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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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일전쟁때 조선은 누구의 편? (김문학)
2010년 07월 03일 10시 21분  조회:5891  추천:31  작성자: 김문학

<장편연재>근대 재발견•100년전 한중일(4)

청일전쟁때 조선은 누구의 편?


김문학

 

 “H의 구조”란 언설이 있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루이스 • 할레가 그의 저서 《역사로서의 냉전》(1970년)란 명저에서 조선의 역사구조에 대해 정채로운 이론을 펼친다. 그는 동아시아역사는 반도를 에워싸고 천수백년동안 특이한 역사적구조를 이루면서 전개된다고 하면서 “H의 구조”설을 제시한다.

저자는 조선반도를 “H”자모의 중간에 낀 “-”횡선으로 비유하고, 이 횡선은 늘 양측의 두 장대한 종선, 즉 중국대륙세력과 바다에서 습격해오는 해양세력에 의해 사이에 끼여서 우왕좌왕하는데, 양대세력의 어느 한쪽이 강성해져서 H자를 전부 지배하려고 할 때 우선 이 횡선인 조선반도를 지나서 팽창하게 되는 역사적 필연적인 구조를 제시한다.

청일전쟁이 대륙과 해양 두 세력의 조선반도를 통과한 그 충돌이다. 이때 청국과 일본에 대해서 질책 또는 비판을 가하는 우리의 지식인이 많으나, 외려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H자모의 “횡선”이 된 우리가 대체 청과 일 누구 편이었을까? 필자가 새삼스럽게 이 의문을 던지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H구조”를 통해 재발견되는 역사의 침울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한것은 1894년 8월 1일, 그 12일후인 8월 13일, 당시의 무츠(陵奥)외상은 오오토리(大乌)공사에 대한 훈령에 “조선이 청국에 선전포고 하든지 아니면 대신 일본과의 동맹을 공표하게끔 조선정부와 교섭하라”고 명했다.

일본측에서는 일청량국의 교전에 조선이 “중립같은 짓”을 취하면 “타국의 간섭을 초래하기 십상이며 일본정부가 대병을 조선에 파견하는 명분이 상실됨으로” 조선이  일본편에 서기를 적극 바랬다. 바랬다기보다 제편에 서기를 무리하게 강요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당시 정세로 보아 이 파워게임에서 강대국 청나라가 꼭 승전할것이라고 세계 각국이 짐작했던것이다. 물론 예상치 않게 섬나라가 대국을 대패시키지만, 역사는 늘 이렇게 예정된 코스로만 흐르지 않는 괴물인가보다.  대원군은 청국의 승리를 확신했으므로 일본의 요구에 반발했으리라 짐작된다.

  8월 20일에는 일본과 조선사이에 “조선국의 자유독립을 공고시키고” “양국의 무역진흥, 국교친밀을 위해”《잠정합동조항(暂定合同条款)》을 체결하고 26일에는 《대일본대조선량국맹약》이 조인된다. 오오토리공사와 김윤식외상이 체결한 이 조약에는 “일본국은 청국에 대해 공방의 전쟁에 나서며 조선국은 일병의 후퇴 및 그 식량준비를 위해 되도록 편의를 도모할것이다”고 규정한다. 이것이야말로 틀림없는 공수동맹규약으로서 조선을 일본편으로 서게 한 계책이였다.

  이리하여 일본군은 조선에서 마음대로 인마와 군량을 징발시키고 정부차원에서 조선을 완전히 일본의 편에 서게 했다. 그 당시 찰영된 사진을 보면 우의 맹약에 따라 조선정부군이 일본군에 종군하여 청군병포로를 감시하는 장면이 있다. 장엄한 모습을 하고있는 조선정부군의 표정과 대조적인것이 청군포로병의 겁에 질린, 수심에 찬 표정이 돋보인다.

  여기에 또 잘 알려지지 않은 문헌자료가 있다.

영국 종군기자이며 화가였던 후리프가 영국 《그래픽》잡지에 1895년 3월 9일에 쓴 기사가 있다.

“힘없고 불운한 조선인에 대한 청국의 태도는 대단히 고압적이였다. 그들은 조선인을 마치 정복국의 주민을 대하듯 위협했다. 특히 청일전쟁초기에는 무자비한 강간과 략탈을 감행했다.”

후리프는 기사와 함께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하여 증언하고있다. 그림에는 청군병사가 조선인을 마구 격살하고 송아지를 강탈하는 모습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청국군이 진정으로 조선인을 사랑하고 돕고자 일본군과 싸웠다는 사실을 완전히 뒤엎는 생생한 기사와 그림이다.

일본군이 어떻게 용맹하게 싸웠고 또 청군이 전쟁에서 완패 했다는 사실만 막연히 관심 했을 뿐, 청군이 동포들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관해서는 아예 생각도 못했을것이다.

일본의 조선침략에 대해서만 주목하고 거기에 대한 비판, 질책으로 일관했던 우리의 시각에 반성을 추궁하는 대목들이다.

“당시 청국군의 병참모부는 조직 등 여러분야에서 아주 락후하였다. 그들은 병사들에게 조선 현지 주민들로부터 식량 등 필요 군자재물자를 자체로 조달하게끔 명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반항하는 주민들은 즉석에서 총살당하는 등 참혹한 현실이 전개됐다. 또한 청군들은 오합지졸이었고 병사로서 전쟁에 대한 관심도 부족 한것처럼 보인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있었으나 전투에서 나타낸 전투력은 허약하기만 했다.”

1910년 일한합병의 국치를 참지 못해 자결한 지식인 황현은 유명한 《매천야록》이란 저술을 남겼다.

“청병은 음행과 략탈을 자행하여 날마다 뢰물을 요구하므로 공청과 민가를 막론하고 모두 곤경에 빠져 그들을 원쑤처럼 여겼다. 심지어는 그들이 평양에서 포위되였을 때 가산을 다바쳐 일본병을 인도한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들이 패전하여 도주할 때 백성들은 그들이 숨어있는 곳을 다 가르쳐주었으므로 그들은 포위망을 벗어난 사람이 드물었다.”
  “이 전투가 전개될때 일본병들은 모두 군수품을 자국에서 운반하고 심지어 시탄(柴炭)까지도 본국에서 운반하여 사용하였으며 일군이 가는 곳마다 음료수까지도 돈으로 사서 마셨다. 그들의 군령은 이처럼 아주 엄숙했으며 우리 나라 백성들은 그들에게서 병사라는 느낌마저도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그들을 도와 향도(길잡이)가 되는것을 기쁘게 여기고있었다.”

일본군과 청국군의 우렬구도를 잘 그려낸 대목이다.

또한 바로 이러했기에 정부의 조약이나 맹약에 관계없이 당시 조선의 인민들은 청군에 실망하고 질서정연한 일본군에게 호감이 가고 스스로 그 편에 서게 된것이다. 

이같은 감정은 아마 지금도 한국인의 심층심리에 자리잡고 있는듯 하다. 역사적 체험에서 자발된 민족의 심리이며, 일본은 거부하면서도 한편 근대화를 일본을 통해 수용한 근대의 한국인의 심성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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