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김 광림의 보스턴통신(9)
벌거숭이 김문학-<김문학 解體新書>(5)
7. 우리 모두의 문제로서의 김 문학
지금까지 4회에 걸친 연재를 통하여 김 문학 저서의 대체적인 내용과 그런 저서들의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김 문학의 인간적인을 모습을 불가피하게 많이 드러냈다. 또 김 문학에 대한 비판과 지지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점도 어느 정도 짚어봤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국경을 넘나들면서 문필활동하는 김 문학의 모습에서 관찰되는 조선족 사회와 관계되는 문제들을 분석해보고 싶다.
필자가 이 연재의 첫 시작에서 김 문학은 조선족의 국제화의 제일 상징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고 적었는데 이 점은 확실하다. 1991년에 일본에 유학하고 대체 97년 경부터 일본에서 왕성한 문필활동을 하면서 일본, 한국, 중국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이 세나라에서 적지 않은 책들을 출판했다. 그런 문필활동 외에 어떤 사회적 공헌을 했는지 필자도 잘 모르나 문필활동을 통하여 동아시아 국경을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들었다는 것은 김 문학의 인간적인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고, 중한일 3개국어를 알고 있다는 점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 김 문학이 중일한 3개국어를 구사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에서 문필활동을 한 것은 조선족 전체에 잠재하고 있는 언어적인 가능성, 국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 문학은 조선족이 동아시아의 국제사회에서 어떤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런 면에서의 김 문학의 선구적인 역할은 존중받아야 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점이다.
그리고 김 문학이 문필활동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인정신, 또는 프로정신, 즉 본인이 얘기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글로서 승부한다는 것인데 그 때문에 그는 항상 글쓰기에 精進해왔고, 지금까지 다수의 저서를 동아시아 삼
국에서 출판했고, 내용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수량상에서는 조선족 지식인중에서 누구도 초과하기 힘들 정도의 수십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이 점에서는 김 문학이 필자도 포함하는 조선족 지식인, 특히는 문필활동을 하는 분들이 본받을 점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싶다. 김 문학의 문필활동에서의 장인정신 또는 프로정신은 일본문인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기도 한데 김 문학이 일본에 유학하면서 배운 점이라 생각하며 조선족 문인들도 이런 점은 일본에서 배우자고 말하고 싶다.
김 문학의 장점을 더 들어보면 이 연재의 「김 문학은 누구인가」의 장에서 이미 언급하다싶이《벌거숭이3국지-일중한삼국비교문화론》,《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신동양삼국비교문화론》, 《섬나라근성 대륙근성 반도근성》등 동아시아비교문화론 몇권은 동아시아 삼국에 대한 비교문화론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특이한 존재로서 주목받는 면이 있고 일부 유명한 문화인들이 평가해주기도 한다. 꼭 엄밀한 의미의 학술저서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김 문학의 지금까지의 문필활동에서 긍적적인 평가를 받고 문화인으로 명성을 남길수 있는 것도 이런 부류의 책들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장점을 말하던 김에 한마디 더 하면 김 문학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책을 내면서 이런 나라들의 출판계와 두루 인연을 맺어왔고 상업성적, 또는 문화적인 저서들은 어떻게 출판을 기획하고 상품판매를 하는지 이런 노하우를 많이 익혔고, 동아시아 삼국의 출판계, 문화계를 이어놓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은 김 문학의 인간적인 귀중한 재산이라 평가하고 싶다.
조선족 전체와 관련하여 김 문학에게서 어떤 점이 더 보이는가?
여러가지가 더 보이는데 수선 김 문학이 여지껏 제일 자랑하고 다닌 동아시아 삼국에 정통했다는 점에 오히려 맹점이 보이고 이것은 조선족 전체가 반성해보아야 할 점이다. 김 문학은 본인이 쓰는 동아시아비교문화론 또 기타 부류의 책들에서 중국, 한국, 일본의 문화는 거의 다 정통하다 싶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책들을 잘 살펴보면 김 문학이 오히려 일본외에는 한국과 중국을 제대로 모르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김 문학의 한국비판서 《한국국민에 고한다!-일본거주 한국계중국인의 통곡의조국비판》,《또 다시 한국국민에게 고한다! -반일이라는 어리광을 그만닥치라》등 책이 진짜 한국을 잘 알고 썼다고 보기 정말 힘들다. 책 속의 내용을 보아도 김 문학의 한국체험이란 입국심사때 불유쾌했다거나, 택시를 탔는데 대하는 태도가 거치르더라거나 하는 자기체험은 극히 제한된 것이고 그 다음은 일본속에서 한국꼬집기를 한 글이거나 한국내에서 한국의 이런 점을 고쳐야된다고 하는 글, 또는 어두운 면을 지적한 글 등을 모아서 한국비판서로서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조선족출신 작가 김 재국이 쓴 《한국은 없다》는 본인이 한국의 실제 체험에 근거하여 썼기에 리얼한 감이 있는데 김 문학의 한국비판서는 그런 리얼한 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비판을 한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여기저기서 뼈껴다 취합했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작 한국인들은 이런 책들을 보고 화도 나지만 조선족으로 한국을 너무 몰라서 그러는구나하여 진짜 한국인이 일본에서 이런 책을 쓰기보다 너그럽게 생각해주는 면이 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취합하기 전의 김 문학의 한국이해란 어떤 것일까? 이런 면에서는 동세대의 다수의 조선족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중국에서 태어나서 오래동안 한국과 직접 접촉한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자라면서 조선족으로서 인식하는 조선이해, 중국의 남조선인식, 북조선의 남조선인식에서 월등히 벗어난 것이 없고 일본에 가서는 일본속의 긍정적인 한국론보다 소위 嫌韓론이라 불리우는 부정적인 한국론을 한국에 대한 지
식으로서 더 많이 접했을 수 있다. 일본에 있으면서 최근에는 한국에 자주 다닐 수 있으나 한국비판서들을 쓸 무렵에는 한국에 갈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실제적인 한국체험이 별로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비판서만이 아니라 한국문화론도 여기서 일일히 논거를 다 들 여유가 없는데 어떤 내용들을 보면 李 御寧선생의 한국문화론에서 차용한 것 같아 보인다. 상대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독창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 중국문화론은 어떤가? 김 문학의 중국문화론은 내용상에서 중국문화의 부정적인 또는 어두운 면을 많이 다루고 있다. 《반문화 지향의 중국인》, 《훈 (混)의 중국인-일본인이 모르는 행동원리의 심층》이라는 제목
에서 나타나다싶이 김 문학의 중국문화론에서는 중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안 생긴다. 《일중비교愚劣론-동아시아의 내분을「超克」하는 방법》에서는 이미 이 연재의 「김 문학이 욕 먹는 이유」의 장에서 언급했지만,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性善論적 인식에 가깝게, 중국,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性惡論적 인식에 가깝게 비교했다. 간단히 구체 사례를 든다면, 김 문학의 《일중비교愚劣론-동아시아의 내분을「超克」하는 방법》의 「제3장 일중비교우렬론」에서 「정직한 일본인과 사기적인 중국인,자기반성적인 일본인과 남의 탓만 하는 중국인,중국의 반문명의 전통적체질,(중국의)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국민성,대륙적 호전성,(중국의)內訌과 自害의 역사」등 분석을 보면 과연 김 문학이 중국문화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원래 사회의 어두움 면을 들어내기 좋아하니 그럴까 하기도 생각하나 일본에 대해서는 좋은 점만 많이 얘기하는 것을 보면 결국 그런 것도 아니다. 일본에서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중국을 싫어하는 보수적인 독자들을 상대로 책을 많이 파려는 商術적인 요소가 충분히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아무래도 중국문화의 깊이를 그리 잘 이해하고 있지 않는 것 같고 피상적인 면에서의 중국의 상대적으로 낙후한 모습을 중국문화로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식에서는 4000년의 찬란한 문화대국의 모습도 나오지 않고 현대중국의 생기발랄한 문화도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김 문학에게서 보이는 이런 점은 결국 우리 조선족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라 생각된다. 연변같은 지역에서 조선어로 교육받은 사람은 조선어는 잘하나 상대적으로 중국어가 약 할때가 많고 중국문화의 깊이를 그렇게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한족지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은 한어를 잘 하고 중국문화에 친숙하나 또 조선어를 잘 모르고 조선반도의 역사나 문화에 어두울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개혁개방이전까지 중국의 조선족은 한국사회를 그리 잘 알지 못했다. 이러고 보면 조선어, 중국어를 다 알고 있어도, 조선반도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지 못하는 약점을 많은 조선족들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필자도 일본에서 대학교수를 한다지만 한국문화를 한국인 이상으로 안다고 자신하기 어렵고, 중국문화에는 아직도 모르는게 너무 많다. 이러고 보면 본인들이 상당히 노력하지 않으면 중국문화, 조선문화 어느 쪽도 반중건중으로 이해하고 말 가능성
이 있다. 조선족이 조선어, 중국어를 알고 일본어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중한일 삼국을 다 정통했다고 자만할 수만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는 두루 통하지만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는 주변인으로서의 인식에 머물러 심층까지 잘 모르고 지날 수 있다.
김 문학 본인은 항상 중일한 삼국문화를 정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는 삼국을 두루 아우르면서 비교하는것은 신선한 감이 있지만 깊이가 그리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남들의 글을 취합해놓은 것이 많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바로 이런 약점에서 오는 것 같다. 이러기에 너무쉽게 동아시아 삼국을 다 안다고 하지 말고 허심하게 동아시아의 서로 다른 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 필자도 한국이 자기의 모국이지만 찾아갈 때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점이 많다. 필자의 한국이해는 아마 한국에 수년이상씩 체류한 조선족들보다 못한 곳이 많다. 그러니 조선족한테는 사실 동아시아 삼국의 문화가 어느 쪽도 이문화라고 생각하고 너무 안이한 자세로 대하지 말하야 한다.
그 다음 김 문학을 조선족 전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김 문학이 잘 얘기하는 越境, 즉 국경넘기가 아직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통하니 동아시아 삼국의 어느나라도 제집처럼 드나들수 있는가 생각하면 그리 쉬운 것도 아니고 각 나라에서 인정받도 성공하자면 각 나라의 현실에 맞추어야 하거나 타협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런 때 각자의 신념이나 지조가 튼튼하지 못하면 여기저기서 그 사회의 현실에만 영합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실리만 채우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김 문학이 일본에서 한국과 중국 비판서를 많이 낸 것은 틀림없이 일본의 보수적이고 嫌韓, 嫌華 감정에 영합하여 책을 쉽게 내고 많이 팔자는데 기본동기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또 한국에서는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책, 중국에서는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책, 최근에는 중국에서 《新丑陋的日本人》이라는 책도 내는 것을 보면 김 문학은 실지는 동아시아 삼국의 어느 나라에도 충성심이 거의 없는 것 같고, 국경을 넘어다니면서 책이나 많이 내고 많 파는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오히려 참모습같아 보인다.
이런 김 문학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도 그럼 나는 100% 그렇지 않는냐 하면 거기에는 말문이 막힌다. 필자에게도 잘 생각해보면 그런 면이 없을 수 없다.
중국 조선족은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조선반도에 모국이 있고 지리적으로도 가깝기에 혈연적, 문화적, 역사의식적인 연대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중한수교이후에는 그 관계가 더 깊어지고 있고, 국적과는 별도로 의식속에서는 중국과 한국(조선도 포함하여)을 다 조국정도로 생각하는 조선족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일본과는 해방전에 36년간이나 식민통치를 받았기에 좋던 그르던 관계가 깊었고 중국의 개혁개방후에 수만명 정도의 조선족이 일본으로 유학하고 진출하면서 일본과 조선족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있다. 이러고 보면 중한(조)일 삼개국을 서로 비슷하게 모국정도로 생각하는 조선족도 확실히 늘아나고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조선족도 많으니 이제는 조선족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어렵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무리 국제화시대라해도 국가와 민족의 장벽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조선족은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아직은 소수집단이고 어디서도 주류사회를 흔들만한 영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더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고 그 사회에 맞추어 살지 않으면 힘들수 있다. 이러는 과정에서 각자의 신념이나 지조가 튼튼하지 못하면 지나치게 그 사회에 타협하려 하고 영합도 하려하는 과정에서 주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 조선족이 언어나 문화적인 면에서 동아시아 국경을 넘기 쉬운 반면에 의식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이런 주체성상실이 찾아올 수 있고, 이런 현상이 보편화되면 동아시아, 또는 더 너른 국제사회에서 조선족은 실리나 잘 챙기고 어느 나라에서도 충성심도 시민의식이 없는 집단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다. 양날의 칼이라고 조선족이 월경하기 쉬운 면과 그 이면에 주체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면, 양 측면을 잘 이해하고 각자의 신념과 지조를 튼튼히 세울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알고 보면 김 문학의 소위 친일언행도 이런 문제와 관계된다고 생각한다. 원래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문화에 심취하는 것은 사실이나 일본의 철저한 우익적인 사상을 김 문학이 마음깊이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에 유학하면서 문필활동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내보려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중국문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책을 내고, 한국을 비판하는 책을 내니 일본의 보수적인 성향의 출판사에서 관심을 가진 것 같고 (혹은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선을 나준것 같아 보인다) 그런 출판사와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한국비판서가 일본에서는 잘 나가고 반응이 좋고 그래서 속편도 만들어 낸 것이라 추측한다. 그런 연장선에서 중국비판서도 여러권 냈다고 할 수 있다. 비판이 과격하여 사회에서 화제를 모을 것을 고려하면서 그 정도까지 나가는 것은 솔직히 조선민족으로서도, 중국인으로서도 양심을 어기고 양측 민족의 질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 생각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대담하게 나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 문학도 무모한 사람은 아니니 중국비판이 적정수준을 넘기전에 일본국적을 취득한 것이 아닐 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문필활동을 좋아하고 저서를 많이 내는데 승부심이 강한 김 문학이 그런데 너무 집착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강해보이는 보수층에 영합해가고 그런 사람들의 지지, 후원속에 한국, 중국비판을 꺼리낌없이 해가고 종국에는 일본의 한국지배, 중국침략문제에서도 어찌 저런 발언이 김 문학한테서 나오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마구 나왔다. 어찌보면 책을 빨리내고 많이 내는데 너무 빠져버리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본인이 걷고 있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필자가 김 문학에 관한 연재를 하면서 올라온 댓글을 보니 「이 사람이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필자의 이 연재가 김 문학에게 귀과 아프고 마음이 아픈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겠으나 그 때문에 김 문학이 자기를 성찰해보고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문필활동이 보다 성숙되고 긴 안목에서 보면 그런 성찰이 있었기에 김 문학 자신이 몇단계 업그레드 됐다고 생각한다면 필자도 공연히 김 문학에게 나쁜 짓만 안했다고 위안을 얻겠다.
김 문학의 친일언행에 대해서 조선족 지식인들에게 건의를 드리고 싶다. 조선족 지식인이면 거의 누구나 그의 친일발언의 소상한 내용을 알게되면 기분이 상하고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김 문학의 이런 발언들이 나온 배경을 보면 그가 일본의 우익사상가로도 보이지 않고, 단지 책을 많이 내고 많이 팔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아 보인다. 혹시 초기에 한국,중국에 대한 책들을 내면서 보수적인 출판사들과 관계를 잘 못 맺아 본인의 의사가 아닌데도 출판사나 주변의 보수적인 인사들의 권유, 또는 강압에 의해 단지 이름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그런 책들을 냈을 가능성도 100% 부정 못한다. 일본출판계에는 필요에 따라 代筆이라는 현상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그의 인간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너무 무게있는 정치적기준으로 이 문제를 고려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나와서 매도하는 것은 상책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각자의 역사관과 민족의식에 맞추어 개인적인 감정표시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필자로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조선족지식인 사회가 집단으로 나서서 이런 문제에 대응하면 국제화시대에 외부세계에서는 이상해 보이고 조선족 지식인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일파이요, 한간이요 하는 통상적인 개념도 본인이 일본국민이 되었을 때에는 의미가 없는 용어가 된다. 어디까지나 조선민족, 중국인일때 이런 개념도 성립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연재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필자가 조선족 지식인 사이에서 진행된 김 문학논쟁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솔직하게 얘기드리겠다.
필자는 1986년에 중국의 동북사범대학 일본학과를 졸업했는데 일본어학과의 1년 선배가 김 문학이었다. 대학교 재학시 같은 외국어학부의 조선족학생들의 모임에서 몇번 정도 같이 참가했던 기억이 있고, 그외에 더 깊은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단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번 김 문학의 침실에 일본의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이 보이기에 아 소설읽기를 좋아하구나 생각했고, 한번은 학과의 게시판에서 김 문학이 조선어로 쓴 나무의 年輪을 보고 착상해서 쓴 짧고 아름다운 시가 보이기에 혹시 김문학이 장래 윤동주같은 시인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해보았다.
서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연락도 없이 지냈것으로 기억하는데 1992년쯤인가 김 문학한테서 전화가 와서 일본교토에 유학왔다하고 연락와서 기회가 있을 때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아마 필자가 재일한국인교수 김 양기선생과 접촉이 있었고, 김 문학이 일본에 가기전에 김 양기선생의 책 한권을 중국에서 번역하면서 필자의 연락처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1998년에 김 문학이 일본에서 한국에서도《벌거숭이3국지-일중한삼국비교문화론》을 출판했다는 소문을 듣고나서 마침 동경에서 활동하던 조선족단체 「천지클럽」(후에 「천지협회」로 개명)에서 필자의 제안으로 중국조선족의 국제사회에서의 성공모델을 소개듣는 자리를 마련하여 그런 성공모델의 강사로서 김 문학과 중국에서 일본에 연구차 나와있던 다른 두명의 조선족 교수를 청하였다. 그러고나서 김 문학에게 갚음을 해주느라고 이틑날 동경시내관광을 안내해주었다. 그 후로는 연말이면 연하장을 주고받거나 김 문학한테서 전화로 연락이 올 때가 있었고, 어느 때인가 히로시마에서 동경에 왔다가 필자와의 관계로 재일연변대학학우회의 술모임에 잠깐 들렀다가 간적이 있었다. 그후 김 문학이 새로 낸 책 두권 정도를 출판사를 통하여 필자에게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쯤인것으로 생각되는데 김 문학이 일본에서 《또 다시 한국국민에게 고한다! -반일이라는 어리광을 그만닥치라》라는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여 잠깐 펼쳐보다가 전체적인 내용이 한국을 상당히 부정적인 것도 있었지만 일본식민지지배를 전면긍정하는 것 같은 내용이 들어있고, 특히 안 중근의 우상을 한국에서 해체해야 한다는 내용을 읽어봤을 때는 일순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내용까지 쓰는가? 정말이지 서점에서 이 책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이미 그 이전에 《한국국민에 고한다!-일본거주 한국계중국인의 통곡의 조국비판》도 읽어봤는데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한국의 허물을 캐내는 책이었기에 읽고서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 때부터 김 문학이한테서 연락이 와도 필자가 소극적으로 대하면서 점점 연락이 끊겨 이제 거의 10년은 만난 것 같지 않다.
조글로에서 김 문학의 옹호론을 열심히 펴는 사람이, 누가 김 문학을 비판하면 김 관웅교수던 필자인던 마구 공격에 나서는데, 이 사람이 김 관웅교수를 비판하는 글에 「애족자의 허울을 쓰고 자신이 눈에 거스리는 사람들을 전부 걸고 넘어지려드는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하던데 필자가 일본에서 10여년을 살아왔는데도 안 중근을 우매한 인간으로 내리깍는 김 문학의 글을 읽고나서 분노를 느낀 것이 사실인 것을 보면 필부에게도 애족심은 있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다. 오늘 이때까지 김 문학의 친일언행이 수많이 조그로에서 공개됐는데도 김 문학의 친일언행에는 한사코 외면하려하고 김 관웅교수나 필자한테 공격을 서슴치 않은 이 사람이 과연 한국이나 중국에서 살 필요가 있는 사람인지 의문마저 든다. 최저의 애족애국심도 없다면 그런 나라에 살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허울로는 조선족이요, 한민족이요 하면서 말이다.
필자는 작년 11월경부터 조글로에 미국에서의 소감을 적은 글을 연재하면서 가끔 중국내의 조선족 소식도 체크해보고 다른 분들의 글도 읽어보고 있다. 그러다가 금년 3월부터 김 문학이 조글로에 등장하여 제일먼저 안 증근의사에 대하여 연재하고 그 다음 조선족에 관한 글과 100년전의 동아시아를 발견해보는 글을 연재했는데 안 중근에 대하여 아주 좋게 평가하는데 대하여 의아하여 일본에서는 안 중근을 내리깍던 사람이 이제는 180도 평가가 봐뀌는가하면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더이상 의견을 제출한 것도 아니고 가끔가다 김 문학의 글을 읽어봤는데 사실 조선족을 논하는 글은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구조선족,신조선족이라는 이런 개념이 왜서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가끔가다가 연변의 김문학비판자들에 대한 공격, 또는 비아냥이 새어나오고 자기자랑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거의 10년전에도《조선족대개조론》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조선족 지식인 사회에 찬반양론으로 불화를 조성하더니 이번에도 조짐은 좋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선족대개조론》의 경우를 보면 본인이 처음부터 의식하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조선족 지식인 사회를 어느 정도 시끄럽게 만들고 분열도 조성하는 면이 있었다. 그 이유는 조선족 사회에 대한 깊은 조사나 분석이 없이 생각을 마구 쏟아내고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자세가 없기때문이다. 본인이 조선족사회에 던진 화제로 논쟁이 생기면 본인도 여러가지 설명을 해가면서 타협점을 찾아보도록 하기보다 던져준 화제를 가지고 조선족 사이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 정작 본인은 일본에서 다른 창작활동에 열중하면서 제 책내기에 바빴다. 그러면 찬반양론이 생기는 자체가 오히려 이상하다. 이번에도 조선족론을 펼치면서 정작 본인이 현재 어떤 국적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기본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시작부터 정직해보이고 본인도 할말 안할 말 가려하겠는데 그런 절차가 없이 시작하니 내용이 헸갈릴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필자는 미국에서 자기 공부가 바쁘니 조글로에 원고를 제때에 보내지 못하고, 조글로에 들어와 보지 않은 기간도 꽤 있었다. 그러다가 금년 8월부터 조글로에서 어느 사람이 김 문학에 대한 열띤 변
호를 자주 하기에 차차 그 변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김 관웅교수가 중국조선족문화통신에서 김 문학비판을 하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필자가 일본에 오래동안 있었다하여 김 문학의 저술활동의 내용을 소
상하게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여서 사실말이지《친일파중국인에 의한 참을수 없는 일본질책론-「반일」에 미친 중국,「우호」를 구걸하는 일본》이라는 책이 2004년에 김 문학에 의하여 일본에서 출판된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생각을 바꾸어보면 이런 책들이 일본에서도 별로 화제를 모으지 못하여 필자도 전혀 들은봐가 없었던 것이다. 조글로에서 김 문학을 옹호하는 사람의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면서 차차 그런 글에 댓글형식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특히 8월21일에 「김 문학 비판과 죽이기」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나서 분노가 치밀어 올았다, 김 문학이가 분명히 일본에서 욕먹을 책을 적지 않게 쓴 것으로 아는데 어찌 조선족사회에 나와서 이렇게도 당당하며, 그것도 조선족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 글을 마구 쏟아내고, 그런데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변호에 나오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그 때문에 참지 못하여 그 사람의 글에 댓들도 달았다. 그 직전부터 이 사람의 김 문학옹호론에 반대의견을 표시하는 댓글이 많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이런 형식으로는 서로 의견이 평행선만 달리겠다 생각하여 조선족 지식인들이 김 문학의 저술활동, 특히는 일본에서 하는 저술활동의 전체적인 상황을 알고나서 서로 빗나가지 않고 초점에 맞춘 논쟁이 필요하겠다 생각하여 일본어판 아마존닷컴에서 찾아보니 김 문학의 일본어저서는 대체 다 소개가 올라와 있었기에 그것을 년대별로 표제사진을 올리고 제목과,출판사, 출판년도 등을 번역하여 조글로의 필자의 미니홈형식으로 올렸다. 이렀게 함으로서 김 문학의 일본어저서의 대체적인 상황은 알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댓글이 많이 올라오고 반응이 좋았지만 표제사진까지 올린 것이 저작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지 하는 우려가 있었고, 아무래도 대학교 1년 선배되는 분의 찬반양론에 깊게 개입하는것이 좋을 것 같지 않아서 약간한 설명을 한후에 조글로에서 내렸다.
그랬더니 생각 외로 조글로에서 김 문학옹호론을 열심히 펴는 사람이 필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소신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그 글을 미국의 어느 조선족 사이트에서 옮겨가서 거기서도 일시적으로 필자를 기회주의자다. 이게 학자양반들의 진모습이다, 자신이 없어서 그런다 하고 욕설도 꽤 퍼부었다. 김 문학 본인도 김 관웅선생을 비판하는 글에서 필자가 자라목을 움추러드리듯이 숨어들었다는 표현으로 비난했다. 필자가 김 문학에 대한 배려가 있어서 그만두었다고는 왜 생각못하는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도 김 문학을 둘러싼 논쟁이 좀처럼 사라지는 모양이 없이 조글로와 중국조선족문화통신, 그리고 정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의 어느 조선족 사이트에서 끈질기게 지속됐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한 것이 조선족 지식인들이 할 일도 많은데 언제까지 김 문학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반목해야 하는가? 이런 논쟁이 생기게 되는 원인은 근본적으로 김 문학에게 있지 않는가? 처음부터 조선족 사회에 진솔한 마음으로 다가오고 자신을 과대포장한 이미지로 나타내지 않고,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었더라면 이렇게 부질없는 논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많이 생각해보다 필자가 일본에 오랜 생활해왔으니 일본의 상황에도 익숙하여 한번 마음먹고 조선족 지식인 사회에 김 문학의 진실한 모습을 알려주자고 결심했다.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과대포장된 허상이 드러날수 있고 허물도 드러날 수 있으나 김 문학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것이 잘 모르면서 마구 치켜세우거나 또 방향이 꼭 정확하지 않은 비판을 하면서 조선족 지식인 사회가 서로 시간을 소모하고 반목하기보다 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약간의 준비를 거쳐 9월30일부터 김문학에 관한 연재를 조글로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런 연재를 해가면서 필자자신도 김 문학의 저술활동에 대하여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다수였다. 그전까지 일본에서 필자도 자기 사는 일에 바쁘다니 김 문학이 몇권 정도의 책을 쓴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쓴 것은 정말 몰랐고 욕 먹을 책이 이렇게 많은 것도 8월20일경에 일본어저서목록을 만들어보면서 처음 알았다. 김 문학이 일본에서 일본국적에 가입했다는 것도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고 본인의 책표제에 나와 있기에 안 사실이다.
이 연재를 쓰면서 마음속으로는 쉽지 않았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을 그것도 면목을 아는 사람을 내가 무슨 정신에 이런 연재를 하는지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특히 세번째회의 연재가 나가고나서 어느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의 댓글에 김 문학과 대학교 선후배같은데 그런 것도 언급없이 연재합니까? 하는 질문을 듣고서는 혹시나 김 문학씨 처가 아닐까 하면서 마음이 심하게 동요됐다. 또 조글로에 올라와 있는,서울에서 이광수 차녀와 같이 찍은 사진에 김 문학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오기에 김 문학이도 일본에서 쉬운 인생이 아니였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연재를 하는 자신이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아무래도 쓰던 연재를 도중에서 팽개칠수는 없고 그래서 이제 더는 김 문학의 사진을 보지말고 이 연재를 마치기로 했다.
필자가 김 문학에 대하여 조선족 지식인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다 알렸다. 바램은 이 연재가 계기가 되어 김 문학논쟁이 빨리 종결되고 각자가 서로 보다 중요하고 생산적인 일에 매진할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도 너무 시간이 바쁘고 할일이 많으니 김 문학의 이 연재를 마치고나서 김 문학논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 논쟁과 관해서 꼭 필요한 질문에는 대답하겠으나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논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마지작으로 조선족지식인들이 이제 김 문학에 대할 때 이런 自問을 먼저 해보았으면 한다. 나라면 김 문학처럼 많은 책을 동아시아 삼국에서 낼 수 있었겠는가? 또 김 문학처럼 여러 나라 국경을 넘나들면서 나도 완전무결한 인간으로 남아있었을 수 있었겠는가? 물론 필자도 이런 自問을 하면서 김 문학에게 대할 생각이다.
(이상 연재를 마칩니다)
2010년10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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