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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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과연 모든 망각은 죄다 아름다울까?
2006년 01월 11일 00시 00분  조회:4508  추천:50  작성자: 김관웅
잡문

과연 모든 망각은 죄다 아름다울까?

김 관 웅




금년에 86세인 나의 아버님은 일제시대를 살아온 분인지라 비록 소학교문앞에도 못 가보셨지만 일본말 구두어수준만은 우리 대학의 일본어학과의 교수들도 찜 쪄 먹는다. 아버님의 말씀에 의하면 일본인들은 우리 조선사람들의 성격을 두고 늘 이렇게 나무람하셨다고한다.

<<朝鮮人はあまりしつこい!>>

이 일본말을 우리 말로 번역하면 <<조선사람들은 너무나 끈질겨!>> 혹은 <<조선사람들은 너무나 오기가 강해!>>라는 말이 된다.

조선사람들은 일본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끈질기고 오기가 강하다.

한국의 학자 김룡운은 <<붓과 칼--조선인과 일본인>>라는 책에서 <오기와 앗싸리>는 소제목을 달고 조선사람의 끈질긴 <오기(傲氣)>와 일본인들의 맺고 끊는듯한 <앗싸리(あっさり)>에 대해 재미나는 비교를 한적 있다.

일본인들은 싸우다가도 지면 후회 없는 항복을 한다고 한다. 조선말로 번역할 수 없는 일본말중에는 <<마잇다(參った)>>가 있다. 굳이 조선말로 번역한다면 <<항복한다>> 혹은 <<졌다>>라고나 할까? 그러나 <<마잇다>>의 뜻은 단순히 항복했다거나 졌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항복하고 졌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절대로 마음속으로라도 대항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이다. 칼부림을 일삼는 사무라이가 주축을 이룬 일본문화속에서 굳어져온 일본인들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칼 앞에서의 항복은 철저해야 한다. 눈 깜짝할 새에 내려와서 썩뚝 목을 베는 칼 앞에서 오기와 끈질김이 한 민족의 보편적인 성향으로 형성될 여지란 있을 수 없다. 칼을 쳐든 강자 앞에서의 항복은 언제나 추호의 에누리가 있어서도 안 되는 법이다.

1945년 일본패망후 일본점령군 사령관으로 있었던 맥아더장군은 <<일본인은 약자에게는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비굴하다>>라고 지적한 적 있다. 힘 센 자에게는 <<마잇다>>함으로써 철저히 항복하고, 힘없는 자에게는 거꾸로 자기들처럼 에누리 없이 <<마잇다>>할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에 의해 패한 조선사람들은 반항은 유난했다. 고종황제의 칙령을 받들고 헤그만국평화회의에 가만히 참가한 조선왕조의 밀사들, 할반역두에서의 이등박문을 사살한 안중근의사의 장거, 청산리,봉오동전투 그리고 20년대 이후 중국 동북과 관내의 상해, 중경 등지에서의 독립군, 항일련군의 치렬한 반일항전.....이중에서 동경의 사꾸라다몬에서의 리봉창의 천황저격미수사건, 윤봉길의사의 상해홍구공원에서 작탄투척사건, 김일성을 비롯한 수많은 공산주의계렬의 반일투사들의 피어린 반일투쟁에서 보여진 끈질긴 저항정신은 일본인들의 <<마잇다>>정신과는 완전히 다른것이였다. <<을사조약>>에서 이어지는 소위 <<일한 합방>>으로 하여 완전히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저항하는데 대해서는 일본인들은 저들의 <<앗싸리>>한 <<마잇다>>문화로는 리해할래야 리해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조센징와 아마리 시쯔꼬이!>>를 련발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싸움에 관련하여 조선사람들의 감정을 잘 담은 독특한 말로 <<오기(傲氣)>>가 있는데, <<마잇다>>를 조선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만큼 이 말에 알맞는 일본말은 없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른바 <<오기(傲氣)>>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으나 단순히 이런 뜻만은 아니고 진 사람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나중에 보복할 것을 다짐하는 그러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어떤 곤경과 압박속에서도 똑똑히 자기의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는 어려운 력사속에서 터득한 조선사람들의 슬기를 담은 말일 것이다. 물론 조선사람들은 이러한 악에 바친 태도를 미덕이나 미학이라는 낱말을 붙혀 가지고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학대를 받을 때마다 이처럼 변형되는 것은 층분히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조선민족이 외적이 쳐들어 올 때마다 일본인들처럼 앗사리하게 <마잇다>를 선언하고 겉으로나 속으로나 죄다 외적앞에 복종을 했더라면 오늘의 조선민족이 있을리 있겠는가. 외적의 침략의 죄행을 망각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외적을 포옹했더라면 우리 민족이 어찌 오늘날까지 세계민족의 수림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자라나는 후대들을 교육할 수 있겠는가.

적아간의 모순투쟁속에서 과거를 망각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배반이다. 그러면 자기내부의 모순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원칙과 시비를 무마하는 망각은 내부의 단결을 도모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불리하다. 확실히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추호의 반성도 하지 않는 그런 자들과 그런 자들이 저지른 비렬한 짓거리들을 망각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이를테면 한 사기군이 자기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한 집단의 명성을 더럽혔거나 남의 칼을 빌어 대방을 죽여버리자고 밀고를 했거나 그른 것을 옳다고 오래동안 주장했지만 추호의 반성의 기미도 없는데 이런 것들을 죄다 망각하라고 권장하는 것은 무슨 동기에서인가?

이런 무원칙한 망각을 권장하는 진정한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 밀고자들이나 리간쟁이나 사기군들에게 가장 귀 맛 좋게 들릴 말이 바로 <<망각의 미학>>이 아닐까.

과연 망각은 죄다 아름다운 것일까?

우리 민족의 오기나 끈질김을 구태여 <<미학>>이라는 거창한 말로 미화할 필요가 없겠지만 망각을 <<미학>>이라는 말로 미화하여 권장할 필요 또한 없는 줄 안다.

2002. 8. 4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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