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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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조선 신문학의 터전을 마련한 《신약전서》
2017년 07월 11일 09시 32분  조회:3340  추천:41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91)

김문학
 

조선 신문학의 터전을 마련한 《신약전서》
 
 
  1900년의 세계는 격동의 한해였다. 3~4월에 조선의 활빈당이 크게 출몰한다. 5월 1일 일본 도꾜에서 전차운행이 개시된다. 8월 청국 의화단운동으로 인해 8개국 련합군이 북경을 점령한다. 12월 오스트랄리아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가 《꿈의 해석》을 간행한다.
 
  또 하나 특기해야 할 일이 생긴다. 즉 그해 한글로 번역된 성경 《신약전서》가 처음으로 출간된다. 이는 그저 성경출판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분명히 중대한 의의를 갖춘 대사건이다.
 
  개화기의 조선반도에 밀려온 “근대”는 낯설고 이상한 푸른 눈동자의 서양인, 서양인이라는 이름의 타자(他者)였다. “근대”란 문명은 아시아에 있어서 서양이란 타이틀로 나타나면서 위협적인, 때로는 매력적인 얼굴을 지니고있었다.
 
  우리의 통념의 하나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있는 한글은 수백년전부터 보급되고 일반적으로 사용해왔다는것이다. 그러나 이 통념이야말로 비상식적인 착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조선의 5백여년 이래 한글은 종주국 문명대국의 한문(漢文)의 정통성에 짓눌려 부녀자들만 사용하는 천대꾸러기 아웃사이더적 멸시의 상대였던것이다.
 
  조선의 문자언어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준것은 조선인 자신이기보다는 새로 류입된 기독교였다. 서양에서 솔선 조선에 들어온 문명의 “근대”품목은 이데올로기, 사상, 신식무기 등 허다한것이였는데 기독교가 그중 중요한 품목이였다.
 
  조선의 기독교전통은 임진왜란 당시 뽀루뚜갈의 세스페데스가 1594년 종군신부로 들어오면서 조선땅을 밟앗다.
 
  한국의 문학비평가이며 시인이기도 한 장석주씨는 이렇게 지적하고있다. “두말할 나위없이 한글은 우리의 고유한 문자언어이다. 한국문학은 당연히 한국사람에 의해 한글로 씌여진 문학을 가리킨다. 19세기말 서구문물과 함께 들어온 개화기의 기독교는 이 땅의 낡은 전통과 유습, 페쇄적 성향을 깨뜨리고 새로운 문화를 일구던 첨병이였다.                                  
 
  그뿐아니라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쉽고 간결한 문자언어인 한글을 새로이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낳음으로써 20세기 한국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한다.”(《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1790년대에 조선에는 기독교신도 3만명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실권자 대원군의 박해로 신도와 외국인 선교사가 참형당하는 사건이 빈발하며 1884년의 갑신혁명을 거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완화되면서 기독교문화가 정착된다.
 
  그후 언더우드와 아펜젤레 등 선교사들은 선교 및 의료교육을 보급하기 위해 서구문명을 갈망하는 조선에 신문화운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아펜젤레는 고종의 허락으로 배재학당을, 또 다른 선교사들도 학교와 교회를 륙속 설립한다.
 
  언더우드는 기독교를 보급시키기 위해 고심한 끝에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것이 무엇보다 좋은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였다. 그리하여 성경번역작업이 1887년에 시작되여 1900년에 《신약전서》의 한글판이 출간된다.
 
  번역자의 한사람인 아펜젤레는 성경번역을 “두 나라를 잇는 철도부설과도 같다. 파나마운하의 개설공사가 이보다 더 어렵지 않았을것이다”고 평가한다. 
  문호 이광수 역시 이 업적에 대해 1917년 “예수교가 조선에 준 은혜”라는 글에서 이렇게 높이 평가한다. “아마 조선글과 조선말이 진정한 의미로 고상한 사상을 담는 그릇이 됨은 성경의 번역이 시초일것이요, 만일 후일에 조선문학이 건설된다하면 그 문학사의 제일면에는 신구약의 번역이 기록될것이다.”
 
  1904년과 1906년에 또 《신약전서》는 부분적 개정을 하였으며 이어서 1938년에 개역이 다시 되고 1952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해 개정판이 나온다.
 
  장석주씨의 지적에 따르면 기독교와 한국문학의 관계에서 한국 근대시의 모태로 된 창가(唱歌) 장르의 발전에 개신교가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기독교의 “찬미가”, “찬송가” 등이 조선 근대의 창가를 낳는데 결정적역할을 했다.
 
  기독교는 또한 한국 근대 신문과 잡지 발전에 기여하는바 《독립신문》이 창간되자 나온 신문 《조선그리스도인 회보》 등 신문이나 관련 성교원리 등 책자, 신문, 출판업에 추진작용을 한다.
 
  기독교는 조선 근대 신문학의 탄생에 큰 발자취를 남기는데 그것은 한글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기독교의 활약은 한글 사용, 한글로 된 근대 조선문학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공로를 부인할수 없다. 근대사에서 발견되는것은 이같이 외래문화에 따라 즉 타자가 우리자신의 문화를 추진시킨 작용을 과소평가할수 없다는 점이다.

인터넷료녕신문 201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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