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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회장 발간사
지난 2007년 6월 20일, 대한민국헌정회에서 김옥선 단장을 필두로 30여명이 중국 목단강 독립운동유적지 탐방을 한 일이 있었다. 4박 5일 일정으로 인천 국제 공항을 출발하여 세시간 삼십분 후에 목단강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행사로 목단강 시정부를 방문하고 다음날엔 김좌진 장군 기념관을 방문한 후 연길로 이동하여 용경 상천부 발해 유적지를 돌아본 후 3일째에는 백두산을 올랐다. 4일째 되는날에는 용정 대성중학교와 일송정, 도문일대를 탐방했다. 마지막날에는 연길 경박호와 해림으로 이동하여 항일 무력투쟁의 거점지인 봉오동 일대와 청산리 일대를 돌아본 후 오후에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김좌진 장군 기념관에 들렸을때 함께 탐방했던 나를 비롯한 박경석, 김용수, 정웅, 김유진 등 선배 의원들은 기념관에 전시된 만주벌 일대의 독립군 좌장으로 청산리 전투를 포함한 무력독립투쟁의 최선봉에 서셨던 서일 장군( 백포 서일? )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고는 이러한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가 기억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개탄을 금치 못했다.
서일 장군(? 백포 서일)은 나철과 대종교를 만들어 대일 항쟁의 최선봉에서 대한독립군단 총재로서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등 여러 장군들을 두루 통솔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본인이다. 그는 1919년 대종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무장독립 운동단체를 이끌다가 대한군정서, 북로군정서 등의 수장을 거친 후 대한독립군단의 총재를 맡았다.
1600여명의 북로군정서 소속의 독립군은 만주지역 독립군의 약 80% 정도를 차지했던 그 지역 중심세력이었다. 북로군정서는 왕청현 십리평에 본부를 두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후 일제의 압박이 강화되자 독립군은 밀산에서 12개 독립군이 통합된 단체인 대한독립군단으로 개편했는데 이때 총재로 추대되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 중 가장 격렬하게 무력투쟁을 전개한 대한군정서의 총책임자였다는 점에서 그의 독립투쟁은 보다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일제 강점기 중 가장 암울했던 시절 조국의 광복을 위해 무장투쟁의 최고 사령관으로서 청산리 전투 등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가장 자료가 미비하고 가장 빛을 보지 못한 서일 장군(백포 서일?)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특히 내가 서일 장군(백포 서일?)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는 41세라는 짧은 삶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그의 삶 또한 너무나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북간도를 중심으로 대종교를 전파하여 민족정신 함양과 함께 단순한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넘어 우리 민족적 역사자존심까지도 회복하고자 하는 높고 깊은 뜻을 품은 인물이었다.
둘째, 대종교의 교주로 천거받았으나 이를 뒤로 미루고 나라가 없는데 나라 찾는 일이 우선이라며 무력 투쟁에 헌신한 인물이다.
셋째, 함경북도가 고향이신 백포께서는 우리의 숙원인 통일 조국과 미래역사에서 남북겨레와 해외동포 모두에게 민족 정신의 상징적인 인물로 추앙받으실 만한 분이다.
넷째, 41세로 생을 마감한 최후의 순간에도 자신의 죽음을 우리겨레의 수준높은 수행법이자, 천도교의 최고 수련경지였던 調息으로
육신적 자아에서 호국적 자아로 승화하면서 ,스스로 회천하시어
대종교의 한단계 도약을 도모하고 흩어진 독립진영에 대한 재기의 각성을 심어주고자 하는 수도와 독립투쟁을 병행하는 지도자로서의 삶을 최후까지 보여준 인물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왜곡과 함께 돌보는 이가 없었던바 서일 장군에 대해서는 기념관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역사적 기록도 변변치 않다. 서씨 후손의 한 사람이자, 민족의 일원으로 자랑스러움과 긍지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는 점에서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기록이나마 찾아보고 후손에게 전하고자 다짐했었다.
그 후 4년여동안 대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등에서 서일 장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고 특히 국학연구소의 서굉일 박사님과 김동환박사, 독립운동가 후손인 김병일 박사, 서진수 박사 그리고 추상호, 최경주 선생,21세기 청년 백포가 되는 학교 대표 서병목 등과 10여차례의 모임과 토론 끝에 독립군 총재 백포 서일 기념 사업회를 창립하여 본격적으로 연구와 실행을 결의하여 2010년 4월 22일에 백포서일 기념사업회를 정식 발족 한 첫 사업으로 백포 서일에 관한 국내외의 평전 및 논문 등을 총 망라한 [백포 평전]과 [백포 논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동안 잊혀가던 백포 서일을 기념사업회를 통해 알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하신 사무총장 서진수 박사님과 연구 자료를 제출해 주시고 기념사업회 창립에 협조해 주신 서굉일 박사,김동환박사,김병기박사와 그 외 많은 전문학자들과 자료 수집과 정리에 고생하신 최경주이사와 “21세기 청년 백포가 되는 학교”를 만주에서 해외동포청년들과 10여년 기획과 운영을 하고 있는 추상호 선생과 서씨 대종회 회장단 이하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평생을 바쳐서 연구하신 결과물을 허심탄회하게 보내주신 2분,
사론원고를 보내주신 북경의 김송죽선생님과 백포 평전 원고를 보내주신 항주 리광인교수님께도 진정으로 한국동포를 대표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2011년 9월 11일
독립군 총재 백포 서일 기념사업회 회장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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