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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모음
2015년 06월 15일 21시 50분  조회:18506  추천:1  작성자: 죽림

 

 

 

 

첫사랑 /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 까지 들여다 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호수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가락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 밖에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하늘 / 최계락


하늘은 바다
끝없이 넓고 푸른 바다
구름은 조각배
바람이 사공 되어
노를 젓는다.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엔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가을 저녁의 시 / 김춘수

 

누가 죽어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다는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나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로움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가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는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보다

 

 

박용철 / 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냐.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김영랑 /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비누풍선 / 이원수

 

무지개를 풀어서
오색구름 풀어서
동그란 풍선을 만들어서요


달나라로 가라고
꿈나라로 가라고
고히고히 불어서 날리웁니다.

 

 

박목월 /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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