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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7.
당일 신문에서 군대가 해산했고 그로 말미암아 서울에서 병변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경원군수 이동호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어 방안을 초조히 바장이다가 문을 차고 밖으로 나와 곧바로 서일을 찾아갔다. 이젠 환갑이 다 된 그가 10년전 금동리의 화승대를 걷어들일 때 서일이 제 친구들과 짜고서는 총을 감추고 내놓지 않아 말성부리던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있다. 당시는 그가 기학이라는 애명을 그대로 쓸때였는데 군수에게 준 인상이 각별히 깊었던거다. 수재라고 소문이 난 어린것이 한문에 능통하거니와 병서까지 연구한다니 이동호군수는 그때 저놈이 장차 뭐로 되자고 저모양일까 하고 뇌이기까지 했다. 후에 함일사범을 졸업하고는 그 학교에 그냥 남아 교편을 잡고있는것을 제 고향건설에 몸을 바치라며 끌어온것이다. 이동호군수는 경원군내에서는 굴지의 지식인으로 손꼽는 그의 총명과 도량을 알고있는지라 만나서 한번 좀 속심을 나눠보고싶었던것이다.
《아니, 군수님께서 어이하여 이런 루지에 왕림하셨습니까?!》
서일이 경아해 하면서 무척 반긴건 더 말할 것 없다.
《내 자네하고 속얘기를 좀 해보자구 왔네. 나라에서 군대까지 없애버렷다구 보도가 됐는데 대체 웬 소린가? 이래서야 되겠나?.... 답답하네.》
《<論語>에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림에는 <충족한 병력이 있어야 한다>했고 <尙書>에서는 정사(政事) 여덟가지 중의 하나가 <軍事>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詩經>을 보면 <주왕 혁연(赫然)은 대노하니 군대를 정돈하여 나가 싸웠다>고 했습니다. 손자병법에 헌원황제(軒轅皇帝)나 상탕왕(商湯王)이나 주무왕(周武王)이나 다 무력으로써 사회를 구원했다고 썼습니다. 무엇을 말하자는걸까요?... 군수님, 생각해보세요. 나라를 세우고 지킴에 무력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강조한것이지요. 안그렇습니까?》
《옳네. 하기야 그렇지! 헌데 서선생도 보다싶히 이눔의건 한심하지, 아무렴 제 나라의 군대를 해산시키다니 원! 망할짓을 하고있지 않나!》
《이게 다 왜놈이 시킨거라 생각합니다. 왜 이럴까요?... 불보듯 빤합니다. 그자들이 이 나라를 아예 무력하게 만들자고 꾸민 계책인겁니다.》
《저 오랑캐 살인마들을 어쩌면 좋을고!》
이동호군수는 분노하면서 자신이 무기력함을 탄식했다.
《사마법(司馬法)이 <남을 함부로 죽이는 자 있거든 나는 그 자를 가히 죽일수 있네라> 했습니다. 복수를 하라는 말로 해석이 되지요. 안그렇습니까? 우리는 앉아서 그저 당하기만할수야 없지요. 안그렇습니까? 원쑤 오랑캐를 토벌하지 않고 란적을 격멸하지 않으면 국가는 영원히 망해버릴것이요 강토는 영원히 잃어버리며 동포는 영원히 멸망하게 될것입니다.》
《자네말이 옳네! 옳아!》
군수는 이젠 속이 좀 후련해지는 것 같다면서 돌아갔다.
온 나라안에 가지가지의 격문들이 비발같이 내리쳤다. 그 내용들을 보면 주요하게 세 개의 부류였다. 일반백성들을 반일의병에 불러일으키는 것과 이미 반일의병에 참가한 자의 기세를 북돋우어주는것과 해외에 사는 동포들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까지 반일의병에 인입시키자는 것이였다.
《정미격문》
《13도 전체 동포들에게 호소한다》
《허위의 격문》
《호소한다》
《각도 창의소에 통고한다》
《13도 전체 동포들에게 호소한다》
《두 간도에 거류하는 인사들에게》
《미국에서 사는 동포들에게 호소한다》... 등등.
얼마전에 윗 세 격문이 련이어서 경원학교에 나타났다.
서일은 함일사범에서 교편을 잡고있을 당시 정민호어린이를 알게 되어 그 애가 <격문>이니 <통문>이니 하는것들을 주는 족족 받아 보기 시작해서부터 여지껏 제 손에 들어온것은 하나도 없애버리지 않고 명심해서 보관해왔다. 물론 비밀리에 그렇게 하고있다. 이번의 격문역시.
(나라와 민족이 멸망의 위기에 직면했는데 보고만있을수야 없잖은가.)
생각을 이렇게 하면 자기도 당장 의병대오에 들어 싸우고싶은 서일이였다. 그러나 그러면 학교는 어쩌고? 서일은 내내 교학만 책임져오다가 올년초에는 교장으로 승진하여 학교전반의 사무를 도맡아 지도하고있다. 이는 본시 좋은 일인데 근일에 돌연스레 감영으로부터 일본인 《학감》을 파견하리라는 통지가 온것이다. 그리고 일어를 배워줄 선생도. 과연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교장직을 버리고 나간다면 그건 학교와 학생을 고스란히 그자의 손에 넘겨주는 꼴이 될것이다. 절대 그렇게 할수는 없다.
《대체 어쩌자는 수작이냐? 학감이면 말 그대로 학교의 교학을 감독하자는거겠지? 이제는 교육에 까지 그놈의 더러운 마수를 뻗치는판인가!》
서일은 역반심(逆反心)이 올리밀었지만 꾹 참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수밖에 없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丁未7條約이 체결되자 일본은 다그쳐 한국의 교육분야에 까지 침략의 마수를 뻗치이기 시작한것이다.
《일본이 이같이 하는 목적이 대체 무엇일가?》
서일은 교원대회를 소집해놓고 이를 토론에 붙이였다. 그랬더니 저마다 인식을 구김없이 말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배달민족을 노예화하려는거다.》
《하기야 그렇지. 목적이 뚜렸하다.》
《저들의 강도적인 요구에 순응하게 만들자는것이다.》
《장차 저들이 이 땅을 완전히 병탐할시 지금의 학생들이 대항하여 나서지 않게끔 온순한 양으로 길러내자는 수작이다.》
너 한 마디 나 한 마디해서 토론은 자못 렬렬했다.
선생들의 말이 맞았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감영을 통하여 각급 학교사업을 간섭하게 하면서 보통학교에 1명의 일본인 《교감》을, 중등학교에는 1명의 일본인 《학감》을 배치하여 교육사업을 엄격히 감시하게 한것이다.
이해, 1907년초 양주군에서 백성들이 동흥학교경영을 반대하여 들고일어난적이 있다. 그것은 일본인 교원들이 그 학교의 교학을 틀어쥐고 학생들에게 노골적으로 노화교육을 하는 한편 토지까지 략탈하려들어서 그곳 백성들의 불만을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몹시 분노한 군중 수백명이 그날 학교로 밀려가 교장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당연한 일이다. 돌아가는 형세를 보니 그러루한 사건이 여기저기서 장차 끊임없이 일어날 것 같았다.
(왜놈이 내 학교에 들어와서는 절때 함부로 행패질을 못하게 할것이다.)
서일은 그자들 손에 쥐우기는 커녕 되려 엄히 다스리라 맘먹었다.
과연 사흘이 지나지 않아 경원학교로 오사기 겐다로라 부르는 30대의 나고야(名古屋)출신의 지식인이 학감으로 왔다. 그가 온 바로 그날에도 서일은 전교 사생들을 집합시켜놓고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듣는바에 의하면 새로 또 <이민조약>이라는 것이 맺아졌다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장내는 물뿌린 듯 조용했다.
서일은 약간 격해진, 그러면서 맑은 음성으로 계속해 말했다.
《그것은 바로 민족말살을 목적한 것이다. 조약을 맺아 왜의 이민이 들어오는 동시에 그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장차 저들의 군대까지 더 많이 옮겨오게 하려는 계책인것이다. 내가 전에도 한 번 말한바있지만 놈들의 종국적인 목적은 바로 우리 배달민족을 이 땅에서 쫓아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그것은 혹가이도가 아니면 싸할린일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망해버리게 할 예산인 것이다. 그놈들은 우리를 죽어도 뼈를 고향땅에 묻힐수 없게 하고 이국땅의 원혼이 되게 만들려고한다. 그 때에 가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빼앗길 것은 다 빼앗겨 아무것도 없을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민족 전체가 그자들의 종으로 되고 노예로 되고말것이다... 눈을 똑 바로뜨고 보라, 생각만해도 몸서리칠 일이 아닌가?...
놈들이 매일같이 동양평화를 유지한다고 떠벌이고는 있으나 사실인즉 거짓말이요 사실인즉은 동양에서 저들이 독판치는 제국을 만들자는 의도일뿐이다. 그자들이 한국을 독립시켜준다고 했는데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흉계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은가?... 정신들 차리시오. 그자들의 그 어떠한 미사려구에도 미혹하지들마시오. 나는 전에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극히 간사하나 그래도 나라를 가진 이상 반쪽의 신의라도 있겠지 하고.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마저 없는 야만이여서 그 꼴이 흉측하고 망측하기가 고금의 오랑캐가운데서도 겨룰자가 없는겁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수백쌍의 눈길이 일제히 화살마냥 오사기 겐다로의 몸에 꽂히였다.
오사기 겐다로는 등골에 찬물을 껴얹는 것 같이 오싹해났다.
(내가 교감으로 부임돼 오자마자 이런 대접을 받다니...불길한 징조야.)
자기를 잡아 죽이겠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인지라 필경은 배타적인 무언의 축출을 웨치는것만 같아서 오사기 겐다로는 당황해나기까지 했다.
서일은 그의 이런 심중을 빤히 들여다봤다. 미워도 쫓아버려서는 되지 않을 인간이니 마음을 놓게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것이였다. 하여 그는 평온한 자태에 웃음까지 지어 보이면서 일본어로 말했다.
《내가 과거사 하나를 얘기했더니... 일없습니다. 마음놓으시오. 때려죽이지 않을겁니다. 오사기선생의 인신안전은 내가 책임질겁니다.》
《오,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이 우리말을 아는구만! 하하하....》
오사기 겐다로는 저으기 놀래여 서일을 다시보고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무등 기뻐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얼굴에 웃음까지 확 피여난다.
오사기 겐다로의 이런 저돌적인 거동에 사생들은 아니 저 자식이 얼간망둥이가 아니냐고 다시보며 웃었다. 그날 경원학교 교감영접식이라는 것이 이런 모양으로 끝을 냈다.
경원학교의 적잖은 사생이 서일교장은 한학에 조예가 깊다는걸 알았지 일어까지 구사하는건 모르고있었는지라 놀램을 갖고 찬탄해마지 않았다. 한편 오사기 겐다로는 한국에 와서 일본글과 말을 아는 사람을 만난것이 여득만금모양으로 기쁜지 무척 반가와 하면서 가깝게 지내려했다....
반일항쟁이 맨먼저 치렬하게 전개된 것은 중부조선일대였다. 국민 모두가 초조와 불안을 안고 의병들의 항쟁을 지켜보고있었다. 꼭 같은 하나의 심정ㅡ맥이 하나로 이어졌거니 기쁨도 슬픔도 죽음도 함께 나누자는것이였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농민출신의 조인환이니 시위대출신의 지영기니 유생출신의 허위, 이은찬, 이은영이니 포수출신의 김수민이니 진위대출신의 민긍호니 하는 여러 의병명장들의 이름이 경모와 흡모와 찬미속에서 쟁쟁하게 날리였다.
어느날 오전이다. 오사기 겐다로 교감은 서일이 책상뻬랍속에서 지난 8월 17일자 皇城新聞을 다시끄집어 내는 것을 보자 머리를 갸웃둥 하고 물는것이였다.
《서교장! 건 새신문아니잖소?》
《좋은 신문을 통감부가 자꾸 정간을 시키고있으니 지나간 기사라도 다시봐야지요.》
《거게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있다말다. 8월중순에 강제해산당한 원주진위대 군인들로 무어진 의병 50명은 춘천에 머물러있다가 홍천을 들이쳐 우편소와 왜가 경영하는 전당포를 파괴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남의 전당포를 파괴하다니요? 그리구 우편소는 왜 들이친답니까?》
《오사기교감! 통감부는 왜서 <통신관서관제>를 공포했답니까? 한국의 우편이고 한국의 전신이고 한국의 전화인데 왜서 한국 사람은 고용치 않고 지어 교환수에 이르기까지 말짱 일본 사람만 채용합니까? 그러니까 불만스러워 들이치겠지요. 안그렇습니까? 바꿔놓고 일본이 그 처지라면.》
오사기 겐다로는 말문이 막혔다. 조선사람을 고용하면 비밀이 새길래 일본사람만 쓰는거라 말하기 거북했던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대방은 대뜸 <아니 오사기교감! 일본사람은 남의 나라에 와 있으면서 무슨 비밀이 그리도 많은가, 그게 다 광채롭지 못해 그러는게 아닌가?> 하고 반문하고들것이니까.
《8월 23일날 룡문사를 소각했다누만.》
《누가 그런짓을?...》
《누구긴 누구? 요즘일인데 오사기선생은 그래 몰라서 묻습니까?》
오사기교감은 서일의 굳어진 낯색에 맞다들어서야 생각나는 양이다.
《오, 나도 언제 신문에 그 기사가 난걸 본 것 같구만. 거야 <장래의 화근을 제거하느라 소각하였다> 하잖았소.》
《장래의 화근이라니? 그것은 의병을 가리키는 소리겠지요? 그래 의병이 생겨나게 만든것은 누굽니까? 일본이 이 땅을 점령하려구들지 않으면야 의병이 생길까요? 딱 찍어서 말해 화근은 바로 일본인것입니다. 그런데두 화근을 없앤다고? 바지벗고 제 볼기짝이나 때리지!》
《일본은 조선이 잘되게끔 일체의 노력을 다하고있는데두.》
《조선이 잘되게끔 일체의 노력을 다한다? 일본이?....하하하! 거 말이야 찰떡같지. 오사기선생, 그래 국모를 살해하고 보호조약을 맺아 외교권을 앗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또 신협약을 맺아 내정권까지 앗아가고 임금을 협박해서 페위시키고 군대를 없새고...이런것들이 그래 조선이 잘되게 하느라 행하는 조치란말입니까?... 어디 말해보시오. 정녕 그러하다면 감지덕지해야 할것이지 왜서들 목숨걸고 들고 일어날까요? 일본을 반대해 싸울가요?...오사기선생, 선생은 지력이 좋은 분인데 우리를 잘못보고 오신 것 같구만. 여기 선생들이 유아가 아니라는걸 아시오.》
경기도 룡문산에 있는 룡문사(龍門寺)는 조인환의 령솔하는 의병대를 비롯하여 양근지방의 의병들이 본거지로 리용하고있었는데 일본군은 의병이 큰 부대로 자라나기 전에 없애버리려는 목적에서 의병들이 의거하여 활동하였거나 활동할수 있다고 여겨지는 산중의 외딴 집이나 절간 등 건물들은 보이는 족족 모조리 소각해버리는 초토화전술을 쓰고있었다.
서일은 중단했던 말을 계속 이었다.
《오사기선생! 선생은 그 절이 우리로 놓고 보면 얼마나 귀중한건지 알기나합니까? 그 절을 신라 진덕왕때 지었다니 따져보면 1200년도 훨씬 넘는겁니다. 이조시대에 들어와 소헌왕후의 사후, 세조가 불상을 만들어 원당으로 썼고 절이 심히 낡아서 성종때 중수했으니 그 후로 흘러온 세월만 봐도 400년이 훨씬 넘는것입니다. 이런 절이 일본에는 대체 몇 개나됩니까? 왜서 남의 귀물을 함부로 불태워 훼멸합니까? 그나마 겨우 살아남아있은 신라의 유물을. 오사기선생도 력사에 대해서야 소학정도는 아니겠지요.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고시니, 가또오, 구로다 같은 잔인한 수하 장수들을 시켜 임진란이니 정유재란이니 해서 전후 7,8년간이나 조선땅을 유린할제 제 마음대로 방화해 없애버린 것이 그래 적습니까? 그처럼 휘황찬란했던 신라의 문화가 거의 훼멸되나답지 않았지. 그런데 그 참혹스런 재난의 와중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절마저 오늘 불태워 없애다니... 일본을 내놓고 이런 무도막지한 짓을 하는 족속이 세상 어디서 또 찾아볼수 있습니까?》
오사기 겐다로는 찍소리 한마디 못했다. 대방이 분노하는걸 보면서도 서뿔리 대꾸질을 했다가는 일본 사람이야말로 무도막지한 야만이라는 소리한마디를 더 들을 것 같았다.
9월초에 나이 18세나는 이와데 쥬다로라 부르는 젊은이가 일어교원으로 경원학교에 왔다. 규우슈우도 미야샤끼(宮崎)에서 중학을 졸업하자 곧바로 왔다고 하는데 그역시 감영에서 이 학교에다 밖아놓는 감독자였다.
9월 21자 皇城新聞이 도착해서 경원학교의 교원들은 앞다투어 자기들이 관심하는 기사를 찾아 읽었다. 하여 이날도 새소식을 알게되였는데 그 새소식인즉은 의병장 민긍호의 지휘하에 양양, 간성, 고성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김덕재가 이끄는 반일의병대가 9월 3일에 홍천읍에 주둔하고있던 일본군수비대의 한 구분대를 돌연습격해서 큰 타격을 주었다는것이였다.
조선주차군사령부는 “조선폭도토벌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다.
<<민긍호는 대부대의 의병장이 되어 여러개의 소집단으로 나뉘여 제천, 충주, 죽산, 장호원, 려주, 홍천 등의 각 지방에 츨몰하면서 횡포를 감행하였다.>>
일본군 보병 51련대 아다찌중좌는 기관총대, 기병대, 공병대 등 종전의 몇배되는 병력으로 지대를 편성하여 민긍호가 령솔하는 의병대를 뿌리뽑자고들었다.
거리가 멀기는하지만 싸움판에서 생겨나는 이러루한 소식들은 날개라도 붙은듯이 함북도에까지 날아와서 경원학교 선생들도 모두다 알게되였다.
《어디 그러기만하는가요. 일본군측은 민긍호가 지휘하는 의병대의 활동을 탐지하느라 밀정을 산속에 잠입시키기도 하고 귀순을 시켜볼려구 회유적인 수단을 쓰기도했답니다. 친일주구로 전락 된 저 강원도 감사 황철이란 자를 내세워 선무를 했다나요. 어떻게 했는가구요? 그가 민긍호보고 <의병을 일으켜 반일을 하는건 국왕의 뜻과 어긋나니 이제는 무장을 놓고 귀순을 하시오.> 하고 권유했답니다.》
《그래서?》
《민긍호는 맞대고 까줬답니다. <고종이 왕의 자리를 물러난 것이 왕의 뜻이냐?> 이렇게 반문해놓고는 <그 모두가 일본의 침략책동에 의하여 빚어진 결과 아니냐?> 꾸짖었답니다. 그리고나서 <나는 끝까지 싸우겠으니 다시찾지 말라>하고 결심이 조금치도 드팀이 없음을 보여주었답니다.》
《잘하는군! 과시 대장부다운 의병장이다!》
선생들은 누구나 다 민긍호의 견강함을 찬양했다.
(민긍호의병대는 어찌하여 적을 그같이 많이 처단할수 있을가?)
자기가 소시적에 자주보아 온 의병들의 그 초라한 모습을 머리속에 다시금 떠올린 서일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았다.
(그건 바로 이 의병대는 지휘자와 병사가 많은 부분이 진위대군인출신인것과 관계된다. 진위대군인이니까 지휘능력도 전투력도 모두 다른 의병대에 비해서 강한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군사훈련을 받아서 규률이 있겠다, 양총까지 적잖게 갖추었겠다....그런 바탕에다 결사의 정신으로 무장해서 철통같이 뭉친다면, 그때는 무적이 될수도있을것이다.)
서일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보니 아닌게아니라 자기가 한 번 그런 부대를 친히 조직해서 이끌고 격전을 치루고싶은 생각이 무럭무럭 났다.
며칠지나 9월 25일자 皇城新聞에 다음과 같은 간단한 보도가 실렸다.
<<9월 21일 청풍군에 의병 300여명이 들어와 이 군의 한백리에 3일간 머물러있다가 무슨 사단인지 이 군 보통학교를 파괴했다.>>
그것은 일본의 식민지교육에 불을 건 것이였다.
경원학교 교원들은 그 사건을 놓고 왈가왈부했다.
《교감선생님, 보시오! 저 사람들 신문만 오면 왜 저리두 진지한가요?》
이와데 쥬다로가 눈을 슴벅거리며 이상해하였다.
물어보는 양이 철없어 오사기 겐다로는 곱지 잖은 눈매로 질끈 가로봤다.
《세월이 이래서 의병의 일을 놓고 그런다는것두 모르겠나. 이러건 저러건 간섭말고 눈을 질끈 감아버려. 알아들었어? 제할 교학이나 고스란히 하고 연찬해서 성적을 올리란말이야. 올 때 맡은 임무가 있잖은가.》
《나보구 감시를 늦추지 말라던데 왜 이러십니까?》
《자칫했다가는 여기가 무덤이 될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오사기 겐다로는 짧게 대답해놓고나서 이제 방금 사업에 참가해 세상물정에는 전혀 깜깜인 생둥이에게 여기 이 경원학교의 교장은 일어를 알고 부접성이 좋으며 성품이 관후하나 매섭기가 칼날같으니 그런줄을 알고 각별히 조심하라, 다른선생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다 한마음으로 뭉쳐 지내는 것 같은데 정녕 그러하다면 이건 깰수 없는 돌이요 그래서 그 돌을 깨버리자고 서뿔리 덤벼들었다가는 제 골통만 도루깨고말거라 일깨워주었다.
이와데 주다로는 알았노라 머리를 주억거렸다.
10월초였다. 가을빛이 한창 짙은 어느날 인천에서 장사를 하고있는 최삼용이 문득 경원에 나타났다. 이 몇해간은 꿈에서마저 보기힘들던 죽마구우가 선문도 없이 문득 찾아온지라 친구들은 놀라면서 반가와했다.
《나야 장사를 안하구야 배겨내는수 있나. 쉽던 바쁘던 그눔의걸 해야 먹구살지.... 난 보부상이니 개구쟁이들 놀림안받구는 못사는 장돌뱅이야.》
소시적부터 인간삼락을 열창하던 최삼용이라 걷모양을 봐서는 성격이 캐활함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저 뭐야, 넌 돈벌어 자신의 회산지 뭔지를 갖겠다구하더니?...》
박기호가 친구의 삶을 무척 관심해서 물는 말이였다.
《아마도 그것만은 백일몽이 되고만 것 같다.》
삼용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대를 잘못만나서냐 팔자가 나빠서냐 인심이 어수선하고 무서워 인제는 보부상노릇을 해먹기도 어렵다면서 그는 얼마전 황해도 평산에 갔다가 거기서 보고 겪은 일을 말했다.
《그게 음력으루 8월 7일이니 양력으루는 아마 9월 중순쯤 될거다. 난 일본놈 도거리한테서 넘겨받은 지까다비 쉰켤레를 갖구서 도평이라는데를 갔더랬지. 황해도 평산의 도평말이다. 그곳에다 서당을 짖고 글공부를 한다니 학생이 모여들것이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진 것 만큼 초신을 벗고 그걸 사신으려는 자가 있으리라 생각한거지. 건데 항간에서는 의병대를 조직한다는 소문이 떠돌았지. 의병대를 조직하건 개잡이대를 조직하건 나하구야 상관있나. 나야 상인이니까 그저 신켤레나 팔아먹으면 다니까 하면서 가봤지. 가보니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막힌 벽지데. 그 이튼날이였어. 저녁켠에 그 동리의 사람을 한군데 모아놓구서는 평산군 세곡면 운동리에 산다나 신필수라는 사람이 나서서 말하데. 앞으로 의병대를 조직하려고 하니 그리알고 모두가 조심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한다구. 이런 씨팔, 오리가 쪽제비무리를 찾아간 꼴이 됐지. 나야 신팔러 다니는 장사꾼인데 어쩐다?....진퇴량난에 빠졌던거야. 헐수할수있어야지.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에라 나도 아예 의병들 맘이 있어서 온걸루 가장을 하자.... 왜 그랬느냐구? 생각해 봐. 그러지를 않고 몸을 뺐다간 자칫 첩자나 밀정으루 몰리기 첩경아녀. 그때면 끝장이 어떨지 모르는거야. 안그래?....신필수라는 그 사람 마을주민들을 보구서 우선 방이 둘이 있으면 하나는 내놓으라구 하데. 그래서 집집마다 방을 하나씩 내놓아서 모여온 사람들을 류숙시킨거야. 난 그통에 제돈 한 푼 팔지 않고 편히 보냈지.
그러나 각지서 무리를 지어 계속 모여드는지라 그깟 개인집 몇채갖구야 어림이나있나. 전부 수용할 수는 없는거지. 그래서 숙직할 막을 짓게 된거야. 두 개 장소에 20여간이나 되는 큰 막을 그 동리 사람들이 동원하여 지었어. 며칠 안되는데 모여온 사람이 2,000여명이나 되데. 한데 그네들가운데는 백의종군자가 거의 반수나 되었고 내 보게두 당장 전투를 한다면 참가할 자는 1,000여명밖에 되지 않았어.》
《그래 너는 어떻게 하고 거기를 나왔냐?》
서일이 물어봤다.
《워낙 장사를 하느라 들어간거니까 장사꾼의 행색으로 나왔지 뭐.》
《그토록 편히? 널 그래 조금도 의심하지 않더냐?》
《시끄러움이 좀 있기는했다. 어디든 다른데가 있어뵈였던지 날보구서 <임자는 대체 뭘하는 사람인가? 정말 장사를 하는가? 집이 어디에 있는가? 식솔은 몇인데?....> 하고 이것 저것 지지콜콜 캐묻데. 시끄러워서 원. 한창 그모양으루 씨개질을 하는판에 마침 전에 내한테서 물건을 사간 자가 나타나 내가 장사꾼임이 틀림없다 증명서준거야. 아니그랬으면.... 제길할!》
최삼용은 이러면서 자기는 처자를 먹여 살릴 궁리만 하지 의병에 나가고싶은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노라했다.
그는 일본 사람들이 즐겨싣는다는 찌가다비 여러켤레를 경원시내 거리에 내놓아 어렵잖게 제꺽 다 팔아버리고는 인천으로 돌아가버렸다.
《쟤가 과연 신장사만을 하는걸가?》
서일은 고개를 꺾은채 량미간을 끌어 모았다.
《아무럼 불도의한 짓을 할가.》
박기호는 괜히 친구를 의심스레 보지 말라했다.
《아니다, 저 자식은 기껏 안다는게 돈맛뿐이니 왜놈의 끄나불이 돼갖고 이중벌이를 다닐지도 모른다.》
《무근거하게 남을 의심하면 갚기 어려운 빚이 돼. 더구나 제 친구를.》
《제 친구라고 믿었다가 일나면 그때는? 갚기 어려운 죄로 되겠지?》
서일은 란세(亂世)에 친구간 서로의 의지와 도움이 지극히 필요하지만 일단 어느 하나라도 의리를 버리고 배심(背心)을 할라치면 그때는 더 무서운 원쑤로 돼버리는것이니 그래도 조심해서 대하는것이 상책이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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