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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누가 쏜 화살인가
김옥희
늦은 오후,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멎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가 쏜 화살이 하늘을 밑창냈나보지. 녀자는 요즘 자기 사고방식이 다 이런식으로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러기를 벌써 다섯번째다. 급기야 녀자는 화가 난듯 서둘러 가게문을 닫아버렸고 집을 나섰다. 이렇게 갑자기 거리에 뛰쳐나가야 하는 확실한 리유란 없었다. 다만 오늘처럼 무작정 거리에 나서는 날은 그저 거침없이 거리를 활보하는것만으로도 기분이 날아갈것 같았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다는게 좋았고 무작정 길을 따라 걷고 또 걷고, 뭐 하나 거칠게 없다는 자유로움, 그런 단순한 삶의 순간들이 맘에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녀자는 이런 리듬을 즐기기 시작했다.
문득 녀자는 작년 이맘때 등산 갔다가 나무가지우에서 석양이 부드럽게 타고있는걸 보았던 기억이 났다. 벌써 1년전 일인데 어제일처럼 생생했다…
그날, 비술나무가지에 머물러있던 노을은 얼마나 남달랐던가. 오랜만에 눈여겨본 노을빛, 하늘 가득 물들인 그 고운 빛의 신비로운 조화, 그걸 보고있으려니 느닷없이 가슴밑바닥으로부터 이름모를 전률이 일며 온몸을 쿵쿵 관통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참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신선한 피의 흐름, 충격적이였다. 40대초반인 녀자는 열여덟살 사춘기소녀의 엄마이기도 하다. 녀자는 자신의 가슴 어디에 20대들만의 특허인 이런 싱싱한 젊은 피가 남아있었을가 궁금했다. 그는 주위를 휘익 둘러보았다. 마침 산자락엔 눈에 띄는이가 아무도 없었다. 녀자는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런 충격을, 농축된 즐거움의 비명을 수습할수 없다는걸 알고있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내심의 격정을, 그 넘치는 정열을 핑게 대며 녀자는 하늘을 향해 두팔을 벌리고 서서 하하호호 소리내서 웃기 시작했다. 허파에 바람이 들 때까지 녀자는 그렇게 소리내여 넋나간듯 웃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채워오는 정열을 웃음으로 씻어낸 녀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씁쓸하게 산을 내리며 홀로아리랑을 흥얼댔다. 모처럼 기분 좋은 등산길, 호젓한 산중에서 이게 웬 주책이냐 할 사람도 없고. 녀자는 그게 너무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았다. 아무도 나를 본 사람은 없겠지. 보면 또 어때? 녀자는 가슴을 쭉 펴고 씩씩하게 걸었다. 홀로 하는 등산의 묘미가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으로 서서히 산을 내리는데, 누군가 녀자의 앞을 딱 가로막는게 아닌가. 아니, 가로막은게 아니라 누군가 녀자의 앞에 서있었다. 바위처럼 크고 단단한 몸체-녀자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40대후반의 남자였다. 등산객? 아니,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왔나, 땅에서 솟았나. 산에서 사람을 만나는것만큼 두려운건 없다더니.
녀자는 더럭 겁이 났다. 하필이면 이렇게 좁은 등산길에서 만나다니. 태연히 지나치려 하는데 왜 숨이 멎는거지? 빨간 등산복이 썩 잘 어울리는 남자가 살짝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여주건만 녀자는 여전히 등골이 서늘했다. 녀자에게 먼저 길을 내주는 사람이면 어느 정도 례의는 갖춘 사람이라 생각되여 얼마간 안심은 되였지만 방심할순 없었다. 인적없는 산중인데다 날도 저물어 무서운 마음에 심장박동이 례사롭지 않았다.
어서 가.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지. 걸음아 날 살려. 녀자가 그렇게 마음을 추슬리며 부랴부랴 몇걸음 옮겼을 때였다.
《저기요.》
남자가 불렀다.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녀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
《저기요.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 소리는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았다.
《내 말 무시합니까?》
《그게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녀자의 두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했다.
《이리 오십시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자가 되려 녀자쪽으로 다가왔다.
《꼼짝 마요! 제발 오지 마세요!》
녀자의 놀란 동공속으로 거쿨진 남자의 체구가 날아들었다. 어느새 녀자의 손엔 작은 과일칼이 들려있었다. 어느 경황에 가방안에서 그걸 꺼내 손에 꼬옥 쥐였는지 녀자 스스로도 알수 없는 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호신용으로는 그것밖에 없었으니. 남자는 두눈이 휘둥그래서 녀자가 쥔 앙증맞게 작은 과일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앙천대소하는게 아닌가.
《왜 그래요? 왜 웃어요?》
《당신이 웃기니까 그러지.》
또다시 한바탕 웃고나서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마주보니, 남자는 눈빛이 선했다. 험상궂지도 밉상도 아닌, 반듯한 외모에 목소리 또한 아나운서처럼 부드럽고 웅글졌다. 보아하니, 나쁜 사람은 아닌듯 했다. 그런데 왜 웃지? 기분 나쁘게. 녀자는 갑자기 심기가 불편했다. 오로지 이 자릴 떠나야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등을 떠밀자 녀자는 차갑게 한마디 내뱉었다.
《가던 길을… 가셔야죠.》
《그래야 하는데…》
《뭐예요?》
녀자의 신경이 날카로워진걸 느꼈던지 남자가 그제야 정색을 했다.
《사실… 머리우에 엉뚱한 녀석이 점잖게 앉아있습니다.》
《네? 내 머리우에요?》
《그럼 내 머리우겠습니까? 내 머리우를 거울도 없이 내가 어찌 본다고…》
《뭐예요? 벌… 벌레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자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쭈, 그놈 생각보다 고집스럽네. 안떨어질려구 기를 써요. 기를…》
녀자는 기겁을 하며 다시 세차게 머리를 흔드는데 눈앞에 불꽃이 일었다. 남자의 말이 혹시 거짓말? 나에게 접근하려는 허튼 수작? 녀자는 남자의 말이 미덥지 않아 슬며시 자기의 머리우를 만져보았다. 생각보다 엄청 큰 벌레였다. 손끝에 느껴지는 길고 껄끄러운 털의 촉감, 벌레는 머리줄을 따라 녀자의 목덜미쪽으로 직진하고있었다. 녀자는 미칠것만 같았다. 오. 하늘이시여!
《도와주세요. 제발…》
녀자가 눈을 딱 감고 애원했다. 그러자 남자는 성큼 다가와 녀자의 머리우에서 벌레를 떼내여 나무가지우에 살며시 놓아주었다.
《왜 놓아줘요?》
《잘 모르지만 해충을 잡아먹는 좋은 벌레일수도 있으니까요. 벌레도 생명인데 함부로 죽이거나, 해쳐서도 안되지요…》
《좋은 사람인것 같아요.》
《사람을 쉽게 믿는군요. 그러면 마음이 다치는데…》
《그게 아니라… 아무튼 고마워요. 난 기겁해서 죽는줄 알았는데…》
녀자가 피씩 웃는데 남자도 따라 웃었다. 둘이서 산을 내리는 동안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산행을 좋아하느냐, 주로 어느 산에 오르느냐, 산에서 먹는 음식가운데 제일 맛있는게 뭐냐… 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그런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도 모르게 친절하고 따뜻한 뉴대감이 생기며 서로의 시선을 부드럽게 해주었다. 혼자보다 둘이서 하는 산행이 좋아보였다. 녀자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소한 일로도 달라질수 있다는게 새삼 신기하기도 했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남자,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헤여져 갈길을 가고 다시 자신들만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녀자는 알수 있었다. 그 일말의 풀벌레와 남자, 그들이 남긴 첫인상은 컸다. 벌레도 생명이니 함부로 죽이거나 해쳐서는 안된다던 남자, 그뒤로 한번도 그 산에 간적은 없지만 그해 겨울이 다 갈 무렵, 나무잎이 다 떨어져버린 라목을 바라보며 녀자는 그가 지금도 그 산에 오를가를 열번도 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손님이 드물어 가게가 한가한 시간, 콩나물을 다듬던 손을 멈추고 녀자는 자기 머리를 매만지며 그날의 정경을 되새기군 했다. 그러는사이 1년이 훌쩍 흘렀다…
하늘 가득 내리던 비는 거짓말처럼 멎었다. 어느새 녀자의 발길은 1년전의 그곳- 등산길 낮은 산언덕에 머물러있었다. 산천은 변함없는데 싱그러운 풀향기만 코끝을 즐겁게 한다. 작년 이맘때, 강아지풀이 유난히 많았던 작은 산언덕, 모든게 그대로였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모든 풀들이 스러지는 그때까지 두치 정도밖에 자라지 못하는 난쟁이로 끝끝내 꽃술줄기를 피워올리는 강아지풀, 제 씨를 뿌리고 죽겠다는 강인한 생명력, 그 지독스러움, 그 경이로움… 참 놀랍다. 녀자는 강아지풀을 볼 때마다 놀라는 자신이 더 신기하고 한심해서 피씩 웃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녀자는 고개를 들었다. 억척스레 강아지풀을 뜯느라 벌써 주위에 어둠이 내린줄도 몰랐다. 하늘을 향한 녀자의 시야 가득 황홀한 석양빛이 어룽거렸다. 이제 밤의 등산길이 좋아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다나만 아니라면 이렇게 밤산행을 즐기고싶었지만 아직은 그럴수 없었다.
다나, 정확히 윤다나- 열여덟살 고중생 다나는 녀자에겐 금쪽 같은 새끼요, 유일한 피붙이였다. 다나가 3살일 때, 50대 시부모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일년도 안돼 남편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것도 외지로 출장가던 길에 허망하게도 기차에서 숨이 멎었던 남편, 심근경색이였다. 그것이 그렇게 무서운 병인줄 알았을 때 녀자는 이미 과부가 돼있었다. 그후 다나랑 둘이서 십오년세월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때로는 자상한 엄마이기도, 때로는 털털한 엄마이기도, 그렇게 세월의 냄새에 길들여지는 동안, 어느새 중년이란 불혹의 시간을 맞게 됨을 녀자는 외면할수 없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세월을 견뎌내며 살아온 세월의 부피만큼이나 녀자와 다나, 두 모녀는 서로의 존재와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고있었다. 다나, 살아오는 동안 그것 하나만을 위해 그 어떤 녀자보다도 억척스런 엄마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녀자다.
지금의 녀자에겐 먹고 살아야 하는것만큼 절실한것이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선 잡초가 된다 해도 괜찮았다. 녀자는 다나만 있으면 더이상 다른걸 생각할수가 없었다. 그만큼 다나의 존재는 녀자에겐 인생 그 전부였으니…
다나가 집에 돌아올 시간까지 한시간쯤 남아있었다. 서둘러 산을 내려야 그 시간에 맞출수 있다는 생각이 녀자의 걸음을 다그치게 했다. 산은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가 훨씬 힘들었다. 두다리가 휘청거렸고 가끔 땅에 희미하게 드리운 나무가지들에 꼼짝없이 발이 걸리군 했다.
산을 내리며 녀자는 오늘은 앞을 막는 사람이 없다는게 조금은 서운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부터 혹시 이번에도 산중에 그가 나타날가, 나타나면 그건 우연이겠지. 혹 만날지 모르지만 만나면 참 반갑겠다, 난 이런 마음인데 그 사람은 전혀 그게 아니라면 나만 이상해지겠지? 그런 생각이 녀자의 가슴을 기대 반, 실망 반으로 초조하게 만들었다.
산을 내리니 눈앞은 아스팔트길이다. 어둠이 깃을 펴는 산자락을 내려서면 넓고 환하게 펼쳐진 신작로, 지금은 오가는 차량들이 밤에도 줄을 잇고있어서 이맘때면 거리는 언제나 차들의 헤드라이트불빛과 가로등불빛이 한데 어우러져 은은하다. 그속을 녀자는 홀로 걷고있었다. 잠시나마, 아주 잠간이나마 어떤 스쳐가는 인연에 발목이 잡혀있었던 자신이 스스로의 생각에도 민망하고 한심하고 어처구니없었다. 다나가 알면 또 뭐라 핀잔주겠지?
엄마, 그까짓 한번 만난 사람, 엄말 기억이나 해주겠어? 그런 사람을 찾아 온종일 산중에서 헤맸단 말이야? 나처럼 사춘기두 아니고 왜 그래? 하긴 녀자는 40대에 두번째 사춘기를 겪는다고는 해. 그렇다구 그렇게 허망하게 만난 사람, 뭘 믿구 찾아간거야? 울 엄마 요즘 련애하고싶은가봐. 그런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나 오후에 갔어. 비는 한정없이 내리고 가게에 손님은 없고. 그래서 산책하러 간거야. 강아지풀? 갑자기 그게 그렇게 보고싶어진거야. 그래서 간것뿐이야.
헌데 엄마, 암만 생각해두 그게 이상하잖아. 다른것두 아니구 왜 하필이면 강아지풀이 보고싶었을가? 그것두 비오는 날에… 너무 로맨틱하지 않어?
글쎄, 그건 나두 모르지, 그게 왜 갑자기 보고싶어졌는지…
엄만 1년전 산에서 만났다던 그 아저씨가 보고싶어 산에 간건가?
얘는 말도 안돼. 딱 한번 만났던, 그것도 우연히 등산갔다가 마주쳤던 사람인데 내가 왜? 그렇게 간절하게 보고싶었으면 1년이나 지난 뒤에 가? 벌써 수십번이나 다녀왔지. 너 정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제발…
헌데 엄마, 엄마 얼굴을 보니 화내는것 같아.
화를? 내가 왜 화를 내. 그것두 끔찍하게 사랑하는 내 딸한테.
내 눈엔 그렇게 보이는데?
아니야. 너 한창 사춘기라 모든걸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그래. 정상이야. 아무 이상없어.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우리 모녀 둘만의 사는 모습, 너무 근사하지 않았어. 우리 딸?
그때, 녀자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애옆에 서있는 작고 초라해보이는 자신을 발견하곤 몸을 움찔했었다. 우리 딸 언제 이렇게 컸어? 다나, 그는 168센치의 늘씬한 키를 가진, 학교에서도 소문난 얼짱이요, 명문대를 바라보는 공부짱이다.
언젠가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다나랑 오랜만에 온천사우나에 간적이 있었다. 모녀 둘만의 기분전환 방식치곤 꽤 근사한 장소였다.
다나야. 넌 왜 너또래 애들이 그렇게 많이 돋는 청춘여드름도 안나니?
글쎄, 아직 미숙해서 그런가? 호호호…
다나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어댔다.
누가 소똥이 굴러가도 웃을 때가 아니랄가봐서. 너 젊은게 부럽다.
엄마두 젊구 이뻐. 아직…
엄만 40대야. 언제 이렇게 나이 먹구 주글주글해졌는지 모르겠다. 이 손등을 봐.
너무 고생해서 그래. 나때문에.
그래, 널 위해서 내가 못할게 뭐 있겠니. 먹구 살기 위해 잡초가 된다 해도 후회는 없어.
잡초? 난 그게 싫은데.
나 힘들게 감자탕가게를 한지 벌써 10년 넘었어. 그동안 별 보잘것 없는 사람들한테두 당하구, 잘난 놈들은 잘난대로 사람 무시하구… 참 내가 많이 초라해보였는데. 나중에… 정말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괜찮아지더라구, 이 모든게 너랑 나랑 먹구 살기 위해선, 잘 먹구 잘 살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할 고비다…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지…
난 다 알아. 엄마가 힘들고 고달팠던거. 생각하면 나 엄마땜에 가슴 아픈적 많았는데. 이제 커서 어떻게 엄마한테 잘하지? 어떻게 하면 엄마가 내게 준것, 그 반이라두 갚을수 있을가 걱정되기두 하구…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그 시간이면 한글자라두 더 보겠다.
엄마, 내 말 롱담 아니야. 난 지금 내 마음을 심각하게 표현하구있는거야.
알았어. 헌데 그건 부질없는 생각이야. 엄만 지금이 좋아. 이렇게 우리 모녀가 아무 걱정없이 편하게 살만큼 됐다는게 너무 좋아. 너 알아? 지금 우리 사는거 정상이야. 모든게 다.
하지만 미안한데 엄마, 난 말이야. 이젠 정말 그 정상이란것에서 해탈되고싶어. 우리 인생에 뭔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구.
사건? 그것두 엄청난? 너… 너 왜 갑자기 머리 뜨거워졌어? 요즘 너무 공부만 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거 아니야. 열이 나?
아니야. 나 멀쩡해.
헌데 왜? 우리가 이렇게 사는데 불만이라도 있어?
불만까지야 뭐, 엄마, 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가 바라는대로 반드시 명문대학에 갈거야. 맹세해. 이제 고작 1년 남았어. 난 이제 엄마옆을 떠나게 돼있어. 우리가 함께 있을 시간이 단 1년밖에 안남았는데 엄마, 내가 그렇게 훌쩍 가고나면… 엄마는? 엄마는 어떡해?
어떡하긴. 엄만 엄마대로 어깨에 실린 무거운 짐 하나 덜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구 기쁘겠니. 아, 우리 딸 이제 자신의 봄꿈을 찾아 날개짓을 하며 훨훨 하늘을 날수 있게 됐구나, 엄마로서 내가 해줄건 여기까지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나대로 내 방식대로 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구 살면 되지.
헌데 그게 아니잖아! 엄만 그렇게 못하잖아! 제발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엄만 그걸 못하는 바보잖아. 엄마는 평생 나 하나만 바라보며 그렇게 살거잖아!
아니야. 너 아직 엄마를 잘 몰라. 엄마가 그동안 너만 바라본건 그래야 되기때문이였어. 엄마나 아빠를 훨씬 초월해 기막히게 공부 잘하는 내 딸, 아빠도 없는 그 빈자리에, 반듯한 엄마라도 지켜주지 않으면 네가 너무 가여울가봐, 그래서 그러기로 한것뿐이야.
엄마?!
이제 네가 대학가면 엄만 허구한날 너만 그리워하며 그렇게 살순 없잖아. 내가 그러면 네가 얼마나 걱정이겠어? 엄만 네게 그렇게 큰 짐이 되는거 정말 싫거든. 그래서 마음먹었어. 충분히 나만 생각하며 그렇게 살거라구. 네 말이 맞아. 우리 생활에 뭔가 화끈한게 부족해. 그러니 변화라두 주자구. 엄만 너 대학간 뒤에 좋은 남자친구라두 있으면 사귈거야. 아빠한텐 많이 미안한 일이지만 너만 반대 안하면 그럴려구 해.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두 내게 애인이라두 있으면 우리 딸 근심을 안할거니까.
엄마가 그렇게 못할줄 다 아는데 허풍치지 마.
허풍? 허풍 아닌데. 우리 딸이 원하는 일이면 애인 하나 사귀는거 시간문제야.
엄마, 엄마답지 않게 애인타령까지 다 하구. 진짜 변한거야?
엄마다운게 뭔데?
그건? 허지만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지금 나만큼 되는 딸애를 둔 엄마들을 봐. 다들 신나게 자기 삶을 즐기고있는데 엄마는 뭐야. 맨날 감자탕가게에서 떠날줄 모르고. 이 손을 봐. 일하는 손치구 이렇게 망가졌을수가. 너무 속상하단 말이야. 내가 죄짓는 기분이 들어.
왜 이래? 이래뵈두 이 손 보배손이야. 너 알지? 이 손으로 우리 통장에 거금이 들어있는걸. 너랑 나, 그 돈이면 일생 사는거 문제없어.
호- 그래두 엄마가 웃으니 기분 좋네. 부탁인데 이제 나머지 인생도 이렇게 웃으며 살아줘, 엄마. 40대 사춘기를 놓치지 마. 좋은 남자랑 련애도 하구, 녀자몸으로 고달프게 돈만 벌지 말고 이제 남자 돈도 좀 써보고 그것도 한번 해볼만 하잖아. 이쁘게 입구 근사한 남자랑 어울려 등산도 다니고, 이런 사우나에도 가고, 려행도 나란히 같이 가고, 아예 그림이 딱 나오네.
그림? 너무 환상적이지 않아?
그래야 제맛인거지. 그래야 나도 시름놓고 련애를 하든지말든지 할건데.
하. 이제야 너 그 본심을 알겠다. 엉뚱하긴.
헌데 엄마, 엄마입에서 애인소리두 나오고. 엄마한테 이런 면이 있었다니? 놀랍구 신기해. 울 엄마 이런 씩씩한 엄마였나? 헌데 난 왜 여태 몰랐지?
네가 긴가민가 하는거 알아. 하지만 한가지는 믿어. 내 생각이 이러니까 아직 좋은 인연을 못만나서 그렇지 나도 내 인연이 다가오면 붙잡을거야.
제발 그래야 하는데…
뭐야? 호호호…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세웠다. 다나가 올 림박에 집에 다다를수 없을것 같아서였다. 달리는 차창에 비낀 녀자의 반쯤 숙인 이마가 인상적이였던지 50대초반으로 보이는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요즘엔 밤에 등산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점점 늘고있습니다.》
《그래요?》
《모르셨어요?》
《저는 산엔 별로 안다니는지라…》
《네. 올 봄 산중에 가로등을 설치해놓은 뒤로 밤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답니다. 등산객이 너무 많아서 무섭기는커녕 시끄럽다나요. 비오는 날이라구 례외는 아닌가봐요. 오늘 벌써 세번째 손님인걸요.》
《그래요?》
녀자는 하마트면 혹시 손님중에 빨간 등산복 입은 남자 보셨어요 할번 했다. 녀자는 자신의 속내가 드러날가 두려워 화제를 돌렸다.
《저기 보이는 다리가 연신교가 맞아요?》
《네. 멀리서 보면 저렇게 작아보입니다. 뚝을 새로 한 뒤로는 물도 제법 많아지고 수심도 깊고. 저 강때문에 이제 이 도시도 강을 낀 도시라는 말을 듣는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게 시작된 기사아저씨의 말은 끝도 없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연신교아래 흐르는 강, 그 강은 녀자에게도 남다른 의미의 강이다. 사는 동안 지치고 힘들 때마다 찾아가던 강이다…
매번 녀자는, 그저 담담하고 초연하게 제 모습을 갖추어 흐르고있는 강을 바라보군 했었다. 깊은 침묵의 강, 녀자는 천지간에 딸-다나랑 단둘이라는 그같은 외로움에 우울했고 슬펐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거친 일깨움이기도 했었다.
때로는 그 강을 사이두고 넓게 훤하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기도 했다. 봄날의 싱싱한 들판, 그걸 보고있으면 저도 모르게 느껴지는 꿈결같은 평화가 례사롭지 않았다. 들판에선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있었다. 이 들판에 주인은 없는듯, 주인 없는 들판의 봄은 유난히 현란했었다. 사람이 없이도 계절은 바뀌고 꽃은 피는것이다. 녀자는 그렇게 느끼는 봄기운에 용기를 얻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감자탕집 마담답게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억척스런 본연의 자기를 되찾곤 했었다. 입은 옷은 이미 충분히 람루하건만 마음만은 봄향기로 가득해서 말이다.
그런 날이면 《감자탕 한그릇입니다-》 하고 길게 웨치는 그 소리에도 커다랗게 물이 올라있었다. 감자탕집, 거기엔 세월과 싸운 당당함과 너그러움이, 또 외로움이 깃든 중년의 그녀- 다나의 엄마가 있을뿐이였다…
혼자 말하던 택시기사가 무안한듯 어느새 입을 다물고있어서 녀자는 조금 미안했다. 이 녀자 왜 갑자기 침묵이지? 하는 기사량반의 의아해진 눈총을 외면한채 녀자는 피곤하다는듯 두눈을 꼬옥 감았다. 그러자 환영인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 사람도 1년전 그날이후론 쭈욱 등산하러 안나간 모양이지? 그렇게 믿고싶어졌다. 녀자의 이런 궁금증은 이제 서서히 구체적이고 확실한데로 치닫고있었다. 그 남자, 빨간색 등산복이 너무 잘 어울리던 남자, 어디 사는 누구지? 어쩐지 낯설지 않구 아는 사람 얼굴 같은데 대체 누구지? 그 사람 나처럼 아들이나 딸 하나 데리구 혼자 사는 남자일수도 있잖아. 같이 살던 녀잔 하늘나라에 계실가? 아니면 혹시 리혼? 에이, 이게 뭐냐. 윤다나 엄마가. 지금까지 십오년이나 윤다나 엄마로만 사는데 만족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생뚱맞은 남자에게 관심이 다 생기구, 웬 운명에도 없던 욕심을 부리고 란리야. 다나야. 엄마가 오늘 왜 이럴가. 아마도 넋이라두 나갔나봐. 다나야. 이건 분명 엄마두 인젠 몸도 마음도 다 늙어간다는 징표일거야. 어떡해. 나 아직 이러면 안되는데. 우리 다나 아직 물가에 내놓은 애인데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약해진 모습 보이면 안되잖아. 다나야. 엄만 오늘 막 속상해질려구 그런다. 다나야. 사랑하는 엄마 딸!
그날 밤.
《엄마, 차 한잔의 여유, 어때?》
《좋지.》
《자. 엄만 커피, 난 록차.》
《늦어서 미안해, 네가 오기전에 도착할려구 했는데…》
《미안하긴, 내가 뭐 어린앤가. 헌데 엄마, 산에 갔었나보지.》
《어떻게 알았어?》
《신을 보구 알았지. 그 싱그러운 흙냄새.》
《들켜버렸네.딸년한테.》
녀자는 뜨거운 커피잔을 받아들고 소녀처럼 호호 불었다.
《아까 가게에 밥 먹으러 갔었는데 문이 잠겨있더라구.》
《그랬어? 혼자 갔었니?》
《아니, 커플하구 둘이서.》
《커플? 너 커플 생겼니?》
녀자는 쥐고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응.》
《언제?》
《래일이면 한달.》
《그래? 벌써 그렇게 오래됐어. 헌데 왜 말을 안했지?》
《그냥. 다른 뜻은 없구, 그냥.》
《비밀로 하구싶었구나. 나한텐.》
《역시 내 엄마다. 아이큐가 높다니까.》
《너 지금 엄마가 가방끈 짧다구 무시하는거지.》
《왜 이래. 공연히 삐지면서.》
《글쎄 네가 나한테 언제 비밀 같은게 다 있게 됐냐구. 안하던짓 하니까 엄마 슬슬 기분 나빠질려구 그런다. 그래두 탄백안해?》
《커플이 있다는게 뭐 별건가?》
《별것 아닌게 아니잖아. 비밀이라며?》
《아니야.》
《너 지금 엄마 무시하니? 가방끈 짧은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알가. 이런거야?》
《리론과 실제가 다를수도 있다는걸 깨우치지 못한걸 보니 울 엄마 아직도 학생티를 벗지 못하셨나봐. 엄마, 우리 같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할가?》
《다나, 너 잘했어. 엄마가 기분 나빠하는데두 흥분하지 않구, 그 흔들리지 않는 여유, 부럽다, 엄마는…》
《엄마, 나 이런 면, 멋있었어? 터프해?》
《그래. 어유 잘난것!》
녀자와 다나, 모녀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공방전이 따로 없었다.
어느해였던가. 감자탕에 들어가는 갈비를 잘못 들여와 장사가 엉망이 됐던적이 있었다. 그러잖아도 여름철이라 장사가 잘 안되던 판국에 그런 사건까지 겹쳐 녀자는 눈앞이 깜깜해서 울상이 되였는데, 그때도 다나는 엄마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이웃가게에서 다 듣게 큰소리로 괜찮아를 련발해서 소문이 났던것이다.
《엄마,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래. 우리 이제부터 각별히 조심해요. 그까짓거.》
《그까짓거 아니야.》
《그러면 또 어때. 엄마, 우리 한번 실수에 연연해하지 말자. 응? 그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허지만…》
《그래, 엄마 마음 다 알아. 하지만 실수앞에서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한다면 나중엔 더 큰 실수를 부를지도 몰라. 이제 우리 엄마 이런 실수 두번 다시 하지 않는다! 오케이?》
《오케이.》
그날 밤, 다나는 베개를 안고 녀자의 이불속에 기여들어와 누웠다. 자신의 따스한 온기로 상처입은 엄마 마음이 치유될수 있기를 바라며. 밤새도록 잠 못이루는 엄마의 등을 다나는 꼬옥 감싸안았다.
《생각보다 엄만 몸매 좋네.》
《어쩐지 날씬하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 맞아.》
《나 위로하느라 애쓰지 마. 나 괜찮아.》
《그래. 엄만 잘할수 있어. 이번엔 운이 나빴던거야.》
《…》
《누구든 다 겪는 시련이야. 나중에 성공하면 나 모른척 하지 마.》
녀자는 딸애 말에 저도 모르게 피씩 웃었다.
《왜 웃어? 롱담 아닌데.》
《엄마 말이다. 평소에 늘 하던것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가 이제 뭘 더 할수 있겠어?》
《처음부터 성공하면 재미없잖아. 극적인 반전이 더 스릴 넘친다고. 그러니 엄마, 우린 극적인 반전! 그걸 노리자구!》
《그만해. 지금 엄만 여기저기 다 아파. 귀찮으니까 네 방에 가서 자.》
《사람은 다 아파, 이제 건강해지면 엄마, 나랑 데이트하자.》
《싫어. 시간이 없어. 엄마 돈 벌어야지.》
《엄마가 지금 뭘 말하는지 하나도 안들려. 그렇게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서야 무슨 힘으로 감자탕을 팔아요. 엄마, 요즘은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가죽까지 얻을수 있다고 해. 그러니…》
《엄마, 힘내세요. 다나가 있잖아요. 엄마. 힘내세요. 다나가 있어요…》
이럴때 보면 다나의 노래는 가수못지 않은 수준급이다. 감정이나 표정연기도 더이상 좋을수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에 가깝다. 매번 위기에 빠진 엄마가 당황해하면 다나는 이런 여유로 엄마 마음을 감싸주고 어루쓰는데 참으로 능숙한, 속내 깊은 18세 소녀였다.
녀자도 알고있었다. 다나랑 대화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걸. 아무리 렬악한 상황일지라도 말이다. 딸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었다. 녀자는 친구 같은 딸이 옆에 있어서 정말 다행스럽고 든든하다는 생각을 늘 했다.
《엄마두 커플 있어야 하는데. 나처럼. 그래야 질투 안하구 우리 두사람 이뻐해줄건데.》
《커플? 이 나이에 커플은 무슨…》
《커플은 나이랑 상관없어. 지금은 70대 할머니들두 커플을 찾는다는데, 우리 엄마 생각하는게 너무 아닌게 아닌가?》
《헌데 생각한다구 다 되는게 세상 일 아니잖아. 난 포기다. 너나 잘하세요.》
《내가 소개해줄가? 정말 괜찮구 근사한 사람인데…》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굽어보시며 섭섭해하실거야.》
《아빠도 엄마가 이렇게 오랜 세월 외롭게 사시는걸 원하지 않을거야. 여보당신, 이제 그만해도 돼, 이럴거란 말이야.》
《그래도 안돼.》
《이번 학기에 새로 오신 영어선생님이셔. 키도 늘씬하고, 성격도 부드럽고, 나이도 엄마랑 비슷하고, 딱 엄마가 좋아하는 타입이야.》
《너 자기 선생님을 엄마한테 소개시킨다고? 그게 무슨 배짱이니?》
《너무 좋은분이시니 그러지. 벌써 말씀드렸는걸.》
《뭐라구?》
《이번 주말에 우리 감자탕가게에 오신다고 했어. 나랑 같이 오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그러는 선생님, 40대치곤 너무 화끈하지 않아?》
《너…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저질러.》
《엄마가 그랬잖아. 등산 가보면 빨간색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제일 멋져보인다고.》
《내가 언제?》
《웬 건망증? 그럼 내가 어찌 알아요. 등산하러 한번도 못가본 내가.》
《그래서?》
《우리 선생님 언제나 빨간색 등산복을 입고계시거든. 혹시 알아? 엄마가 등산길에 만났다던 그 남자인지?》
《아예 소설을 써라. 소설을!》
《엄마가 딱 한번의 등산길에서 만났다던 그 남자, 1년이 넘도록 잊혀지지 않아 다시 찾아간 그 남자, 오늘 만나지 못한게 분명한데.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엔 너무 이른것 같아. 우리 선생님이 혹시 그 남자라면, 물론 이건 가상이지만, 모르잖아. 두사람의 인연이 천연이라면, 그리고 두사람은 과부에 홀아비니, 이거야말로 금상첨화다 이거지 뭐.》
《그런것까지 알아냈어? 선생님이 홀아비라는것, 확실한거야?》
《왜? 안된다더니. 갑자기 관심이 생겨?》
《너…》
《아무튼 나 할수 있는거 여기까지야. 엄마, 나중에 잘해봐. 파이팅!》
《몰라.》
그 주말에 다나의 영어선생님은 약속대로 녀자의 감자탕가게에 왔다. 바로 1년전 그 빨간색 등산복차림 그대로 말이다. 오, 하늘이시여, 이런 인연두 있나이까.
헌데 다나는 보이지 않았다. 공부때문에 못나왔다는것이다.
《등산외에도 테니스가 취미라구요?》
《네.》
《테니스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저도 꼭 배우고싶은 운동의 하나였는데.》
《그래요? 건강에 테니스만큼 좋은 운동도 없는데. 배워보시지요.》
《글쎄 기회가 있으면… 헌데 테니스는 어떻게 하게 됐어요?》
《아, 예, 그건… 말하자면 좀 긴데…》
《아, 그래요? 그럼 나중에…》
《예, 제가 테니스에 대해 알고있는 모든걸 얘기해줄게요.》
《그럼 제가 밥을 살게요.》
《예? 밥을…》
《아니, 내 뜻은…》,
《아예 매일 감자탕집에서 만납시다. 밥을 먹고나서 어쩌면 제가 직접 테니스를 가르쳐주겠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사
던김에 술까지 사세요.》
《예?》
다나가 없이도 둘의 대화는 거칠것 하나 없었다. 원래부터 인연이란 사람이 만들어가는것. 세월의 모든것을 묵묵히 안아주는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 세월의 무심한 흐름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처럼 산행길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인연들, 누구도 알수 없는 그 인연의 시작과 끝은 어딜가? 풀과 바람과 새들만이 알것이다. 누가 쏜 화살인지.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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