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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대하력사소설
반도의 혈(穴)
ㅡ백포종사 서일 일대기ㅡ제2부
4.
내각에서 임금의 양위를 진정하고 총감부에서는 일본 외상 하야시를 맞아 요구조건을 밀모하자 이런 기미를 탐지한 애국지사들은 국사가 긴박함을 알고 동지를 련합하여 활발한 선전으로 민중을 불러 일으켜 그들을 투쟁에 궐기시켰다. 그리하여 온 서울은 급기야 죽탕모양으로 부글부글 끓어번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함북도 경원은 깜깜이였다. 멀고 멀어서 구석지다 보니 서울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소식도 늘 뒤늦게야 알려지기 마련이였다.
《선생님, 전번주 목요일날 서울에 온 하야시는 어떤 인물입니까?》
월요일 조회시간에 반장이 물어보길래 서일은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일본국 외상말이지? 그는 올해 나이 57살인데 영국에 가서 유학하고는 여지껏 외교일만 연구해 온 사람입니다. 46살때부터 화란, 로씨야, 영국공사 등 여러 나라의 대사를 지낸바있고 올해는 백작이 되였지요. <나는 타국인민을 위하여 분투 하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있는 인물입니다.》
《선생님, 그가 그렇게 좋은 사람일가요?》
《알록달록 보기 고운 꽃뱀이 독이 더 있다는 소리를 못들었습니까?》
학생들은 웃었다.
《선생님의 비유가 과연 적중합니다. 침략자치고 달콤한 말을 하지 않은자가 어디있습니까.》
서일은 한마디 더했다.
《능구렁이 나무에 오름은 새를 잡아먹자거나 아니면 둥지의 알을 훔쳐먹자는게지요. 그자가 왜 우리 나라에 기여들었을가? 거기에 대해서는 학생 모두 스스로 곰곰이 점쳐보기 바랍니다.》
이러자 중구난방의 추측들이 쏟아졌다.
나중에는 그자가 온것은 이번 해아밀사사건을 빙적(憑籍)하여 또 한 번 어떤 조약을 강요해 조선의 권리를 앗아내자는 수작이라는 것으로 귀결이 났다.
《두고 보시오. 그 추측이 아마 틀리지 않을겁니다.》
이러고 지내던 차 아니나다를가 7월 20일자 大韓每日申報가 도착해서 학교뿐 아니라 온 경원이 왁작들끓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이걸 보시오! 서울서 폭동이 일어났답니다!》
학생 하나가 손에 신문을 쥐고 높은 목청으로 웨쳐대며 달려왔다.
신문을 받아 쥔 서일은 가슴이 울렁이였다.
<<....서울시민들은 종로에서 큰 집회를 열었다. 평양출신의 학생은 팔을 걷고 나서서 크게 부르짖되 <지금 내각적신들이 임금을 페하고 나라를 팔려하니 우리가 어찌 죽기로써 싸우지 아니하랴>하며 <전국의 동포가 결사동맹>을 하라 하며 이에 자강회, 동우회, 기독교청년회원 등 2천여인이 향응하여 백의현관으로 가득찼다....>>
경원학교는 이날 교학을 중지했다.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우리 서울가봅시다! 어서요!》
키가 꺼두룩하고 운동을 잘해 또래들 속에서는 꽤 명망이 있는 학생이 우쭐거리며 나섰다.
《선생님, 갑시다! 우린 선생님따라서라면 현애지각에라도 가렵니다.》
이러면서 당장 서울로 올라가 보자고 덤벼치는 학생이 여럿되었다.
서일역시 마음동하지 않은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그럴수 없었다. 이럴수록 랭정히 사고해야했다. 아무런 파악도 없이 급한 행동을 취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선생이면 이럴 때 학생을 책임지고 관리를 잘해야지. 그럴러면 우선 그들을 잡아 눌러 흩어지지 말게 해야한다. 집회를 하자. 그래서 조성된 형세를 놓고 변론을 하게 해서 그들 스스로 입지(立志)를 하게끔 하자. 서일은 이같이 마음을 먹고 학생들을 집합시켰다. 그래놓고는 그들앞에 누구든 교문을 나가서는 안된다. 지금부터 변론을 하련다고 선포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야시가 오니 좋은 일은 없지요. 건데 적신들이 황제를 페위시키려한다니! 그자들이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전날 그한테 질문하던 반장 학생이 이번에도 선참물어왔다.
《생각해보시오. 아무리 적신인들 감히 그럴수 있을가?》
《선생님은 이또오 통감이 뒤에서 추긴거다 그겁니까?》
《바로 그렇지. 일본이 안시키구야 그렇게 할 담량이 있을가?》
《건데 임금님을 왜서 페위시키렵니까?....》
《저희들의 말을 아니듣고 역으로 반일을 하니까 그러지. 제거를 하자는겁니다. 그는 장애물이였으니까.》
《그를 페위시켜놓고는요?》
《그리구는 저들의 말을 곰상곰상 들어줄 태자를 골라서 그 자리에 앉힐겁니다. 선생님, 그렇지요? 제 생각입니다.》
다른 학생이 대신말했다.
서일은 그 말이 옳다, 바로 그렇다면서 좀 더 명백히 알려주었다.
《일본은 고종황제를 퇴위시킴으로써 한국정부까지 완전히 제놈들의 침략에 리용할수 있게끔 만들자는겁니다. 그때가서 새로 등극한 황제는 괴뢰로 되고.》
《선생님, 정말로 그 지경에 이르면 국민은 어떻게 될가요?》
《학생은 그걸 몰라서 물습니까? 노예가 되지.》
학생들은 한결같이《와ㅡ》했다. 심히 불쾌했던 것이다. 이번만이 아니였다. 전에도 서일은 말한바있다. 2천만 조선민족이 자칫하면 왜놈의 노예로 전락되리라고. 그때의 일깨움이 현실로 다가오고있음에 학생들은 다시금 경악하고 있었다. 저마다 제 생각을 내놓고 한바탕 운운했다.
《왜놈들은 지도에 그려진 우리 대한제국을 색깔마저 완전히 변하게 만들자고 듭니다. 내가 접때도 말했듯이 인간으로 태여나 남의 노예가 되여 개, 돼지만도 못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기보다 나을 것이 무엇인가, 안그런가?.... 그런고로 우리는 분발을 해야한다. 싸우다 망한 민족은 다시 부흥을 할 날이 있지만 싸우지도 않고 망하는 민족은 영원히 망해버려 남의 노예로나 되고맙니다. 학생들은 이것을 잊지 말아주시오.》
서일이 말을 채 끝맺지도 않았는데 팔을 걷으며 나서는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 그렇다면 우리도 나가 총들고 싸워야 함이 옳지 않을가요. 지금 당장 나가 싸우고 싶습니다. 강릉의 학교교원 정해관도 제자들을 거느리고 일진회의 사무실을 들부시고나서 의병이 되어 싸웠다잖습니까?》
《나는 아직은 그러고싶은 맘이 없습니다. 건 왜냐구?....한마디로 말해서 시기상조이길래. 학생은 나의 말을 명심해 들으시오. 두고보오만 불원간에 나가 싸울날은 올겁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모두가 일떠나서 싸우지 아니하고는 아니될 것입니다. 무기는 지능자의 손에 쥐여져야 하는겁니다. 오직 그래야만이 싸워도 철저한 사상을 갖고 명지하게 싸울수 있게 될 겁니다. 아직은 어린 몸이니 모두들 마음바로잡고 덤비지를 마시오. 지금 내 앞에 놓인 급선무는 지식을 많이 배우면서 애국심을 기르는것이라 생각해야합니다.》
사생모두가 심각한 태도로 숙연했다.
이날도 서일의 연설은 그들에게 심각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신채호는 어떻게 보내고있을가? 신문기자니까 분주히 돌아칠거야.》
퇴교시 박기호가 하는 말이다.
《그야 제 직책을 다하누라 동분서주를 하겠지. 안그래?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때를 당하고 보니 나는 김규식이도 생각나는구나. 그는 서울에 있으니까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 눈으루 직접보고있을거다. 그리구는 가만있을려구하지 않을거다. 열혈이 끓는 군인이니까.》
그 말이 옳았다. 열혈이 끓고있는 김규식은 집구석에 처박혀있지를 않았다. 바로 신문에 실린 보도가 생기게 된 그 18일날의 동틀무렵에 누군가 달려와 불길한 소식을 퍼뜨려 김규식은 얼른 옷을 주어입고는 밖으로 뛰여나갔다. 거리는 그사이 벌써 백의현관(白衣玄冠)으로 메워져 있는지라 알아보니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왕궁을 주시하고있었다고 한다.
《그래 무슨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김규식이 사태를 알려느데 때마침 학생모양의 청년 하나가 팔을 걷어붙이고 격앙된 목청으로 크게 부르짖었다.
《여러분 다들 들으시오! 지금 내각적신들이 임금을 페하고 나라를 팔려하니 우리가 어찌 죽기로 싸우지 아니하랴! 사세는 급박해 오고있습니다.》
2천여명의 서울시민은 이 소리를 듣자 술렁댔다.
《임금을 페하다니 이게 웬 소린가?!....》
《적신들이 역모를 하는구나!》
《릉지처참을 해치울 놈들!》
격분의 웨침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민족적 울분에 휩싸인 군중들은 일본의 침략적인 죄행을 저주하고 규탄하면서 시위와 롱성투쟁을 벌리였다.
반일기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갔고 대렬도 늘어났다. 애국문화운동단체인 자강회(自强會)와 동우회(同友會) 회원들 그리고 기독교청년회원들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들에서 이에 참가했다.
동우회원들은 재빨리 《결사회》를 조직했다.
시위대오는 두대로 나뉘여 한 대오는 일당(日黨) 일진회의 기관지인 국민신문사(國民新聞社)를 습격하였다. 김규식이도 이 대오에 끼이였다. 그는 분노한 사람들을 이끌고 신문사내에 뛰여들었다. 신문사 사원들이 행동을 저지시키려들자 김규식은 주먹으로 답새겨 하나하나 밖으로 쫓아냈다. 그가 그러는 사이에 다른이들은 기계를 뚜드려 부수고 가옥을 헐었다.
이때 다른 한 대오는 대한문앞에 모여 사태를 연설하며 목청을 모아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황제페하는 적신의 말을 듣고 양위를 체행(遞行)하지 마옵소서. 감심매국(甘心賣國)하는 역적들은 우리들이 맹세코 죽이고야말겠나이다!》
그러나 밤은 깊어갔고 궐문은 헌병과 순사들이 굳게 지키고있었다. 이러한즉 외부의 실지상황이 구중(九重)에 들릴리도없거니와 내각의 진상도 새여나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니 드디여 급격한 행동을 더 하지 않고 헤여지고말았다.
19일 황태자에게 양위한다는 고종황제의 조서(詔書)는 내리고말았다.
서울의 인심은 극도로 격분하여 광분도 하고 질주도 하였다.
김규식은 잠을 깨자마자 다시뛰여나갔다.
그는 가다가 길에서 마침 신채호를 만났다.
《어제밤도 나왔댔소?》
신채호가 물는말이였다.
《나왔지. 내가 일진회놈들의 신문사를 파괴했지요. 신기자는 어제?...》
김규식이 알려주고 물으니
《나는 궁성밖 모임에 끼여들었다가 신문사로 돌아갔소.》
신채호는 이러면서 이날 발행할 신문의 판면에 실을 보도 두편을 쓰느라 잠깐 눈을 붙여 등걸잠을 자고 나왔노라했다.
김규식은 그를 다시보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에는 피발이 일어서고 있었다. 윤기도는 까만 하이칼라와 코밑에 멋스레 자래운 팔자수염, 자그마한 몸체에 강단있게 생긴 이 선각자 언론인은 피로마저 잊고 돌아치니 과연 불굴의 투사다왔다.
《여기 소식이 언제면 함북에 갈가? 이 일을 서일선생이 알면 대뜸 달려오자구할텐데....난 어쩐지 그를 한번 더 보고싶습니다.》
김규식은 초면에 인상이 깊었던 경원의 그 한 교원을 잊지않고있었다.
《그래? 나역시. 동지를 포섭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그는 열혈남아요!》
신채호가 하는 말이였다.
고종이 퇴위했다는 소리를 듣자 서울의 모든 점포들이 문을 닫고 상인들도 거리에 나왔다. 서울시민들은 남녀로소 할 것 없이 방망이와 몽둥이를 들고 떨쳐나서서 거리를 메꾸었다. 각 학교들이 서로 련계하여 죽기를 맹세하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호소하니 학생들은 구름같이 모여 조수와 같이 밀려나갔다.
수많은 군중이 궐문밖에 모이여 살기가 가득찼다. 금시 무슨 일이 터질것만같았다. 순경들이 해산시키려고 강압적으로 몰아쫓는것도 모르는척 하고 기와장이며 조약돌을 던지며 대항했다. 시위는 마침내 폭동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서울시민의 폭동에 당황해난 일제는 연설한 청년을 선동분자라 하여 체포구금하였다. 그러나 그로하여 군중들의 분노성이 더 높아지자 그만 석방하고말았다. 이번에는 분노한 군중을 무마해보려는 수작이였다.
19일 이날 오후에는 민중이 더많이 모여서 왜놈의 순경과 충돌하니 돌이 날으고 혹은 맨주먹으로 격투를 하기도하였다. 그러다보니 사상자를 내게 된건데 일본군은 자기들에게 피해가 생기는것을 보자 군중을 향해서 총을 란사하여 사람 여럿이 죽고 상하였다.
이때는 김규식이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는 시위보병 제1련대 제3대에 달려가서 그들에게 가만히 보고만있을건가 시민들과 합세하여 싸워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제3대의 100여명의 군인들이 오후에 지휘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동(典洞) 병영을 뛰여 나와 군중들의 대렬에 합류하였다. 그들은 두 대로 나뉘여였다.
이때 또 따로 수천 민중이 종로에 모여서 격렬한 연설을 하며 열혈을 뿜는데 왜순경 50여명이 와서 해산시키려 했다. 이러는 판에 마침 전동 병영에서 나와 갈라진 한 대오의 수십명 군인이 시위군중을 탄압하는 경찰들에게 사격하였고 다른 한 대오는 종로파출소를 습격하여 왜경 3명을 죽이고 6명을 부상케 하니 군중은 원조를 얻은지라 기세가 더 떨치였다.
일부 봉기자들은 남대문과 서대문, 전차정거장과 서대문밖에 있는 일본군의 포병영을 불사르고 파괴하려 하였고 일부봉기자들은 한강철교의 파괴를 계획하였다. 다른 또 일부의 봉기자들은 이또오 히로부미가 창덕궁우로 가는 것을 습격해 처단할 준비를 갖추었다.
김규식은 각 병영을 뛰여다니면서 거기에 남아있는 군인들을 동원시켜 투쟁에 나서게 했다. 이때 한 시위대오는 일본경찰과 투석전을 하고있었다.
1907년 7월 21일자 大韓每日申報는 이날의 정경을 아래같이 보도했다.
<<서울성안과 성밖의 조선사람들은 사기가 충천하고 피눈물로 땅을 적시면서 일본놈을 만나기만 하면 죽이고저 하였다.>>
《잘하는구나!》
서일은 신문을 읽고 몹시 격동했다. 당장 달려가 자기도 그 속에 끼이고 싶고 실황을 사진으로 눈에 찍어 넣고 싶었다. 그럼에도 교단은 한발자국도 떠날 수 없는 그였다. 학생들은 그와 운명을 같이하려 하였고 그는 그러한 사랑스러운 제자들을 책임져야했다. 당장 뛰여갈 양으로 움찔거리는 학생들을 달래여 눌러놓아야했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소식중 통쾌감을 제일주는 것은 적신들에 대한 타격이였다. 동우회원 강태현(姜泰鉉)이와 송영근(宋榮根) 등 몇이서 조직한 결사대는 이완용의 집과 이전 내부대신이였던 이지용의 집을 습격하여 불지르고 왜경찰서를 습격하며 군부대신 이병무(李秉武)의 집을 파괴하여 형세가 더욱 맹열하였다 한다. 한편 군중의 필사적인 반항에 겁을 집어먹은 이완용내각의 친일대신들은 저마다 일본측에 보호를 의뢰하였는바. 이완용은 일본인거리의 왜성구락부에, 법부대신 조중웅은 일본인의 구락부에 피신하였고 내부대신 임선준과 군부대신 이병무와 탁지부대신 고영희 등은 각기 저들 집에 일본군대를 불러들여 호위케했다고 하며 다른 여러 대신들은 자기 집에는 있을 수 없어서 통감부가까이에 있는 송병준의 집에 모여들어 정부의 회의장소도 거기로 옳기였다는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20일날 오전 8시 급급히 서둘러 중화전(中和殿)에서 간단한 즉위식을 거행하여 황태자를 등극시켰다. 그리고는 고종황제를 《태상황》《태황제》라 불렀다.
이 소식이 함북의 경원까지 전해왔다.
《허, 새 황제 등극이라! 일본군과 헌병의 삼엄한 경계속에서 거행되였으니 그 꼴이 어떠했을가? 의례 문무백관의 축복과 기악의 연주속에서 즐거웠어야 할 등극식이 되려 살벌한 분위기에 싸늘하였을테지.》
박기호가 하는 말이였다.
《끝장이다! 끝장이다! 이젠 끝장이다! 500년의 이조왕조가 이젠 존재를 끊마치게 되는구나! 아아....》
누군가 슬픔을 내뿜고있었다.
《고종이 퇴위했다지. 어리숙한 아들이 이제 뭘 해낼가. 가엽은 이조왕조여, 어이하여 이꼴이 되느냐? 가엽은 네가 이제는 완전히 일본의 리용물로 변했구나!》
또 다른 누군가 내뿜는 한탄이였다.
《황태자가 왕의 자리를 이었다니 그럴사한걸. 이 역시 이또오의 조작극일거다. 귀막고 방울훔치듯이 어리석게도 제딴에는 약은꾀를 쓰고있는거다. 왜 그러는가구?....거야 명백하잖은가. 일본은 이렇게 함으로써 왕의 계승문제와 관련하여 일어날 수 있는 백성의 분노를 무마하자는 수작인거다.》
서일이 말했다.
<<고종의 양위는 정식으로 왕의 자리를 넘겨준 것이 아니라 일시 황태자로 하여금 왕을 대리하게 한 것이다. 기회를 보아 또다시 왕위에 올라설 것이다.>>
22일 통감부에서 이런 포고를 냈다. 이 포고는 일본의 야심과 통감 이또오 히로부미의 꿍꿍이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얼려먹었다. 그러나 좀이라도 자각이 있는 사람은 반신반의하면서 정신차렸다.
《어디서....거짓 수작은 잘 피운다.》
박기호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작난을 쳐도 분수있지. 그것도 말이라고 죄치는가. 다시 올라설 임금이면 왜 퇴위를 시켰느냐? 철없는 애들이나 그걸 곧이듣겠는지, 원.》
서일은 통감의 회유적인 수작을 쓰거워했다.
이 포고문으로 인하여 경원학교는 또 한번 안정을 잃었다.
서일은 사생들에게 통감부의 말을 믿지 말라고 했다.
어느 학생이 손을 썼는지 그 포고위에다 이런 글을 써서 덛붙여놓았다.
<<머저리 바보만이 통감의 말을 믿는다.>>
여러 신문들이 별다른 소식을 내지 않았다. 서울의 각 아문(중앙관청)들은 정무를 중지하였고 상인들은 가게방을 닫았으며 개성, 평양 및 모든 항구도시들은 철시를 하였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였을 뿐 서울시민들의 폭동이 어떻게 되였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더 언급 하지 않고 있었다.
촉각이 예민한 서일은 이렇게 분석했다.
《통감부가 신문보도를 통제하는거야. 서울시민의 폭동은 십중팔구 일본군의 탄압과 회유기만책동에 그만 실패를 했구. 물론 백성, 군인을 얼마간 각성시켰겠지만. 조직적으로 그를 이끌어주는 령도자가 있어야하는건데...》
《맹랑하게 됐구나!》
박기호의 탄식이였다.
소식이 페쇄되여 갑갑하던 차 경원에서는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 박영효(朴泳孝)가 이갑(李甲), 어담(魚潭), 림재덕(林在德) 등과 밀모하여 양위식을 거행하는 날 그 소속의 근위대를 끌고 들어가서 여러 역신을 죽이고 황위를 회복하려 하였는데 이완용 등이 그 소식을 듣고 이또오 히로부미에게 말하여 박영효는 제주(濟州)로 귀향하고 이갑, 어담, 림재덕 등은 투옥되였다는 소식이 뒤늦게나마 새롭게 들려왔다.
《이완용 그놈은 아마 제 명을 다 살고 죽을 모양이구나. 더러운 짓은 다해가면서도 요리조리 죽을 고비는 묘하게도 넘기는 걸 보면. 조물주는 우리 배달민족을 망하게 하느라 저따위 인간을 만들어 낸게 아닐가.》
학생도 백성도 적신의 묘한 피사술(避死術)에 혀를 내둘렀다.
서울시민의 폭동은 가라앉고말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엄청 큰 폭동이 일본의 야욕에 의하여 온양되고있었다. 이를 대처하느라 이또오 히로부미는 평양에서 1개 대대의 일본군을 서울로 옮겨오는 한편 수상 사이온지에게 전보를 쳐 1개 혼성려단의 군대를 급파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로서 막이 내린건 아니다. 절대루. 아니구말구. 우리는 시세를 잘 관망하면서 림기적인 응부책을 대야하리라.》
서일은 말했다. 그 혼자뿐니 아니였다. 경원학교의 사생모두가 고종황제퇴위를 선줄로 이제 련쇄적인 반응이 말하자면 어떤 사건이나 변들이 련달아 생기리라는 것을 육감적으로 느끼기도 하고 예견하기도했다. 이 나라는 근세에 들면서 내내 다재다난의 와중에 시달림을 받고있지 않는가. 그래서 국민모두를 점쟁이로 만들고 있으니 과연 기막히는 운명이다!
아니나다를가, 7월 24일 일본, 한국간에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맺어졌다. 이 조약이 1907년(정미)에 맺어졌고 7개 조항으로 되었다하여 <<정미7조약>>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 조약에 의하여 대한정부는 통감의 동의가 없으면 조선인 고등관을 임명하거나 파면할수 없게 되었으며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은 무조건 관리로 임명하여야 한다. 그뿐이 아니였다. 한국정부는 통감의 동의가 없이는 외국인을 용빙할수도 없게 되었다.
《망할자식들! 권리를 다 빼앗는 판이로구나! 나라의 립법권, 내정권, 관리임명권, 파면권, 일본인관리임명권에 외국인고용의 금지권이라....통감이 다 틀어쥐였으니 이제 우리한테 남은게 무엇이냐?》
《남은건 죽는 권리밖에 없다!》
서일도 박기호도 원통하여 땅을 치며 부르짖었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이 조약의 내용을 강행적으로 집행하기 위하여 종래 고문 또는 참여관으로 있던 일본일을 다 해임하고 그 관리들을 한국정부와 지방관청(도감영) 각 부의 차관으로 들여앉히였다.
《차관이란게 뭐냐? 조선인장관의 다음자리라? 말은 좋다. 그게 다 형식이지. 형식이구말구. 실지로는 그놈들이 각 부의 권한을 다 쥐는거야.》
서일의 말이였다.
《그렇구말구. 그러구는 신협약의 내용을 착착 집행하자는게지 뭐야.》
박기호가 이또오 히로부미가 차관정치를 창안한 목적을 까밝히였다.
《종래 통감은 외교권을 틀어쥐고 시정에 대해서는 겨우 소극적인 충고권을 가지였을 뿐이였어. 그러나 이같이 함으로써 이제는 적극적으로 한국정부를 지도할 권한을 가진게 아닌가. 한국정부의 기능이 이제는 명실공히 유명무실한 존재로 되고말았다! 왜놈이 이 나라의 자주권을 더욱더 란폭하게 유린하게 되었구나!....그래 어느 개놈들이 나라를 이같이 팔아먹느냐?》
서일이 통분하여 웨치는 것을 보고 박기호가 이번 조약을 가(可)로써 찬성한 7적의 이름을 손가락을 꼽아가며 세였다.
《총리대신 이완용, 내무대신 송병준,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탁지대신 임선준, 학부대신 이재곤, 군부대신 이병무, 법무대신 고영희.》
이또오 히로부미의 지모는 실로 난당이였다!
《제의 양위는 한정대신(韓廷大臣)의 의사로 행(行)한 것이니 이것으로써 일본에 사죄하였다할수 없다.》
이것은 새황제가 즉위하여 8월 2일부터 융희(隆熙)라 개원(改元)하고 제3 영친왕 은(垠)을 책봉하여 황태자로 봉하게 되자 이또오 히로부미가 한 말이다. 황제가 양위를 하게끔 추긴게 누구였던가? 위협적인 언사로 압력을 가한건 누구였던가? 바로 이또오 히로부미 그가 아니였는가? 사람의 깝지를 쓰고 이렇게 까지 철면피할 수야!....그럼에도 이완용 등 7적신은 찍소리 한마디 못했거니와 이또오 히로부미가 황제양위로 일본에 사죄가 되지 않는다면서 요구조건 7조를 내놓자 그것을《지당한 일》이라 했던것이다.
《금차 이또오 통감께서와 하야시 외무대신께서 한국의 내치가 문란한데 비추어 7조를 내놓음에 조약을 체결하려하오니 페하께서 윤하하옵시오.》
이완용은 입궐하여 이같이 순종황제에게 상주하고는 량국위원이 모인 통감부에 가서 조약에 서명하였던 것이다.
《나야 방금 위에 올랐으니 뭘 아오? 경들이 알아서 선처하도록 하오.》
어리숙한 황제는 조약문을 제 눈으로 한 번 보지도 않고 이러면서 재가를 제꺽해버렸으니 뭐라고 말을 할가. 귀신이 들어도 곡을 할 지경 한심한 판이였다!
《네놈들이 무능한 황제의 등을 타고 롱간을 부리는구나! 저 씨알머리를 말려도 시원찮을 7역신이 이 나라의 대권을 잡고 왜놈의 개가 되어 민족을 팔고 나라를 파니 세상은 장차 어떻게 되어갈가? 아아, 암흑의 란세여!》
나라와 민족을 구해낼 길을 찾아야 했다. 서일은 그 사명이 배달의 후예로 태여난 자기의 두 어깨에도 지워졌음을 한번다시 심심히 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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