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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윤동주 <<서시>>
2016년 10월 01일 17시 43분  조회:3980  추천:0  작성자: 죽림

 



서시 육필원고



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시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이것은 시 쓰는 이들 모두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로렌스 페린의 저서『소리와 의미』(Laurence Perrine “Sound and Sense", 조재훈 역, 형설출판사, 1998)를 통해서 그 해답의 일단을 들어본다.
저자는 <좋은 시>는 첫째, 그 의도를 충실하게 달성한, 곧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것이어야 하고, 둘째, 그 의도가 중요(훌륭)한 것이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오행속요 'There was a young lady of Niger', 에밀리 디킨슨의 시 'It sifts from leaden sieves',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That time of year'를 예로 들어 <좋지 못한 시>와 <좋은 시>, <위대한 시>에 대해 설명한다.

01. 먼저 <좋지 못한 시>에 대해 말한다.

니제르의 아가씨가 있었네
호랑이를 타고 미소지었네;
그녀를 품에 안고
그들은 돌아왔네
호랑이 얼굴에 미소지으며 
―작자 미상의 오행 속요 ‘니제르의 아가씨’

"이들 각각의 시는 아마도 유능한 비평가에 의해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려 했는가'하는 평가의 측면에서 아주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이 되었을 것이다. 오행속요는 불필요한 단어나 잘못된 단어의 수반 없이, 율격과 압운에 의해 규정된 문장의 어순에 따라 그것의 작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오행속요 형식은 작가의 유머러스한 의도에 이상적으로 부합된다. 과소, 과장을 수반한 이야기의 전개방식, 숙녀의 미소와 자세의 산뜻한 변화는 경제적이고 유쾌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오행속요를 모든 면에서 엄격히 고찰해야 한다; 왜냐 하면 우리는 그것을 거의 시(poetry)라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재의 경험을 전달하지 않으며, 그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간단한 일화를 유머러스하고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려 시도할 뿐이다."

02. 이번에는 <좋은 시>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납으로 만든 체로 체질하고,
모든 나무를 가루낸다.
희고 매끄러운 양털로
길의 주름살을 가득 채운다.

그건 산과 평지의
평평한 얼굴을 조각한다.-
동에서 또 다시 동으로까지
상처입지 않은 이마를 지닌 채. 

그것은 담벼락까지 닿아 있고
울타리와 울타리로 감싼다.
그것이 양털 속에 잠길 때까지;
그것은 천국의 면사포를 나누어준다. 

그루터기와 볏가리 줄기에-
여름의 텅 빈 방에-
그러나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수확이 기록되지 않은 채,
이어진 수 에이커의 땅에. 

그것은 파발꾼의 손목을 어지럽힌다.
마치 왕비의 발목처럼,
그리고 유령처럼 예술가들을 고요케 한다.
예전에 그들이 예술가였음을 부인하면서.
―에밀리 디킨슨의 ‘납으로 만든 체로 체질하고’

"반면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poem)는 시(poetry)이며, 아주 좋은 시이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과 상상력에 강렬히 호소하고, 시의 의도면에서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곧 자연의 매력과 신비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외적인 자연의 모습과 적설량, 새롭게 떨어지는 눈의 정경을 전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우수한 시를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비교할 때, 우리는 다시 중요한 차이점을 인식하게 된다.
비록 디킨슨의 시가 느낌과 상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경이감에 젖어들게 하고, 자연에 대한 묵상으로 우리를 인도할지라도 정서와 지성에는 깊게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처럼 인간 삶의 중심과 고통의 핵심부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 사실상 그것은 일차적으로 작은 이야기의 주제인 기후에 관련되어 있다."

03. 마지막으로 <위대한 시>에 대해 말한다.

그대 내게서 이런 때를 보리라.
한 때는 달콤한 새들이 노래했지만,
지금은 앙상한 저 합창단, 나뭇가지에
누렁잎 몇 개 매달려 있는 그런 때를.
그대 내게서 이런 노을을 보리라.
일몰의 저녁 하늘에 물든 노을을,
죽음 속에 모든 걸 감출 죽음의 검은 밤이
언젠가는 빼앗아 갈 그런 노을을.
그대 내게서 이런 꺼지다 만 불씨를 보리라.
태워버린 젊음을 주검삼아 누워있는 그런 불씨를,
생명의 젖줄기 다하는 날 임종의 자리에서 꺼져갈 그런 불씨를.
그대 이런 걸 깨달을 때, 사랑 더 강해져
버리고 떠날 모든 것을 힘껏 사랑하리라.
―세익스피어의 ‘일년 중 그때’

"한편 세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사랑과 죽음에 접근하며 늙어가는 보편적인 인간의 
비극에 관련되어 있다. 이들 세 작품 중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가장 위대하다. 그것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나 오행속요의 말, 그 이상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보다 풍부한 경험을 전달하면서 보다 중요한 의도를 성공적으로 성취한다. 분별력 있는 독자라면 그것으로부터 보다 심오한 기쁨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는 즐거움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풍부한 자양분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시는 감각, 상상, 정서, 지성 등 인간의 전체적인 반응에 관여한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제한적인 측면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시는 단지 독자의 기쁨만을 추구하지 않고, 그에게 순수한 기쁨과 함께 신선한 통찰력, 다시 새롭게 탄생한 통찰력, 중요한 통찰력을 지니게 하면서 인간 경험의 본질로 이끌어간다. 위대한 시는 독자로 하여금 삶과 이웃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해서 보다 폭넓고 심오한 이
해를 하게 만든다. 물론 그러한 통찰의 문학적 성격이 항상 단순히 '교훈'이나 '도덕'으로 요약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앎이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비극의, 고통의 복잡성을 통렬히 느끼는 앎(felt knowledge)이고, 인간 경험을 특징짓는 흥분과 기쁨에 대한 새로운 앎(new knowledge)이다."

04.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세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위대한 시인가? 그것은 적어도 위대한 소네트이다. 좋음처럼 위대함도 상대적이다. 만약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어떤 소네트와 그의 가장 훌륭한 극작품들―'맥베드', '오델로', '햄릿'―을 비교해 본다면,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비극들에서 착수되고 성취된 바는 하나의 소네트에서 착수되고 성취될 수 있는 것보다 엄청나게 크고, 더 어렵고 보다 복잡하다. 사실, 문학의 위대성을 전적으로 규모와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구나 축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에 있어서도, 우수하면서 큰 사람이 우수하고 작은 사람보다 낫다. 시의 위대성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경험의 범위와 깊이, 그 경험의 강렬성과 비례한다. 곧 그것은 삶의 총체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14행의 소네트로서 결코 압축될 수 없는 인생의 다양성과 삶의 깊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 희곡들은 생의 거대한 복잡성을 체계화시키고 경험을 통합으로 이끈다.
결국 우리는 문학적 판단을 위한 손쉬운 비교의 척도나 눈대중의 척도를 제공할 수 없다. 기계적인 테스트도 없다. 최종적인 척도의 막대는 단지 교양 있는 독자의 반응, 성숙도, 감식력과 분별력일 뿐이다. 그러한 감식력과 통찰력은 부분적으론 선천적인 재능이고, 일부는 성숙과 경험의 소산이며, 또 일부는 의식적인 연구나 훈련 혹은 지적인 노력의 대가로 얻은 성취이다. 그것들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성취될 수는 없다. 또한 결코 완벽하게 성취될 수도 없다. 노력은 길고 고된 하나의 요건이다. 그러나 성공은 비록 상대적 성공이라 할지라도 삶의 풍요와 삶의 조망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다."

그리고 이 책을 펼치면 다음 글을 맨 처음 만나게 된다. 

글쓰는 일이 진정 쉽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기술,
마치 춤을 배운 사람이 아주 쉽게 몸을 움직이듯이.
거친 음이 거슬리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소리는 의미에 대한 반향으로 울려야 하느니.
―포프의 '소리와 의미'(439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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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1917-1945) 「서시」전문



몇 년 전 한국의 동서문학관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과 시로 윤동주 시인과 그의 '서시'가 뽑혔다고 한다. 물론 그가 일제치하에서 사상범으로 복역 하다 해방을 앞두고 사망할 정도로 후손에 부끄러움 없는 면모를 보였던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이 시를 가장 좋아한다는 얘기는 부끄러움 없이는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는 최소한의 양심을 아직도 우리 한국인들이 갖고 있다는 얘기처럼 나에게는 들린다. 그래서 새해 들어 서시를 새로 읽으며 조국의 미래에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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