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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저술
2015년 02월 16일 10시 00분  조회:4462  추천:0  작성자: 죽림
 

(동양평화론 서문)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서문(序文)

 

대저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변함없는 분명한 이치이다. 지금 세계는 동서(東西)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도 각기 달라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편리한 실용기계 연구도 농업이나 상업보다는, 신 발명품인 전기포(電氣砲 : 기관총), 비행선(飛行船), 침수정(浸水艇 : 잠수함) 등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고 사물(事物)을 해치는 기계에만 치우치고 있다.

 

청년들을 훈련시켜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물(犧牲物 :  신에게 제사지낼 때 쓰는 짐승, 소, 돼지, 양 따위)처럼 버려,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마음이거늘 밝은 세계에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근원을 따져보면 예로부터 동양의 민족들은 다만 문학(文學)에만 힘쓰고 제 나라만 조심스레 지켰을 뿐이지 도무지 한 치의 유럽 땅도 침입해 빼앗지 않았다. 이는 오대주(5大洲) 위의 사람이나 짐승, 초목까지 다 알고 있는 바 이다.

 

그런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가까이 수백 년 사이에 도덕(道德)을 까맣게 잊고 나날이 무력을 일삼으며, 경쟁심을 키워 조금도 꺼리는 기색이 없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가 더욱 심하다. 그 폭행과 잔인한 해악이 서유럽(西歐)이나 동아시아(東亞) 어느 곳에나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악이 차고 죄가 넘쳐 신(神)과 사람이 다 함께 성을 내게 되었다.

 

이에 하늘이 한 매듭을 짓기 위해 동해 가운데 떠있는 조그만 섬나라 일본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강대국 러시아를 만주대륙에서 한 주먹에 때려눕히게 하였으니, 누가 능히 이런 일이 있을 줄 헤아렸겠는가. 이것은 하늘에 순응하고 땅의 배려를 얻은 것이며 사람의 정에 응답하는 이치이다.

 

당시에 만일 한(韓), 청(淸) 두 나라 국민 상하가 일치해서 전날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을 배척하고 러시아를 도왔다면 일본은 큰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나 그것을 어찌 예상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한, 청 양국 국민은 그러한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일본군대를 환영하고 그들을 위해 운수(運輸) 치도(治道) 정탐(偵探) 등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힘을 기울였다. 이것은 무슨 이유인가.

 

거기에는 두 가지 큰 사유가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가 개전(開戰)할 때, 일본천황의 선전포고문 중에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대한독립을 공고히 한다' 했으니. 이 같은 대의(大義)가 청천백일(靑天白日)의 빛보다 더 밝아 한(韓) · 청(淸) 인사는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를 막론하고 일치동심해서 복종했음이 그 하나이다. 또한 일본과 러시아의 다툼이 황백인종(黃白人種)의 경쟁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난날의 원수졌던 심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도리어 큰 하나의 인종 사랑 무리(愛種黨)를 이루었으니 이도 또한 인정의 순리라 가히 합리적인 이유의 다른 하나이다.

 

통쾌하도다! 장하도다! 수백 년 동안 행악하던 백인종의 선봉을 북소리 한 번에 크게 부수었으니 가히 천고에 희귀한 일이요 만방이 기념할 자취이다. 당시 한국과 청국 양국의 뜻있는 이들이 기약 없이 함께 기뻐해 마지않은 것은 일본의 정략(政略)이나 일을 헤쳐나감이 동서양 천지가 개벽한 뒤로 가장 뛰어난 대사업이며 시원스런 일로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슬프다! 천만 번 의외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한 이후로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며 어질고 약한 같은 인종인 한국을 억압하여 조약을 맺고, 만주 창춘(長春) 이남의 조차(祖借)를 빙자하여 한국을 점거하고 말았다. 세계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의심이 홀연히 일어나서 일본의 위대한 명성(名聲)과 정대한 공훈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만행을 일삼는 러시아보다 더 못된 나라로 보이게 되었다.

 

슬프다!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와 같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안타깝고 통탄할 일이로다.

 

동양 평화와 한국 독립에 대한 문제는 이미 천하만국 사람들 이목에 드러나 그들은 금석(金石)처럼 믿게 되었고 한 · 청 두 나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음에랴! 이러한 사상은 비록 천신(天神)의 능력으로도 소멸시키기 어려운 것이거늘 하물며 한두 사람의 지모(智謨)로 어찌 말살할 수 있겠는가.

 

지금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오는(西勢東漸) 환난은 동양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극력 방어함이 최상책이라는 것은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대세를 돌아보지 못하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치고 우의(友誼)를 끊어 스스로 방휼지세(蚌鷸之勢 :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물리며 다투는 형세)를 만들어 어부(漁夫)를 기다리는 듯 하는가. 이로써 한 · 청 양국인의 소망은 크게 깨져 버리고 만 것이다.

 

만약 일본이 정략을 고치지 않고 핍박만 날로 심하게 한다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차마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소리가 한 · 청 두 나라 양국인의 폐부(肺腑)에서 용솟음쳐 상하 일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白人)의 앞잡이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형세이다.

 

그렇게 되면 동양의 수억 황인종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인사와 정의로운 사나이가 어찌 앉아서 수수방관(袖手傍觀)하며 동양 전체가 까맣게 타죽는 참상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래서 나는 동양 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얼빈에서 개전하고, 담판(談判)하는 자리를 뤼쑨(旅順)으로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바이다. 여러분의 눈으로 깊이 살펴보아 주기 바란다.

 

1910년  경술  2월(음)   대한국인 안중근 려순(旅順) 옥중에서 쓰다.

 

 

 

 

▲ 1910년 3월 9일에서 10일 사이에 촬영된 옥중에서 두 아우 정근과 공근, 그리고 빌렘(Joseph Wilhelm) 홍신부와 면회하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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