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산문시가 산문이 아니다라 詩이다
2016년 03월 03일 00시 46분  조회:4478  추천:0  작성자: 죽림
산문시가 산문이 아니라 시인 이유

강 인 한




산문시는 시입니다. 산문 형태를 취했을 뿐 본디 시가 지니고 있는 운율, 함축성, 센스, 이미지, 모호성, 알레고리 등의 요소를 두루 갖춘 산문 형태라면 그것은 시입니다. 산문시입니다. 산문시를 읽는 건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읽어봐야 하지요. 그래서 그 산문 형태를 대하자마자 빽빽한 그 형태에 질려서 공연히 어렵겠구나, 하고 곤란을 느끼게 되지요. 약삭빠른 얼치기 시인들이 그러한 점을 노려 시도 아닌 산문을 써서 시(산문시)라고 위장하여 발표하는 경우가 곧잘 눈에 띕니다. 이를테면 하수가 고수인 척 겉모습만 흉내를 내는 것이지요. 대략 어설픈 자기 시의 실력을 감추기 위해 산문시라고 포장해 봤자 잘 뜯어보면 금세 들통이 나게 마련입니다.
다음의 산문시는 이번 겨울호 계간지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퍽 재미있는 산문시입니다. 일견 산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새겨 읽어볼수록 시의 맛이 새록새록 우러나는 빼어난 시입니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날아간다 나비는 잘 접힌다 또 금방 펴진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깜빡인다 나비는 몸이 가볍다 생각이 가볍다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는 적이 드물다 줄인형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비에게서 달아난다 나비에게로 돌아온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닮아간다 옥타브를 벗어나는 나비 따라 부르기 어려운 나비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넘어선다 높아지는 나비 어머나 비가 온다 어머나 비가 간다 나비가 버리고 간 나비 나비가 채우는 나비 줄인형처럼 꽃밭 속에 나비를 담근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발생한다 나비를 서성이며 나비가 날아간다
—심언주, 「나비가 쓰고 남은 나비」(《시로여는세상》2015, 겨울호)

이 산문시를 일반적인 자유시 형태로 바꿔서 읽어보도록 합니다. 행을 가르고 기왕이면 연도 구분해 볼까요. 이걸 읽어보면 위의 산문시가 바탕이 시였음을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날아간다
나비는 잘 접힌다
또 금방 펴진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깜빡인다

나비는 몸이 가볍다
생각이 가볍다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는 적이 드물다
줄인형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비에게서 달아난다
나비에게로 돌아온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닮아간다
옥타브를 벗어나는 나비
따라 부르기 어려운 나비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넘어선다
높아지는 나비

어머나 비가 온다
어머나 비가 간다
나비가 버리고 간 나비
나비가 채우는 나비
줄인형처럼
꽃밭 속에 나비를 담근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발생한다
나비를 서성이며 나비가 날아간다


이와는 반대로 서정적인 산문이 시가 될까, 그냥 산문일까 잘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산문은 산문일 뿐입니다. 다음의 글을 읽어봅니다. 널리 알려진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마치 아름다운 시에 나옴직한 비유나 감각적 이미지가 가장 빛나는 부분입니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게로 흘러간다.

이것을 자유시 형태로 다음과 같이 바꿔봅니다. 요즘 유행하는 시들처럼 마침표도 빼고 행과 연을 구분하여 변형시킨 다음의 글이 비록 시인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고 그냥 산문입니다. 이러한 산문을 시라고 쓰는 시인들이 적잖이 있는 게 오늘의 우리 시단입니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게로 흘러간다


시 아닌 산문이 그럼 어떤 글인지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서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문형식으로 엮어지는 소설 · 수필 · 일기문 · 기행문 등은 산문정신에서 기초한다. 이것은 인생과 직결되어 있으며 운율이나 조형미에 의거하지 않고 인생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어디까지나 내용 자체의 전달로 독자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작자가 걸어온 인생의 체험에서 비롯되는 현실의 묘사나 서술에 그 예술성이 보존된다. 특히 산문정신을 작가정신의 요체(要諦)로서 시정신과 대립시켜 제창하는 까닭은 소설의 리얼리티가 시나 운문과는 별도로 그 문예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문제를 하나 제시해 보겠습니다. 다음 글은 산문일까요, 산문시일까요?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대 놓치고, 그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대하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었어? 다행히 선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억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 해 온 세상의 해충이 창궐하여 다시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었니?
—최정례, 「개천은 용의 홈타운」


글을 쓴 이는 이것을 과감하게 '시'라고 내놓고 있지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판단하건대 어디까지나 이 글은 치기만만한 산문일 뿐입니다. 아무리 높은 거액의 상금을 받았을지라도 그게 내 눈에는 기지와 해학을 앞세운 산문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산문정신에 충실한, 산문치고는 센스가 있는 수필이라 하겠습니다. (요즘 수필 쓰는 이들 가운데에는 5매 안팎의 짧은 수필 쓰는 경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저런 수필을 모아놓은 책은 그러므로 수필집으로 대우하는 게 정당할 것입니다. 시인이 '시'라고 생각하고 써서 발표한 글이 모두 시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시인이 자기 양심을 기만한 것이며, 독자 위에 군림하는 오만입니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923 미국 시인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2016-12-04 0 5908
1922 미국 시인 - 랠프 윌도 에머슨 2016-12-04 0 3820
1921 [쉼터] - 원소 "주기률표"와 어머니 2016-12-03 0 10167
1920 시인, "시편", 그리고 독서 2016-12-03 0 4247
1919 영국 첫 녀성 계관시인 - 캐롤 앤 더피 2016-12-03 0 4122
1918 영국 랑만파 계관시인 - 윌리엄 워즈워스 2016-12-03 0 5054
1917 미국 계관시인 - 테드 쿠서 2016-12-03 0 4233
1916 미국 첫 라틴계 계관시인 - 후안 펠리페 에레라 2016-12-03 0 6440
1915 <<뇌의학계>> 미국 계관시인 - 오리버 색스 2016-12-03 0 3574
1914 미국 계관시인 - W.S 머윈 2016-12-03 0 3656
1913 19세기 미국 가장 독창적인 시인 - 에드거 앨런 포(포우) 2016-12-03 0 9687
1912 미국 시인 - 로버트 핀스키 2016-12-03 0 4160
1911 미국 흑인 혼혈 녀성계관시인 - 나타샤 트레세웨이 2016-12-03 0 4979
1910 미국 계관시인 - 필립 레빈 2016-12-03 0 4187
1909 詩人은 절필할줄도 알아야... 2016-12-03 0 5117
1908 나이지리아 시인 - 월레 소잉카 2016-12-01 0 5798
1907 미국 계관시인 - 로버트 프로스트 2016-12-01 0 4972
1906 詩는 기존의 삶의 설명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설계도이다... 2016-12-01 0 3812
1905 스페인 시인 - 후안 라몬 히메네스 2016-11-30 0 4428
1904 요절한 천재 시인 시세계를 알아보다... 2016-11-30 0 5110
1903 詩人은 자기자신의 령혼을 련금할줄 알아야... 2016-11-30 0 3453
1902 스페인 시인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2016-11-30 0 5901
1901 서아프리카 세네갈 대통령 시인 - 레오폴드 세다르 상고르 2016-11-30 0 6349
1900 중남미 수녀 시인 - 소르 후아나 이녜스 데 라 크루스 2016-11-30 0 6202
1899 노르웨이 시인 - 비에른 스티에르네 비에른손 2016-11-30 0 5556
1898 아이슬란드 시인 - 스노리 스튀르글뤼손 2016-11-30 0 6571
1897 미국 國歌 "성조기" 작사가, 시인 - 프랜시스 스콧 키 2016-11-30 0 6415
1896 <라면> 시모음 2016-11-30 0 4280
1895 詩人은 일상의 삶을 詩처럼 살아야 한다... 2016-11-30 0 3803
1894 詩는 시인이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니다... 2016-11-30 0 4091
1893 현대 환상 문학의 대가 아르헨티나 시인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2016-11-29 0 6415
1892 자연과 인생을 노래한 일본 "김삿갓 방랑 시인" - 마쓰오 바쇼 2016-11-29 1 8300
1891 조선시대 비운의 천재 녀류시인 - 허난설헌 2016-11-29 0 4863
1890 중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멕시코시인 - 옥타비오 파스 2016-11-29 0 5786
1889 詩人은 神이 준 언어를 잘 련금술할줄 알아야... 2016-11-29 0 3646
1888 어머니, 100원, 그리고 모성애... 2016-11-28 0 4077
1887 시인, 시, 그리고 돈... 2016-11-28 0 5318
1886 문학예술인, 삶, 그리고 비극... 2016-11-28 0 3964
1885 시의 건초더미에서 찾은 "바늘" 2016-11-28 0 4203
1884 시인, 시쓰기, 그리고 시암송... 2016-11-28 0 3359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