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파리와 개고기
굉팔은 눈에 든 가시 같던 성호와 승호, 해연까지 몽땅 한몽둥이에 쳐내고 얼마나 속이 씨원했는지 몰랐다.
“‘흐흐흐. 이게 다 오청룡 덕분이지. 그 놈 색마만 잘 모시면 뭐나 술술 풀리거든. 그 놈만 등에 업으면 권세도 있고 빵도 있고 미녀도 있지.”
굉팔은 웃음주머니 흔들흔들해 쏘파에 앉아 좌우로 빙빙 돌면서 코노래를 불렀다.
따르릉 따르릉
다급히 울리는 전화벨소리.
굉팔은 황급히 벌떡 일어섰다. 들어온 전화번호를 보고 단통 말상을 찌프렸다.
“오국장? 아침부터 웬 지시 계시는가요?”
오청룡의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경리, 어제 저녁 술을 과하게 마셨네. 해장국 먹고 싶네.”
“예, 오국장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야죠.”
“얼씨덩 오게. 속이 말째야.”
굉팔은 차렷자세를 취하며 연극을 놀았다.
“옛! 오국장님, 곧 가겠습니다.”
“잠간만…”
“옛!”
“잠간, 내 말 들어.”
“예, 지시만 하세요.”
“어제 저녁에 얼마나 고독했는지 몰라. 베개를 안고 외롭게 잔 홀애비 설음을 누가 다 알겠어?”
“예- 정력이 참 왕성한데요. 온 밤 아가씨를 데리고 놀고 새벽에 집에 들어갔잖아요. 또 생각 나던가요?”
“그래. 아무리 즐겁게 놀아도 적막강산 집에 들어서면 외롭단 말이야.”
굉팔은 전화를 놓고 게두덜거렸다.
“쳇, 아침부터 아가씨 소리냐? 어제 밤에 아가씨 단번에 둘씩이나 깔아뭉개고서도 또야? 술에 푹 퍼져 그게 궈즈 다 됐겠는데 신새벽부터 또 머리 쳐들어? 참 신기해.”
그는 두덜거리면서 부랴부랴 재무과로 건너갔다.
경옥이 해쭉 웃으면서 눈인사를 했다.
“무슨 일인가요? 리총경리.”
“오, 허경리, 아침부터 진짜 예뻐.”
“호호호. 오늘 기장밥이라도 지어드려야지 않겠어요?”
굉팔은 경옥을 슬쩍 춰주고 손을 내밀었다.
“돈을 주오.”
“얼마?”
“한 2천원 주오.”
“또 무슨 일인가요?”
경옥은 눈을 치뜨며 굉팔을 쳐다보았다.
“오국장이 해삼을 먹고 싶다오.”
경옥은 생각 밖으로 오만상을 찡그리더너 두덜거렸다.
“아니, 어제 3천원 썼는데 또 2천원입니까? 오늘 광고비도 들어온 게 없어요. 광고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고서야 어떻게 해요? 진짜 애보다 배꼽이 더 크군요.”
굉팔은 단통 우멍눈을 데굴거렸다.
“그만하라구!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흥! 오국장님한테 코 밑치성을 잘해야 광고임무도 줄이지. 년말에 우리한테도 더 차례진단 말이여. 총경리 돈을 내놓으라면 내놓을게지. 무슨 잔소리 그렇게 많아? 흥!”
경옥은 발딱 일어나면서 계속 게두덜거렸다.
“진짜 밑굽 빠진 항아리야.”
“다 우리 둘을 생각해 하는 일이요. 오국장을 등에 업기만 하면 짜고들어 마음대로 해먹을 수 있어.”
굉팔은 급한지라 경옥한테 처세철학을 싸넣으면서 저금소에까지 묻어갔다.
두툼한 돈을 챙겨넣은 굉팔은 곧추 택시를 잡아타고 오청룡네 3층 집에 달려갔다.
오청룡은 어제 마신 술이 아직 깨지 못했는지 낯이 지지벌개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어?”
굉팔은 택시에서 내려 굽신거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금소에 들려 돈을 찾아가지고 오다나니 좀 늦었어요.”
굉팔은 오청룡을 부축해 택시에 앉혀가지고 해장국집으로 달려갔다.
아침인지라 해장국집에 들어가보니 손님도 없었다.
밥상에 마주 앉은 오청룡은 해장국을 후후 불면서 둬술 떠먹네하더니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기우(있는가요)?”
오청룡은 허리를 펴고 자기를 마주 보는 굉팔을 째려보았다.
“사람이, 어째 눈치 그렇게 도끼등인가? 상전이 말하지 않아도 고민거리를 척척 해결해줘야지. 에이, 참, 원.”
“미안해요. 잘 보살펴드리지 못해. 도대체 무슨 고민…?”
오청룡은 수수떡처럼 뻘건 낯을 들고 굉팔을 쳐다보았다.
“색시 좀 얻어달라고.”
“예?”
굉팔은 우멍눈을 치떴다가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홀아비로 사는 고통 여직껏 그리도 몰랐어?”
“예- 미처 알아보지 못해 미안해요.”
“사람이, 머리 둔하잖은데 몇번 말해야 알겠소?”
오청룡은 심복인 굉팔한테는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
“자네 덕분에 아가씨들을 데리고 놀긴 잘 놀았네. 허나 집에 돌아가면 고독해. 난 고독한게 무서워. 빨래도 나절로 해야지. 점심과 저녁은 여기저기서 근근득식하는데. 제일간 아침이 큰 걱정거리야. 밥은 글쎄 그런대로 전기밥가마가 좋아서 해먹을 수 있는데 채를 할줄 알아야 먹지. 이젠 두부모만 봐도 딱 질색이야.”
굉팔은 머리를 끄덕였다.
오청룡은 굉팔의 손까지 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어디 예쁘고 현숙한 색시 없소?”
“제가 알아보지요.”
“하루가 삼추 같네. 이젠 집에 들어가기 싫어. 그렇다고 계속 바깥으로 나돌 순 없잖는가? 집에 아름다운 꽃을 숨겨둔 다음 바깥에서 놀아야지 않겠소?”
“알았어요. 여러 모로 수소문해보죠.”
“옛날 선희만한 녀자면 좋겠는데. 헤헤.”
굉팔은 정욕으로 이상할만치 빛뿌리는 오청룡의 쌍까풀눈과 유들유들하고 퉁퉁한 낯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욕했다.
(에이구, 난쟁이, 뚱보야, 색마야, 개구리 어찌 학의 고기를 먹을 수 있어? 그래, 네놈한테 후처를 안겨주는 게 낫겠어. 경옥의 독살스런 눈치를 보면서 돈을 얻어내다가 하루 건너 아가씨들을 공납하기도 피곤해. 갓 마흔고개를 넘은 녀석이, 저렇게 술만 퍼먹고서도 정욕이 시들지 않아? 어쩜 매일 녀자를 탐내?)
원래 오청룡한테도 현숙한 안해가 있었다. 그러나 오청룡이 주색에 빠져 거의 날마다 곤드레만드레 취해 밤중에야 집에 돌아오는데다가 어데 가서 자주 매독이나 림질 같은 성병을 묻혀오군 했다. 안해는 성병에 감염돼 가출을 자주 하다가 나중에는 오청룡을 버리고 헤여졌다.
굉팔은 오청룡한테 아첨하려고 동분서주했다. 수소문 끝에 옛날 예술단에 있을 때 동료인 사십대초반의 무용수 윤희를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해 홀로 난지 5~6년 되였다.
굉팔은 사전에 윤희한테 거짓말을 잔뜩 늘여놓으면서 오청룡을 춰올렸다.
“오국장은 인물체격이 뛰여난데다가 200평방메터나 되는 고급아빠트에 고급승용차도 있어. 오국장한테 재가하면야 귀부인처럼 호강할 수 있지.”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로 지내던 그녀가 솔깃해하자 굉팔은 철면피하게 혼사말에서도 사기행각을 벌렸다.
“오국장도 안해를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산지 10년이나 되오. 꼭 저를 잘 생각해줄게요.”
그녀는 굉팔의 말을 딱 곧이들었다.
맞선을 본 윤희는 굉팔의 말을 믿었다.
어느 하루, 오청룡과 어쩌다가 점심식사를 함께 하게 됐다.
윤희는 아주 반갑게 따라나섰다.
이게 뭐야?
해볕이 재글재글 내리쬐는 삼복염천에 오청룡이 글쎄 택시도 타지 않고 걸어가자고 하지 않겠는가.
“아니, 여보세요. 고급승용차를 뒀다가 뭘 해요?”
“오, 멀지도 않은데 걸어가기요.”
오청룡은 원래 “차를 세울데도 맞갖잖은데. 술 마시고 차를 운전해서야 되오?” 하고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려버렸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한다하는 정객이여서 그런지 론리사유만은 명확했다. 녀자 앞에서 첫날부터 해석이 구구할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윤희는 울며 겨자먹기로 손으로 해볕을 가리면서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가 했더니 대중랭면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청룡은 굉팔한테서 윤희가 랭면을 먹기 좋아한다는 정보를 미리 정탐해가지고 랭면집으로 데리고 갔던 것이다.
숱한 손님들이 왁짝 떠드는 랭면집에 들어가 마주 앉자 오청룡은 윤희를 보고 말했다.
“무더운데 어떻게 맨 국수만 먹겠소? 맥주나 한잔 마시지.” 하고 말하더니 마른 명태 하나에 고급랭면 두그릇을 달랑 청했다.
진짜 회양콩 한접시에 소주 한잔 마시던 공을기면 어디 이런 현대판이 더 있으랴.
윤희가 몰라 그렇지. 오청룡은 공금으로 먹을 땐 해삼이나 광어회 같은 비싼 걸로 시켜 먹었다. 그러나 자기 돈으로 써야 할 때에는 마른 명태 밖에 시키지 않았다. 어진간하면 기관에서 모두들 “마른 명태”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겠는가.
윤희는 초면강산인지라 마지못해 맥주 한잔 마셨다. 그런데 랭면을 먹으려다가 저가락을 살짝 내려 놓고 새침해서 덤덤히 앉아 있었다.
눈치가 도끼등이여서 그런지 배려심이 없어 그런지. 저 오청룡를 보라. 그녀가 먹는지 어쩌는지 살피지도 않고 혼자 후룩후룩 랭면을 게걸스레 먹어댔다.
한참 먹다가 그녀가 랭면을 먹지도 않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물었다.
“어째 자시지 않소? ”
윤희가 저가락을 들어 국수그릇을 가리켰다.
“파리!”
“양?”
그제야 오청룡은 그녀의 국수그릇에 뛰여든 파리를 발견했다.
“아, 파리구만. 그런 걸 또 무슨 큰 일이나 났는가 했지.”
그는 랭면그릇에 둥둥 떠다니며 날개를 파닥이는 파리를 저가락으로 집어 땅바닥에 훌 던졌다.
“자, 이젠 먹소.”
윤희는 훌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왜 아까운 국수를 먹지도 않고 가오?”
“다신 절 찾지 말아요.”
“뭐라고? 남의 성의도 모르고 그게 뭐요?”
“흥!”
윤희는 코방귀를 뀌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휭 하니 가버렸다.
사후에 굉팔은 황급히 윤희를 찾아가 오청룡과 다시 만나라고 구슬렸다.
“어찌 국수를 한저가락도 안 먹고 혼자 두고 훌 일어난단 말이요? 오국장의 체면이 뭐요?”
윤희는 코방귀를 뀌였다.
“흥! 그런 나그네도 국장인가요? 파리 국장이라 해라. 국가1급무용수를 뭘로 보는가요? 파리 빠진 국수를 다 먹으라고 해요? 인간도 아니더군요.”
듣는게 욕을 먹는다고 굉팔은 코를 떼우고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라 돌아왔다.
사실 오청룡은 굉팔에게서 얻어먹기만 했지. 언제 한번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남을 청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호주머니에 택시비마저 넣고 다니지 않았다. 어디로 가나 굉팔이랑 아래사람들이 쩔쩔 매면서 모셨으니깐 그럴 법도 했다.
그후 굉팔은 오청룡한테 한개 반은 잘 될 괜찮은 녀자들을 소개해줬다. 그러나 오청룡과 몇번 지내보고는 모두 도리머리를 흔들면서 헤여지군 했다. 어느 눈이 먼 녀자가 아무리 국장이라고 해도 녀자를 생각할줄도 모르는 등신을 좋아하겠는가.
시어미 역정에 개 배때기를 찬다고 숱한 녀자들한테 코를 떼운 오청룡은 노발대발했다.
“뭔가? 파악도 없이 쓸데없는 아줌마들을 한드럼이나 소개해 괜히 망신시키잖았어?”
굉팔은 오청룡을 애비 모시듯 선녀음식점으로 모셔갔다.
선화는 하루 건너 찾아오는 단골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복무원을 돌아보면서 “귀빈을 조용한 안방에 모셔라.” 하고 분부했다.
제일 안쪽의 방은 리굉팔과 오청룡의 안방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굉팔은 점심에는 보통 1차로 오청룡을 선녀음식점에 데리고 와서 먼저 개장국부터 대접하였다. 2차로 철주네 노래방에 갔고 3차로 송숙이네 안마방에 갔다. 4차로 보통 순희네 양고기뀀집으로 갔다. 나중에 5차로 아가씨를 데리고 다방에 가서 놀았다. 이건 리굉팔이 오청룡을 접대하는 스케줄이나 다름없었다. 오청룡은 그 수케줄이 기실 목에 걸린 올가미인줄도 모르고 질탕하게 놀아댔다. 보통 5차나 6차 하지 않으면 오청룡은 집에 발길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선화는 전날에 오랜만에 자기 집으로 온 성호를 반갑게 맞았다. 물론 성호를 신랑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에 아직도 성호가 차지한 자리는 컸다.
요즘 그녀는 성호가 탐욕스런 굉팔에 의해 광고회사에서 쫓겨나 무직업자로 됐다는 말을 듣고 쓸쓸히 동정하게 됐고 굉팔을 곱게 보지 않게 됐다.
(웬 돈이 그리 많을 수 있어? 아무래도 공금으로 오청룡을 데리고 와서 개고기를 아가리 메지게 채우겠지.)
그녀는 희번뜩거리는 굉팔의 우멍눈만 봐도 음흉한 놈으로 보였다. 하여 굉팔이 오기만 하면 안방에 “특별히 모시고” 미형몰래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굉팔이 오청룡을 모시고 안방에 들어가자 그녀는 례외없이 미리 장치해놓은 미형몰라카메라 단추를 눌러놓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굉팔은 안방에서 오청룡과 하지 못하는 말이 없었다.
“미안해요. 먼저 개장국이나 들면서 분을 삭이세요.”
오청룡은 개고기를 무드기 담은 접시를 훌 밀어놓으면서 화부터 냈다.
“지금 개고기 맛있겠어? 선녀 같은 미녀를 놓쳤는데.”
굉팔은 실망이 꽉 차 흐르는 퍼러뎅뎅한 오청룡의 네모 번듯한 낯빤대기를 쳐다보면서 우멍눈을 끔쩍이며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바보처럼 웃긴.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해?”
오청룡은 진짜 화났다.
“들어보라구. 이전에도 5만원 가졌다가 일전도 쓰지 못하구 나만 7만원을 얻어먹었다고 처분받게 만들었지? 7만원에서 자네가 2만원을 슬쩍 떼먹고 나한테 몽땅 똥바가지를 들씌워놓지 않았어?!”
“아니, 후에 7만원을 되주지 않았습니까?”
“고까짓 걸. 야, 범수를 총경리를 시켜도 더 가져올 거야.”
굉팔은 억이 막혔다.
“오국장, 해마다 7만원씩 줬는데도 모자라요? 오국장을 접대하는데 적어도 한해에 5, 6만원씩 듭니다. 번마다 경옥의 손에서 돈을 내올 때면 얼마나 눈치보이는지 압네까?”
오청룡도 양보하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자넨 향수하지 않았어? 내 혼자 6만원을 썼는가? 괜히 생사람 잡겠어. 흥!”
그는 목소리를 낮춰 굉팔을 다독였다.
“리총경리, 광고임무를 얼마나 낮춰줬어. 한해에 30만원이나 낮춰줬으면 고까짓 걸 그리 아까와? 김범수로부터 승호, 성호, 해연까지 몽땅 쫓아내줬는데 고만한 대가도 아깝는가? 진짜 하늘 같은 은혜 아닌가? 배은망덕한 놈.”
굉팔은 머리를 숙이더니 오청룡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오청룡은 계속 했다.
“경옥마저 손아귀에 넣지 못한 건 다 자네 탓이야. 왜 고만한 도량도 없는가? 혼자 배 터지게 처먹지 말고 출납원한테도 뜯어먹다가 남은 뼈다귀라도 뿌려주란 말이요. 개도 아가리에 뼈다귀라도 물려줘야 물지 않는 법이네. 이런 도리도 몰라?”
그는 술잔을 들어 굉팔의 잔과 마주치고 굽을 쭉 냈다.
“전번엔 한국으로 도망간 선희한테 다 밀었지만 시름놓지 말게나. 언젠가 선희가 나포되면 백일하에 드러날 게 아닌가? 여기저기 광고비를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챙겨넣은 걸 모르는 것 같은가? 광고주마다 돌아가면서 수사하면 다 드러나. 날 준 척하고 자네 욕심을 적게 챙겼는가? 그래 우에 눈먼 송장이 앉아 있는가 하는가? 정 재미없이 놀면 승호를 데려다 총경리를 시킬 수도 있어.”
굉팔도 맞받아쳤다.
“그래보라지. 고기 죽으면 그물도 찢어진다는 걸 아시우(아시오). 내 입이 터지는 날엔 오국장도 편안하진 못할 걸.”
그는 오청룡이 선희와 관계버린 걸 몰카로 찍어둔 카드를 꺼내들려다가 그만뒀다.
오청룡은 제 쪽에서 억울하다고 술잔을 탕 메쳤다.
“에이, 술맛 없다.”
오청룡은 굉팔이 숙으러들긴 고사하고 맞장을 뜰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 신을 꿰면서 꼭두까지 치미는 화를 가라앉혔다.
“리경리, 윤희라던가?”
“예.”
“불러내 함께 노래방에나 갈가?”
굉팔은 억이 막혀 말상에 우멍눈을 끔쩍이더니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안돼요. 전번에 설궈놓아서. 어쩜 파리 빠진 랭면을 권해요?”
“야, 말도 말아. 내 언제 남을 청해 먹인 적이 있는가? 랭면 한사발이라도 사먹이면 대단한줄 알라 해라.”
“노래나 부를가요?”
“그래? 윤희 말고 예쁜 아가씨들 부르라구.”
“옛!”
가물에 실돌피 같은 허리를 굽신거리는 굉팔을 보고 오청룡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당신, 내보다 이상이잖아. 등신같이 애쓰는게 불쌍해. 당신, 광고는 잘 못해도 하나만은 잘해.”
굉팔은 유들유들한 오청룡의 낯빤대기를 쳐다보았다.
“뭔가요?”
“웃사람한테 아가씨 배치만은 잘한다니까. 그것도 능력이긴 능력이지. 허허허허.”
오청룡은 아가씨를 끌어안을 생각에 굉팔의 짧은 바지가랭이를 부쩍 춰올려줬다.
굉팔은 속으로 욕했다.
(에이, 개자식, 애빈들 이렇게 모시겠느냐?)
선화가 만면에 춘풍이 돼서 그들을 깎듯이 바랬다.
“잘 다녀가세요. 또 오세요.”
“그래, 또 오지. 헤헤헤.”
굉팔과 오청룡이 떠나간 후 선화는 안방에 들어가서 몰카에서 카드를 빼냈다. 이윽고 인차 성호한테 전화를 쳤다…
한편 굉팔은 오청룡을 택시에 모시고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노래방에 가자마자 팁 몇장을 주고 윤희보다 더 예쁜 아가씨를 청해 오청룡한테 안겨주었다.
오청룡은 둬시간 안고 돌아가더니 기분이 좋아 입이 당나발이 돼 맥주를 쭉쭉 들이켰다.
저게 뭔가?
오청룡이 글쎄 아가씨를 끌어안고 마른 명태쪼각을 입에 문채 코를 드렁드렁 곯지 않겠는가!
옆에 앉은 아가씨는 부래지어를 벗어 오청룡의 네모난 낯에 씌워주었다. 오청룡은 코를 드렁드렁 곯다가 꿈인지 생신지 부래지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어허, 향기롭구나.”
저 오청룡을 보라. 글쎄 혀로 부래지어를 쩝쩝 핥아댔다.
“호호호.”
“하하하.”
아가씨들이 그 해괴망칙한 장면을 핸드폰으로 찰칵찰칵 촬영했다.
“찍지 말어!”
굉팔이 손사래쳤다.
“얼마나 행복해요? 예쁜 아가씨를 안고 잠든 모습!”
“영원히 기념할 명장면!”
“호호호.”
굉팔도 피뜩 떠오르는 령감이 있어 그 추악상을 촬영해두었다.
밤도 깊고 아가씨들도 하품을 하면서 언제 가겠는가고 기다리는 눈치였다.
굉팔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부랴부랴 오청룡을 깨웠다.
그러나 오청룡은 깨나지 못했다.
굉팔은 혼자 아가씨들을 안고 맥주를 실컷 마시며 놀았다. 그때까지도 오청룡은 부래지어를 들쓴 채 비스듬히 들어누워 돼지처럼 코를 드렁드렁 곯았다.
한밤중에야 굉팔은 오청룡를 툭툭툭 쳤다.
“여보세요. 오시장, 어서 안마원으로 갑세다. 아가씨들이 기다리는뎁쇼.”
저 오청룡를 보라. “아가씨” 말에 벌떡 일어나앉아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아가씨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브래지어를 황급히 주어치우면서 깔깔깔 웃었다.
웬 영문인지도 모르고 오청룡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잠꼬대 같은 소리를 줴쳤다.
“뭐야? 벌써 안마원에 왔어?”
“아니, 아직 노래방인데요.”
오청룡은 툴툴거리며 황급히 일어났다.
“리경리, 어서 안마원에 가자.”
“예, 오시장.”
굉팔은 열살이나 이상인 자기와 “야, 자” 하며 하대하는 오청룡을 버르장머리 없다고 욕했다. 그러나 아가씨들 앞에서는 오청룡을 “예, 예.” 하고 아첨하면서 “오시장, 오시장.” 하고 잔뜩 춰올렸다.
오청룡은 시장인 척하면서 어깨 으쓱해 개 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렸다.
(더러운 정객! 사기군! 건달! 색마야!)
굉팔은 속으로 억천만번이나 욕하고 또 욕했다. 그는 리속을 챙기려고 오청룡한테 잠시 아첨할뿐이였다. 그는 상전한테 아첨하는 것이야 말로 리윤이 제일 높이 나는 보험이고 지름길이라고 오산하고 있었다.
“팁 주세요.”
“오, 그래?”
오청룡은 굉팔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굉팔이 지페 몇장을 꺼내 건네주자 오청룡은 아가씨들한테 훌 뿌려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안마원에 가서 콱 시원히 놉소-”
아가씨들이 아양을 떨며 바래자 오청룡은 얼마나 급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큰길 쪽으로 비틀거리면서 나갔다.
“왝-왝-에, 퉤!”
오청룡은 큰 길 옆에 물앉아 왈왈 토했다.
그때 어데서 뛰쳐나왔는지 애완견 몇마리가 그의 다리 두새로 토해놓은 개머거리를 빼앗아 먹으며 으르릉거렸다.
오청룡은 취해 애완견을 타고 훌 물앉아버렸다.
깨갱-
애완견이 비명지르며 간신히 다리 두새로 빠져나갔다.
굉팔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노래방문을 쾅 닫고 황급히 오청룡 쪽으로 뛰여갔다. 그런데 오청룡은 개들한테 떠밀렸는지 취했는지 쿵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굉팔이 황급히 다가갔을 때 오청룡은 인사불성이 돼서 코를 드렁드렁 곯았다.
굉팔은 하는 수 없이 둘쳐업고 택시를 불렀다.
저쪽 뒤에서 숱한 아가씨들이 코를 싸쥐고 키득키득 웃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다리를 지날 때 오청룡은 택시 안에 또 개머거리를 왈칵왈칵 토했다.
한참 토하고나자 오청룡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어, 세월이 좋다. 안마원에 가서 가려운데를 씨원하게 긁읍세. 예쁜 아가씨들을 데리고 양고기뀀점에 가야지. 아가씨들을 조용한 다방에도 데리고 가서 한바탕 질탕하게 깔아뭉개면서 놀아야지. 허허허.”
굉팔도 흥을 돋우려고 맞장구를 쳤다.
“어, 진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몰라. 한심한 세월이구나.”
“뭐라고? 가수출신이란 사람이. 쯧쯧, 어쩜 그렇게 예술성이 없어?”
“오국장은 정치만 잘하는가 했더니 예술에도 조예가 깊구만. 노래실력이 이만저만 아니던데요.”
“그래? 숱한 학비를 내면서 맨날 노래방대학에 출근했는데 그만큼도 못하면 뭐야?”
“그렇긴 해요. 허허허.”
그들의 질탕한 대화가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더럽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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