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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소
- 이장욱(1968~)
손가락은 외로움을 위해 팔고
귀는 죄책감을 위해 팔았다
코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팔았으며
흰 치아는 한 번에 한 개씩
오해를 위해 팔았다.
나는 습관이 없고
냉혈한의 표정이 없고
옷걸이에 걸리지도 않는다.
누가 나를 입을 수 있나.
악수를 하거나
이어달리기는?
(…)
캄캄하게 뚫린 당신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는 순간,
아마도 우리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
(…)
각기 다른 목적으로 몸의 기관을 팔아 치운 토르소(동체만 있는 조각상)는 상품 지배의 현실에서 해체 혹은 분열된 주체(split subject)를 상징한다. 그것은 통합된 주체(unified subject)가 아니므로 일관된 포커스(“습관”)도 없고, 표정도 없다. 말하자면 일종의 비(非)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입을” 사람도 없는데, 그것의 눈에서 화자는 자신을 본다. 시는 바깥과 안에 대한 동시적 성찰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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