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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언어는 과학적 언어가 아니다
2016년 05월 16일 19시 53분  조회:4542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의 언어

시는 일상언어를 재료로 하며 일상언어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시는 일상언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시에만 고유한 문법을 사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시와 일상언어를 구분하는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리차즈는 언어를 과학적 언어와 정서적 언어로 구분하고, 전자를 일상적 언어, 후자를 시의 언어로 본다. 일상적 언어는 과학적 용법에 의한 언어로 관련대상을 어김없이, 그리고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지시하는 언어이다. 그것은 기호의 뜻이 관련대상을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기호화하는 과정 즉 말로 표현할 때도 정확한 지시가 이루어질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기호는 관련대상은 진실적 관계로 대신한다.

이에 비해 시의 언어는 관련대상을 명확하게 지시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독자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서를 빚어낼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시의 언어 즉 정서적 언어는 관련대상에 대한 지시에 있어서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태도나 정서(정서적 반응)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유치환, [울릉도]라는 시를 보면 과학적 언어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으로 보면 울릉도 언저리의 수심은 100m정도, 그러나 부근에는 깊이가 200m이상이 되는 심해에 있는 섬이다. 사실 여부는 이러한 과학적 진술에 비해서 그 말의 내용이 증명가능하나, 시에서 쓰이는 말과 그 문장형태는 과학에서처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다만 어떤 태도에 의해서 수용될 뿐이다. [울릉도]에서 '장백의 멧부리 방울 뛰어'라고 한 것은 증명불가능한 차원이다. 허황되고 부질없는 말이지만, 이 부분을 읽고 어떤 마음 속의 감흥이 일어나면 그것이 바로 시적 언어이다.

이러한 시적 언어의 속성은 의사진술(pseudo statement)에 속한다. 의사진술은 우리의 충동과 태도를 풀어놓고 혹은 조직화하는 효과로서 전적으로 정당화되는 하나의 언어형식이다. 관련대상의 적절한 지시가 아니라 충동과 태도를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언어이다. 이에 비해 진술은 관련대상 내지 사실에 부합하기를 기하면서 쓰는 언어를 진술이라고 한다.

시의 언어는 외연을 갖지만, 외연에만 만족할 수 없다. 거기서 요구되는 정서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크게, 짙게 하기 위해서 시의 언어는 내포 또는 함축적 의미를 사용한다. 이 유형의 의미는 사전에 적혀 있지 않다. 그보다 이런 말의 뜻은 문맥을 통하여 빚어지며 제 나름의 독특한 맛이나 멋을 지닌다. 시에서의 함축성은 시어의 애매성을 가져온다. 시가 함축적 의미를 더 많이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시어는 더욱 애매해진다. 시어의 애매성은 시어의 함축성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반응의 폭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미국의 신비평가들은 시와 비시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의 언어적 특징을 밝힌다.
그 결과 그들은 시가 일상언어를 사용하지만 시의 언어와 일상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즉 시는 일상언어를 재료로 하고 일상언어의 문법에 구속되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다의적인 언어이고 표면적인 의미와 시적 의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엠비규어티, 역설, 아이러니, 텐션 등 각기 다른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시의 언어는 다의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신비평가들은 1930-1950년대에 걸쳐 일어난 미국의 비평운동이다. 그들은
1) 시는 그 자체로서 취급되어야 하고 독립적이며 자기 충족적인 객체로 여겨져야 한다(의도론적 오류, 영향론적 오류 지적)
2) 신비평의 특징은 정독, 정해인 바, 한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복잡한 상호관계와 애매성을 상세하고 정밀하게 분석한다. 이 경우 단어 사이의 관계라든가 의미의 세부가 지니는 의의, 행과 행이나 연과 전체가 갖는 연관관계를 파악하려고 한다.
3) 신비평의 근본원리는 근본적으로 언어적이다. 문학은 과학적, 논리적 언어와 대비되는 속성을 지닌 하나의 특별한 언어로 여겨진다.
그들은 주로 단어와 의미의 상호작용 그리고 상징 등을 다룬다.
4) 문학작품의 기본요소들은 인물, 사상, 구성이 아니라 단어, 이미지, 상징들이라고 보고 언어적 요소들이 중심테마를 축으로 하려 조직되고, 다양한 충동들의 조화, 대항세력들의 평형인 구조 안에서 긴장, 반어, 역설 등이 생긴다고 본다.

러시아 형식주의는 1910년대부터 30년대까지 약 20년간 문학의 내용이나 사회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연구태도를 반대하고, 전위파의 실험적인 문학을 중시하면서 문학작품의 형식과 방법의 연구에 주력한 새로운 문학운동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 역시 시와 비시, 문학과 비문학적 담화 사이의 차이를 밝히고 문학연구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그들은 문학연구는 문학작품이 아니라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특징, 즉 문학성에 대한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을 문학이 언어를 사용하는 형식에서 찾는다. 그 결과 그들은 문학을 다른 발화 양식과 달리 일상적인 언어용법을 왜곡하고 비틀어서 낯설게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낯설기 하기라고 명명한다.
즉 문학은 다른 발화양식과 달리 낯설게 하기를 통해 형식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내용을 새롭게 인지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 감각, 사고, 표현이 되풀이되면 자동화(automatization)되어 새롭거나 기이한 느낌이 소멸된다. 일상적으로 친숙화된 언어는 아무런 참신성도 느낄 수 없다. 이는 현대인의 생활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면 그것의 참의미를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 시의 언어는 이러한 자동화된 상황을 깨뜨리고 생활감각을 되찾기 위해, 사물을 느끼기 위해, 돌을 돌답게 느끼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시의 언어가 도모하는 목적은 사물의 감각을 인식으로서가 아니라 지각되어지는 것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시의 언어적 기법은 대상들을 낯설게 만들어 형식을 모호하게 하고 지각의 어려움과 지속시간을 증가하여 대상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낯설기 하기란 예술을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해 자동화로부터 대상을 일탈시키는 벗어남의 방식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언어를 특수화하여 언어의 음향적 효과를 의도하거나 일상적 통사규칙을 일탈하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낯설게 표현하는 것 등이 사용된다. 일상적 발화에서는 내용만 인지되면 형식을 버려지고 잊혀진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형식이 아니다. 그러나 시는 낯설기 하기를 통해 기계적 지각을 막고 지각을 탈자동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형식은 기존의 내용/형식의 이분법을 떠난다. 과거의 내용/형식 이분법에서 형식은 포도주와 포도주의 잔의 관계처럼 내용을 담은 그릇에 지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포도주지 용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형식주의는 형식인 생명체와 그 내용인 생명의 관계처럼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없고 내용이 그것을 통해 실현되는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이들의 이러한 인식은 시적 언어는 일상언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왜곡된, 낯설게 된 언어이며 시를 일상언어처럼 읽으려고 할 때 비문법적인 언어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비평과 러시아 형식주의의 견해는 오늘날 기호학자에게 이어지는데, 그들 또한 시의 언어와 일상언어는 동일한 언어가 아니고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로트만은 언어를 세가지로 구분하는데, 자연언어, 인공언어, 2차 모델링언어로 나눈다.
시는 자연언어를 재료로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결합원리를 가진 또 다른 언어로 자연언어가 기호들을 결합세계를 모델화하는 것처럼 시 역시 하나의 기호로서 세계를 모델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자연언어가 세계를 모델화하는 1차언어라면 시는 1차언어 위에 나름의 2차적인 질서를 덧붙여 세계를 모델화하는 2차언어라는 것이다. 그는 2차적인 질서를 덧붙임으로써 시에서는 모든 성분들, 심지어 일상 발화에서는 형식적인 요소까지 의미론화되고, 일상언어에서는 결합할 수 없는 것들을 2차적인 질서화에 의해 강제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시는 일상언어와 비교될 수 없는 높은 정보량을 가지고 보다 현실감있는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

야콥슨은 시의 이러한 2차적 질서화를 "시는 등가적 원리를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투사한다"고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일상언어의 결합규칙은 계열체내에서 단어를 선택하여 그것을 계기적 사슬로 결합하는 인접성의 원리에 의하는 것인데, 시는 이와 반대로 등가의 원리를 결합의 원리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의 특징은 시로 하여금 일상언어의 문법적 규칙을 위반하게 하고 시를 일상적 담화에 구분짓는다.

리파테르는 시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미적 관념에 따라 달라져 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시가 의미론적으로 간접적인 전달방식이라는 점이다고 보고 기존의 율격의 유무로 보던 전래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시는 율격이 아니라 뜻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발화양식과 구분된다. 즉 시는 직접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말한다. 그는 일상언어의 의미단위는 단어나 구인데 비해 시의 의미단위는 텍스트라고 보고, 일상언어가 전달하는 의미를 뜻, 시가 전달하는 의미를 시적 의미로 구분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는 일상적인 산문과 달리 하나의 통일성을 갖는 구조, 모델, 기호, 하나의 단어처럼 기능한다.
그는 시에서 의미론적 간접화가 일어나는 방식으로 전이, 왜곡, 창조 3가지를 들고 있다. 전이는 은유나 환유처럼 한가지 뜻이 다른 뜻으로 의미가 바뀔 때 일어난다.
즉 한가지 단어가 다른 단어를 뜻하게 될 때 일어난다. 왜곡은 중의성, 모순, 넨센스가 있을 때 생긴다. 창조는 다른 식으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항목들로부터 텍스트 공간이 기호를 만드는 조직원리로 수용될 때 생긴다. (가령, 대칭, 압운, 연속의 위치상의 상동체 사이의 의미론적 등가)
이러한 시의 간접화 수단은 세계의 문학적 재현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며 시를 지시적 의미에서 문법적 일탈, 즉 비문법성으로 지각하게 한다. 그러나 지시적 차원에서의 비문법성은 지시적 차원에서는 비문법적이나 또 다른 체게에서는 문법적이 된다 즉 그것들은 시에는 물질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다른 체계를 시 속에 끌여들임으로서 두 체계 사이의 대화 관계를 형성하고 시 속의 모든 단어를 다른 코드로 재해석하게 한다.

시가 일상적인 언어와는 다른 문법성을 지닌다면 시의 독서는 일상언어의 독서와 다른 방법을 요구한다. 시에서 비문법성과 구조적 통일성은 그 자체로 텍스트가 시인가, 일상언어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시를 읽을 때 먼저 염두해야 하는 것은 시 텍스트를 하나의 전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 텍스트는 의미단위가 단어나 구가 아니고 텍스트 전체이고, 시 텍스트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개의 형태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전체인 것처럼 통일된 전체이다.
단어들이 여러개의 형태소로 결합된 것과 달리 시는 그 구성요소의 단위가 클 뿐이다. 단어 속에서 형태소들이 독립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 것처럼 시에서도 하나의 단어나 문장은 독자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른 단어나 문장, 텍스트 전체와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다. 또한 단어가 그 부분들이 아닌 기초 전체를 통해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지시하는 것처럼 시는 부분부분을 통해 사물이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텍스트 전체를 통하여 어떤 것을 대신한다.
일상언어는 지시적 의미에 따라 계기적인 사슬을 통해 읽어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시는 지시적인 의미가 아니라 간접화된 의미끼리 결합하여 하나의 등가적 질서를 갖도록 구성된 폐쇄된 통일성의 언어이다. 따라서 시를 판독하는데 있어 개별단어의 지시적 의미가 아닌 그 단어가 연상시켜 주는 다른 의미들을 추적하여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로 구성하고 시가 텍스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어떤 것을 대신하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시와 그것이 전달하는 것 사이에 비유적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서 과정에서 모든 단어와 문장은 지시적 의미를 넘어 문맥으로 재코드화되고 다른 의미로 바꿔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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