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7월 2024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시인 지구촌

최승호 - 대설주의보
2016년 05월 01일 18시 52분  조회:3894  추천:0  작성자: 죽림

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1983년>

 

  

 

▲ 일러스트 / 권신아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있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희다고만 할 수 없는 김춘수의 검은 눈도 있다.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백색계엄령'처럼 내리는 최승호(54) 시인의 눈이 있다. 1980년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념의 시대였고 폭압의 시대였다. 그는 '상황 판단'이라는 시에서 '굵직한/ 의무의/ 간섭의/ 통제의/ 밧줄에 끌려다니는 무거운 발걸음./ 기차가 언제 들어닥칠지 모르는/ 터널 속처럼 불안한 시대'라고 일컬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관(觀)'과 '찰(察)'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현실을 '보면서 드러내고', 자본주의와 도시문명을 '살피면서 사유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골짜기에 눈은, 굵게 힘차게 그치지 않을 듯 다투어 몰려온다. 눈보라의 군단이다. 도시와 거리에는 투석이 날리고 총성이 울렸으리라. 눈은 비명과 함성을 빨아들이고 침묵을 선포했으리라. 백색의 계엄령이다. 쉴 새 없이 내림으로써 은폐하는 백색의 폭력, 어떠한 색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의 공포! 그 '백색의 감옥'에는 숯덩이처럼 까맣게 탄 '꺼칠한 굴뚝새'가 있고, 굴뚝새를 덮쳐버릴 듯 '눈보라 군단'이 몰려오고, 그 군단 뒤로는 '부리부리한 솔개'가 도사리고 있다. 분쟁과 투쟁, 공권력 투입, 계엄령으로 점철됐던 시대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골짜기에 굵은 눈발이 휘몰아칠 때 그 눈발을 향해 날아가는 굴뚝새가 있었던가. 덤벼드는 눈발에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췄던가. 꺼칠한 굴뚝새의 영혼아, 살아있다면 작지만 아름다운 네 노랫소리를 들려다오! 다시 날 수 있다면 짧지만 따뜻한 네 날개를 펼쳐 보여다오! [정끝별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162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122 빈민굴 하숙방에서 쓸쓸하게 운명한 "시의 왕" - 폴 베를렌느 2017-12-26 0 3840
2121 영국 시인 - 월터 드 라 메어 2017-12-21 1 3561
2120 재래식 서정시의 혁신파 시인 - 정현종 2017-12-14 0 5259
2119 100세 할머니 일본 시인 - 시바타 도요 2017-12-12 0 3895
2118 어학교사, 번역가, 유대계 시인 - 파울 첼란 2017-11-19 0 4953
2117 [타삼지석] - "세계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발신지"... 2017-10-28 0 3184
2116 시창작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시를 쓰겠다는 의지이다... 2017-08-28 2 3165
2115 문단에 숱한 화제를 뿌린 "괴짜 문인들"- "감방" 2017-08-22 0 3060
2114 윤동주는 내성적으로 유한 사람이지만 내면은 강한 사람... 2017-06-09 0 3123
2113 터키 리론가 작가 - 에크렘 2017-05-31 0 3561
2112 터키 혁명가 시인 - 나짐 히크메트 2017-05-31 1 3619
2111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 말라르메 2017-05-24 0 6131
2110 프랑스 시인 - 로트레아몽 2017-05-24 0 4775
2109 프랑스 시인 - 아폴리네르 2017-05-24 0 4606
2108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 2017-05-24 0 8340
2107 아르헨티나 시인, 20세기 중남미문학 대표자 - 보르헤스 2017-05-13 0 4451
2106 시인 윤동주 "생체실험"의 진실은?... 2017-05-08 0 5129
2105 스웨덴 국민시인 - 토마스 트란스 트뢰메르 2017-05-07 0 4554
2104 모택동 시가 심원춘. 눈 2017-05-07 0 3382
2103 꾸청, 모자, 시, 자살, 그리고 인생... 2017-05-07 0 4059
2102 중국 현대시인 - 고성(꾸청) 2017-05-07 0 3868
2101 리백, 술, 낚시, 시, 그리고 인생... 2017-05-07 0 3632
2100 중국 현대시인 - 여광중 2017-05-07 0 4666
2099 중국 현대시인 - 변지림 2017-05-07 0 4027
2098 중국 현대시인 - 대망서 2017-05-07 0 3473
2097 중국 현대시인 - 서지마 2017-05-07 0 2948
2096 중국 현대시인 - 문일다 2017-05-07 0 4260
2095 중국 명나라 시인 - 당인 2017-05-06 0 3788
2094 러시아 국민시인 - 푸슈킨 2017-05-05 0 4052
2093 미국 시인 - 로웰 2017-05-01 0 3762
2092 미국 시인 - 프로스트 2017-05-01 0 3669
2091 미국 시인 - 윌리엄스 2017-05-01 0 4419
2090 시법과 글쓰기 2017-05-01 0 2800
2089 미국 녀류시인 - 힐다 둘리틀 2017-05-01 1 4092
2088 영국 시인 - 크리스토퍼 말로 2017-05-01 0 4328
2087 아이랜드 시인 - 잉그럼 2017-05-01 0 3782
2086 프랑스 시인 - 장 드 라 퐁텐 2017-04-24 0 4545
2085 [고향문단소식]-화룡출신 "허씨 3형제" 유명작가로 등록되다... 2017-04-24 0 3543
2084 중국 북송 시인 - 황정견 2017-04-21 0 3734
2083 중국 당나라 문사 - 류우석 2017-04-21 0 2900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