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기술/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말 참 많이 하는 시대다. TV를 틀어보자. 예능프로그램만 봐도 그렇다. 연애 예능, 육아 예능, 먹방 예능 등 예능 종류가 참 다양한 시대가 됐지만, 그 공통된 바탕은 ‘썰’(말씀을 뜻하는 한자어 說(설)에서 변화한 단어로 ‘이야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말의 유희다.
청춘 남녀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해야 하고, 부모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놀아주고 목욕을 시켜줄 때 역시 끊임없이 말해야 하며, 음식을 먹으며 입 속 음식물을 부지런히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중에도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아예 가만히 앉아 말로만 채우는 토크쇼 형식 예능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뉴스에서도 전문가 여러 명을 앉혀 놓고 말로 논쟁을 붙이는 코너를 시도 때도 없이 내보내고 있다.
그 바탕에는 ‘말 권하는 사회’가 된 시대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소통’은 진리인양 맹목적으로 떠받들려지고 있다. 무슨 일이든 일단 말을 걸고 또 말을 시켜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그래서 말을 잘 이끌어내는 사람이 곧 소통 잘하는 사람으로 각광 받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 소통 유행처럼 불고 있는 ‘공유’ 유행도 비슷한 현상을 만들고 있다. 내가 지닌 말과 글을 남에게 끊임없이 드러내 보여줘야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믿음이 우리를 떠버리, 설명충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분명 어떤 이들은 소통해야 한다는 강박에 괴로워한다. 주고받는 말이 넘치다 보니 온갖 설화(舌禍)와 필화(筆禍)도 터져 나온다. 그러면서 말은 오고 갔는데 결국 소통은 안 되는 ‘불통’이 소통 만능 시대의 그림자로 번지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신부는 이럴 줄 알았나 보다. 200여 년 전인 1771년 이 책 ‘침묵의 기술’을 펴내며 침묵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냈다. 침묵을 실용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침묵을 하나의 수사학으로 끌어올려 평가한다.
다음은 저자가 제시하는 14가지 침묵의 원칙이다.
1.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2.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3.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4.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5.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덜 위험하다.
6. 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7. 중요한 말일수록 후회할 가능성은 없는지 다시 한 번 되뇌어 보아야 한다.
8. 지켜야 할 비밀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입을 닫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
9. 아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닫을 줄 아는 것이 더 큰 장점이다.
10. 침묵은 편협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무지한 사람에게는 능력을 대신하기도 한다.
11. 말을 많이 하고픈 욕구에 휘둘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느니, 침묵 속에 머물러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12. 용감한 사람의 본성은 과묵함과 행동에 있다. 양식 있는 사람은 항상 말을 적게 하되 상식을 갖춘 발언을 한다.
13. 무언가를 말하고픈 욕구에 걷잡을 수 없이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14.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원칙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는 모든 원칙의 기본이다. 입을 열었다면 무조건 본전 이상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손해 볼 말을 왜 한단 말인가. 꽤 상식적이다.
세 번째 원칙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의 실천적 지침으로 삼을 만하다.
열한 번째 원칙 ‘말을 많이 하고픈 욕구에 휘둘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느니, 침묵 속에 머물러 별 재주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편이 낫다’ 의 앞 문장은 정신병리학적 탐구 대상이 된 요즘 SNS의 글 도배 현상을 떠올리게 만들며 시대를 앞선 예견으로 읽힌다.
열네 번째 원칙 '침묵이 필요하다고 해서 진솔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생각들을 표출하지 않을지언정 그 무엇도 가장해서는 안 된다'는 그럼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통이 만능은 아니듯이, 침묵도 만능은 아니다.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저자는 침묵을 절제의 언어로 본다. 비어있는 숫자 '0'의 발견과 비슷한 맥락에서 저자는 침묵도 하나의 말로 인정했다고 봐도 되겠다. 숫자에 합류한 0은 수 계산을 대단히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침묵도 그런 도구라고 보면 되겠다. 저자는 “침묵은 방종과 타락이 만연한 정신에 추천할 만한 처세술”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아무래도 신부인 만큼 책 곳곳에서 종교적 말하기의 방법을 취한다. 그런데 당시 사회는 정치와 종교가 긴밀히 얽혀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저자는 종교 자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예제로 삼거나 비유할 소재로 종교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 속 종교의 개념은 전통적 가치와 사회질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치환해 이해하는 고전 읽기의 묘가 살짝 필요하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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