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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17.
계절은 드팀없이 찾아와 새해ㅡ 1897년도의 단오가 되었다. 산야에 록음이 우거지고 새들이 우짖었다. 하늘이 유달리 맑고 좋은날씨였다. 여기 북방의 함경도는 봄파종을 다 끝내고 맞이하는 천중가절(天中佳節)이라 다들 시름놓고 이 명절을 즐겁게 쇠려했다.
처녀들과 젊은 각시들은 식전부터 창포탕(菖蒲湯)을 만든다 창포꽂이(菖蒲簪)를 만든다 분주스레 돌았다. 창포를 캐다가 그 잎을 물에 넣어 끓여서 머리를 감으면 머리숱이 많아진다나, 창포뿌리를 깎아서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으면 머리가 창포같이 잘 자란다나, 그렇다고 창포같은 머리태라는 이야기까지 생겼다나.
채희연이는 기학(夔學)이가 깎아 만든 창포비녀 량 끝에 연지칠을 했다. 그러면서 기학이보고 왜 글자는 아니새겼는가고 했다.
《오, 그렇지! 이것봐라, 내가 그만 깜빡!...》
기학이는 벌씬 웃고나서 다시받아 거기에다 수복(壽福)이라 두 글자까지 곱게 새겼다. 그러고나서 그것을 정히 희연의 머리에다 꽂아주었다.
채희연의 풍염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여났다. 무르익은 홍시감이랄가, 그 세월에 녀자나이 16살을 넘기면 과년이라 남의 말밥에 오르기 첩경이였다. 하건만 그따위 비난같은 소리는 귓등으로 넘기면서 지금은 오로지 장차 남편될 사내의 불타는 학구욕부터 원만히 풀어주자는 희연인지라, 제 욕구는 내내 가슴심처에 묻어 놓고 감내하는 약혼녀인지라 그 모습이 오늘따라 별스레 아름답고 참신해보였다.
실로 간단치 않았다! 희연이는 20살돼여야 결혼하리라는 기학의 결심을 믿어주면서 지금 다소곳이 따르고있는 것이다.
기학의 큰할머니는 이해에도 명절뵘으로 맛이 향긋한 쑥떡을 해서는 장차 손부(孫婦)될 희연이가 오면 먹게 따로챙겨놓으면서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것이였다.
《넌 식전에 어디가서 그리두 오래있었냐?》
《창포캐러 앞개울에 갔다왔어요. 》
기학이는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얘야, 이 할미가 어느때까지 기다려야하니? 가깝하구나.》
《손부맞이 늦어서요?...할머니, 고마운 할머니! 네해만 더 기다려요, 그러면야 세상 제일 착하고 고마운 할머니가 되시죠.!》
《그만해라, 그눔의 고맙다는 말대접에 상다리부러질라!》
큰할머니는 눈을 흘기고나서 웃었다.
기학이도 따라 씽긋웃었다.
매양그러듯 이날아침도 세 식솔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아침을 치렀다.
올단오절도 이왕년과 마찬가지였다.
마을동쪽 벙퍼짐한 모래둔덕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놓았고 그 가까이에 씨름터를 잡았다. 올해도 북쪽강과 남쪽강사이의 안농, 농포, 안원 세 마을은 중간에 위치한 금희동에 모여 함께 명절을 쇠기로 했다.
상추이슬로 분바르고 창포궁궁이를 머리에 꽂고 저마다 명절차림을 곱게 한 꽃같은 처녀들과 젊은 아낙네들이 그네터를 찾아간다. 시골명절이 더 즐겁더라고 소문이 나서 저 먼 경원(鏡源)서까지 모여드는데 부중의 밥술이나 먹는 집 자제들, 한량들, 왈짜들, 건달들이 술병을 차고 왔다.
여러마을에서 모여드니 이해따라 그 수가 천이 넘는지라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흥성흥성 환락에 잠기였다. 처녀와 젊은각시들이 그네시합을 하고 젊은 남성들은 씨름재간을 비기였다. 점심먹고는 예나다름없이 농악이 울리자 오락판이 벌어졌다. 노래에다 탈춤도 추고 막춤도 쳤다. 저저마다 맘껏 장끼를 부렸다. 심정이 같았다. 모두들 이 하루를 기껏 즐겨보자고 했다.
한데 경원서 온 젊은녀석 셋이 술이 거나해갖고 히히락락 흥청거리면서 꼴사납게 놀아 남의 기분을 잡쳐놓았다. 그만해도 자기들은 군소재지에서 산다는 턱을 대고 마치 서울에서 내려온 량반인양 거드름을 피우는것이였다. 아무튼 보고 들을데라곤 더 없을테니 너희들 시골뜨기가 시세를 알면 얼마알고 따르면 얼마나 따를가 하고 얕잡아보는 것 같았다.
《이거 한 대 피겠나?》
기학의 또래나됐을가, 셋중에 제일 어려보이는데다 가르마가 금을 쪽 그으것 같이 하이칼라를 한 애가 새하얀 와이샤쯔의 웃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더니 궐련 한 대를 쏙 뽑아 뿌리는데 그것이 이쪽의 가슴에 맞아 곤두박질했다.
《.......》
《헤헤... 넌 담배필줄도 모르는 선비로구나. 술은 먹을줄을아냐?》
《........》
《보니께 담배도 술도 깜깜이니 진짜 시골뜨기구나, 그렇지?》
서기학은 밸이 꼬여났다. 너같은 시골뜨기가 궐연맛이나 봤겠냐며 없수히 보고 너덜대는게 눈꼴시여 상판을 한 대 우려주고싶은것을 겨우참았다.
《야야, 너 당달봉사 아니냐? 대체 누구관데 총명하게 놀잖구 그렇게 해망쩍어, 엉?》
기호가 보다못해 성을 발칵냈다. 그는 이 자리에 성묵이가 있으면 언녕 주먹이 나갔을거라면서 그보고 다시는 짓거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저쪽 셋중의 젊은이 하나가 누구와 물어 알아본 모양이다.
《기학이, 기동이라?!....아무렴 개천에서 용날가?.... 사람웃긴다, 가자!》
저쪽으로부터 빈정거림이 날려와서 그것을 잡아들은 기학은 낯이 화끈해났다. 마치 고추물에 익는것만같았다. 내 이름이 뭐 저같이 못난 녀석들이 씹으라는건가 생각하니 심한 모멸감이 일어 당장 애명을 버리기로 작심하고 제일쓰기 쉬운 일(一)을 골랐다. 그러고는 이제부터는 자기를 서일(徐一)이라 부르라했다. 그의 이름은 이렇게 고쳐진 것이다.
5월 한달은 빨리도 갔다. 단오절의 기분이 아직 여운을 끌고있는데 6월을 잡아서는 뜻밖에도 강타가 내려졌다. 전국 각처에 사상 보기드믄 큰 우박이 쏟아부은 것이다. 그로 인하여 농작물은 물론 가축마저도 큰 해를 입게되였다. 하늘이 어쩌면 이리도 무정하고 혹독할가! 그야말로 헐수할수 없이 꼼짝못하고 당하는 천재(天災)였다. 그러한즉 단오절에 부른 경양가를 이제는 꿈에서나 불러볼런지.
《곡식이 결딴났구나!》
기학의 큰할아버지 서장록은 다 돼먹은 작황을 념려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야 있겠지요. 손놓고 절망마시고 방도를 찾아봅시다. 생로는 찾는 사람에게 나지는거랍니다!》
기학은 위안의 말로 싸늘해진 그의 가슴을 차분히 덥혀주고싶었다.
《네 말이 옳은 것 같구나. 이렇다구 맥을 버려서야 되겠냐.》
할아버니는 과연 절망을 버리고 생로를 찾으러 함흥으로 갔다. 그는 얼마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동생의 알선으로 한 어물전에 들어가 월급을 받고 일을 하게되였다. 그의 동생인즉 성함(姓銜)이 서장은(徐長恩)인데 서일의 둘째할아버지였다.
《한해만 나가 고생해주슈, 가정일은 념려말고요.》
큰할머니가 벌이를 떠나는 제 남편과 한 말이였다.
이런차 건강이 좋지 않은 김노규(金魯奎)선생이 또 드러누웠다. 병이 고황에 든건 아니지만 오랜 피로로 하여 허약해진 몸니 다시춰서자면 시일이 걸릴것 같기에 최풍헌이 서일을 찾아왔던 것이다.
《어쩌면 좋겠냐, 학교가 문을 닫고 무작정 휴학할수야 없잖으냐. 듣자니 넌 주역을 남먼저 다 뗏다더구나. 허니까 너야 그만하면 소학은 마친 셈이 되잖겠니. 학교를 한해만 네가 또 맡아다구. 너야 그러구서 더 높이 상급학교를 가도 될게 아니냐.》
그가 하는 말이였다.
서일은 동장어른이 찾아와 이같이 사정하니 밀어버릴수도 거절할 수도 없어서 김노규선생몸이 춰설때 까지 마을의 학교를 맡게되였다.
서일은 우선 친구 박기호(朴基浩)를 초빙하여 교사로 쓰면서 함께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에 앞어 경원(鏡源)에 있는 이동호군수(李東鎬郡守)가 언제부터 서일이 맘들어 마을의 소학에서 한학을 다 배우고는 어디던 상급학교를 더 다니고는 곧 돌아와 제 고향 경원(鏡源)의 중학(中學)을 맡아 인재를 배양해내달라고 하니 그러마고 쾌히 대답한바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일은 노규선생(魯奎先生)을 대신해 우선 제가 나서 자란 마을의 학생들을 얼마간 맡아 가르치리라 맘을 먹은 것이다. 그와 기호는 일후 상급학교를 가도 같이가고 졸업해서는 경원(경원)으로 가도 같이 가기로 어느날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았던 거다. 공부를 해도 같이하고 글을 가르쳐도 같이가르치고 이사를 해도 같이하자고 깍지걸이를 한 그들이였다.
한편 집이 워낙 경성(鏡城)에 있는 성묵이는 한해먼저 그곳에 세워진 어느 중등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다른 한사람, 개구쟁이 소시적부터 친구였던, 남보다 장가를 일찍가 자식까지 본 최삼용(崔三龍)이는 공부고 난장이고 싹 다 집어치우고는 돈을 벌어 잘살보리라면서 장사길에 나선것던 이다.
아직 의병들이 부분적으로 남아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인들이 이 땅에서 말끔히 물러나기 전에는 손에 잡은 총을 놓지 않겠노라 맹세했다. 그런다고 관군은 토벌대를 무어 그들을 기여코 소탕해버리겠다면서 눈에 쌍불을 켜고 뒤쫓는 판이였다.
《대체 무슨 리유로 의병을 그냥 란적으로 몰고 토벌을 한단말인가?》
기호가 상기된 얼굴로 내뱉었다.
서일은 그도 자기처럼 격분하는것을 보면서 이것은 직접 국왕을 찾아 배알하고 론계(論啓)해야 할 문제라 했다. 하지만 그건 천부당만부당 한 일, 그렇게는 할 수는 없었다. 서울에 올라간다해도 일개 비천한 상놈의 자식이요 무명인인 그들을 누가 입궐이나시켜주랴!
남의 공사관에서 겯방살이를 하던 국왕 고종은 올 2월 20일에야 비로서 370여일에 걸치는 피난생활을 결속짖고 경운궁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느날 독립신문(獨立新聞)은 첫면에다 고종이 환궁했다는 소식을 대서특필로 보도했다. 많은 사람이 왕이 궁전으로 되돌아온 것을 기뻐하면서 지어는 일대의 희사로 여기기까지했지만 서일은 생각이 그렇지를 않았다. 그는 신문을 보니 외려 마음이 격해지는지라 한마디 내뱉었던 것이다.
《돌아올건 뭔가, 아예 그냥 거기 숨어 지내다가 운명하시지. 제 한 목숨을 잃을까봐 수치도 모르고 남의 공관에 숨어다니며 사는 저런주제에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면 얼마나 생각하고 걱정하면 얼마나 걱정할가, 허깨같은 물건짝!》
아닌게아니라 능력없는 국왕은 차라리 없기만도 못했다. 서일은 내심적으로 의병을 동정하면서 국왕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혐오한지 오냈다. 날이갈수록 그에 대한 회의와 불만은 더 쌓이고 쌓여서 그것이 어느덧 증오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러던차 하루는 그의 손을 비는 일이 스스로 닥치였다.
한낮 내내 구질구질 내리던 늦여름장마비가 멎으면서 서쪽하늘이 건득 들리기 시작하는 저녁켠이였다. 30여명의 괴한이 홀연 금동리에 나타났다. 나이는 다들 젊으련만 모양새가 거칠어져서 대중키 어려웠다. 차림새를 보니 거개가 동저고리바람에 미투리를 신었는데 손에다는 화승대를 하나씩 들었다. 분명 일반백성은 아니였다. 내내 정부군에 추격을 받다가 두만강을 건너가자고 이곳까지 밀려 온 의병이였다. 그들은 마을에 들어와서도 아무집에나 허투로 들지 않고 먼저 학교를 찾았다. 마침 학생들이 집으로 다 가서 없고 서일과 박기호만 남아 래일의 교학을 위해 비과를 하고있는 중이였다.
《말 좀 물어보자. 너네 여기 훈장분 어디메 계시냐?》
서일보다 나이가 열 몇살을 더 먹었을 낯이 강파르게 생긴 사나이가 이쪽의 둘을 소학생으로 보았던지 무엄스레 물어왔다.
《선생은 납니다. 무슨일인데 그럽니까?》
서일은 고개를 번쩍들어 그를 여겨보았다.
《네가 선생이라?!...》
《그렇습니다. 이 학교의 교책입니다.》
기호가 대방이 어둑거둑 반신반의하는 것을 보자 알려주었다.
《오, 그래!?....》
초면의 사나이는 낯에 놀래는 빛을 띄면서 서일을 다시여겨본다. 자기를 대해주고 있는 그가 나이는 퍽 어려서 아직 스므살미만일 것 같지만 손님을 대함이 정중하고 어른스러운지라 미안해하면서 어투를 바꾸었다.
《이거 그만 실례했구만. 용서하시오. 내 이름은 이홍래립니다! 》
《대체 무슨일로 찾는지?...》
《보다싶이 모두가 녹초루됐는데 하루밤만 여기서 쉬어 가게 허락해줄수 없겠는지해서 내가....》
분명 먼길에 굶고 지친 몸들이라 주인이 거절하는 기색이 아니니 모두들 속털린 자루마냥 스스로 주저앉고 쓰러진다. 목석이 아니고 사람이면야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으랴! 서일은 그 모양을 보니 걷잡기 어려운 연민의 정이 가슴밑바닥으로부터 올리밀었다.
이시각 그는 자기가 언젠가 손수 베껴둔 고종의 애통서가 상기됐던것이다.
<<왜적이 범람하여 사직(社稷)의 안위가 조석에 임박하니 초토(剿討)에 육력(戮力)하고 김병시로서 삼남창의도지휘사(三南倡義道指揮使)로 하고 계궁량을 목인관(木印官)으로 하여 경기에는 순의군(殉義軍)으로 하고 충청도에는 충의군(忠義軍)으로 하고 영남에는 복의군(伏義軍)으로 하여 팔도에 반포(頒布)하니 팔도각군은 다같이 제성거의(齊聲擧義)하라.>>
결국 보면 지금의 의병역시 임금의 그 애통서를 받들어 제성거의(齊聲擧義)한게 아닐가. 그런데도 임금은 왜서 의병을 그여의 잡자는가?...
《지쳤어, 대단히 지쳤어! 저 사람들을 우선 저녁부터 먹여야겠구나!》
서일은는 박기호와 귀속말로 속삭였다.
《글쎄 어쩌면 좋겠냐?》
기호역시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자. 내 곧 최로인을 찾아가마. 사실을 반영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안그렇니? 살던 죽던 우리 금희동이 당하고 받아야 할 일이니 동장이 의례 알아야 할것이다. 꼭 알아야지. 알아야 하구말구. 그래서 그가 나서야 한다. 안나서면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저 모양들을 좀 보거라. 우리 사람인데 굶겨 보낼순 없잖아, 절대루!》
서일은 이날 처음 공개적으로 의병을《우리 사람》이라 불렀다.
정부가 의병을 비호하는건《죄》라고 통고를 내렸고 그 통고를 무시하고 거역하면 란신(亂臣)으로 다스리라지만 서일은 이젠 현정부(現政府)의 그따위 위협공갈은 무섭지도않았다. 그는 그따위건 꿈에 네뚜리로 알고 쓰거워했다.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ㅡ 백성으로 하늘을 삼는다 하여 자고로 덕성이 있는 임금들은 모두 백성을 친자식처럼 아낀 것이다. 한데 아끼기는 새려 역적(逆賊)도 아닌 의로운 제 자식들을 잡자고 드는데야 그 천자(天子)의 왕도(王道)를 운운해서는 뭘하랴. 혼암(昏暗)의 세계로 변해버린 조선은 멸망에로 내닫고 있었다!
서일은 말한대로 최풍헌을 찾아갔다. 최풍헌도 마을에 의병이 들어온 것을 벌써 알고있으면서 어떻게 해얄지 몰라 한창 속을 끓이고있는 중이였다.
《한가지 상론할 일 있어서 왔습니다.》
최풍헌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면서 구름장이 덮인 제 얼굴을 두사람에게 보이였다.
《너희들도 알다싶히 우리 금동리는 엽때껏 조용무사했네라다, 헌데 이제는 안그렇겠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을고? 》
얼굴에 구름장이 덮인 최풍헌은 턱수염을 당장 뽑아버리기라도 할 것 처럼 쥐여 탈면서 난색을 가득지였다.
그의 말과 같이 사실 여기는 여태껏 조용한 축이였다. 언젠가 한번 가짜의병이 와갖고 곱지 않은 짓을 피우고 간적이 있어도 경원군수의 말과 같이 민란이 한번도 일어나지를 않았거니와 도적떼고 달려든적이 없었으니 거의 무풍지대나다름없었던 것이다. 한데 오늘은 정부군의 추격을 받는 의병들이 들어 온 것이다.
《너 봐라. 내쫓을수도 받아줄수도, 재워줄수도 아니재워줄소도 없으니 량손에 떡쥔게로구나, 어쨌으면 좋겠냐?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구 이런걸보고 하는 말이 아니겠냐. 호미난방이로구나. 어쨌으면 좋을고?》
《거야 아주 간단하지요. 말하랍니까?》
《말해라.》
《우린 그들이 잠을 자게해야합니다. 우선먼저 주린 배부터 채우게 하고. 그들은 란신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사람입니다. 왜병도 아니고 원쑤도 아닌 우리편, 우리 사람이란말입니다. 그런걸 우리가 왜서 미워하고 내쫓는단말입니까?》
서일은 흥분했다. 그러나 그는 차분한 음성으로 의병은 나라운명을 걱정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고 일본군을 몰아내자고 싸워 온 사람들이요 정부가 선전하는것 처럼 역적의 무리는 절대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정녕 나라일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백성이라면 이럴 때 올바르게 처신을 해야한다, 그들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포옹해야한다고 했다.
《네 말이 옳기는옳은 것 같은데.... 갑을간 오라구해라. 내 좀 그네들허구 물어볼 말이 있네라.》
최풍헌의 태도였다.
이쯤이면 서일의 주장에 절반은 응하는 셈인것 같은데 물어보겠다니 뭘 물어본단말인가?.... 아무튼 그가 시키는대로 해야했다. 하여 서일은 자기를 이홍래라 자아소개를 했던 그 청년을 데릴러 학교로 달려갔다.
이홍래는 의병들이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가지가지의 일들을 박기호앞에서 한창 구술하고있는 중이였다.
서일은 이홍래를 데리고 최풍헌의 집으로 다시갔다.
《임자가 두령인가?》
최풍헌은 이홍래를 대하자 그의 신원부터 알려했다.
《아니우다. 난 그 의병대의 의병장 아니우다.》
대방의 대답이 뜻밖인지라 최풍헌도, 박기호도, 서일도 적이 놀랬다.
《뭐라! 그러믄 그래 뭔가?》
《그네들을 안전하게 월경시켜주자구 나선사람이지요.》
《그렇다?.... 건 왜서?》
《그래줘야합니다. 그래서 나선겁니다.》
《싱거운짓두 하네.》
《아니, 싱거운짓이라니요? 웬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니지요. 이건 싱거운짓이 아니지요. 잘 생각해보시요. 이게 과연 싱거운짓으루 될가요?》
《건 그렇구. 그 사람들 싸우다말구 도망은 왜 치는거유? 비겁하게서리 남의 나라 땅으루는 왜 도망을 하는가멀이요?》
《아니 이런! 도망이라니요? 원. 누가 도망칩니까? 그들이요?.... 아니지요. 절대 그런게 아니지요. 그들은 지금 전략적이전을 하고있는겁니다. 보셨지만 그래서 총들을 갖구서 떠나는게 아닙니까. 만주에 건너가 거기서 기회를 봐 재기를 하자는겁니다. 두고보시오만 그들은 꼭 권토중래할겁니다!》
변명이 아니였다. 사정부득하여 조국땅을 떠나야만 하는 의병들이였다. 이홍래의 말은 그들의 울분을 대변해서 뿜어내는 대답이였다. 들어보니 이홍래역시 함경도치였는데 의병도 의병장도 아니면서 그들의 월경을 도와나서서 위험을 불구하는 그 행위가 기특하고 거룩했다. 그것은 보통사람은 할수없는 장거라 생각되였다. 최풍헌은 이제야 깨달게 되였노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위험을 용감히 받아 안고 적극나섰다.
그는 우선 마을의 장년과 부녀들을 긴급집합시켜놓고 의병을 절대 함부로 역적이니 란적이니 욕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왜놈을 몰아내기위해 목숨걸고 싸워온 그들은 의로운 우리 사람이라면서 지금 당하고있는 처지를 말했다. 서일도 기호도 회의석에 나서서 말했다. 임금이 결국 혀가 두가닥이여서 이랬다 저랬다 인민의 의사를 위배하고있지만 우리는 각성하여 제 사람을 가려볼줄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선전이 과연 옳다고 여겨 마을에 들어온 의병들을 적대시하지 않았거니와 심히 동정하면서 동장 최풍헌이 하라는대로 한 사람씩 제 집에 데려다가 제 집식구처럼 배부르게 먹여주고 잠도 재웠다.
서일은 이홍래와 다른 의병 둘을 자기네 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날밤을 기호도 함께보냈다. 저녁을 먹고나서 그들 다섯은 의병투쟁이 저락된데 대해서 각자 자기의 견해를 말했다. 우선 무기부터 글러먹었다. 저따위 총을 갖구서야 신식무장을 한 적과 싸워 목숨이나 잃었지 무엇을 하겠느냐 그거였다.
사실 그러했다.
반일의병대의 무장장비에서 기본무기는 화승총이였다. 화승총은 16세기 20년대에 발명된 중세기적인 총으로서 화승대 또는 화승총으로 불리워왔다. 이 총은 총구멍으로부터 류황 혹은 목탄가루들을 섞어서 만든 흑색화약과 둥근 탄알을 재우고 총신의 뒤쪽의 화약실옆벽에 뚫어진 불구멍으로부터 불심지에 불을 달아 사격하게 되어있다. 불심지는 참대, 젓나무, 칡껍질 등의 섬유를 보드랍게 분쇄한 흙색화약과 섞어서 꼰 끈이다.
화승총으로 무장한 성원은 흑색화약통과 탄약통을 휴대해야 하며 불심지를 허리에 감거나 어깨에 메고 불을 일으키는 부시와 부시깃을 가지고 다니다가 화승총을 쏠 때 사용하여야 한다. 이 총의 큰 약점은 사거리가 멀지 못할뿐만아니라 습기가 차거나 비가 오면 흑색화약, 특히는 화승이 젖고 부시를 칠수 없어 사격할 수 없는것이다. 때문에 비가 올 때에는 의병들이 아무리 많은 화승총을 가지고있더라도 총을 쏠수 없으니 무용지물이였다.
많은 의병들이 이런 중세기의 락후한 무기마저도 없어서 창과 칼, 활, 곤봉과 같은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싸워야했다.
의병의 이같은 장비는 일본군과 근본 비길수도 없었다. 일본군의 기본은 보병이였는데 그를 엄호한 것은 기병과 포병, 공병이였으며 이들이 휴대한 무기는 모두 뢰관식 신식무기였던 것이다.
게다가 의병장들 중 많은이들이 군사를 모르거나 지휘능력이 부족하여 능히 이길수 있는 싸움도 패배로 끝을 보는 현상이 많았다. 그리고 집체의 응집력을 깨버리는 지휘성원들의 파벌싸움.... 특히는 지난해의 3월 1일 고종이 의병들을 해산하라고 내린 명령문이 충군충의(忠君忠義)에 물젖어있는 유생들의 사상과 의지를 동요시켜 허물어지게 만든통에 많은 의병단체들이 해산되고만 것이다.
이홍래가 군사지식이 충분치 못한 의병장이 어찌 싸움을 잘 할수 있겠느냐며 혀를 찼다. 이에 묵묵히 듣고만있던 서일이 한마디 내비치였다.
《맞습니다. 엿다릴줄도 모르면서 엿을 다린다고 덤벼들면야 감만 못쓰게 버리고말지요. 의병장이면 총보다 먼저 병법부터 알아둬야 할게 아니겠습니까. 개전(開戰)전 싸워서 얼마든지 이길수 있는 것 같으면 그건 계획이 주밀하고 승리할 조건이 충분함을 말함이요, 개전전에 싸워도 이길 것 같지 않으면 그건 계획이 주밀치 못하고 승리할 조건이 모자람을 말하는 겁니다. 계획이 주밀하고 조건이 구비됐다면 싸워서 이길것이요, 계획이 주밀치 못하고 조건도 안되면 싸워도 이기지 못할건데 더구나 계획도 조건도 없으면야 어떻게 될가요?.... 이런걸 잘 알아둬야 승부결과도 뚜렸해질겁니다. 안그렇습니까?》
이홍래는 금시 넋을 빼운 사람모양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일개 소학선생이 병법을 얼음판에 표주박밀 듯 말하니 불가사이한 일 같았다.
기호가 서일은 병법에 각별한 흥취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 방면에 지식을 쌓고있노라 알려주었다. 아, 그런가 하면서 다른의병 둘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화제를 돌려 의병장 유린석이 지난해 5월 25일에 제천전투에서 실패하자 력량을 재편성한다면서 투쟁을 중단한 일과 8월 28일 초산 아성에서 압록강을 건너 만주땅으로 가버린 일을 놓고 운운하면서 그 행동이 다른 의병단체에 준 영향이 적지 않다고 했다.
《김백선이 참 잘 싸웠지.》
《내 보겐 그가 주장한게 맞는 것 같다.》
《그래두 칼부림이야 말아야지.》
《아무튼 아까운 사람을 죽였어.》
서일과 박기호는 제천의병이 어떻소, 강릉의병이 어떻소, 어디의병이 어떻소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김백선이란 사람이 평민의병장으로서 싸움에 용감하고 공도 많이 세웠다는 얘기를 들은적도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여직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좀 얘기해줄수 없는가 하니 이홍래가 유인석이 그를 사형에 처한 리유를 간단히 알려주었다.
그것은 응당 발생하지 말았어야 할 하나의 영향이 큰 비극이였다.
평민출신의 김백선은 제천반일의병대의 선봉장으로서 전투마다 특출한 공훈을 세워 의병들속에서 일정한 위신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의병지휘층은 김백선이 평민이라는 봉건적 관념에서 그의 활동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김백선은 충주전투후 가흥에서 일본수비대를 추격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본군에 요청한 원군이 오지 않아 끝내 일본군을 전멸시키지 못했다. 전투후 김백선은 원군을 보내주지 않은 유생출신 중군장인 안승우를 과격하게 칼부림을 하면서 그에게 책임추궁을 하였다. 유린석은 바로 이 사건을 군사규률위반으로 취급하여 김백선을 사형에 처하였다. 평민이 량반에게 버릇없이 구는것은 그 무엇보다도 참을수 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김백선이 유린석에게 처형된후부터 정세가 참혹하여졌으며 부대의 위용이 다시 춰서지 못하였는바 그 뒤 안승우가 장기렴참령과 제천읍에서 싸워 패해서 죽은후 의병투쟁은 결국 다시 일어날 여지가 없게되였던 것이다.
서일은 그같이 열화세차던 반일의병운동이 갑작스레 중단된 요인이 무엇이냐를 이제야 똑똑히 알게되였다.
이틑날 날샐녘에 금동리에서 하루밤을 지낸 30여명 의병은 두만강을 무사히 건너 만주로 갔다. 서일이 박기학이와 같이 물길을 서준것이다.
갈라질 때 리홍래가 놓았던 손을 다시잡으면서 수다스레 말했다.
《이 멍청이를 보지, 내가 여적지 교장의 성함이 뭔지를 딱히 기억안하구 가자네.》
이에 서일은 다시알려주었다.
《난 서일이라구합니다. 애명은 기학이였구요.》
《그런가. 서일이라! 거 기억하기도 쉽군! 일후 어쩌면 다시만날수도 있겠는데 잘 기억해둬야지.》
《그럽시다. 다시만납시다. 출생지가 내처럼 함경도 사람. 전에 시종무관질을 했구 지금은 월경의병장노릇을 하고있는 이홍래라했지요?》
《맞아! 역시 총명한 사람이 다르긴 다르군!》
《잘들가시오, 그리고 다시건너와 싸워주시오!》
서일은 작별하면서 부탁했다.
《서일이라! 애명은 기학이라!》
리홍래는 속으로 곱씹으면서 두만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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