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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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서정
2016년 11월 23일 09시 12분  조회:1901  추천:0  작성자: 김인섭
달의 운행 궤도에서 성공과 원만을 상징하는 만월은 선조적(线条)적으로 기우는 만월(弯月)과 공존하기에 거룩하고, 바다의 미세기(潮汐)에서 파죽지세를 상징하는 밀물의 만조(满潮)는 썰물의 미련없는 퇴조가 있어 도도하게 장엄하다.가을이 저물어가니 수목들에 붙딸리어 살던 잎새들이 한살이 사명을 마치고 착생하던 가지를 별리(别离)하며 서슴없는 리별을 선고한다.나무는 오는 엄동을 대비하여 묵은 이파리를 떨어내고 나목으로 되며 환생을 위한 동면의 초읽기로 들어간다.사철의 리듬에 맞춰 버림과 부활을 거듭하는 나무의 야멸찬 용단을 만월이나 만조의 숭엄한 자태에 슬그머니 비견해 보게 된다.
 
요즘은 일교차가 심하여 해가 떨어지면 아쓸한 한기가 몰리는데 건넛산 상록수들은 아직도 녹색 풍경을 고집하며 도고한 생명을 뽐내고 있다.그러나 이 동네의 가로수 주력인 은행나무과 단풍나무는 잎에다 노란연두와 연황동 물색을 잔뜩 올리며 늦가을의 물후(物候) 풍경을 연출한다.그들은 봄여름의 햇빛 속에서 산소를 방출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광합성 작용으로 병육(并育)하던 나무에 연륜을 쌓아놓고 락엽귀근(落叶归根)이란 갸륵한 사명을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아직도 취동(吹动)에 우슬거리며 조락을 강열히 저항하는 잎사귀들의 모습은 한생의 대미(大尾)를 화려하게 장식 못한 아픔을 감추려는 몸부림이 아닐까.때가 되면 비장히 작별하는 수엽들이 무아주의와 애타주의를 실천한다고 인간화하여 음미해 보니 남에게 행복을 반납하고 자연에 회귀하는 당돌한 소행을 지켜가는 그 생명철학에 주옥같은 글귀를 남기고 싶다.
 
수목들의 세계에서 잎의 령락은 새로운 생과 사를 거듭하는 숙연한 륜회 법식의 순간이다.그들은 천리에 따라 자기를 비우고 포기를 선택하며 또 다른 봄언덕을 바라며 새 생명의 유신(有娠)을 꿈꾸는 계절잠의 세계에 몰입한다.그럴진대 세월의 춘하추동의 세파를 감내하며 신진대사의 철칙으로 참삶을 이뤄가는 나무들의 생애야말로 소행은 범상해도 생명의 명상적인 선율이 아니겠는가.락목한천(落木寒天) 삼동의 동해를 피하려 몸에 달린 군덕지들을 떨어버리는 결행은 위급하면 꼬리를 자르고 내빼는 도마뱀의 눈물겨운 생존전략과 일맥상통하다.나무의 금과옥조(金科玉条) 같은 삶의 신조와 가치철학은 인간들이 음미하고 재음미해야 할 오묘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만추를 일년의 계절로 가름하면 늦가을이고 하루의 시간대에 견주면 보리저녁인데 인간의 일생일대(一生一代)에 투영해 보면 로연에 흡사하지 않을까.요즘 어떤 사람들이  이순이 인생의 늦가을이라 되뇌이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그런데 회갑 개념이 없는 어느 나라에서는  65~75세까지를 은퇴활동기라고 부르고 있다.비록 은퇴지만 사회활동에는 충분한 나이고 로인이란 별칭이 딸리면 신수가 불길하고 재수가 날아난다며 질색을 부린다.혹시 75세 넘어가면 시니어시티즌(资深公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혜와 경륜을 많이 쌓은 원로에 해당된다.사람의 인생에는 영원한 노동과 창조가 따라야지 세월아 네월아 운수타령을 부르며 어험대면 꼴불남에 꼴불녀라라는 게다.
 
세월은 필경은 사람 편이 아닌데도 어떤 사람에게는 로쇠를 부인하는 부실한 고집이 있다.육체적 년령은 외면하고 정신적인 젊음만 있다면 영원한 청춘이라며 우쭐댄다.경쟁과 생계의 곤혹으로 혼돈스런 현실에서 20세 청년보다 70세라도 분발하면 그게 청춘이고 전자가 로인이라는 아집이다.이젠 80인 고령인데 좀 쉬세요!라는 아들의 권고에 <쉬면 늙어져!!>라고 퇴박을 주며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그의 오상고절(傲霜孤节)은 동네 로인들의 귀감에 되어 있다는 전언이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것은 인간의 본성인데도 내가 그게 아니라고 고집하면 말공부질이라 반상(反想)할 것이지만 인생의 길에서 한탄과 회한을 숨기고 상실의 아픔도 달갑게 감내하면서 그냥 매진하면 이것은 또 하나의 인생이 아닐가고 생각한다.만약 당신의 생애가 외나무다리를 건너야할 운명이라면 다리가 떨려도 그 독목교를 즐겁게 걸을 때 그 모습 역시 천사의 자태라고 간객들이 찬미할 것이 당연할 것이다..
 
늦가을의 결실과 풍요를 만끽하면서 창백한 기억、애틋한 동경、지절한 기대를 미련없이 내쳐버리며 그냥 새 삶을 엮어가는 늦가을 나무의 경전적인 참삶, 인생도 이대로라면 구경꾼의 갈채가 쏟아질 무대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
(끝)
2016-11-09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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