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7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시인 지구촌

난해시와 보들레르
2016년 01월 02일 01시 43분  조회:3806  추천:0  작성자: 죽림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 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Souvent, pour s'amuser, les hommes d'équipage
Prennent des albatros, vastes oiseaux des mers,
Qui suivent, indolents compagnons de voyage,
Le navire glissant sur les gouffres amers.

À peine les ont-ils déposés sur les planches,
Que ces rois de l'azur, maladroits et honteux,
Laissent piteusement leurs grandes ailes blanches
Comme des avirons, traîner à côté d'eux.

Ce voyageur ailé, comme il est gauche et veule!
Lui, naguère si beau, qu'il est comique et laid!
L'un agace son bec avec un brûle-gueule,
L'autre mime, en boitant, l'infirme qui volait!

Le Poète est semblable au prince des nuées
Qui hante la tempête et se rit de l'archer;
Exilé sur le sol au milieu des huées,
Ses ailes de géant l'empêchent de marcher.

 

 

 

“어린 시절부터 고독감./ 가족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특히 친구들 속에 끼어서도―/ 영원히 고독하도록 운명지어진 숙명감.” 1821년 출생한 샤를 보들레르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많은 글에서 자신의 내면에 동거하는 두 개의 마음, 이중성에 대해 썼는데 그것을 “생명력, 그리고 쾌락에의 매우 격렬한 기호”라고 칭했다. 보들레르의 비교적 행복했던 초년은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의 생생한 빛”이었다. 적어도 그의 아버지 프랑수아 보들레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루이 16세의 고가구, 고미술품, 집정 정부, 파스텔화, 18세기의 사교계”라는 어휘들로 꽉 차 있었으나,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앳된 사랑의 푸른 낙원”의 시간은 종료되었다(보들레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서른다섯 살의 어머니는 당시 육군 소령이었던 자크 오픽과 재혼을 하게 된다.)

 

라틴어 작시(作詩)에 뛰어나 일찌감치 시를 짓는 재능을 발휘했던 보들레르에게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은 다니던 파리의 명문 루이 르 그랑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수업 시간에 급우가 돌린 쪽지를 제시하라는 선생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쪽지를 찢어 삼킨 반항적 언동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보들레르의 기질은 아주 달라진다. 보들레르는 개인 교사의 지도를 받아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파리 법과대학에 등록했지만 자유분방하고 구속 없는 생활이 본격화되었다. 문학청년들과의 교류, 거리의 여인 사라(Sarah)와의 만남과 성적 쾌락에의 탐닉, 그리고 빚에 쪼들린 생활이 이어졌다.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 빚에 몰리게 된 보들레르를 지켜보던 형 알퐁스가 그 사실을 의붓아버지에게 알렸고, 이에 가족회의가 열려 보들레르는 1841년 1월 인도의 캘커타를 향해 떠나는 남해호에 실려 강제로 먼 항해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덥고 푸른 나라의 끔찍한 우울”을 경험하게 했던 이 길고 지루한 바다 항해는 보들레르에게 바다 이미지를 생성시켰고, 열대 풍경에의 매료 등 이국적 취향을 안겨 주어 그의 심성과 시심을 일변하게도 했다. “내 아이, 내 누이여/ 생각해 보렴/ 거기 가서 함께 사는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그 고장에서!/ 그곳 흐린 하늘에/ 젖은 태양이/ 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 지녀/ 눈물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런 그대 눈 같아”라며 다른 나라 땅으로 떠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노래한 시 ‘여행으로의 초대’의 탄생도 이때의 경험이 도왔다.

 

무엇보다 시 ‘알바트로스’는 이 시기 항해 중에 일어났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배에 승선해 있던 한 군인의 소총에게 잡힌, 몸통 3미터가 넘는 이 거구의 바닷새 알바트로스가 수부들에 의해 질질 끌려다니는가 하면 온갖 방법에 의해 모진 박해에 시달리는 일이 그의 목전에서 벌어졌다. 보들레르는 이 충격적인 일화를 토대로 알바트로스에 “지상에 유배당한”, ‘저주받은 시인’의 모습을 투영했다.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의 비조(鼻祖)였으며(그의 시 세계는 베를렌, 말라르메, 랭보 등에게로 승계된다), “옛날의 파리는 이제 없네(아! 도시의 형태는/ 인간의 마음보다 더 빨리 변하는군)”라고 노래한 고독한 근대적 만보객이었다. 범박하게 말해 이 지상의 삶을 ‘병원’에 비유하며 현대와 도시의 타락과 부패를 노래한 보들레르의 생애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일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한 극장 소속 단역배우였던 잔 뒤발(Jeanne Duval)과의 사랑을 들 수 있다. 보들레르가 흑백 혼혈 여성이었던, 질병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고 있던 그녀를 만난 것은 먼 바다로의 항해를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보들레르에게 죽음과 방탕의 인자를 심어 준 잔 뒤발은 보들레르의 시에서 “신성한 요술쟁이의 막대기 끝에서/ 박자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기다란 뱀”에 비유된다.) 그녀는 보들레르에게 “유일한 오락”이요, “유일한 즐거움”이요, “유일한 친구”였으나, 보들레르를 “쇠사슬에 얽매인 노예처럼/ 노름판을 못 떠나는 노름꾼처럼/ 술병을 못 놓는 주정뱅이처럼” 붙들어 매어 놓았다. 보들레르는 많은 돈을 그녀에게 바쳤고, 결국 1844년 법원으로부터 금치산 선고를 받게 된다. (이후 보들레르는 돈을 보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줄기차게 보낸다.) 보들레르 시에 등장하는 육체에 대한 관능적 탐닉, 악마적 어투, 사디즘의 이상성욕 등은 뒤발로부터 상상적으로 창조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1857년 출간된 시집 [악의 꽃]은 보들레르에게 엄청난 불행과 시련을 안겨 주었다. “납골당과 도살장의 구역질 나고 냉랭한 시, 사상으로 이루어진 한심스러운 빈곤” 등의 혹평이 쏟아졌으며, 외설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시집이 압류당하기도 했다. 여섯 편의 시 삭제, 300프랑의 벌금 처분도 내려졌다(이에 대해 보들레르는 한 편지글에서 “저는 제가 유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는 오로지 악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썼다.) 플로베르가 “아! 당신은 존재의 지겨움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격려를, 위고가 “예술이란 창공과 같은 것이어서 무한한 분야입니다. 귀하께서는 최근에 그 점을 증명해 보였습니다.”라는 지지와 신뢰를 보냈으나 세상의 혹독한 평가는 보들레르를 ‘저주받은 시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물론 보들레르는 초판 텍스트에서 삭제된 여섯 편의 시를 대신해 서른다섯 편의 시를 보강해 1861년 [악의 꽃] 재판을 발간한다. 보들레르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이 책(재판본)은 모든 것에 대한 저의 증오심과 혐오감의 증거로 남게 될 것”이라고 썼다. 에드거 앨런 포와 바그너에 대한 애정도 보들레르의 생애에서 중요하게 놓이는 대목이다. 보들레르는 포의 작품을 대면한 후 자신이 꿈꾸던 주제와 문장들이 작품에 구현되어 있음에 놀라움과 황홀감을 느껴 포의 전 작품을 완역하기로 결심했고, 1860년 음악회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순간 생의 상승감을 느끼며 그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보들레르의 말로는 참담했다. “아무 곳이라도 좋소! 아무 곳이라도 좋소!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이라고 절규하던 그는 두통, 신경쇠약, 숨가쁨, 구토, 신체 마비, 실어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1867년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숙명의 사닥다리 위에서 아래까지 가득한/ 불멸의 죄악의 지겨운 광경”을, “단조롭고 작은 이 세계”를, “우리 감옥의 권태”를 다 벗고 눈을 감고 말았다. 한 역자의 지적처럼 보들레르는 “고뇌와 이상, 악덕, 죄악, 갈증, 찢겨진 영혼의 울부짖음”을 불후의 역작인 한 권의 시집에 불어 넣었다. 그리고 그 시집을 이 요동치는 세계, 이 선상(船上)에, 수부들에게 붙잡힌 알바트로스처럼 남겨 놓고서 떠나갔다.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4.9~1867.8.31)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에 품행 문제로 학교에서 퇴학당했으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줄곧 작가가 되고자 했다. 성년이 되어 의붓아버지가 남겨 준 재산을 상속받은 뒤에는 센강의 생루이섬에 거처를 두고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하며 탐미적 생활을 즐겼다. 흑백 혼혈의 무명 여배우 잔 뒤발을 알게 된 뒤 관능적 시흥을 중요하게 여겼다. 상속받은 유산을 거의 다 낭비한 뒤에는 법정후견인이 딸린 준금치산자가 되었다. 스물네 살에 미술 평론가로 데뷔하였고 문예비평, 시, 단편소설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문단에서 활약하는 한편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랭보 등 상징파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낭만파, 고답파에서 벗어나 인간 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고도의 비평 정신을 추상적 관능과 음악성 넘치는 시에 결부하였다. 대표작으로 [악의 꽃]이 있다.

 

 

글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산문집 [느림보 마음] 등이 있다.


 

[출처] 보들레르/ 알바트로스|작성자 헌책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162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802 "은진"과 동주 2016-11-11 0 3285
1801 "명동"과 동주 2016-11-11 0 2888
1800 詩人은 삶이란 진액을 증류해서 뽑아내는 련금술사이다... 2016-11-11 0 2651
1799 詩를 배우려는 초학자에게 보내는 편지 2016-11-11 0 2889
1798 詩란 의지와 령혼의 몸부림이다.../ 시의 흥취 10 2016-11-11 0 2779
1797 토템문화를 알아보다... 2016-11-11 0 2990
1796 가사창작할 때 <<아리랑>>을 람용하지 말자... 2016-11-10 0 3054
1795 개성이 없는 예술작품은 독자들의 호감을 살수 없다... 2016-11-10 0 2738
1794 가사창작도 예술품 제작이다... 2016-11-10 0 3201
1793 가사가 대중성이 없이 독서적인 향수를 느낄수 있어도 좋다... 2016-11-10 0 3137
1792 시조짓기에서 3장6구는 완결된 뜻의 장(章)을 이루어야... 2016-11-10 0 3144
1791 詩作할 때 민족의 정서와 녹익은 가락을 집어 넣어라... 2016-11-10 0 3147
1790 심련수, 27세의 짧은 생애에 근 250여편의 문학유고 남기다... 2016-11-10 0 3299
1789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16-11-10 0 3011
1788 일기책에 늘 단시를 적으라... 2016-11-10 0 2915
1787 詩는 그래도 탁마해야 제맛이 난다... 2016-11-10 0 2907
1786 세우는데는 석삼년, 허물어 버리는데는 "단 하루 아침" 2016-11-10 0 2982
1785 노루 친 막대기를 석삼년, 아니 30년 더 넘어 우려먹다... 2016-11-10 0 3295
1784 중국 조선족 문학사에서 첫 "단행본아동작가론" 해빛 보다... 2016-11-10 0 3003
1783 詩人은 시시비비, 진진허허의 대문을 여는 도인이다... 2016-11-10 0 3700
1782 詩人이라 하여 모두가 詩人인것은 아니다... 2016-11-10 0 3064
1781 늦둥이 시인 하이퍼시집 낳다... 2016-11-10 0 3665
1780 중국 조선족 문단 생태문학을 알아보다... 2016-11-10 0 3060
1779 참된 문학은 머물러있는 문학, 가짜문학은 흘러가는 문학 2016-11-10 0 3277
1778 중국 조선족 시조문학을 파헤쳐보다... 2016-11-10 0 3347
1777 리상각 / 김관웅 / 조성일 / 허동식 2016-11-10 0 3417
1776 중국 조선족 록의 왕 - 최건도 음유시인 아니다?... 옳다...! 2016-11-10 0 3142
1775 윤동주의 시는 현실적 모순의 내면적인 목소리이다... 2016-11-10 0 3334
1774 "내 령혼이 내 말 속으로 들어간다"... 2016-11-09 0 3278
1773 詩는 감각과 정신을 제거한 무아에서 령감을 얻어 詩作해야... 2016-11-09 0 2846
1772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시에 젖은 아이들은 아름답다... 2016-11-07 0 3747
1771 詩는 삶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2016-11-07 0 3458
1770 그는 그람이라는 칼을 집어 두 사람 사이에 놓았다... 2016-11-07 0 3420
1769 거대한 장서더미속에서 맹인으로 보낸 인생의 후반부 빛났다... 2016-11-07 0 3281
1768 詩는 말을 넘어서 상징과 음악성속에 존재한다... 2016-11-07 0 4792
1767 최고의 작품은 최대의 상상에서 생긴다... 미국 포우 2016-11-07 0 3742
1766 가장 오랜전 <<령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者 - 플라톤...?...! 2016-11-07 0 3141
1765 중국 당나라 녀류시인 - 설도 2016-11-07 0 3357
1764 중국 유명한 시인들을 알아보기 2016-11-07 0 3199
1763 인생은 비극이라 생각할 때 비로서 살기 시작하는것... 2016-11-06 0 4134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