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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유산균이 풍부한 잘 곰삭은 맛깔스러운 국물!
2016년 07월 01일 22시 50분  조회:3447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를 삭히는 법 / 이섬 


음식을 만드는 과정 중에 ‘삭힌다’는 말이 있다. 김치나 젓갈, 식혜 등을 제맛이 나도록 익히는 것인데 중요한 건 인위적으로 익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당한 온도와 바람, 햇빛 등 자연적인 요소로 숙성시켜야만 잘 삭혀진다고 하겠다. 전문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음식물 속에 있는 효모나 박테리아같은 미생물에 의해서 유기 화학물이 분해·산화·환원하여 유기산이나 탄산가스 등이 생겨서 발효되는 것이다. 
잘 익고 맛있게 삭은 고추장만 해도 그렇다. 메주가루와 고추가루, 엿기름가루, 소금물 등을 골고루 섞어 버무린다. 이것을 항아리에 담아 통풍이 잘 되고 양지바른 곳에서 낮에는 햇빛을 쪼이고, 밤에는 뚜껑을 꼭 덮어 물기가 스미지 않게 해서 두 달 이상이 지나야만 제대로 삭혀져서 맛이 나게 된다. 

또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내가 좋아하는 반찬 중에 가자미 식해라는 것이 있다. 함경도가 고향인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인데 잘 삭혀진 가자미 식해의 맛은 ‘입에 살살 녹는다’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겨우내 먹을 김장을 끝내놓고 나면 꼭 가자미 식해를 담그시는데 노르스름한 색깔이 도는 참가자미를 결대로 썰어 놓고, 고슬고슬하게 지은 좁쌀밥에 채로 썬 무와 엿기름가루를 섞은 다음 고추가루를 듬뿍 넣어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다. 버무린 것을 키작은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은 다음 웃소금을 살짝 쳐서 바람이 잘 통하고 그늘진 곳에 두었다가 열흘쯤 지난 뒤에 꺼내 먹는다. 

요즘 들어서 건강에 신경들을 쓰다보니까 이처럼 발효된 음식이 항암 효과가 있다고 환영을 받기도 하는 듯하다. 폐일언하고, 앞의 예를 든 조리 과정을 보건대 ‘삭힌다’는 건 지적한 것과 같이 열을 가하는 등의 인위적인 방법으로 익힐 수가 없다는 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한두 시간이나 하루이틀에 빨리빨리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마다 다르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맛이 숙성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멸치젓갈같은 경우는 몇 달간의 낮과 밤이 지나야만 소금에 버무린 생멸치의 살과 뼈가 녹아서 잘 익은 젓국이 우러나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나의 두번째 시집 『향기나는 소리』를 읽어 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섬 씨 삭힌다는 말을 좋아하나 봐.” 
그랬었구나! 내가 ‘곰삭은’ 말을 좋아했었구나. 시집을 펼쳐 보았다. ‘상원사 종루에서 나무공이로 두들겨 삭아져서’ ‘우묵한 오지 뚝배기에 노랗게 삭은’ 등등. 
이왕 내친 김에 덕담 한 마디 해야겠다. 잘 익어서 맛있게 삭은 시를 쓰고 잘 삭아져서 감칠맛나게 사는 삶, 좋지 않겠는가!

대전을 오가기 위해서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를 자주 다닌다.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중부고속도로 매표소 지하도를 건너가게 되었다. 도로가 16차선이나 되는 꽤 긴 편인 시멘트 동굴같은 델 들어갔는데, 바로 머리 위 길에서 엉엉 우는 소리가 났다. 
“아니, 아니! 길이 울다니….” 
비가 오기 때문이었는지, 차가 달리는 소리가 동굴에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머리 위쪽 길에서 엉엉 우는 소리가 났다. 사람 하나 없는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그것은 굉장한 놀라움이고 떨림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나는 「길도 울 때가 있더라」라는 제목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대부분 시를 먼저 쓰고 제목을 붙이는 평소의 습관과는 달리 제목이 쉽게 튀어 나왔다. 그때 들었던 울음소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울림으로 내게 닿았을까? 

길도 울 때가 있더라 

중부 고속도로 매표소 지하도를 건너는데 
바로 머리 위 길이 엉엉 우는 소리를 냈어 
눈물을 흘리면서 울더라니까① 
마음밭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검불들을 
쥐어뜯는 그런 울음이었어 검고 진했어 
숨도 안 쉬고 맥박도 안 뛰는 줄 알았는데 
아픔도 눈물도 없는 줄 알았는데② 
심장 안쪽에 피가 돌고 있었어③ 
끓고 있었어④ 

살아서 꼬물거리던 작은 생명체들이 
길속에 또하나의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야 
살아 있음의 생생한 기억들을 불러내고 
있는 중이었어 
여러 겹으로 포장된 뇌사의 길이 
비 오는 날이면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어 

다 드러내놓고 쓰기로 했다. 내가 겪었던 체험은 내 의식 주변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연결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도 있을 수 있는 갈등과 아픔 그들을 치유하고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①행을 좀 더 강조해야겠고, ②행과 ③행의 연결고리가 너무 느슨했다. 갈등을 화해로 전환하는 데 좀더 탄력있게 조여줄 수 있는 연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를 쓰고 고치는 것도 성격대로인가? 서두르지 않았다. 석 달쯤 지난 후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그와 마주했다. 그를 한 등급 높여서 예우해 주기로 했다. 의인화시켜서 그에게 더운 피가 돌게 하고, 다시 ④행을 수정하여 맑은 공기를 흠뻑 들어마시게 해 주었다. 잘 삭혀진 것일까? 고른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길도 울 때가 있더라 

중부 고속도로 매표소 지하도를 건너는데 
바로 머리 위 길이 엉엉 우는 소리를 냈어 
정말이야 눈물을 흘리면서 울더라니까 
마음밭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검불들을 
쥐어뜯는 그런 울음이었어 검고 진했어 
숨도 안 쉬고 맥박도 안 뛰는 줄 알았는데 
시멘트에 방수에 겹겹이 포장된 심장 안쪽에 

아직도 더운 피가 돌고 있었어 
펄펄 끓어서 맑아지게 하고 있었어 
살아서 꼬물거리던 작은 생명체들이 
길 속에 또 하나의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야 
살아 있음의 생생한 기억들을 불러내고 
있는 중이었어 
여러 겹으로 포장된 뇌사의 길이 
비 오는 날이면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어 

나는 시에서 운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읽으면서 걸리는 구절이나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몇 번씩 읽어보곤 한다. 또한 탄탄한 집을 지어주고자 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는 구조가 탄탄한 집, 거기에 유산균이 풍부한 잘 삭은 맛깔스런 시의 국물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 섬) 

쭑93년 『문학과 의식』 등단. 시집 『누군가 나를 연다』 『향기나는 소리』가 있다. 96년 국민문학상 시 부문 이천만원 고료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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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미술관 
―홍일표(1958∼)

먼 기억처럼 바삭 마른 그림자

살살 긁어보면 피가 배어 나오기도 하는

아직 고양이 울음소리가 가느다란 잎맥으로 남아 있는

200년 전 그림 속으로 들어간 나비와 고양이가


 
그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저것은 어제 본 나비, 어제 본 고양이

일렁이는 그림자의 뿌리는 땅속까지 뻗어 있다

그림자가 출렁,

물고기 한 마리 뛰어오르듯

검은 허공을 열고 나오는 한 쌍의 나비

수 세기를 오가며 새까매진 어둠의 뒤편에 붙어

그림 속 봄을 매만지는 사이

손발이 다 녹아 날아가고

고양이가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 꽃잎 위의 나비가 200년 뒤로 얼른 숨는다

허공에 박힌 고양이의 몸이 빠지지 않는다

 

 


문득 한 음악이, 혹은 한 그림이 우리의 어떤 기억을 일렁일렁 일깨울 때가 있다. 우리 마음에 한숨의 웅덩이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하고, 뽀얀 그리움의 신기루를 피워 올리기도 하는 기억들. ‘바삭’ 마르도록 오래전 일이어도 어떤 기억은 ‘살살 긁어보면 피가 배어나오기도 한다’. 

 
시인에게 와 닿은 그림이 있다. 그림 속의 봄날과 꽃과 나비와 고양이가 수 세기를 가볍게 넘어, 마치 ‘어제 본 나비, 어제 본 고양이’처럼 생생하다. 그림 안과 그림 밖이 맞물리는 감각의 이 환각적 맥놀이를 세밀히 그린 시다. 시를 살살 긁어 보면, 그림을 보면서 일깨워진 시인의 ‘가느다란 잎맥으로 남아 있는’, 어쩌면 어둡고 슬픈 기억이 설핏 느껴진다.

‘200년 전 그림 속으로 들어간 나비와 고양이’라는 구절을 단서로 두 개의 그림을 찾았다. 18세기 중엽에 태어난 화가 김홍도의 ‘황묘롱접도(黃猫弄蝶圖·나비를 희롱하는 노란 고양이 그림)’, 그리고 18세기에 그려졌다는 장자크 바셸리에의 ‘나비를 노리는 흰색 앙고라 고양이’다. 이 중에 시인이 본 그림이 있을까? 이 겨울에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지 말고 바람도 쐴 겸 미술관에라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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