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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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중 ‘조선족여성’의 형상
2008년 12월 15일 22시 46분  조회:4670  추천:208  작성자: 김범송

  최근 들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 중국동포 · 조선족여성이 조연 혹은 주역으로 자주 등장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과 중국 간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드라마)에서 (중 · 한)이중정체성을 갖고 있는 조선족(여성)이 출현하는 것은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며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주목되는 것은 영화 · 드라마 속에 부각되는 ‘조선족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인들이 중국동포(여성)에 대한 ‘심상(心象)’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 최고의 조폭조직 보스의 외동딸 아령(서기)이는 조직간 세력다툼으로 잠시 한국으로 피신 왔고, 부친 친구인 (한국)조폭조직 두목의 도움으로 서열 3위 기철의 거처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령의 보호임무를 맡게 된 조폭 기철이와의 갈등과 화해 · 결합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아령의 화려한 배경을 모른 채 ‘시시한 임무’가 불만인 기철 사이에 벌어지는 코믹이야기와 사랑스토리가 영화의 줄거리다. 주인공 아령이의 통역으로 ‘조선족여성’ 연희(현영)가 조연으로 등장한 것이 영화 <조폭마누라(3)>의 또 다른 관심거리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 ‘홍콩여인’ 아령이의 통역으로 등장한 중국동포 연희는 중국 ‘길림성’에서 왔다고 소개되며, 연희(燕姬)의 중국어 이름이 연변의 수부 옌지(延吉)와 발음이 같다는 점이다. 이는 그녀가 어김없는 ‘연변처녀’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준다. 연희의 역은 요즘 한국에서 잘 나가는 섹시스타 현영이가 맡았고, 얼마 전의 KBS(1) 드라마 “열아홉 순정”에서 등장한 ‘연변처녀’ 양국화 역시 미모의 배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소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조선족여성’은 남남북녀(南男北女)의 ‘북한여성’으로 착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영화를 통해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중국동포 ·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조선족여성’ 연희는 ‘카멜레온’식 인물로 묘사된다. 주인공 아령이의 홍콩무술이 진가를 발휘하면서 그 지위가 변화됨에 따라 통역 연희의 ‘지위’도 동반상승한다. 당초 처음 조폭세계를 접촉한 ‘연변처녀’ 연희는 무서워 벌벌 떨지만, (무술고수 확인 후)아령에 대한 조폭들의 ‘공손한 태도’에 따라 통역 연희의 조폭들에 대한 태도도 일변한다. 그녀는 조폭들에게 ‘주인’인 아령과 ‘친구’라고 하면서, 반말하고 무시하며 ‘주인’의 행세를 한다. 이는 ‘호랑이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여우(狐假虎威)’를 연상시키며, 평소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중국동포의 ‘중국인’ · 국민정체성을 통역 연희를 통해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한편 조폭들은 아령이의 말뜻을 자의적으로 해석 · 이역(異域)하면서 호령하는 통역관 연희를 반신반의하면서 믿지 않지만, 결국 아령이의 위세에 눌려 점차 연희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그녀를 무서워하면서 ‘공경’하기 시작한다. 자기의 말을 임의로 ‘통역’하는 것을 눈치를 챈 아령이도 당혹해하지만,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연희를 지지하면서 짐짓 모른 체한다. 이것이 바로 남주인공 기철이가 ‘방자’해진 연희를 무시하면서, 그녀를 통역이라고 하지 않고 ‘전달’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오역(誤譯)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전달하라는 의미이다. 한국인들이 중국동포(통역)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조폭마누라’ 홍콩여인 아령이는 시종 남주인공 기철이보다 보스기질과 무술 등에서 ‘한수 위’이며, 사랑에서도 항상 주동(키스, 거침없는 손찌검 등)이 되는 절대강자로 군림한다. 반면 기철이는 시종 ‘한수 낮은’ 약자로 나타나며, 둘 사이에서 ‘조선족’ 통역 연희가 미묘한 (관계)조정을 한다. 한편 홍콩 무술고수 아령이가 땅콩과 젓가락으로 한국 조폭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리는 엽기적 장면들은 1980년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홍콩무술에 대한 신격화로, 이는 한국인들의 중국무술에 대한 ‘숭배’를 남김없이 드러낸다. 이 또한 최근 작고한 홍콩 무술대가 이소룡(李小龍)이 한국광고에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령이는 기철이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어머니를 확인한 후, 결국 모녀상봉을 포기하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아령이를 배웅하는 공항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사랑은 ‘기약 없이’ 떠나가고 있지만 주인공 기철이는 무덤덤한 반면, ‘이별’을 더 슬퍼하고 애틋해하는 이가 바로 조연 연희이다. 그처럼 믿고 따르던 ‘보스 친구’ 아령이가 떠난 후에도 연희가 종전과 같이 조폭들에게 호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간 위풍당당하던 연희의 기세는 금세 사라지고 조폭들에 대한 태도도 급기야 공손해진다. ‘고국’에 남겨진 연희의 앞날이 근심스럽고 그녀를 기다리는 운명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한 · 중 ‘조폭지간’의 사랑스토리를 코믹하고 드라마틱하게 다룬 한국영화 <조폭마누라(3)>가 한때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한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연변처녀’ 연희는 통역으로서의 분수를 모르고 ‘오역’을 일삼는 교활한 ‘(호가호위)여우’로, 상황에 따라 재빨리 태도를 바꾸는 ‘카멜레온’식의 부정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통역’ 연희의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평소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조선족여성’의 (부정적)이미지와 현실 속 중국동포여성과 영화 속에 묘사된 ‘조선족여성’과의 괴리에서, 현재 한국인들이 이중정체성을 갖고 있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단편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 남은 ‘연변처녀’ 연희는 곧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드라마 “열아홉 순정”에서 주연을 담당한 ‘연변처녀’ 양국화처럼 재벌2세와의 결혼에 골인하면서 ‘부잣집며느리’가 되는 좋은 운명을 맞이할지, 아니면 현실 속 대다수 (재한)중국동포여성처럼 사회적 약자로 전락해 기시와 일상차별을 받는 ‘외국인노동자’로 취급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독자들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시사점’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국인들은 모름지기 불원천리하고 ‘코리안 드림’을 위해 고국을 찾아온 한민족 · 한겨레인 중국동포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을 포용하고 공생공영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필자의 졸론이 사족 · 기우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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