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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시인 동주" 로 청년 윤동주의 삶과 문학 재조명
2016년 03월 14일 00시 01분  조회:6501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는 윤동주 관련 코너를 마련했다. 시집 이외에 소설·평전 등 15종을 판매한다. 한 출판사가 내놓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복각본에는 윤동주의 육필 원고철과 사진, 판결 관련 서류까지 들어 있다.

시인 윤동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는 윤동주 관련 코너를 마련,
시집 이외에 소설·평전 등 15종을 판매,
한 출판사가 내놓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복각본에는 윤동주의 육필 원고철과 사진, 판결 관련 서류까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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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 소설.

작가는 실제 윤동주의 측근들을 인터뷰한 내용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소설을 완성했다.

젊은 동주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이상과 고뇌를 담은 이야기 속에 적절하게 삽입된 윤동주의 시는 작품의 효과를 높이고 흥미를 유발한다.

-알라딘 책소개

 

 

 

 초판본

201302_ydj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 윤동주 ‘병원’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0년에 쓴 시라고 합니다. 스물 서넛 무렵… 이 글을 읽고 계실 많은 연세인들과 비슷한 나이의 그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연세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을까요? 암울하기만 했던 일제 강점기에 씌어진 윤동주 시인의 시들은 당시의 시대적인 아픔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지만, 그 서정성으로 인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는 그래서 좋은 거잖아요, 읽는 사람에 따라 읽히는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다가오니까요…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민족시인 윤동주, 중앙도서관 4층 인문사회 참고자료실에는 그의 시들과 그에 대한 비평을 모은 윤동주 시문학 컬렉션 코너가 신설되었습니다. 그의 시 안에서,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내 안에서,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젊은이와 마주해 보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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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 치하에서 시로 희망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올해는 시인 윤동주 서거 70주년이다. 이런 시기에 마침 뜻깊은 책이 나왔으니, 『시인 동주』이다. 장편소설이라는 형식이긴 하지만, 소설에 담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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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이덕무, 김옥균 등 조선의 인물을 써왔던 안소영 작가가 이번에는 국민 시인 윤동주를 선택했다. 장편소설 『시인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삶과 작품을 다룬 작품이다. 아무도 우리말로 시를 쓰려 하지 않았던 어두운 시대, 왜 그는 우리말을 고집했을까. 소설은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안소영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르다 보면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간 정약용, 박지원, 김옥균 등 조선 시대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써 오셨는데요. 많은 인물 중에서 윤동주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역사적 인물의 삶을 그리는 책을 쓰다 보니, 다루고 있는 시대가 점점 아래로 이어져 내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 책 『책만 보는 바보』의 이덕무와 벗들은 18세기 후반의 사람들이고, 유배지의 다산 정약용과 그 가족이 보낸 삶은 19세기 전반의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과 벗들이 살다 간 시대는 19세기 후반이지요. 특히 세 번째 책 『갑신년의 세 친구』를 쓸 때 무척 힘들고 안타까웠습니다. 조선의 변화와 개혁을 열렬히 소망하던 젊은이들의 이상과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끝내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목숨까지 걸고 헌신했던 젊은이들은 살아남은 뒤에 변절하여 일본의 주권 침탈에 적극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긴 하지만, 마음을 기울였던 주인공들의 변모에 당황스럽고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 헌신은 결국 ‘한때’에 불과한 것인지.


그다음 시대의 젊은이들의 모습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제 강점기, 그 엄혹한 식민 통치 아래 어떻게 살아갔을까. 시인 윤동주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그 무렵, 여학생 시절의 어머니가 노트에 옮겨 놓은 시인의 시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도 빼앗기고 우리말도 빼앗긴 그 시절에, 맑고 고운 인상의 청년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심정으로 살아갔을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고증도 꼼꼼히 하셨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집필하셨는지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을 그려보고자 할 때는, 사실에 철저히 근거해 있어야만 하는 책임감이 따릅니다. 일반적인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상상으로 창조해 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역사 속의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당시의 사회 제도와 당대의 사건에 관심을 표하고 영향을 받기도 하며, 한 가족의 구성원이자 독립된 개인으로서 물질상의 풍요와 결핍 등에 따른 반응을 하고, 저마다 고유한 기질과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인물을 둘러싼 이러한 ‘사실’들을 가능한 샅샅이 살펴야 합니다. 살다 간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공부뿐 아니라, 그가 남긴 글과 편지, 그에 대한 주변 사람의 평가나 전해오는 기록 등을 보며 어떠한 성격과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을지 그려 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어느 정도 제가 그 인물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 때, 비로소 상상을 덧붙여 생동감을 입히게 되지요.


이 책에서 한 예를 들자면, 동주가 교토 도시샤 대학으로 옮겨 영문학 수업을 듣는 장면이 있습니다. 분지라는 특성상 일교차가 큰 교토는 가을 단풍이 유달리 아름답습니다. 함께 영문학 수업을 듣던 여학생 급우 사와다 하루(澤田ハル)와 무라카미 마리코(村上萬里子)는 실존 인물로, 영어와 불어에 능숙하던 늙수그레한 동급생 윤동주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영작문을 담당한 다키야마(?山) 교수는 도시샤 대학 시절의 학적부에도 나오고,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 전공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변의 여러 ‘사실’들에 근거하여, 1942년 10월의 새 학기가 막 시작된 도시샤 대학 영문학 전공 강의실의 풍경을 그려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자료를 읽고 검토해 ‘사실’의 얼개를 세우는 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인물과 장면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정교한 퍼즐 조각을 맞추어 가는 것처럼 흥미롭기도 합니다.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는 ‘상상’도 망설여지고 흔들리지만, 사실의 뼈대가 탄탄히 서고 나면 상상과 표현이 더욱 자유로워짐을 글을 쓰면서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윤동주 시인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하듯 쉬운 시’에 있지 않을까요? 윤동주의 시에는 어려운 개념어가 별로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리듬감이나 운율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눈으로 대하건 소리 내어 읽건 가만가만 뛰는 맥박처럼 마음을 두드리고 이내 편히 스며드는 시입니다.


윤동주의 시가 처음 다가오는 것은 대부분 사춘기 무렵일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갑자기 달라진 집안 형편에 몹시 어리둥절하고 근심스럽기도 한 때였습니다. 무언가 어지럽고 불안정한 마음에 실망스럽기도 한 사람들과 세상이지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그래도 소중히 여기고 추구해 나갈 맑고 고운 세계가 있는 듯했습니다.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시인과 동년배인 청년 시절에 볼 때는, 자신의 마음 어느 곳에서인가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더욱 공감이 됩니다. 더 나이가 들어 대할 때는 세상과 사물을 보는 시인의 깊은 눈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에 생을 마감한 시인이지만, 사색의 깊이와 깨달음이 삶의 긴 시간을 보낸 사람 못지않게 풍부하고 치열했기에 얻을 수 있는 눈길일 것입니다. 이처럼 윤동주의 시에는 그야말로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작품은 시인이 연희 전문학교에 입학하는 시점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뛰고, 대학생 시절을 시작점으로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조선의 봄, 북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 윤동주가 고국 땅에 와 처음 맞는 봄 햇살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가족을 비롯한 북간도의 수많은 동포들이 그리던 고국의 봄이기도 합니다. 1938년 3월 말, 윤동주와 송몽규가 전문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경성역에 내렸을 때는, 바야흐로 봄기운이 조선 땅에 한창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3월이면 북간도는 아직도 한겨울일 테지만, 위도가 높고 낮은 것에서 오는 차이만은 아닐 것입니다. 총독부와 일본 경찰의 주재소가 들어서 있기는 해도, 흰옷 입은 동포들이 오가는 삶의 터전이며 아직은 조선말이 자유롭게 오가는 고국 땅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배움을 일구어 가려 하는 청년 학생 동주의 벅찬 마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윤동주는 저항 시인, 순수 시인 등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시인의 어떤 면모를 부각하고 싶으셨는지요?

미리 염두에 둔 이미지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윤동주라는 인물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윤동주는, 시에서도 느껴지듯 맑고 여린 심성의 청년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런 평가에 대해 의문이 들긴 했어요. 윤동주가 전문학생으로서, 그리고 일본 유학생으로 보낸 시기는, 조선 민족의 완전한 해소와 강제 징용과 징병 등 일본의 식민통치의 횡포가 극에 달해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 청소년기도 아닌 한창의 청년기를 보낸 젊은이가, 그것도 당시로서는 최고의 지성인이라 불리던 전문 학생이, 과연 맑고 여리기만 한 심성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보낸 시간들은 어떠했을까…….


시인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그가 남긴 시와 산문, 그에 관한 벗들의 회고와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진정으로 맑고 여린, 고운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 맑음은 흔히 생각하는 대로 어린 시절이나 소년기의 무구한 맑음이 아니었습니다. 거짓과 변절을 변명하고 옹호하는 말들이 어지러이 오가던 탁한 시대에, 지켜야 할 것을 꿋꿋이 지키고 간직해 나가는 지조의 ‘맑음’이었습니다. 그의 여린 마음은 상처받기 쉬운 나약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가운데 일어나는 공감의 파동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심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현실과 동포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문학의 본성과 사회의 현실, 순수와 저항 등 자칫 대립하기 쉬운 개념들이, 윤동주의 시와 삶에서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품 속에는 주인공인 윤동주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윤동주의 벗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윤동주의 짧은 삶에서 송몽규와 함께한 시간은 뗄 수 없습니다. 송몽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해방 뒤에 가족이 모두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 그에 관한 기록들을 더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윤동주에 관한 추모의 글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인데, 그를 회고하는 가족이나 벗, 후배들이 장년기를 넘어 노년으로 접어들던 무렵이었지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처럼 절절하고 그리운 심정을 담아 따뜻하고 세밀한 기억들을 펼쳐 놓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그러한 기억을 심어 놓은 윤동주의 성품과, 떠난 사람을 살뜰하게 그리워하는 남은 사람의 인품이 함께 돋보이는 회고들이었습니다.


특히 후배 정병욱 교수가 마음에 크게 와 닿았습니다. 고전문학을 전공하여 국문학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기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스스로 한 일 중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 동주 형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것이라 했습니다. 전쟁과 분단으로 북간도의 가족과 헤어져 생소한 남쪽 땅에 홀로 남게 된 시인의 동생 윤일주와 누이동생의 결혼을 주선하여 한 가족이 된 사연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처럼 자상하고 세심한 마음은 생전의 윤동주도 인정하였고, 제자들이 펴낸 추모 문집에서도 그와 같은 인품이 느껴집니다. 흥이 오르면 고요히 날아오르는 학처럼 춤을 추고, 긴 시조 창을 읊던 멋진 스승이었다고 합니다. 70년대에 시국 관련 사건으로 제자들이 구속되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구명을 위해 애쓰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한결같은 후배 정병욱 교수의 마음을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사귐은 죽음과 삶의 제약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를 검토하셨는데 그중 집필에 많은 도움이 되었거나 혹은 의외의 발견이라고 꼽을 만한 자료로는 무엇이 있었는지요.

 

 

1969년에 발행한 『연세대학교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14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 학교사를 펴낸 것도 그러했지만, 1960년대에 나온 책인데도 인용 자료를 제외한 본문이 모두 가로쓰기에 한글 전용이라는 점에 놀랐습니다. 국학과 한글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온 학교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듯했습니다.


『협력과 저항』을 비롯한 김재용 교수의 책들을 보며, 일제 말 지식인과 문인들의 의식 변화에 대해 새롭고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협력한 친일 행위는 드러난 결과로 평가할 것만이 아니라, 어떠한 의식상의 흐름으로 그렇게 귀결되어 갔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역사 속에서 같은 모습이 되풀이되지 않을 테니까요. 일본 문학을 전공한 왕신영 교수의 학위 논문 「윤동주와 일본의 지적 풍토」도 기억에 남습니다. 왕신영 교수는 학문 연구 과정에서 『(사진판) 윤동주 자필시고 전집』의 발간을 제안하고 참여한 분이기도 합니다. 1940년대의 지식 청년 윤동주의 독서와 지적인 탐구에 대해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려는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사상의 흐름은 서양과 동양을 넘어, 식민과 피식민을 넘어, 윤동주와 같은 조선 지식 청년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윤동주와 연희전문의 벗들은 파시스트 전쟁에 반대하는 당시 세계 지성계의 흐름과,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에 반대하여 국경을 초월한 국제여단을 조직해 달려갔던 세계 청년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통치에 맞서 일어난,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의 민중들의 저항 운동에 대한 소식도 일본의 진보적 잡지를 통해 접하고 있었습니다.


윤동주의 삶과 시를 아끼고 지금도 그의 흔적을 쫓고 있는 많은 일본인들이 있습니다. 고노에 에이치는 「윤동주, 그 죽음의 수수께끼」(『현대문학』 1980. 10)에서, 윤동주의 죽음의 원인이 잔혹한 생체실험에 있다고 근거를 대어가며 양심적으로 추론하였습니다. 이부키 고는, 일본 유학에서 옥사까지 시인의 흔적을 따라가며 「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며」(『문학사상』1985, 3-4월)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부키 고의 끈질긴 노력은 무척 놀라웠습니다. 윤동주의 재판 기록과 판결문을 발굴하였을 뿐 아니라, 그 기록에 나오는 시모가모 경찰서의 특고 형사와 기소 검사, 판결을 내린 판사들 중 생존자들을 찾아가, 수십 년 전의 조선 청년 윤동주 사건에 대해 다시 물었습니다. 일본의 치안유지법으로 수감된 조선 청년들은 한둘이 아니었기에, 대부분 윤동주와 송몽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의 일을 다시 묻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고, 자신은 조선인에게 온정적이었다며 행적을 미화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시체제라 자신도 어쩔 수 없었지만 ‘치안유지법’은 잘못된 것이라며 인정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어쨌건 그처럼 끈질긴 추적을 하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라 할지라도 물어야 할 것을 다시 묻는 모습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식민지 시절의 조선 지도층과 지식인들의 부끄러운 모습들, 뒤이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 그 후로도 계속되어 온 여러 부당한 일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기는커녕 회피하고 덮어두기만 했던 여러 가슴 아픈 일들이 떠오르며, 부끄럽고 참담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인의 시 중 작가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지요?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수 김민기의 낮은 목소리가 함께 떠오르는데,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입학할 무렵에 쓴 「해바라기 얼굴」이라는 시에 작곡가 김영동이 가락을 붙여 만든 노래입니다. 가락을 붙여 불러도, 가만 읊조려 보아도, 왠지 가슴이 아려오는 짧은 시입니다. 1930년대 말에 쳐진 어깨로 일터에서 돌아오는 조선 소녀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시인의 마음과, 1970년대에 공장에 나가는 어린 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음악인의 마음이 긴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동주의 시가 지닌,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이기도 합니다.


윤동주의 후배 정병욱의 호는 ‘백영(白影)’인데, 그가 따르던 동주 형의 시 「흰 그림자」에서 따온 것입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해에 도쿄에서 쓴 시이지요. “흰 그림자들 /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이라 되풀이하는 구절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고국에서 그려보던 것과 막상 일본으로 떠나와 부딪히는 현실은 다르고,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도 들었을 테지요. 그래도 한탄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고 마무리하는 시구가 윤동주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시인이 죽은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 잔혹한 말들은 여전하다’고 쓰셨습니다. 윤동주의 삶이 현재의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윤동주의 삶을 그려 보겠다는 구상을 하던 초기에는, 이 책을 쓰는 과정이 사진 속 시인의 표정처럼, 그리고 그가 남긴 시처럼 맑고 고요하고 잔잔하리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무덤덤하게만 대했던 여러 가지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놀라기도 했고, 그간의 둔감함이 부끄러워 새삼 앓기도 했습니다. 몹시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역사 인식에 격렬한 소용돌이가 이는 듯했습니다. 망각과 외면은 가슴 아픈 식민지 시절을 겪어왔던 윗세대만의 일이 아니라 그다음 세대인 우리 삶에도 깊숙이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70년대, 대통령의 사진과 국기가 걸려 있는 교실에서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야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국기 게양과 하강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부동자세로 지켜보아야 했고, 어머니는 매달 빠지지 않고 반상회에 참석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군사 정부의 획일적인 통치 방식이라고만 여겼는데, 윤동주가 살아간 식민지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일장기에서 태극기로, 천황의 사진에서 대통령의 사진으로 바뀌었을 따름입니다. 윤동주의 시대를 함께 보낸 저명한 인물과 문인들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변절과 친일 협력으로 시인을 실망시켰던 이들이 해방된 뒤에도 학계와 언론과 문화계에서 여전한 명성과 지위를 누리며 살아갔다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날 자신의 부끄러운 행적에 대해 고백하고 참회한 자취는 어디에도 없는데 말입니다. 윤동주의 삶과 시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채 덤덤히 보내 온 우리의 역사와 일그러진 양심을 다시 돌아보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윤동주의 시와 삶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양심과 진실을 바로잡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바로미터와 같다고나 할까요?


비단 과거의 일만이 아닙니다. 지난봄에 꽃 같은 아이들의 목숨을 그렇게 잃은 것도 참담한데, 그 뒤에 오간,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말들은 더욱 참혹하기만 합니다. ‘참 파렴치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이 쓰신,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지요. 지금 내뱉고 있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논리에 따라, 혹은 귀찮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거짓을 묵인하고 그에 편승합니다. 그러한 파렴치함의 근원은, 윤동주가 살다 간 그 시대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선일체’는 일본 천황이 베푼 시혜적 조치가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천황의 은혜에 감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조선 청년들의 목숨을 바칠 어떠한 이유도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죽음의 전쟁터로 나갈 것을 독려하였습니다. 식민 통치를 하던 일본은 물러났으나, 그에 협력하던 이들은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한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았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을 넘어, ‘그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파렴치한 말까지 버젓이 고개를 들게 되었습니다. 민족을 모욕하고 진실을 호도하던 그 시절이, 상처 입은 이들을 모욕하고 선한 마음과 진실을 조롱하는 지금의 시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윤동주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유달리 민감한 심성을 지녔던 청년이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는 감성에서 비롯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며 함께 아파하는, 그리고 그 해결에 동참하려는 연민과 공감의 마음인 것입니다.

 

 

조금 이른 질문이지만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을 여쭙겠습니다.

 

『시인 동주』에서 시인의 삶과 시대에 너무 깊게 이입해서인지 아직은 뚜렷이 작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해 오던 것처럼 시대를 이어내려 가기에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놓여 있기도 합니다.


그간 다양한 시대를 살다 간 여러 인물을 그려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어느 곳에서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고, 여러 가지 주어진 상황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반응하는 사람들의 사유는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낡은 통념이나 질서에 타협하지 않고 선하고 열정적인 청년들은 늘 존재하는 법이지요. 앞으로의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건 그러한 인물을 또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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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두 글자는 정녕 절망의 밑바닥에 닿고서야 비로소 떠오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더 깊이, 더 정직하게, 더 깨끗하게 절망해야 할 때인가.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70년 전, 무명의 젊은 시인도 그랬나 보다.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야만의 시대, 시인은 절망의 폐허 위에서 담담하게 '십자가'의 길을 노래했다. 그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눈물이 마를 줄 모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마주 대하게 되는 그 길이 자신 앞에 높인다 해도, 저물어가는 노을 따라 조용히 걸어갈 수 있을 것"(본문 173쪽 중에서)이라고 생각했다.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축소
▲ <시인 동주> 표지<시인 동주>(안소영 지음 / 창비 펴냄 / 2015.03 / 1만3800원) ⓒ 창비
작가 안소영은 소설 <시인 동주>에서 청년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서시>의 한 구절 정도는 쉽게 외울 정도로 친숙한 시인이지만, '저항시인'으로 일제 감옥에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작가는 치밀한 고증을 통해 윤동주의 삶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식민지 청년으로서 시인의 내적갈등과 고뇌가 시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를 읽다 보면, 결국 '글이란 글쓴이의 삶으로 평가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윤동주가 청년 문학도로 살아가던 시기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제의 패망이 점점 다가오던 시기였다. 전쟁이 극에 달할수록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과 수탈, 전시 강제 동원은 더 악랄해져갔다. 이광수·최남선 같은 이름 있는 문인들이 전쟁을 찬양하고, 총독부의 시책을 선전하며, '내선일체'를 부르짖는 일제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윤동주와 벗들은 '문학의 사명이란 무엇인가', '시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 고뇌했다.

시인은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겠다"며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고(본문 127쪽 중에서) 다짐한다. 그는 <쉽게 쓰여진 시>라는 작품에서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맑고 고운 시를 노래한다. 문학마저 야만과 반역의 나팔수가 되어 버린 때,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시를 쓴다는 것은 "목숨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윤동주는 그저 담담하게 쓰고 또 썼다.

"동주의 사색과 감성, 마르지 않고 우러나오는 시상을 표현하는 데 우리말만한 도구가 없었다. 마음속에 담아 놓은 생각과 입에서 맴돌기만 하는 표현이 하나의 시어를 만나 떠오를 때는, 가슴이 찌르르해지고 눈물이 핑 돌 만큼 좋았다. 전쟁과 죽음과 파괴로만 달려가는 이 삭막하고도 불안한 시대에, 무언가 움터 오는 게 있다는 사실이 벅차기도 했다. 돌담이나 아스팔트 바닥을 비집고 솟아나온, 연둣빛 고운 생명 같은 시였다."
- 본문 245쪽 중에서

1943년 7월, 일본 유학 도중 '내선계 요시찰인'으로 감시를 받아오던 윤동주는 절친한 벗이자 친척이기도 한 송몽규와 함께 일본 경찰에 연행된다. 이른바 '재(在) 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이다. 모진 매질과 고문은 견딜 만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우리말로 쓰인 윤동주의 시작 노트와 일기장을 강제로 일본어로 번역하게 했다. 고문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리말로 쓰인 시를 일본어로 바꾸는 작업은 창자를 다 끄집어내는 것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시인은 시를 빼앗겼다.

1944년 2월, 윤동주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이곳에서 윤동주는 전쟁포로나 죄수들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참혹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1945년 3월,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지 만 27년 2개월. 시인의 생명은 차가운 일본의 감옥에서 그렇게 꺼졌다.

윤동주 이후 70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독립운동가 시인 윤동주

마침내 해방이 왔다. 일제 식민지에서는 벗어났지만 세상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럴수록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시인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 갔다. 1948년 1월, 윤동주의 벗들은 시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다. 생애 첫 번째 시집이 유고 시집이 된 셈이다. 윤동주는 생전에 등단하지 못한 '문학도'에 불과했지만, 사후에 알려진 그의 시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남았다.

암흑의 시대, 묵묵히 우리말로 우리의 시를 써 온 청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과 위안이 되었다. 시인 정지용은 유고 시집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일제 헌병들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일제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의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시인 정지용, <윤동주 유고 시집 서문>, 314쪽 중에서

시인이 떠난 지 70년, 우리 시대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곧 완전한 해방은 아니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악은 거대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힘은 약하다. 거짓이 진실을 호도하고 야만이 인간의 탈을 쓴 채 우리를 기만할 때, 다시 윤동주를 읽는다. 끝없이 빠져드는 절망의 웅덩이 속에서도 순정한 시 한편 길어 올리던 그의 담담하지만 강한 정신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이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자신의 삶에서 다 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 이 세상에 사유하는 인간이 스러지지 않고 남아있는 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시대를 이어가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거쳐 가며,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나라도 빼앗고,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모욕하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생명마저 빼앗아버리는 야만의 시대라 해도."
- 본문 25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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