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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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궁의 선녀 상아가 여기에 묻혔다니?
2015년 10월 13일 22시 48분  조회:2621  추천:2  작성자: 김호림
(고조선계렬4)
원제: 월궁月宮에서 하계下界한 전설속의 선녀


갑자기 머리에 혼란이 어마지두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산정의 거석으로 쌓은 옛 무덤의 주인은 상아嫦娥라고 우리 일행을 안내한 신씨가 거듭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방금 지나온  괴성각魁星阁에 별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우당탕 하고 들리는 것 같았다. 아예 너럭바위에 파인 돌구멍을 진짜로 하늘의 북두칠성이 떨어진 자리라고 고집하면 그러랴 싶었다. 이거야말로 어린이집에 꾸며놓은 동화이야기의 그림 세상이 아닌가…

“정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 대대손손 전해 내려온 이야기이지요.” 신씨는 일행의 의문을 어딘가에 가둬버리려는 듯 이렇게 구구절절 못을 박고 있었다.

도대체 천년을 내려온 전설이 어디까지 허상일까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신씨가 말하는 상아는 전설에 등장하는 선녀이기 때문이었다.

서한西漢 시기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람명훈淮南子․覽冥訓》에 이르기를, “예羿가 서왕모西王母에게서 불사약을 얻었는데, 항아가 이를 훔쳐 달에 날아갔다.” 이에 따라 항아는 월궁에 선거仙居하는 선녀로 달과 함께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훗날 이 항아恒娥가 상아로 달리 불리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세간의 불문율로 되고 있던 이상한 금기 때문이었다. 봉건사회에서 임금과 어른의 이름은 직접 부르거나 쓸 수 없었다. 그런데 한나라 문제文帝의 이름이 유항劉恒이었으며, 이 때문에 ‘항아’는 선녀일지라도 부득불 이름을 고쳐 불러야 했다. 항구할 ‘항恒’이 영구하다, 오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같은 의미의 항상 ‘상常’을 썼다. 그래서 ‘항아恒娥’는 ‘상아常娥’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또 상아의 성별에 따라 항상 ‘상常’의 왼쪽에 계집 ‘여女’ 변을 붙였으며 이로 하여 ‘상아常娥’는 또 ‘상아嫦娥’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중국 한자에는 이로써 항아 ‘상嫦’이 새롭게 출현한다. 이 글자는 단지 상아의 이름에만 쓰이며, 상아가 궁전을 짓고 살고 있다는 달의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이름만 달랑 바뀌었으면 또 모른다. 이 상아가 하늘의 달이 아니라 해발 250여m의 자그마한 야산에 묻혀있다니… 그야말로 상아가 현실세계에 깜짝 나타났는지 아니면 우리가 전설 속으로 뛰어들었는지 잠깐 혼돈이 생긴다.

얼마 전 바다에서 불어온 강풍으로 산길의 여기저기에 쓰러진 나무들이 한결 혼란스런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산의 이름 00은 ‘하늘의 누각’이라는 의미이다. 이름만 그대로 풀이한다면 선녀의 ‘궁전’이 있을 법한 명소인 것이다. 00이 멋진 이름과는 달리 세간에 별로 알려있지 않는 이유를 인제 비로소 알 것 같다. 정말이지 “신선은 숨어야 하고, 용은 날아올라야 한다.”는 옛말의 진의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원체는 비석에 상아의 무덤이라고 밝혀있었다고 합니다.” 신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무덤 앞에 장승처럼 서있는 거석 앞으로 다가섰다.
“40년 전에 무지막한 ‘홍위병’들이 여기까지 올라와서 비석의 옛 글자를 뜯어버렸지요.”

아니나 다를까, 거석에는 손바닥 크기의 부위를 일부러 도려낸 흔적이 있었다. 정으로 찍어낸다고 해도 꽤나 품이 들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이 자리에는 올챙이처럼 비뚤비뚤한 옛 문자가 여러 개 음각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을의 노인들은 이 옛 문자가 바로 무덤의 주인인 ‘상아’의 신분을 밝히고 있었다고 전한다.

어쨌거나 상아무덤의 ‘묘지명’은 인간계의 ‘악귀’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상아는 진짜 한 올의 연기로 되어 천계의 ‘월궁’으로 날아올라갔던 것이다.

뒷이야기이지만, 옛날부터 ‘상아’의 무덤이 있는 00산에는 무당 귀신이 현령顯靈하는 등 신령함이 깃들어 있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지금도 산의 나무 한 그루에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00산에 오른 홍위병들은 외지의 젊은이들로, 이곳에 ‘낡은 사회의 잔재’인 고대 유적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달려왔다고 한다. 산길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험한 서쪽비탈을 타고 00산에 올랐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으로 만난 유적이 바로 상아 무덤이었던 것이었다.

솔직히 홍위병들이 동쪽으로부터 시작된 산길을 따라 00산에 올랐더라면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나중에 적석총의 무당이 ‘현령’하여 돌탑에 모인 홍위병들을 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현령하는 재주는 선녀에게 없지 않았을까.”
“정말로 상아는 여기가 아니라 월궁에 있었던 모양이네.”
“…”

일행은 바지에 묻어난 풀잎을 무덤가에 털어냈다. 그러나 옛 무덤의 주인이 자칫하면 천년의 미스터리로 될 수 있다는 아쉬움은 종내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홍위병들은 옛 무덤을 파헤치지는 않았다. 거석으로 쌓은 큰 무덤을 판다는 것은 전문 도굴자도 아닌 그들에게 엄청난 토목공정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들은 무덤 비석에 새겨진 옛 글자를 찍어내는데 그쳤던 것이다. 상아 무덤과 나란히 북쪽에 있던 예羿의 무덤도 이와 똑 같은 액운을 당하며 ‘묘지명’이 훼손된다.

이 예 역시 상아처럼 상고 시기의 전설로 전하는 유명한 인물이다.

선진先秦 시기의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은 “요堯 때 십일十日이 동시에 나타났으며, 요가 예에게 십일十日을 쏘게 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서한西漢 시기 허신(許愼, A.D.58~A.D.147)이 저술한 《설문해자說文解字》도 예는 당요唐堯 시기의 사람이며, 그때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출현했는데 예가 아홉 개를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침 천대산의 북쪽에는 당요가 동쪽을 순시할 때 축성했다고 전하는 요왕성堯王城이 있다. 상고 시기의 이 두 유명한 인물은 문자 기록뿐만 아닌 실물의 유적에 실려 가지런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 예의 후손 가운데서 한 갈래는 대륙 서남쪽의 오지의 귀주성貴州省에 문득 나타난다.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묘족의 후예로 구분되고 있지만, 그들은 묘족과 별개의 각가인(革家人, 人자 변이 있는 革)라고 자칭한다. 그들은 특이한 모자 모양에 자기들의 성씨를 분명히 알리고 있다. 여성들의 붉은 모양의 둥근 모자에는 가운데 홈이 만들어져 있으며 술이 달린 나무 꼬챙이가 꼽혀있다. 붉은 모양의 둥근 모자는 태양을 상징하고, 술이 달린 나무 꼬챙이는 시위에 얹힌 화살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륙 서남쪽에서 살고 있는 이족彛族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원래 족명族名에 오랑캐 이夷를 쓰던 동이 계열의 부족이었다. 이족의 민간전설에는 특별히 그들의 선조 예를 칭송하는 시가가 들어있다.

이런 특이한 복장과 전설은 예의 후손들이 삶의 옛 터전이었던 강소성江蘇省과 산동성山東省 등 지역을 떠나 대륙의 다른 쪽으로 이주한 행적을 견증하는 실증물이다.

이 예는 글자 오랑캐 이夷를 만든 활과 하나로 이어진다. 전국(戰國, B.C.475~B.C.221) 시기의 사서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이예작궁夷羿作弓” 즉 오랑캐 부족의 예가 활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때의 이夷는 한나라 때부터 동방의 외국인을 이르던 훗날의 통칭이 아니라 중원의 동쪽인 황하의 중하류 지역에서 살던 주민 즉 동이부족을 이르는 말이다.

거두절미하고, 오랑캐 이夷 자체가 바로 큰 ‘대大’자와 활 ‘궁弓’으로 이뤄져 있다. 또 사람 ‘인人’이 등에 활 ‘궁弓’을 메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세계 여러 지역의 신화나 전설에서 활과 살은 태양과 태양신과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동이부족의 수령 예가 태양신의 전령傳令으로 간주되는 건 당연지사이다. 산마루의 부족 회의장소에 있는 ‘추장’ 전유물의 돌 의자에는 바로 이 전령의 상징인 듯 빛을 사방으로 뿌리는 둥근 태양이 휘호처럼 음각되어 있었다.

태양은 양을 대표하며 달은 음을 대표한다. 음양합일은 남녀합일을 상징한다. 결국 태양신의 전령 예와 월궁의 선녀 상아가 부부로 간주되는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현지에 구전하는 이야기가 한결 재미있다. 이에 따르면 상아는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에 도망한 게 아니라고 한다. 옛날 수신水神 하백河伯이 상아를 아내로 빼앗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아는 하백의 시달림을 피하고 또 남편 예가 안심하고 해를 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득불 불사약을 먹고 달에 날아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를 또 후예后羿라고 부르는데요, 그게 아니라고 합니다.” 신씨는 무덤 주위를 돌면서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일행에게 난데없이 이렇게 찬물을 끼얹는다.

산의 지리에 익숙한 그는 자주 현지를 답사하는 사람들의 안내인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중에는 고고학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귀동냥하여 익힌 지식은 인제 웬만한 학자들의 뺨을 칠 정도였다.

“무덤의 주인은 대예大羿라고 부른답니다. 후예后羿는 동명이인이라고 하지요.”

사서 《좌전左傳》에 따르면 후예는 또 유궁국有窮國의 국왕이라는 별개의 인물이다. 유궁국은 부락 형태를 벗어난 방국方國이다. 동이부족은 한시기 산동성 중부의 태산泰山 주변에서 부락이나 방국方國 등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방국은 안정하고 독립적인 경제실체로서 초기 도시연방 식의 원시국가이다. 방국 유궁국의 세력은 나중에 크게 늘어났으며 한때 하夏나라를 지배하기에 이른다. 하나라는 중국 사상 최초의 왕조이다.

일각에서는 유궁국의 국왕 예가 활쏘기의 영웅이었던 선인先人을 흠모하여 후예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后는 상고 시기 특히 주周나라 이전에 군주, 제왕이라는 의미로 쓰였으며 그래서 후예는 예족羿族 제왕의 신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맞다. 《좌전左傳》의 명편 〈효지전崤之戰〉에 “기남령, 하후고지묘其南陵, 夏后皐之墓”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인즉 “효산崤山의 남쪽은 하나라 군왕 고의 무덤”이라는 의미이며, 여기에서 나오는 ‘후后’는 바로 제왕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제왕 후예가 흠모했던 영웅 대예 역시 실존한 인물로 해석되고 있다. 대예가 해를 쏘아 떨어뜨린 전설은 후손에 의해 신격화되었을 뿐이며 기실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 아홉 해는 실은 동이부족의 여러 부락을 의미하며, 대예가 아홉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것은 이런 부락들과 싸워 하나로 통일시켰다는 것이다. 또 아홉 해는 하늘의 기이한 현상인 해무리의 허상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상아의 무덤 그리고 이 무덤과 나란히 있는 00산 대예의 무덤은 선녀와 영웅의 실존 설에 무게를 더해 주고 있는 셈이다.

조금은 전후가 바뀐 느낌이 들었다. 해를 쏘아 떨어뜨린 대예와는 달리 유궁국의 국왕으로 있던 후예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와중에 이 후예의 고향은 덕주德州라는 설이 우세하고 있다. 덕주는 00산에서 동북쪽으로 약 450㎞ 상거한다. 덕주를 흘러 지나는 감하減河의 기슭에는 후예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감하는 홍수 배수로인데, 약 50년 전에 인공으로 만든 물길이다.

00산을 내린 이튿날 우리는 후예의 조각상 앞에 섰다. 태양을 겨눠 활시위를 만궁으로 당기는 후예, 그러나 정작 태양을 떨어뜨려야 할 화살은 조각상에서 빠뜨려 있었다.

“제일 중요한 이 화살처럼 진실을 빠뜨렸다고 말하는 것 같구려.” 일행 중 누군가 감하에 낙엽처럼 떨어뜨리는 말이었다.

누가 이 조각상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후예의 정체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는 것. 기실 후예는 대예와 한 시대의 인물이 아닌 후손이며, 그래서 후예가 대예처럼 태양에 활을 겨눴다는 자체가 거짓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웅 예가 전설이라는 이미지를 풍기 것 같네.”

그러나 한 여름 덕주의 푸른 감하에는 잔물결도 일지 않고 있었다. 고향에서 그렇듯 추앙하는 후예가 결국 전설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만나니 솔직히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설은 감하의 기슭에서 또 하나 생겨나고 있었다. 대예와 후예가 동명이라는 이유로 두 예가 동일한 일인一人으로 와전됨에 따라 상아가 본의 아니게 일처이부一妻二夫를 하고 있는 것. 상아는 상고 시기의 인물 대예 뿐만 아니라 하나라 시기의 인물인 후예의 아내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상아는 후예의 고향인 덕주의 ‘며느리’로 버젓하게 불리고 있었다.

하늘의 달에서 선녀가 내려오니 지상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책     [박달족의 이야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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