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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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돌이켜 생각해볼 타살폭행
2013년 11월 15일 18시 52분  조회:4305  추천:0  작성자: 김송죽
 

에세이 돌이켜 생각해볼 타살폭행

 

조련장(早練場)에서 있은 일이다. 로류(老劉)가 오늘 아침에는 로양(老梁)을 데리고  내앞에 나타났다. 로양(老梁)역시 내가 면목아는 한족인데 성격이 내향적인 그는 내내 공안계통에서 사업하다가 퇴직했다. 그가 손에 들고 온 신문을 내한테 주면서 “김선생 좀 읽어봐요!”하는 것이였다. 받아서 펼쳐보니 갖지난 전번달 말일의 《快乐老人报(쾌락로인보)》제16면이였다. 거기에《1982년 천안문광장 가차충당사건(驾车冲撞事件)》이라는 글과 <<전명건:풍광창살32인(田明建:疯狂枪杀32人)>>이라는 두 문장이 함께 실려있었다. 로양(老梁)이 이 신문에다 다시낸 그 두사건에 대해서는 원북경사람이면 거의가 잘아는 일이라해놓고는 적이 흥분된 목소리로 ”여기에 살인광이라구 한 이 사람잊잖은가유, 이 전명건인즉은 바로 나의 동무였습니다.“하고 내한테 알려주는 것이였다.

“오, 그래?!”

나는 적이놀래여 로양을 다시보고나서 눈길을 신문에다 옮겼다.

북경에서 사회를 상대하여 일어났던 끔찍스런 그 두 보복사건이 발생된 시간을 보면 하나는 1982년1월이고 다른하나는 1994년9월이니 보다싶히 상거 12이년이라는 기간을 두고있다. 하지만 그 두사건이 발생된 연유를 보면 다가 상급에 대한 불만이 결국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보복행위로 번져버렸다는 그 점이다. 정녕 그러하니 오늘에 이르러 그 두 사건을 함께 신문에다시 올릴 때는 그때의 그 사건으로서 사람들에게 주의를 다시금 환기시키자는것이 목적일것이다.

 

1982년1월, 천안문광장에서 발생했던 자동차충돌사건에 사람이 죽은것이 5명이고 부상당한것이 19명이였는데 광장에다 남긴 피자국이 100여메터나 줄을 그엇다고한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는데 광장에는 수도북경을 찾아와 천안문과 인민대회당이나 인민영웅기념비아니면 국기계양대를 배경으로 해서 기념사진을 찍는 외지인들이 많았다. 시간은 그날오전 11시경이였다. 북경시택시회사 동물원차대의 23살난 녀운전사 요금운(姚锦云)이 바르샤바 패쪽을 단 택시를 몰고 천안문광장에 갑작스레 침입했던 것이다. 그는 택시를 몰고 광장을 한바퀴 돈 후 홀연 조절판을 눌러 속도를 빼여서는 깃대서쪽켠의 사진을 찍느라 모여선 사람들을 짓깔아놓고는 금수교(金水桥)다리로 돌진했던 것이다. 삽시간에 터진 비명과 아우성속에 자동차는 백옥교의 란간을 들이박았다.

하여 인민영웅기념비와 금수교사이 100m길이에 사람의 피가 발리였다.

 

로양(老梁)이 하는 말인즉은 썩 지나서 2003년도에 <<인민공안>>에 실린 회억문장을 보면 그당시 천안문을 지키던 경찰 둘이 날파람나게 달려가봣는데 택시를 몬 그 여자는 머리를 핸들너머의 앞차창유리를 들이박아 깨고는 정신을 잃은상태였다면서 경찰들은 낯이 볼모양없이 상한 요금운(姚锦云)을 병원에 가져갓다는거다. 그날 그녀가 몬 차에 깔리고 치여서 그같이 무고한 사람 다섯이나 처참하게 생명을 잃었거니와 19명이나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기자들은 그 사건이 생긴 원인을 인차공포했는데 외국소식통들이 추측한것 같이 그렇게 몹시복잡한건아니였다고한다. 처음에는 “반혁명”사건이라했다가 훗날에는 “반혁명”이란 세글자를 빼버렸다고한다. 그 사건이 생긴 원인을 보면 아주 간단했다.

요금운(姚锦云)은 4일전에 차대의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하여 30.6원을 벌금당한 것이다. 그때의 생활수평에서 그것은 그의 한달생활비용에 해당하는 금액이였던 것이다. 일을 친 원인이라면 다른게아니였다. 요금운(姚锦云)은 그렇게 천안문자살로서 사회에 영향을 크게 일으키자는게 목적이였다고 한다. 

 

신문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1981년12월에 요금운(姚锦云)이 임무를 완수한것이 근근히 15차, 회사가 결정한 52차에 비하면 너무나도 형편없기에 차대의 령도에서는 그보고 임무를 완성못했길래 벌금을 안긴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보태기를 요금운이 다음달에 능히 임무를 완수하면 벌금을 안기지 않겠노라했다. 한데도 그는 불만을 품고 대들었던 것이다.

“벌금규정이야 1월에 내온게아닌가, 한데 왜서 전번달월급에서 벌금을 떼내는가? 이건 일부러 나를 괴롭히는게아니고 뭔가?”

1월8일날 아침에 대장 근경의(靳景义), 부대장 손당(孙堂)이 그를 찾아 담화해봤지만 그가 격노하기만하니 허사였다. 하여 그들은 즉석에서 그보고 잠시 차를 몰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사후에 요금운(姚锦云)이 말하는 것을 보면 “나는 다음달부터는 잘해서 월급을 떼우지 않으리라 맘먹었는데 령도가 너는 차를 몰지 말라하니 밸이 났다”는 것이다.

10일날에 요금운(姚锦云)은 부대장을 만나서 그보고 차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손당(孙堂)은 그보고 다음과같이 말했던 것이다.

“대장이 온다음에 보자꾸나, 네가 지금은 정서가 나쁜데 차를 몰면 위험한거야.”  

한데 10시가 넘어서 거리에 나갓던 바르샤바 패쪽을 단 택시한대가  돌아온거고 그 운전사는 차열쇄를 무심히 판공실탁상우에 놓고 다른데로 가버렸던 것이다. 그런것을 요금운(姚锦云)은 제손에 저꺽넣어서는 차를 몰고 천안문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어데가서 말할데도 없었어요,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낫지. 천안문광장 금수교에 부닥쳐 자살할려구했어요. 그래도안되면 금수하에 빠벼죽던지. 영향이미치면 령도가 중시하겠죠. 차대의 령도들도 추궁받을거구. 내가 죽어버리면 그네들도 편안치는않을거라 생각했어요.”

그가 옥중에서 한 말이였다.  

 

1982년1월30일,북경시중급인민법원은 1심에서 요금운(姚锦云)을 고의살인죄로 사형에 처했다. 그리고는 2월1일에는 사형이 집행되였던 것이다. 안건이 생겨서 만 40일만이다. 이제 3일만 더 살았더면 생일을 쇠고 24살의 나이를 먹었을 그였다. 요금운은 1958년에 한 교사가정에서 태여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전에 풍옥상(冯玉祥)의 비서를 지낸바있고 후에는 북경철로2중에서 교편을 잡은것이다. 어머니역시 서직문 제1소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데 “문혁”이 오니 그의 집은 재난이 덮치였다. “문혁”기간에 그의 집은 “홍위병”들의 손에 여러번이나 털리웠거니와 요금운(姚锦云)의 아버지와 이모(异母), 언니와 형수는 다가 고통을 받아내기 어려워서 자살하고 만 것이다.  요금운이 11살나던 해에 집은 몰수되였다. 하여 그와 오빠는 정처없이 나돌다가 하향을 했고 그러다 몇해후에는 도시로 되돌아온건데 겨우 8평방미터밖에 안되는 협착한 집에서 그들은 고생스레살았다.

“그때까지도 ‘문혁’때 빼앗긴 집도 못찾았다니 원, 말이안되지!”

로류(老劉)가 하는 말이였다.

 

전명건:풍광창살32인(田明建:疯狂枪杀32人)

 

이 사건이 생긴것은 1994년 9월이였다. 전명건(田明建)은 지금 내가있는 여기 통현(지금은 通州區)의 북경위수구삼사십이단 중위부련장(北京卫戍区三师十二团 中尉副连长)이였는데 전부터 사업상의 모순으로 인하여 상급에 불만이 생긴건데 그것이 국경45주년경축을 맞으면서 전우들을 도살하는 광란을 부린 것이다. 그날아침 6시40분, 부대가 아침훈련을 하는 기회를 타서 그는 81식돌격총으로 단정위를 비롯한 관병 23명을 쏴죽이고서는 천안문으로 향했다. 한데 그는 천안문에 이르지 못한채 시중심인 건국문(建国门)의 립체교로부터 아보로(雅宝路)에 이르는 사이에서 경찰들의 저격을 받게되니 지나가는 행인을 또 9명이나 쏴죽였던 것이다.  

신문은 결말에 쓰기를 전명건(田明建)이 본래목적한 곳은 천안문광장이였지만 경찰들이 한사코 막으니 더못들어가고 아보로(雅宝路)의 객들을 그렇게 죽이고는 자신도 총에맞아 죽고말았다면서 “전명건사건”후 북경위수구사령원(겸북경군구부사령원) 하도천(何道泉中将)이 강직처리되고 북경위수구정위 장보강소장(张宝康少将)이 철직처분을 받았거니와 부사령원 둘이나 면직되였던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왜 이럴가? 돌이켜 한번다시 생각해봐야 할 타살폭행이다!

“이런 사건들로부터 볼수있는건.... 내 생각은말이여, 관리수단이 아직도 매우락후해서 사달이지. 인간다운 인도적인 면이 부족하고... 보면 아주간단한 일인걸갖고서도 크게 만들어 지어는 국가에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치게한단말이요. 요금운(姚锦云)의 일을 좀 보지, ‘문혁’이 끝난게 어느땐데 그때까지도 빼앗아간 집을 돌려주지 않았다면야 정책락실이 제때에 되지 않은게지 뭐요? 그래 그 애가 사회에 불만이 없을리 있는가? 그 본인이 사업상 문제가 있기는했겠지만 령도가 좀만 더 후더움을 보여줫어도 그애가 그토록 적의를 품고 극단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을거요.”

로류(老劉)가 하는 말이였다.

그렇다하여 과격한 행동으로 개인문제를 처리하려는건 어느모로보나 맞지 않지만 그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어떤 문제에대해서는 관리하는 사람도 메이크업도 없으니 개선해야 할 일이아니겠는가?  

로양(老梁)이 보탰다.

“당년에 광주 배에서 발생한 사건도 보면 평상시 잔잔한 모순을 잘처리하지 않았길래 생긴게지요, 폭약을 텃쳐 제사람을 죽인일말입니다.”

 

범죄분자는 물론 심각하게 처벌해야하지만 더욱히는 우리들 자체가 관리수단에 존재하는 치명적인 문제를 뉘우쳐야한다. 시대가 진보하고 사회는 발전하는데도 그냥 낡아버린 행정명령에다 엄밀한 표시나 실제에 맞지 않는 명령으로 사회를 내처관리하려들면야 그래 리바운드를 일으키지 않을리있겠는가? 사달이 생기지 않을리있겠는가? 아직도 어떤 지방관리들은 의연히 행정명령을 미신하면서 백성들을 이런전런 방법으로 강박하고있다니 말이아니란다. 어떤데서는 농촌시범을 꾸린다는 것이 이러저런 지표를 높혀갖고 너무나 달구치길래  간부를 사람새끼아니라고 욕한다니 웃을일이다.

 

“근14억에 이르는 사람의 욕구를 다 들어주기는 천부당만부당한 일, 누구면 키를 바로잡겠는지?!” 

로류(老劉)의 의미심장한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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