹시 장충국이란 놈이 우리 유격대가 떠났는가 정탐하러 올 수도 있소. 지금 삼도만 토비들은 우리 마을에 보복하려고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을 수도 있소.”
“예. 내가 가더라도 마을의 나머지 민병들에게 잘 포치하겠습니다. 그 놈이 이제 까딱하기만 하면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상순의 말에 이계삼과 허영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상순은 토성 동남쪽에 있는 자기 초가삼간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조선에 가고 집에는 아내 명옥이 앓는 맏딸 숙자를 안고 있었다.
“난 참군해야겠소. 토비 놈들을 소멸해버리지 않고서야 어찌 마을 사람들이 시름 놓고 살겠소?”
허나 명옥은 한숨을 지으면서 말리었다.
“여보, 애를 셋이나 죽인 이 집에 일꾼은 당신 밖에 없소. 당신 전쟁터에 가면 생사를 기약할 수 없잖소?”
허나 상순은 고집을 썼다.
“건 여자들이나 할 말이야. 토비들이 당장 우리 마을을 들이치자고 노려보는데 사내대장부가 죽음을 겁내 집구석에 들어박혀서 여편네 궁둥이만 쳐다봐서야 될 말인가? 토비들을 소멸하고 숱한 군중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후회 없소.”
상순은 마을 청년들을 동원하려고 집에서 나갔다.
그때 웬 사내가 홀로 마을에 들어서서 움푹한 눈을 판들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상순은 경각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게!"
"왜?"
그 사내는 흠칫 놀라 주춤 멈춰서더니 상순을 되돌아보았다.
"왜 동넬 돌아다니면서 기웃거려?"
그 사내는 억지로 웃어보이면서 상순한테 다가와 통사정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 살 수 있겠나 해서 그래요."
"당신 누구요?"
"나 이흥수제이. 내 고향은 전라도라우. 일전에 두만강 건널 때 최구장 어른이 함흥촌에 찾아오라고 해서 왔는디."
"이흥수? 오, 그때 두만강 버들강변에서 본..."
"네 맞아요. 바로 접니다. 면목 좀 있는디."
상순은 제꺽 흥수의 두 손을 맞잡았다.
"헌데 어떻게 돼 이제야 왔소?"
흥수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사실 난 두만강을 건너다가 일본놈들한테 붙잡혀 강제로 징병돼 할빈까지 끌려갔어. 일본 놈들이 망해 도망치자 이제야 나온기여. 여기도 우리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사는구먼. 함께 살면 안되는기우?"
상순은 일본군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삼도만토비숙청에 써먹을가고 궁리하면서도 소홀히 받아주지 않았다.
"헌데 당신 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으려고 하오?"
흥수는 어깨에 멨던 보짐을 내리우면서 중얼거렸다.
"고향에 돌아가도 일점혈육이 없시우. 부모는 일본놈들한테 끌려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다가 사망했지라우. 하루 사이에 아버지를 잃은 엄마는 파도 사나운 바다에 치마 뒤집어쓰고 자결했지 않았겠시우. 형제들은 염병에 걸려 사망하잖으면 뿔뿔히 흩어져 살길을 헤매고 있시우."
상순은 들을수록 흥수가 불쌍해 흥수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그럼 우리 마을에서 함께 살기오. 이제 형제들 찾으면 우리 마을에 데려오오."
"고마우이. 이후에 뭐든 시키면 다 할라우."
상순은 피뜩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먼저 흥수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갔다.
며칠 후 녀동생 금옥을 시켜 뒷집 로처녀 춘실한테 흥수를 중매를 서주었다.
춘실은 상순과 비할바도 안되는 흥수가 눈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를 류랑객 같은 흥수한테 붙여놓는 상순이 얄미웠다. 하지만 애까지 낳은 몸인지라 마음을 독하게 먹고 억지로 흥수와 살게 되었다.
명옥은 숙자의 따끈따끈한 머리를 짚어 보더니 업고 정신없이 바깥으로 나갔다.
“안되겠다. 의사를 보여야지.”
명옥은 이번에는 상순의 허가도 없이 떠났다가 또 이전에 영자를 업고 진수해 의사네 집으로 갈 때처럼 봉변을 당할 까봐 이번에는 방향을 바꿔 동불사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 나그네 말대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숙자두 죽이고 말겠다. 숙자는 절대 그렇게 가마 목에서 죽여 내갈 순 없다.)
그녀가 애를 업고 차가운 부르하통하 강물을 허둥지둥 건널 때다.
숱한 사람들은 영문 모르고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 여자 정신 나갔지 않았니?”
그러건 말건 명옥은 숨이 턱에 닿도록 동불사 의사네 집으로 달리어 갔다.
동불사의 개인 의사를 보이고 한약을 몇 첩 져 가지고 바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풍로를 피우고 약을 달일 때 상순이가 성수랑 태수랑과 함께 돌아왔다.
상순은 풍로 불을 보고 이상해 했다.
“당신 뭐 하오?”
“숙자를 먹이자고 약을 달이오.”
“약을? 애가 무슨 병에 걸렸소?”
“감긴지 전염병인지 걸렸다고 하오. 이번엔 내 말대로 약을 쓰기요.”
명옥은 또 상순이가 애를 의사한테 보여 헛돈을 팔았다고 화를 내면서 약 담배를 풀어 먹일 가봐 더럭 겁이 났다.
허나 상순의 말은 판판 달랐다.
“잘했소. 내 부대에 간 다음 앓으면 어쩌겠소?”
흥수는 한마디 했다.
“아줌마, 우리 토비 치는 새에 아내들끼리 서로 들다보면서 살라니께요.”
명옥은 한숨을 호- 내쉬었다.
“남편들이 다 부대에 가면 새해 농사는 누가 짓소?”
태수는 일성 촌에서 이사해 왔는데 동생 둘이나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우린 정호하구 정수까지 셋이나 몽땅 부대로 가기로 하였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잘했다고 하오.”라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성수는 가슴을 치며 나섰다. 
“우리도 학수 형님까지 참군하기로 하였소. 아주머니 근심하지 마오. 우리 삼도만 토비를 새 해 농사짓기 전에 깡그리 소멸해야겠소.”
명옥은 나그네들을 보고 “이제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네 조선 고향에서 돌아오면 고향에 돌아가 버리면 다지. 여기서 딱 토비들과 싸울 필요 있소?” 하고 말하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이때 병완과 기준이 송국과 함께 헐금씨금 돌아왔다.
“할아버지, 아버지!”
상순은 마주 달려 나갔다.
“그래 조선 고향 형편은 어떻습둥?”
허나 병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병완은 집안에 태수와 성수가 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저 창준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태수와 성수는 상순과 함께 기준을 따라 웃방에 들어갔다.
상순은 아버지가 자리를 정하고 앉자마자 물었다.
“아버지, 고향 형편은 어떻습디까?”
기준은 명옥이 들여온 냉수그릇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더니 무거운 입을 뗐다.
“고향은 말이 아니더라. 옛날 일본 놈들이 산이고 들이고 지어 터 밭에까지 나무를 심으라고 하잖았니? 20여년 지나서 지금 온통 무인지경 수림이 돼버렸더라. 영월동이고 운주동이고 마을자리를 찾아 볼 수 없을 지경이더라. 원시림 같은 게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무시무시하더라.”
“마을이 없어졌단 말니까?”
성수의 물음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어데 밭을 일굴 데도 없더라.”
그 말에 모두들 마음이 무거워져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우리 고향 가마골이랑 저 한봉이네 고향 신흥동이랑 나무 밭이 됐습디까?”
태수의 물음에 기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농사를 짓고 살만한 땅이 없더라.”
그 말에 상순은 “그럼 여기 와서 황무지를 개간해 밭을 일군 것처럼 나무를 찍어내고 밭을 일구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기준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너도 알잖니? 우리 고향이라야 어디 밭이라는 게 밭 같으냐? 이전에 우리 집에서는 소잔등 같은 너럭바위가 더덕더덕 누워 있는 산비탈에 바위 돌 틈 사이에 재를 오줌에 적시어 쑤셔 넣고 나무꼬챙이로 구멍을 뚫고 메밀 알을 쑤셔 넣고 심어 겨우 먹고 살잖았니? 글쎄 지금은 조선에서 일본 놈들을 몽땅 몰아냈고 친일 주구들과 지주들은 몽땅 남쪽으로 달아났더라. 그리고 북에는 소련 홍군이 차지하구 이남에는 미군이 들어와서 차지했더라. 뭐 남조선과 북조선 사이에 3.8선이라는 게 생겨서 언제든지 서로 마음대로 건너다니지 못할 것 같다더라."
그 말에 용천과 흥수는 놀라 입을 딱 벌렸다.
"한 개 나라에 두 개 나라가 섰으니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여기보다 못한 거 같더라. 우리 여기 와서 20여년이나 황무지를 어떻게 일군 밭들이냐? 저 밭들을 아까워 어떻게 가겠니?”
상순은 듣다가 “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다.
“응.”
아버지 말에 상순은 고개를 기우뚱하면서 궁리하다가 머리를 들었다.
“아버지, 딱 고향이 아니라도 조선 아무 데나 가서 살면 안 되겠습니까?”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말이 쉽지. 세상 인심이 어디 그렇니? 누가 자기 밭을 나눠주면서 한 마을에서 함께 살자고 우릴 넙적 받아주자니? 그러잖아도 우린 경성하구 무삼이네 마을에 가서 어떨가고 이사해 오면 받겠는가고 두루 물어 보았다. 허나 무삼부터 자기 집 밭을 나눠 붙이자고 할가봐 선뜻이 대답하지 않더라. 온 마을 사람들은 ‘별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뺄' 궁리를 한다는 지. 별 소리를 다 하더라.”
그 말에 성수랑 태수랑 어이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수 없구먼. 삼도만 토비나 숙청해버리고 간도에 눌러 앉아 사는 수밖에.”
상순도 일어나면서 동을 달았다.
“당분간 그 길 밖에 없소. 아버지, 난 토비를 숙청하자고 참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기준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얘, 네가 가면 우리 집 농사는 어쩌느냐? 마을은 또 누가 지키겠느냐? 좀 자기 집 살림살이도 돌보면서 일해라.”
성수는 태수와 함께 촌공소로 떠나갔다.
병완은 기준한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을은 우리가 민병들을 데리고 지키면 된다. 마을을 장구하게 지키자면 상순이랑 민주연군에 참군해 토비들의 소굴을 몽땅 짓부셔 버려야 한다. 마을에 앉아서 방비만 해서야 되니? 마을 사람들은 항상 토비들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어. 어떻게 마음 놓고 사니?”
아버지 말을 듣고서도 기준은 납득되지 않았다.
정지에서 명옥은 약을 짜서 숙자에게 먹이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이때 금옥이 돌도 안 된 맏아들 칠군을 업고 찾아왔다.
그녀는 상순을 보고 충고했다.“오빠, 참군하지 마오. 오빠 없이 이 집 살림은 어쩌오? 잘 생각해 보오.”
병완은 금옥을 흘겨보면서 마구 우격다짐했다.
“계집애 뭘 안다고 끼어들어? 삼도만 토비를 놔두고 마음 놓고 살 수 있니? 이젠 조선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 이부어미 자식처럼 소외당하면서 어떻게 서러워 사니? 우린 오직 여기서 토비를 숙청하고 국민당반동파들이 동만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편안히 살 수 있어!”
명옥은 숙자를 차가운 구들에 눕혀놓으면 감기에 더 걸릴 가봐 꼭 끌어안고 배우에 올려놓았다 무릎에 올려놓았다 하다가 나중에 안고 부엌에 내려가 저녁밥을 지었다.
병완은 상순을 데리고 촌공소로 갔다.
촌공소에서 이계삼과 허영주가 용천 대장과 함께 앉아서 삼도만 토비 말을 하다가 일어나 병완이네를 마중했다.
병완은 용천을 보고 놀라하며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자네 살아 있구만. 우린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오.”
그는 용천에게서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시름 놓았소. 진달래 사돈이랑 성칠이랑 얼마나 근심했다고 그러오?”
이계삼은 병완의 손을 잡으면서 “조선 고향 형편은 어떻습디까?” 라고 물었다.
병완은 자리를 정하고 앉자 조선 고향에 갔다가 황무지 수림으로 변해버린 고향과 각박해진 인심 그리고 소외감으로 하여 몹시 섭섭하더란 말을 했다. 허나 그의 말 속에는 소외감을 동력으로 함흥 촌을 두 번째 고향으로 건설하려는 무궁무진한 힘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용천은 병완에게 “성칠 대장과 유격대는 모두 어데로 갔어요?”하고 물었다.
병완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습관처럼 곰방대를 꺼내 담배를 재워 넣고 성냥을 켜 대더니 뿍뿍 빨고 나서 대답했다.
“성칠이 네는 곧추 명천 쪽으로 나갔소. 그 애는 수림으로 돼버린 고향 형편을 돌아보더니 우리를 보고 함흥 촌에 돌아가서 살라고 했소. 지금 쯤엔 아마 김 장군의 명령에 따라 함흥을 거쳐 평양 쪽으로 나갔을 게요. 군사비밀이라면서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후에 김 장군의 명령에 따라 다시 함흥이나 청진 쪽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소. 성칠은 부대를 따라 어디에로 갈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때 다시 조선으로 나가는 일을 보자고 했소. 이젠 내 맏아들이 큰 벼슬을 하면 그 덕분에 조선에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어느 마을에선들 자기 밭을 나눠 주자면 이사 호를 받자고 하겠소?”
“진달래는 못 봤어요?”
그것이 용천의 최대관심사였다.
“보지 못했소.”
“고향 부근에서 한철주 놈 일가는 보지 못했어요?”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한길수네 여편네 월선이고 한철주고 그림자도 보지 못했소. 그 역은 놈이 고향에 눌러 있겠소? 남으로 도망쳤을 수도 있지. 영월동은 사람이 살았던 마을 같지 않았소. 집들이 흔적도 보이지 않고 나무가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꽉 들어섰더군. 다만 우리 집 자리와 토성 안의 한길수네 집 자리가 조금 알리던데 몽땅 불에 타 잿더미로 됐더구먼. 토성도 다 무너져 물앉고. 아마 일본 놈들과 한철주네 도망치면서 불을 지른 거 같소. 물레방아랑 쇠로 만든 축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소. 그것도 녹이 다 쓸어서 싹아 떨어질 지경이었소.”
덕성은 용천을 보고 무릎을 치면서까지 한탄했다.
“우리 집 자리는 가둑나무가 꽉 들어서서 살풍경이지 않노. 이젠 여기 정이 들어 그런지 여기 보다 못한 거 같아. 경주는 어떤지 몰라. 경주를 가든지 어디 가든지 차차 볼지라. 그 놈의 3.8선이 큰 코 다칠라. 이제 하마 고향 경주에도 마음대로 다니지 못 할라.”
병완은 이마에 퍼런 핏줄을 일구며 격분해 했다.
“그 놈의 3.8선은 미군과 소련군이 만든 게라오. 그 사람들은 일본 놈들을 몰아 낸 공으로 염치도 없이 우리 조선을 점령지로 나눠 가졌다오.”
모두들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병완은 한숨을 돌리고 나서 말했다.
“성칠의 말에 의하면, 북조선의 지주들과 부자들은 몽땅 남으로 달아났다고 했소. 한철주나 월선도 일본 놈들을 따라 남으로 달아난 거 같소. 월선의 친아들 한선주라는 애가 형 한철주하구 함께 일본에 유학 갔다가 서울에 돌아와 뭐 한다더니 그리로 갔을 수도 있다오. 영월동 토성안집과 우리 집 자리도 몽땅 불타 버렸더군.”
용천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철주도 가능하게 서울에 달아났을 수도 있어요.”
뒤이어 그는 병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었다.
“은녀는 어디로 갔어요? 고향에 남았어요?”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우리도 발을 붙이지 못했는데 은녀라고 살 데 있겠소? 은녀는 경수를 업고 부모 산소에 제를 올리고는 성칠을 따라 부대를 따라 갔소. 부대에서는 어느 지방 여성간부로 임명하겠는지 아오?”
병완은 한숨을 내쉬면서 용천을 건너다보더니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어 지나갔다.
“아니, 진달래하구 경호 사돈이 장백산 아버지 산소에 간다더니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소?”
용천은 도리머리 질 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장백산으로 간지 보름이나 되는데 왜 돌아오지 않아요? 무슨 일이 꼭 일어난 거 같아요.”
그는 옆구리의 권총집을 바로 잡더니 “안 되겠어요. 장백산에 가 봐야겠어요. 애를 업고 고생하면 우쩔라고? ”라고 말하더니 촌공소에서 나갔다.
병완과 상순을 비롯한 촌공소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여보게 밥이나 먹고 떠나게나.”
병완의 말에 용천은 손사래를 쳤다.
“미안해요. 토비숙청을 돕고 가려고 했는데 먼저 가야겠어요. 모두 토비를 숙청하고 여기서 두 번째 고향을 잘 꾸려 행복하게 사세요. 이제 진달래를 찾으면 후에 찾아와 뵙겠어요.”
병완은 바깥에 나와 용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제야 피뜩 생각나는데 진수해에 있는 진달래네 큰아버지 최구장네 자손들이 살고 있네. 혹시 진달래 오누이가 그 집에 들지 않았는가 들러 보오.”
“예. 알았어요. 최구장 집에 들려 보지요.”
용천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작은아버지 덕성의 집에 들었다.
칠백의 아버지는 온 얼굴의 주름살이 다 퍼지게 반겨 맞았다.
“큰조카 왔구나. 어서 올라 와.”
용천은 우방에 올라가 앉자마자 울먹이며 말했다.
      “작은아버지, 조선 고향에 나가 봐야 하겠어요. 고향도 광복을 맞은 지 몇 달이나 되는데 집도 돌아 봐야 하겠어요. 그간 20여년이나 일본 놈들이 우리 집을 차지해 분주소를 세우고 들어 있었잖아요. 일본 놈들이 도망쳤으니까 자칫하면 임자 없는 집으로 처리될 거 아닌가요?”
“응, 그래.”
덕성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뒤이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칠백이 보고 고향 경주로 가자고 하니 부대에서 마음대로 떨어지지 못한다고 하데이. 명천 영월동이랑 어떤 형편인가 보고 기별하겠다고 했어. 병완 영감이 고향에 나가 봤다잖아. 헌데 거기서 살 형편도 아니랑께.”
용천은 작은아버지 손을 잡고 간곡히 말했다.
“작은아버지, 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 가자요. 여긴 살기 틀렸어요. 토비들이 항상 습격할 위험이 있어요. 장차 토비들을 소멸한다고 해도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겠는지 누가 알아요? 명천에서도 살기 힘든데요. 아예 고향 경주로 돌아 가자요. 고향이 좀 좋아 그래요? 이제 남북이 갈라졌으니 길이 완전히 막히면 고향에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 여기 쌀을 다 팔아 동전 몇 잎을 달랑 가지고라도 고향으로 훌 돌아 가자요.”
덕성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글쎄 돌아가면 좋겠는데 말이야. 칠백이 가면서 천천히 보자고 했어. 그 애를 데리고 가야지. 내 훌 가버리면 그 애 어디에 가서 나를 찾겠나?”
용천은 덕성의 두 팔을 붙잡고 간청했다.
“작은아버지, 아예 내캉 가서 칠백을 찾아 데리고 고향으로 가자요.”
그러나 덕성은 도리머리 질 했다.
“그 넓은 조선에 가서 그 애를 어떻게 찾는다고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애가 찾아오기 쉽제이.”
용천은 자신만만해 했다.
“부대 사람은 찾기는 쉬워요. 부대마다 찾아가면 인차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덕성은 한사코 도리머리 질 했다.
“안 돼. 글케 서로 찾다나면 아무도 못 찾아.”
용천은 한숨을 후 내쉬더니 작은아버지 손을 꼭 잡고 신신당부했다.
“작은아버지, 조카 먼저 고향으로 돌아가겠어요. 고향에 작은 아버지 일가 살 자리를 마련해 놓겠어요. 이제 칠백을 만나면 꼭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세요.”
용천은 일어나 덕성에게 작별의 큰절을 올리었다.
“작은아버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무사히, 편안히 계셔요. 꼭 국민당 토비 놈들의 습격을 주의하세요.”
덕성은 엉거주춤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바래였다.
그는 용천의 손을 잡고 “이렇게 갈라지면 언제 또 만나겠느냐?”라고 하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용천도 눈물을 흘리며 작은아버지를 끌어안고 흑흑 흐느끼며 어깨를 들먹이었다.
“어서 가 보아라. 난도 칠백이 오면 데리고 고향에 가련다. 너 작은어머니도 없지. 뭘 보고 여기 있어.”
용천은 바깥에서 자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병완을 보자 또 석별의 정을 참지 못해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성칠의 아버지, 작은아버지, 무사히 계셔요.”
작별인사를 마치자 그는 급급히 진수해 쪽으로 줄달음쳐 갔다.
병완과 덕성은 용천이 버드나무숲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동구 밖에 우두커니 서서 바래였다. 덕성은 버드나무숲속으로 사라지는 용천 대장의 뒤 잔등을 바라보면서 불쌍해 도리머리 질 했다.
이튿날 오전, 병완은 이계삼과 허영주와 토론하고 군중대회를 열었다.
그는 대회에서 조선 고향에 갔다 온 형편을 말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우렁차게 말했다.
“우리는 유서 깊은 이 땅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아래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고 새 중국의 혜택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삽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아들딸들을 민주연군에 참군시켜야 합니다.  장개석 국민당 토비 놈들을 숙청하고 인민민주정권을 보위해야 합니다. 우리 집과 토지, 행복을 보위합시다. 오직 이 길만이 우리가 새 중국에서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옛날 같으면 병완의 말이라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들었다. 하건만 이번 대회에서만은 모두 김빠진 공처럼 한숨을 푸푸 내쉴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향의 기쁜 소식을 기다렸건만 기대와는 달리 전운이 감도는 중국에 남아 살 생각을 하니 속이 탔고 뒤 근심이 컸던 것이다.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침울한 표정으로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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