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마다 거울처럼 맑은 물이 자그마한 쪽배를 업고 흐른다.
녀배사공은 강남의 민요를 부르며 힘차게 노를 젓는다.
유람객들은 쪽배에 앉아 강남 수향의 독특한 경치를 구경하면서 흥에 겨워 웃음꽃을 꽃피운다.
춘희는 호텔 창가에 서서 강남 수향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착잡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가은(마끼)의 선택에 머리를 끄덕였다.
(가은은 나를 다이로한테서 빼내려고 애까지 낳아주겠다고 대답했지. 어떻게 그런 엉뚱한 궁리를다 해? 다이로한테서 숱한 돈을 다 얻어내고. 돈으로 일본 기생 사쿠라를 매수해 실험관 수정란을 심어놓았지. 사쿠라 배를 빌어 애를 낳게 할 꿍꿍이야. 쯧쯧쯧.”
그녀는 못내 감탄했다.
“이젠 내 품 안에서 서적 쓰던 어린애 아니지. 지금 애들 머리를 따르지 못해.”
춘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연신 탄복했다.
“어쩜 티격태격하던 애들이 언제 싸웠는가 싶이 화해할 수 있어? 복화 소개해서 가은이 복화네 회사 위생소에 들어가게 됐다는가. 허, 건데 한 위생소에 들어가 또 싸우진 않을가? 마끼가 복화 학교에서 놀림받게 했잖은가. 복화가 넓은 마음으로 량해했다잖는가. 하긴 걔들이 어려서부터 친한 죽마고우였지. 좌우간 복화는 우리 집 신세야 있지. 복화 어려울 때 그래도 마끼가 나서서 아빠한테 소개해줘서 모델이랑 해서 이런저런 돈을 벌게 한게 아닌가.)
춘희는 호텔에서 나와 혼자 소주 졸정원의 참대숲이랑 돌아보면서 계속 허구픈 생각에 잠겼다.
(군철은 저 참대처럼 대바른 놈이야. 회사 전무로 돼 연설하는 거 봐라. 얼마나 당당하고 름름한가. 문걸의 말에 의하면, 시당위에서 군철을 시당위 조직부 처장급 간부로 전근시키려고 개별조직담화까지 했다잖는가. 전국 당대회 대표로 다 됐다잖는가. 그런데 ‘경제파쑈 미국의 통제로 회사가 위기에 처한 관건적인 시각에 회사와 3천여명 직원들을 버리고 시당위 간부로 제발돼 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는가. 회사에서 유치원, 위생소, 헬스방까지 차렸지. 직원들의 아파트도 지어준다지. 직원들을 위해 큰 해결하는 거지. 지금 상해 아파트 한채 얼마나 비싼가. 군철은 애비와는 판판 달라. 자기 안속만 차리지 않아. 그는 국가와 회사, 직원들의 리익을 항상 첫자리에 놓았지. 그러니까 날따라 큰 인물로 떠오르는 거겠지. 가은이랑 이 회사에 입사하기를 잘했어. 어디서나 상전을 잘 만나야 해.)
그녀는 피씩 웃었다.
“군철은 무슨 생각하고 황선희 언니와 내까지 회사 위생소에 들어오라고 할가? 황선희 언니는 인차 위생소 소장으로 부임한다고 하잖는가. 허. 재수 좋은 놈은 뒤로 엎어져도 떡함지에 물앉는다고 하잖는가.”
졸정원은 정원 이름 그대로 정치를 잘 하지 못해 정계에서 밀려난 과거 관리가 수향에 락향해 지었다고 한다.
춘희는 졸정원의 정원과 루각, 호수, 화원을 돌아보며 별 생각을 다 했다.
“군철은 정치를 아주 잘하는 거 같아. 그는 제 애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황선희랑 임하영이랑 다 끌어들여 취직시키지 않는가. 뭐? 하영은 정호 국장한테 미인계를 써서 가무단 부단장으로 됐다잖는가? 정호가 한국에 돈을 부치라고 하영을 위협공갈했지만 부치지 않았단다. 음험한 정호 국장이 하영의 추행을 온 세상에 폭로하는 바람에 하영은 가무단에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였다고 하잖는가. 하영은 순정의 입김으로 군철 전무로부터 회사 공회 문예부장으로 초빙되였다고 한다. 해외와 고향에서 버림받은 이런 저런 사람들이 거의 다 이 회사에 모여든 판이구나. 회사는 량산박처럼 불운한 천하 인재들을 모으는 대가정이라는가. 참 대단한 량산박 대두령이야.”
그녀는 천하 “호한”들이 모인 이 복잡한 회사에 들어와 재밌게 보낼 수 있을가고 한참 동안 궁리했다.
“딸과 어떻게 한 위생소에서 일하겠는가?”
춘희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군철이 하던 말이 귀에 쟁쟁했다.
“우리 조선족들은 한평생 외자기업에 의거해 살수만은 없습니다. 외자기업은 중국에서 파산되면 동남아로 이사가거나 귀국하면 다입니다. 그럼 우리 3천여명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허망 나앉게 될게 아닙니까? 때문에 지금은 위생소를 차리지만 장원하게 타산해 봅시다. 아직 성숙된 결론은 아니지만 우린 장차 자체로 살 길을 모색해둬야 합니다.”
군철은 기실 만약 회사가 망하면 황박사 등 의학인재들에 의거해 국영 제약공장이거나 다른 제조공장이거나 부동산개발회사라도 차릴 예산이였다.
군철은 우멍눈으로 춘희를 정색해 바라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춘희는 대머리와 우멍눈을 여겨보면서 딱 군철의 아버지를 보는상 싶었다.
“제약공장에서는 백신이나 기타 약을 생산하면 어떻겠는지 김박사와 황박사가 가은과 복화를 이끌고 좀 연구해주십시오.”
그러나 춘희는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차 딸을 옆에서 도우려면 남방에 오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고향의 병원에서는 계속 출근했으면 하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또 문걸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춘희는 호수 옆에 수백년이나 나란히 서 있는 한쌍의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졸혼에 대한 막연한 고민에 잠겼다.
“이젠 둘 다 졸혼하고 지내볼만큼 지내봤으니깐. 계속 평행선을 달릴 수야 없지. 우리 저 한쌍의 은행나무처럼 수백년을 오래오래 재미나게 살 수 있겠는가?”
한쌍의 은행나무와 설레는 참대숲이 호수에 비꼈다. 원앙새들이 가늠하기 어려운 풍운을 한 품에 안은 잔잔한 호수에서 쌍쌍이 헤염치며 노닐고 있었다.
춘희는 은행나무 아래 쌍쌍이 헤염치는 원앙새들을 바라 보며 막연한 생각에 저도 몰래 장탄식이 나갔다.
“인간세상에 원앙새 참사랑이 있기나 한가?”
한편, 문걸도 집에서 쏘파에 앉아 오랜만에 권연을 붙여물고 고민의 블랙홀에 빠져 들어갔다.
“이 세상에 참사랑이란 있는가?”
그는 영희와 참사랑을 한데 엮어 생각하기도 싫어 애들한테 고민의 키를 돌렸다.
“군철은 효자야.”
문걸은 군철의 효성에 못내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그 놈이 그래도 길러준 정을 잊진 않았어. 날 양아버지로 효성을 다해 잘 모시겠다잖는가. 내 집도 없이 산다고 이 집도 주었다. 뭐, ‘이 집은 아버지 애나게 그림 그려 산 집이라고 돌려준다.’는가. ‘이젠 황혼에 아들 곁에 와서 복을 누리면서 살라.’고 하잖는가.)
그는 영희와 자손들의 체취가 풍기는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면서 장탄식했다. 저도 몰래 이전에 애를 보면서 고생하던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아, 난 영희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해도 얼마나 사랑했던가? 영희 정호한테 수십년이나 간음당한 것도 모르고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가? 허위로 감싸진 영희와의 참사랑을 지키려고 얼마나 발버둥질쳤는가. 영희 졸혼하고 홀로 자기만의 삶을 살려고 리혼하자고 할 때 나는 참사랑은 대방한테 베푸는 것이라고 여겨 차마 못할 리혼까지 해주었지. 영희 암에 걸리니 나는 유일한 재산 화실마저 팔고 국제인체화전람회에서 탄 상금마저 치료비로 다 주었지. 지어 한국에 나가 건축현지에 가서 일해 치료비로 보태게 했지. 하느님도 무심하지. 저승사자는 영희를 그렇게도 무정하게 빼앗아갔지. 영희, 세상에 참사랑이란게 있소? 어쩜 수십년이나 정호한테 짓밟히고도 속여왔소?)
문걸은 차탁을 탁탁 치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잊어야지. 마음이 괴로울 때면 몽땅 잊는게 좋아.)
그는 한참 후 춘희한테 생각이 닿았다.
“이젠 둘 다 졸혼하고 지낼만큼 지내보지 않았는가. 이젠 미녀로봇이나 베개를 끌어안고 살 순 없지.”
그는 저도 몰래 저으기 괴로워났다.
“이젠 졸혼하고 춘희를 알만큼 알게 됐지 않았는가? 나는 도대체 마음속으로 춘희를 사랑하고 있는가? 오래 지내보면 서로 흠집도 점점 드러나는게 아닌가.”
그는 일본에 가서 춘희와 다이로교수 생활형편을 안 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되였다. 특히 다이로교수 유산을 노려보는 춘희 탐욕스런 집착에 저도 몰래 경악하였다.
문걸은 외까풀눈을 가슴츠레 뜨며 궁리하다가 내심의 갈등으로 해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춘희는 탐욕스런 일면도 있지만 필경 구명은인이야. 내가 혈변을 보고 쓰러졌을 때, 휄체어로 병원 구급실에 밀고 달려가 구급해냈지. 내 삶의 용기를 잃고 자살하려고 혈관을 끊어 피 줄줄 흘러내릴 때도 그녀는 팔을 걷고 자기 피를 수혈해 구급해냈지. 내 몸에는 아직도 춘희 사랑에 넘치는 피가 흐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등산하러 가서 눈구덩이로 빠져 협곡에서 기여나오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해서도 뜨거운 사랑을 고백했지.”
문걸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뒤이어 그는 저도 몰래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건 사랑이 아니고 다 구명은인에 대한 보은감정인가? 춘희 말처럼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의사의 최저한도 인도주의인가? 그럼 우린 그저 의사와 환자 관계인가? 그럴 수도 있지. 그땐 춘희 말대로 다이로교수와의 마음의 정리가 채 안된 처지였으니깐. 춘희는 일본에서 자기 모녀에 대한 다이로교수 은혜에 대한 보은이였지. 결코 사랑은 아니였지. 그녀는 다이로교수 성학대를 견디기 어려워 자꾸 고향에 피해 산 형편이 아닌가.)
문걸은 쏘파에서 우쭐 일어나 널직한 객실과 침실을 거닐었다.
그는 고민의 심연에서 벗어나려고 허우적거렸다.
(군철은 길러준 정과 은혜에 효성을 다하느라고 이리 좋은 집을 주겠단다. 지예와 아래윗집이 돼서 늘그막에 무슨 일이 있어도 부녀간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기도 좋지. 침실도 두칸인데 하나는 화실을 하면 좋겠다. 그런데 보모 만금과 애들은 어쩔가? 만약 춘희하구 살게 되면 필요없긴 한데. 늘그막에 심심하면 취미생활로 그림이나 그릴가? 외손자한테 그림그리기도 배워주고.)
그는 외손자 유림을 생각하자 천륜지락을 누리고 싶은 생각에 울컥했다.
(오늘 그 놈을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꼭 끌어안고 놀아야지.)
그는 그림을 그리자고 붓과 종이도 얻어보다가 그만 두었다.
(에이구, 내 이제 그림을 그려 뭘 해? 늘그막에 그림책이라도 내자고 이러는가? 괜히 또 고생문이 터지지 않는가? 종수를 봐라. 늘그막에 무슨 책을 낼 출판비용을 벌려고 한국에 가서 건축현장에 가서 막일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순간 종수가 얘기하던 고행이 떠올랐다.
종수는 조선족 백년이민사를 쓴 책을 내긴 냈다고 했다. 그런데 책배낭을 메고 책트렁크를 들고 신도림지하철역 층계를 올라가다가 그만 혁띠가 툭 끊어졌다고 한다. 그때 바지멀춤이 훌 내려가 숱한 사람들 앞에서 개꼴망신했다고 한다. 지하철역 매대에 혁띠가 있어 다행이였다고 한다.
“그렇게 애나게 출판해 가져온 책을 드렸는데 읽어보지도 않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마음이 비길데 없어.”
종수가 하던 섭섭한 말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했다.
“그림도 소설책이나 매한가지 운명이야. 화가들은 고상한 예술작품이라고 자화자찬하지. 그러나 누가 민족예술이라고 사 벽에라도 거는가? 민족의 전통 문화와 예술을 위해 고군작전해 예술작품을 창작해도 누가 왼눈으로나 보는가? 이것이 바로 그림과 책의 현주소야. 비극이 아닌가?”
문걸은 붓을 훌 차탁에 팽개쳤다.
순간 눈 앞에 고향 망아산 수림 속 방공호 동굴이 나타났다. 정호가 숱한 아가씨들을 데려다가 간음하던 블랙홀이 아닌가! 권세, 금전과 색을 교역하던 더러운 장마당 블랙홀이 아닌가! 첫사랑도 무참히 집어삼키고 음탕한 트림을 하던 첫사랑의 블랙홀이 아닌가! 처참한 참사랑도 훌러덩 함정에 빠뜨린 허위에 찬 블랙홀이 아닌가!
눈덮인 원시림에 눈구덩이와 절망에 찬 협곡이 나타났다. 미츨한 미인송과 협곡 위에서 란무를 추는 소나무가 부둥켜 안고 흐느낀다. 지하에서 맺은 참사랑의 흔적이 아닌가!
망아산 방공호 동굴, 원시림의 눈구덩이, 협곡이 마구 소용돌이치며 고민과 함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버린다. 그 고민의 블랙홀은 티없이 깨끗한 참사랑을 한입에 꿀꺽 삼켜 무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지 않는가! 참사랑은 고민의 블랙홀에 소용돌이쳐 빠져들어가고 허위와 음흉한 음모를 더러운 가래와 함께 뱉어낸다. 졸혼이란 방패로 눈을 가리고 통간의 신음소리 참사랑의 무덤에 타리대를 치고 앉아 하품을 한다.
한쌍의 황혼 락조는 끝없는 고민의 블랙홀에 빠져 저녁노을에 부채질해 더욱 뻘겋게 불태우고 있다.
희망의 돛배는 저승사자한테 붙잡혀 몇번이나 염라전에 갔다 왔다 하며 서서히 서산 넘어 지평선에서 사라져간다.
원앙새 참사랑은 절망의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며 절망의 미련의 꼬리를 휘둘러친다. 블랙홀에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태풍에 색마가 가발을 벗어쥐고 번대머리를 번뜩이며 음충한 미소를 짓는다.
색마는 우멍한 눈을 부릅뜨고 대성질호한다.
"우둔한 금욕주의자야, 세상에 어디 참사랑이란게 있다고 그래?"
"늙어 썩어빠지기 전에 그때 그때 미녀들을 데리고 즐겨야지. 바보야, 그게 최고 락인 거야. 허허허."
"한평생 문걸을 속인 "조강지처"의 간사한 웃음소리도 간간히 들려온다.
참사랑을 추구하는 사랑의 신이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빼들고 고민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다가 훌러덩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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