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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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 묻힌 비밀(52)
2011년 03월 31일 17시 01분  조회:6326  추천:17  작성자: 김송죽
                         음지에 묻힌 비밀(52)              
                
                  같은 위인 같지 않은 품덕 

(1)모택동과 주은래지간의 은혜와 원한
(2)모택동이 주은래에 대한 심리모순
(3)주은래의 위인됨은 세계가 인정
    

1. 모택동과 주은래지간의 은혜와 원한
   

잠을 깬 모택동은 주은래가 죽었다는 부고를 듣자 자리에 그냥 누운채
말없이 눈물만 흘리였다. 왜 흘렸을가?...쑈맹(小孟)은 왕동흥(汪東興)에게 전화로 총리의 추도식에 대한 일을 묻고는 모택동주석이 참가하는지 알려달라 했다. 왕동흥은 정치국에서 주석이 추도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통지를 아직 내지 않았으니 그한테 참가여부를 말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이리하여 모택동은 주은래총리의 추도식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4인방”은 속으로 주은래총리를 뼈에 사무치게 미워했기에 그의 추도식활동을 거행하는것을 극력 간섭하고 방해했다. 상장을 달지 말라느니 추도식을 열지 말라느니 혁명을 틀어쥐는데 영향이 없어야한다느니 생산을 촉진하는데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부음이 전해지자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건만 “4인방” 그 일당은 기세가 올라서 모여앉아 얼굴에 웃음을 바르고는 트럼프를 쳤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다른때보다는 무등 기뻐하는 표현이 확연했던 것이다. 강청은 지어는 평상시에 입지도 않던 빨간털내의를 꺼내 입기까지 했으니 과연 꼴불견이였다. 보는 사람들은 속으로만 분노했지 말을 못했다. 
   후에 청명절을 계기로 주총리를 추모하면서 그자들을 성토하는 노도가 온 북경에서 세차게 일었던 것이다.       
모택동의 모든 동사자가운데서 그와 주은래의 관계는 아주 기특한 것이다. 혁명초기에는 주은래가 그의 상급이였는데 그는 모(毛)의 행동을 적극압제했다. 그러다가 준의회의후에는 또 주동적으로 자기의 권리를 아랫사람인 그한테 넘겨주면서 기꺼이 그의 지휘를 받으려했다. 
   
홍군이 장정하여 섬북에 이른 후 모(毛)는 주(周)와 함께 국민당과 담판하는 기회에 중앙군위주석의 대권을 정식으로 제 머리에 올려놓았다. 주(周)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그이 명령에 복종했거니와 공순히 따랐다. 그러나 모(毛)는 종래로 그를 신임하지 않았거니와 그를 자기 울타리안의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주(周)가 자기보다는 당내에 뿌리가 깊고 공산국제와 관계가 아주좋으며 국민당상층인물들을 익숙히 알기에 모(毛)는 그를 당의 지도핵심에 그냥 두고 작용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자기를 위해 복무하게 한 것이다. 한편 또 모(毛)는 그를 경계하면서 신속히 류소기를 중용했다. 그를 중앙의 지도핵심에 넣어 두 번째 인물이 되게 함으로써 자기의 친밀한 심복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실질상 류(劉)가 주(周)를 맛서서 그의 세력을 압제하게 만든 것이다. 그때를 놓고 보면 모류(毛劉)가 한 자그마한 정치울타리였고 아주 선명하게도 주(周)와 주덕은 그 울타리에서 배제되였던 것이다. 이는 모택동이 주은래와 주덕을 잠재한 정치상대로 보면서 자기 사람으로는 여기지 않았음을 표명하는 것이다. 
       

2. 모택동이 주은래에 대한 심리모순 

“너희들은  회인당회의에서 련합해가지고 돌연습격으로 중앙문혁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냐? 이게 그래 류소기를 다시올려놓자고 궁정정변을 일으키는게 아니고 뭔가. 너희들은 11중전회 때 다가 손을 들고서도. 왜 며칠이 지나지 않아 11중전회의 결정을 반대하는가말이다?”
        
담진림(潭震林)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회의에서 말한게 틀리지 않고 11중전회회의정신에도 부합된다고 본다. 그래 ‘문화대혁’명은 당의 령도가 필요없단말인가? 군대가 온정되지 말아야 하는가? 로간부들을 다 타도 할 수 있는가?”
 

그의 말에 진의가 보태였다.
    
“그렇다, 나는 바로 중앙문혁소조에 의견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허다한 작법들이 틀리고 있다. 천하를 그렇게 혼란스레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공인이 일을 하지 않고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고 기관의 간부가 출근하지 않고..... 이런다면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 ”
    
모택동은 이 말을 듣자 더욱 화를 냈다.
    
“중앙문혁소조는 8기 11중정신을 집행하고있는거니 착오가 있다면 백분의 1,2,3이고 백분의 97은 정확한 것이다. 누가 중앙문혁을 반대하면 나는 견결히 누구를 반대 할 것이다! 너희들이 문화대혁명을 부정하자고, 안돼!”
  
모택동은 시선을 림표를 대표하여 회의에 참가한 “림소조”주임인 엽군쪽으로 돌려 그녀를 보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내던졌다. 
   
“엽군동지, 가서 림표께 알려줘, 그의 지위도 온당하지 않다구. 어떤 사람이 그이 권리를 빼앗자고 드는거야. 그보고 사상준비를 하라고 해.”
    
모택동은 분노가 극도에 올라서 “3로 4통수”를 향해 웨치였다. 
   
“문화혁명이 실패되기만해보지, 나는 북경을 나가 정강산에 올라가 유격전을 할테다.”
    
이런 말이 이미 나가자 회의를 장악하던 주은래는 매우 놀면서 의아해하였다. 다른 몇몇 부총리와 오랜 통수들도 실망하여 낯색이 굳어졌다. 
   
모택동은 노기가 펄펄 끓어올라 성난 말을 한바탕 더 늘이였다. 
  
 “너희들은 강청, 진백달이 안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진의가 와서 중앙문혁조장질을 해봐! 강청, 진백달을 체포해서 총살하고 강생이 가서 군대를 다스려 봐. 나도 내려앉을테니. 너희들이 왕명을 모셔다가 주석을 시켜봐! 너 진의가 연안정풍안건을 뒤집자고 그러는 거지, 전당이 허락안하는거야! 너 담진림이도 로당원인데 대체 왜서 자산계급로선에 서서 말하는가말이다.”     
   
담진림(譚震林)은 과연 제몸을 찢어버린대도 아깝지 않다는 듯이 모택동과 맞다들었다. 
   “내가 일찍 입당해서 40년을 살지 말아야 했다. 너를 따라 혁명하지 말았어야 했다. 65살까지 살지 말았어야 했다!”    모택동은 손을 떨었다. 그는 담진림이 이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해를 내려오면서 그 누구도 감히 그와 맛다들어 이같이 “방자”하게 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여 노기가 더더욱 괴여오르게 된 모택동은 그를 힐책했다.   
 “그렇다면 넌 퇴당을 할게지, 혁명을 하지도 말게지! 65살을 살지 않고서는 어떻게 해? 넌 이미 살지 않았는가!”
    
주은래는 류소기, 등소평을 “타도”하는 과정을 걸치면서 이렇게 그냥  나가다가는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걱정되였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펀히 뜨고 량쪽이 함께 다 망하는 꼴을 더 보고싶지 않았다. 하여 그는 우선 그와 “3로 4통수”를 랭정해지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사태는 격화되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사위를 돌아보았다.
    
“회인당회의 때 로동지 몇분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리해를 제대로 못해서 성깔을 부린거니 주요책임은 내한테 있는 겁니다. 회의 후에 그들이 나를 찾아와서 자아검사했고 그들도 주석에게 미안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닫고는 기회있으면 주석을 만나서 검사를 하려고 했건 겁니다.”
    
모택동은 주은래가 또 “좋도록 반죽”하느라 그런다는 것을 알고는 속으로 그가 림표모양으로 자기를 바싹 따라주면 얼마나 좋을가, 림표가 팽덕회를 욕할 때 처럼 그렇게 이 사람들을 면전에 대고 한바탕 호되게 꾸짖고 욕해줬으면 얼마나 좋을가고 했다. 하지만 그는 주은래의 성격을 잘알고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야 어떻게 후르쇼브앞에서 주은래는 “약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주은래역시 그 누구보다도 모택동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만약 진의(陳毅)나 담진림(譚震林)모양으로 같이 탁상을 치면서 달려든다면 24시간내에 타도를 맞을 것이였다. 하지만 평생 맡겨진 사업을 사랑해 온 주은래로서는 자기가 “범의 굴”에 들 갈 지언정, “정신지옥”에 빠질지언정 절대 사업을 떠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관직을 그만두고 유유자적하게 된다면 그때는 자기의 생명도 끝장이라고 여기는 그였다. 그는 언녕 공화국이라는 이 크나큰 집속에다 제 한 몸을 용해시킨 것이다. 마치 자식들의 안녕을 위해서 제 몸을 버리지 못하는 주부와 같다고 할까, 그러면 틀린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어떤 때는 물러서고 양보도 했다. 하여 어떤 사람은 그를 “중화자”라 했다. 특정한 력사시기에 도전자만이 위대한건 아니였다. “중화자”도 역시 똑 같이 위대한것이다. 중국은 의례 주은래와 같은 사유가 주도면밀한 수령이 있은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모택동은 부득불 승인하지 않을래야 승인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능란한 사업능력과 솜씨는 그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택동은 주은래에 대해서 이같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어찌할 수없는” 모순되는 심리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모택동은 전면출격이 아니라 모순을 리용하여 각개격파하기를 좋아했다. 그가 지금 집중공격할 것은 “3로 4통수”였다. 
   
“그네들이 착오를 근본 모르지 않는가! 은래동지, 나는 이 일은 회의에서 참답게 토론할 걸 건의하오. 한번해서 안되면 두 번, 한달에 안되면 두달, 정치국에서 해결못하면 전체당원을 발동해서라도 해결해야지.”
    
모택동은 말해놓고 분연히 퇴장했다. 
   
모택동이 가버리니 회의실은 마치도 하늘이 절반가량 무너지기라도한것 같이 침묵이 아느새 흘렀다. 
   
주은래는 회의를 계속장악했다. 
   “주석의 지시에 근거하여 오늘같이 이런 회의는 계속할 수 없구만!”    
그는 오랜 통수와 부총리들을 보면서 잠시 끊었던 말을 이었다. 
  
 “누가 할 말이 있으면 먼저하시오!” 
   
그는 긴장한 분위기를 풀려했다.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은 담진림이 아무런 희망도 바라지 않으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벌써 발언권이 없어진게 아닌가.”
        
회장은 “중앙문혁파”의 천하로 되고말았다. 
   
그들은 먼저 담진림을 비판했고 이어서 서향전을 비판했으며 다음은 또 엽검영이였는데 비판받는 그들도 선선히 물러서려하지 않았다.
    
강청이 입을 열고 “영검영은 경서호텔에서 기염이 올라 탁상을 쳤고 구호도 불렀는데 그것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불만을 텃뜨린 것이다.”고 말했을 때 엽검영이 비평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는 커녕 되려 어성을 높히여 그녀를 여지없이 힐난했다. 
   
“뒤에서 꿍꿍이를 꾸미지 말로 할말이 있으면 말끔히 앞에다 내놓아라. 이건 내 밸이다. 그래 성나서 내가 상을 쳤지. 사실이다. 인건 내 습관이니 개변할 수 없다!”  
     
 주은래는 이렇게 쟁론하다가는 모택동에게 교대하기 어려운지라 언행을 놓고 염겸영을 비평했다. 
   
“당신은 왜 아직도 제 잘못을 모르오? 그래 모주석의 엄한 비평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단말이요? 무슨 착오든 다 승인하지 않으면 당신들께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착오가 있다해도 검토를 하면 그만인걸 갖고서!”      이것이 바로 주은래의 책략이였다.    
      
이회의에서 “중앙문혁파”는 저가끔 고개를 치키였다.  
이때부터 림표, 강청무리는 정식으로 오랜 통수와 부총리들을 공격했다. 전국성적인 범위에서 “2월역류”를 비판하는 운동이 점점 높아갔다. 여추리(余秋里)와 곡목(谷牧)이 오랜 통수들을 지지하자 강생이 말했다.   
 “ ‘2월역류’에는 둘이 더 있다!”
        
정치국상위의 리부춘(李富春)이 주은래를 협조하여 일상사업을 처리했는데 늘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부총리 몇사람도 그한테가서 문제를 토론하군했는데 강생은 그를 “구락부주임”이라 모욕했다. 이때의 주은래는 조급히 돌아쳤다. 그는 중견력량에 의지하여 나라가 운전되는건데 그 힘이 일단 무너지는 날이면 온 나라가 그만 반신불수로 되고마는 것이다. 그는 애써 나라를 구원할 방법을 모색했다. 
   
이럴 때 강청이 사람을 시켜 편지를 한통 보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정치국은 리부춘, 담진림, 리선념, 진의, 엽검영, 서향전, 섭영진 등을  담임하고있던 지도사업에서 즉시 해임시킬것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검사하고 비판을 받게하라. 이 의견은 강생이 이미 동의 한 것이다....”
        
주은래는 편지를 보고나서 깊은 생각에 잡겨 오래도록 까딱않고 앉아있다가 서산에 있는 엽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주은래요. 모두들 거기에 모여있다는 걸 아오. 함께 회의때의 정황을 토론해보는 것도 좋지!..... 난 아무일도 없소. 당신들한테 세가지 의견을 드리고싶소. 
       
첫째, 분을 가라앉히고 잘먹고 잘자야 하오. 입원하지 말고 그자들과 끝까지 맛서서 해내야 하오. 
   
둘째, 제 강위를 지켜야 하고 꼭 사업을 틀어쥐고 자기의 진지를 절대 놓지 말아야 하오. 진지를 버리면 그건 퇴각이고 도주를 하는거요. 
   
셋째, 검사해야할건 검사하고 책략과 예술이 있어야 하오. 당신들은 모두가 전쟁을 많이 해온 군사가들이 아닌가, 전략전술은 내보다 더 알것인데.... 두려울 것 없소. 전에 천하를 빼앗을 적에는 인민을 위해서라면 생사를 도외시했을라니 지금은 아직 인민이 준 권력을 제손에 쥐고있는데 모욕과 비판이 다 뭔가! ”
        
과연 그러했다. 오랜 통수들은 주은래의 용의를 알아차리고는 모두 두말없이 자아검사를 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시끄러운 고개를 되도록 무난히 넘기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였다.
                      

 3. 주은래의 위인됨은 세상이 인정
   

1. 한 서양의 기자가 주은래에게 물었다.   
 “총리선생, 물어봅시다. 지금 중국에 기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적잖은 사람들이 의혹에 빠져 갑갑해 하였다. 어쩌면 저런걸 다 물어본단말인가? 모두 주은래가 뭐라고 대답하는가를 기다렸다. 
   
주은래는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러자 온 장내가 왁작해지면서 의론이 분분했다. 
   
주은래는 그들이 떠드는 모양을 보다가 한마디 보충했다.
   
 “중국의 기생은 우리 나라 대만성에 있습니다.”
    
장내에는 우뢰마냥 박수소리가 터졌다.  
   
그런 물음을 제기한 기자는 음험했다. 그는 올가미를 만들어 주은래에게 씌우려 한 것이다. 중국은 해방이후 내지에 있는 모든 유곽을 봉쇄해버렸다. 전에 몸을 팔던 기생들은 개조를 거쳐 다가 자기힘으로 생활하는 로동자가로 된 것이다.  한데 그 기자는 제딴에는 자기가 중국에 기생이 있는가 없는가고 묻는다면 주은래는 꼭 “없다”고 대답하리라 여겼다. 이쪽에서 일단 과연 그렇게만 대답하면 올가미에 걸리는 판이다. 그 기자는 “기생이 있는 대만은 누구의 땅인가?”고 반문한다. 그때면 주총리가 “대만은 중국의 령토가 아니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주은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마는 것이다. 그 기자의 음험한 궁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데 주은래는 그같이 기민하게 응대함으로써 중국을 분렬하려는 자들의 음험한 심뽀를 까밝혔을 뿐만 아니라 대만에다 비해서 량호한 사회풍기를 갖추고 있는 대륙을 자랑하기도 한 것이다. 사유가 주도면밀하고 반응이 그같이 빠른데야 사람들이 어찌 탄복하지 않겠는가!
       

2.
한 외국기자가 고의적인 나쁜 마음아니라 의문스러우니 물었다.      
“은래총리, 중국에서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뻔한데도 왜서 ‘馬路’라고 합니까?”
    
주은래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얼른 대답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맑스주의도로인데 그것을 간단히 ‘馬路’라 합니다.”   
이 기자의 생각에는 짐승이 아닌 중국사람을 하필 소나 말이 다니는 길로 다닌다고 할건 뭔가 하는 것이였다. 주은래는 어휘의 연원을 지루하게 설명하는건 무의미한지라 그같이 응대한 한것이다. 그 외국기자는 주은래의 기발한 림기응변에 감탄했다. 
   

3.
미국대표단이 중국에 방문왔을 때의 일이다.
한 관원이 주은래와 “우리 미국사람은 걸을 때며 머리를 번쩍 치켜들고 걷는데 중국사람은 왜 늘 고개를 숙이고 걷는가?” 고 물었다. 
  
 이에 주은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상할 것 없습니다. 중국사람은 올리막길을 걷기 좋아하고 미국사람은 내리막길을 걷기좋아하기 때문이지요. ”
    
그 미국관원의 말에는 중국에 대한 목욕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어서 그 장소에 있던 사업일군들의 지대한 분노를 자아냈다. 하지만 외교적인 장소여서 대방을 강렬하게 반박한다면 그것은 무례한 짓이 될 것이였다. 그렇다하여 분을 참느라고 입을 다물고 응대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대방에 대한 무례한 모욕이 되거니와 말에 진 것으로도 될 것이다. 그런다면 국가의 위신은 어떻게 되겠는가? 주총리의 그같은 해학적인 대답은 미국사람에게 무엇이 부드러움속에 굳은것이 있는 가를 가르쳐 주었다. 결국 어색하고 난처하게 된 것은 그 미국사람자신이였던 것이다. 
  

4.
한 미국기자가 주은래를 채방하다가 주은래의 탁상에 미국제 파크만연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비웃음이 잠긴 음성으로 물었다.    
“총리각하께 묻겠습니다. 당당한 중국사람이 왜서 우리 미국에서 생산하는 만연필을 씁니까?”
    
주총리는 듣고나서 유모아적인 대답을 했다.
    
“이 만연필을 놓고 얘기하자면 말이 길어집니다. 이 만연필은 한 조선친구가 항미전리품(抗美戰利品)이라면서 나에게 례물로 증송한겁니다. 나는 공로도 없이 록을 받는 것 같아서 받지 않으려했지요. 그러니 조선친구가 기념으로 두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러는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귀국의 이 만연필을 받아둔 겁니다.”
    
미국기자는 그만 벙어리로 되고말았다. 
   
무엇을 보고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깬다고 하는가?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실례가 되는 것이다. 이 미국기자는 주총리를 놀리자는 심사였다. 하지만 주총리가 낯도 붉히지 않고 이같이 대답함으로써 우리 중국이라고 왜 만연필하나도 생산못해서 미국의 것을 들여오겠는가 하는 변호보다도 더 실랄하게 정곡을 찔러 그 기자를 낯이 깎이도록 무참을 당하게 만든 것이다. 이 역시 주총리와 그 기자에게 허투로 기량따위를 비겨서는 딱살만 먹으니 어림없이 덤벼들지 말라고 경고를 한것으로 되는 것이다.   
  

5. 한 서방기자가 물었다.   
 “한가지 물읍시다. 중국인민은행에는 자금이 얼마나 있습니까?”
    
주총리는 완곡히 말했다. 
  
 “우리 중국인민은행의 화페자금말이지요? 18원 8각 8푼이 있습니다.”모두들 그게 무슨 말인지를 리해하지 못하니 그는 해석했다. “중국인민은행은 화페면액이 10원, 5원, 2원, 1원, 5각, 2각, 1각, 5푼, 2푼, 1푼 이렇게 10가지로서 상부상조합니다. 그 총 합계가 18원 8각 8푼....” 
   

주총리는 기자초대회의를 열고 중국의 건설성과를 소개했다. 이 기자가 그런 문제를 제기한데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나는 중국은 가난해서 실력이 모자라 국고가 비였으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경제정보를 시탐하려는 것일 수 있다. 주총리는 고급적인 외교장소에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과인하는 기지와 유모아적인 풍격으로 사람들을 납득시킨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사전에 준비해 둘 수도 없는 것이다. 웅변적인 구술능력이 없이야, 기발한 사유능력이 없이야 어떻게 그같이 림기응변을 할 수 있겠는가? 
   
주은래가 총리노릇을 하면서 바삐돈건 사무주의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기실 그는 더 말할 수 없는 위대한 사상가였다. 
   
주은래를 재능을 감추며서 고지식한체 때를 기다린 사람으로 보지 말라,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정을 갖고 산 소탈하고 비범한 사람이였다. 
   
주은래를 겉은 유순하나 속은 검었다고 억울하게 보지 말라, 강건한 기질을 갖추었던 그는 기실 불같은 성격으로 그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일평생 자유분망하게 돌아친 사람이였다. 
  
 주은래는 울음을 삼켜가면서 참고 양보만 한 사람으로 오해하지 말라, 큰 지혜와 용감성을 갖고있었던 그는 자기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있으면서 앞을 내다보았기에..... 
   
그의 자신, 그의 풍도는 외국사람들의 눈빛에서 능히 보아낼 수 있었다! 그는 국제상에서 가장 당하기 여려운 정치가였던 것이다!! 
  

(1). 련합국비서장 하마샬드는 1955년도에 북경에서 주은래총리를 회견하고나서 지금도 세상에 널리 류행이 되는 말 한마디를 한적이 있다.    
“주은래와 비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야만인이다.”
   
(2). 미국총통 닉슨은 친히 주총리의 외투를 벗겨주었다.    시간은 1972년 2월 22일, 지점은 북경조어대국빈관(호텔).       
(3). 닉슨은 말했다.    
“중국에 만약 Mao. ZD이 없었다면 혁명의 불이 붙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주은래가 없었다면 타서 재로되고말았을 것이다.”
    
(4).
인도네시아 전총통 수하토가 말했다.    
“모택동은 주은래와 같은 총리가 있으니 행운이다. 내한테도 주은래와 같은 총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5). 건국전에 쓰딸린과 미꼬양이 말한적이 있다.   
 “너희들은 go―vern―ment를 수건하는 면에는 시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주은래총리가 있으니. 너희들이 어디에 가서 이같이 좋은 총리를 찾겠는가?”
   
(6). 쏘련의 전총리 꼬쉬낀이 모택동보고 말했다.    
“주은래동지와 같은 사람은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정치가인 것입니다.” 그 말 끝에 그는 한마디 더 보탰던 것이다. 
   “이건 전날 미국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7).
쏘련총리 꼬쉬낀은 일본창개협회회장 지전대작(池田大作)을 회견했을적에 말했다.    
“주총리한테 전해주시오. 주총리는 더 이상없는 총명한 사람이니까, 그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진공하지 않을 것이고 또 진공 할 수도 없다구요.”
    
(8).
영국의 전외교대신 艾登이 미국기자와 말했다.    
“당신들은 조만간에 주은래야말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9).
쏘련의 전 외교부장 몰로또브는 서방기자와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대처하기 힘들다고 여긴다면 기다렸다가 주은래와 한번 접촉해보기바란다.”
   
(10). 인도의 인중우회회장(印中友會會長)은 말했다.    
“주총리와 같은  지도자가 세계에 좀 더 많으면 세계평화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주총리와 같은 그런 수령과 중국Communistpartydnj원이 좀 더 많다면 국가는 매우좋아질 것이다.”
   
(11). 컨니디부인이 말했다.    
“전 세계에 숭배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인데 그가 바로 주은래다.”
   
(12). 시하누크부인 모늬크공주가 말했다.    
“주은래는 나의 유일한 우상이다!”
    
주은래가 죽으니 유엔에서는 반기를 드리웠다. (유엔의 기만 반기를 드리운게 아니라 유엔에 가입한 모든 국가의 기가 그러했다.) 어떤 국가의 수령은 래해되지 않아 “왜서 우리 나라수령이 죽었을 때는 이렇게 하지 않았는가?”고 했다. 당시 유엔비서장은 유엔회의에서 강화했다.
    
“만약 당신네 국가수령이 세계 1/5이상의 인구를 맡아보면서도 아들딸이 없고 해외에 일전한푼 저축한 것이 없다면, 그렇게만 해낸다면 이같이 반기를 드리워 줄 것이다.” 
  
 까딱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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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아래사람
날자:2014-04-22 08:24:33
로웅선선생.고급교사라는분이 어쩜 글쓴이에게 그런질문들이댑니까?
답답하게 막혔구만.내말참고하기를....
3   작성자 : 교원로웅선
날자:2011-05-02 20:42:09
모 와 주의 은혜와 원한 을 지금 론해볼 필요가 있는지요
2   작성자 : 김송죽
날자:2011-04-25 16:56:11
올라온 댓글을 늦어서야 보고 답합니다. 제가 수집하여 연구하고 번역한 자료들은 다가 이미 벌써 여러 인터넷과 여러 잡지들에 공개된 것입니다. 주총리의 양딸에 관한 자료 \"‘紅色公主’\" 孫維世命殞五角樓는 2008年06月15日 06:54:07 來源: 今晩報. (摘自2008年第3期 “黨史從橫”). \"看看周是如何保護孫維世的\"는 “点擊復制本貼地址, 推薦给朋友”. \"【轉帖】毛澤東和他的女人們\"은 分類:歷史ㅣ被3人轉藏ㅣ2009ㅡ08ㅡ21 16:27:10 作者: 祭圓守圓人 提交日期: 2008ㅡ2ㅡ29 13:20:00 “毛澤東与周恩來恩怨”은 [轉帖 2006ㅡ03ㅡ29 10:33:08] 애초에 저는 그저 저혼자만 읽고 연구하려는데서 어는 网, 어느 잡지였는지는 중시하지 않아 자료수집시에 자료출처를 거의 다 밝히여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번역이 끝나 책으로 묶고는 어지러운 종이장도 페지로 버리다보니 독자의 질문에 제대로 알려드릴수 없게되였습니다. 이점 리해하여주기바랍니다. 어떤건 제목에 글자수를 줄인건있어도 문장의 원의를 사의로이 고친건 없으니 독자는 맘놓고 읽어보시기바랍니다.
1   작성자 : ㅇㅇㅇㅇ
날자:2011-04-24 20:28:41
이글은 지나치며 또 무슨 참고자료와 근거가있는가 어디에 근거.근거해 썼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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