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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좀 안아 드려야 할것같은 가을이다...
2016년 10월 12일 18시 08분  조회:3706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10월 11일 10시 06분  ]

 

 
[ 2016년 10월 11일 10시 06분 ]

 

 

 

 




고향과 시인의 현실 접근

3월에 내린 폭설 속에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하는 王昭君(왕소군))의 고사(古事)가 떠오른다. 언제 누가 읊느냐에 따라 뉴앙스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시의 매력을 흠뻑 풍긴다. 주식이 오르지 않는 것을 탓하는 사람에게도, 정치적 봄을 기다리는 정치가에게도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이 말은 그럴듯하게 곧잘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조사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해석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문득 이 말을 새김하는 것은 오늘의 농촌, 바꾸어 말해 고향의 현실이 눈을 보고 풍년을 예감하거나 낭만적 감상에 빠질 수 없도록 궁핍하고 한기(寒氣)가 쌩쌩 몰아친다는 인식에 연유한다. 칠레와의 자유무역 협정을 피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절박함 앞에 폭설이란 농촌과 농민들에게 또 다른 엄청난 시련과 절망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도시에 소복 소복 내리는 눈을 감상하면서 동심에 젖기도 하고 설레임으로 가족의 손을 잡고 마을을 거니는 그윽한 풍경을 어찌 탓하겠는가? 봄이 봄같지 않다 해도 역시 봄은 봄이요 기필코 와서 착한 사람들 앞에 꽃을 활짝 피우고야 마는 것을, 믿고 힘을 낼 밖에.
< 농민문학>에서는 ‘테마기획/고향’을 특집으로 실었다. 다대수의 작품은 내면적이든 외면적이든 낙원 의식(意識)에 근접해 있다. 무상(無常)의 세계에서 시시비비와 영욕의 짐을 부려 놓고 푸근함과 추억을 나누면서 고백하고, 어린 날의 꿈을 다시 꾸기도 하고, 눈 앞에 불러 올 수 없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며 찔레꽃과 송편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부칠 데 없는 편지를 쓰기도 하고, 어둡고 음산했던 마음에 햇볕과 상상과 시원한 바람을 불어 넣는다. 한마디로 소외와 비판 보다는 성찰을 통한 ‘존재 탐구’에서 은유와 상징과 아이러니와 노래로 시의 성찬을 이뤘다.

마른 봄 산기슭에 올라 고동치는 
심장 소리를 듣는 나는 
얼빠진 고로쇠나무를 생각하네
진한 수액을 팔기 위해 근육에 관을 꽂고
애끓는 간장에 관을 꽂고 채혈을 하는
무고한 봄날의 고로쇠나무
빠른 속도로 불지르고 빠른 속도로 하강하네
봄볕이란 부피로 하강하는 계절
기력을 잃은 채 수혈하는 너의 생명선은
후미진 복강을 찾아 관을 꽂고
역설을 사뭇 퍼내네
동굴마다 칼끝 저미는 파아란 갈등 
명산이란 생명이 아니었던들
아득히 먼 식솔을 위해 몸부림치며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을까
오래 전 청양 칠갑산에도 예외할 수 없는 
넋들이 허무로 살고 있었네
봄 향기 번지는 잔인한 4월의 하늘에
주사침을 무색하게 떠올렸나보다
인색하다는 저 인간을 치유할 수 있었을까
내 몸이 비록 삭은들 윤기가 났을까.
- 홍윤표 시 <고로쇠 나무> (농민문학)

건강을 북돋우기 위해 나무의 가슴에 관을 꽂고 진을 빨아올리는 행위에 대해 평상의 어조로 비판을 가한뒤 ‘갈등’의 가치를 드러내 놓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하늘로 번지는 봄 향기와 자신의 몸을 대비하여 진정 치유해야 할 것이 삶 속에 내재한 ‘잔인’과 ‘인색’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고뢰쇠 나무’의 시편(詩篇)이 ‘콩밭 메는 아낙네와 칠갑산 산마루....’ 구성진 가락이 들리는 듯, 고즈넉한 장곡사와 명산(名山)의 풍광이 사람들로 하여 옛날 같지 않다고 슬몃 긴장(針)을 준다.


수없이 되묻고 물어본 그곳
풍설만 분분하게 떠돌고 있다

전설로 자라던 느티나무에는
검버섯 핀 껍질에 탄흔 아물지 않고
능구렁이 또아리 틀고 떠나지 않고 있단다

구름을 쓸고 가는 바람이
삭정이 끝에서 부러질 때면
까마귀 울음 한 마디가
외로워도 부러지지 않고
빈 하늘 하얀 낮달 감싸 안고는
저린 날개 접지 않는다든가

가난을 그대로 남겨 두고
가슴이 좁아 넘치던 정을 버려두고
매몰차게 주저 없이 떠났던 그 곳을
더 가난해진 가슴에 탱탱하게 키우며
갈 수 없는 아픔을 말로 못하고
풍설에 풍설을 꿰고 엮으면서
뜨내기 한 생을 지나가고 있구나.
-이봉교 시 <풍설> (농민문학)

도시 사람들 뿌리가 어디냐 파내려가면 십중 칠팔은 느티나무가 전설을 또아리 틀고 읖조리는 시골일 것이다. 문명의 밝음을 좇아 매몰차고 빠르게 달려온 고향 느리게라도 가고는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앞에 뜨내기처럼 화자는 서성인다. 검버섯과 탄환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지닌 느티나무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시의 뼈대를 이룬다.
2연의 낮달이 내려다보는 허전한 심상들, 구름을 쓸고가는 바람이 삭정이 끝에서 부러지고, 까마귀 울음이라는 청각적 이미지가 비감(悲感)을 깊게도 파내지만 3연에 이르러 화자는 관조(觀照)의 태도를 잃지 않고 인생을 ‘풍설’이라는 상징적 언어에 꿰어 초월적 느낌으로 형상화 한다. 





가을을 엿듣고 있으면
갈대는 흔들리지 않는구나
푸른빛도 보이지 않고
하얀 입술을 문지르고 있구나
달이 떨군 한숨인 듯 하얗게
휘청휘청 나부끼고
아무르강 흙두루미
순천만에 날라와 끼룩끼룩 울고
물면에 몸을 던져 부비 듯
스스스 서걱이는 마른 갈대잎 휘날리지만
갈대는 흔들리지 않는구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가슴끼리 맞부비고 흔들리지 않는구나
갯바람도 쓸어모아 자지러지게 부딪히는 소리뿐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에 춤을 출 뿐...

갈대는 휘모리로 휘모리로 귀가 열리네
가을에 갈대는 귀가 열리네
갈대는 가을에 휘모리로 귀가 열리네
내가 엿듣고 마는 나를 갈대는 나를 만나네
숨어있는 나를 향해 석양 빛을 길게 뻗고
강이 뒤채는 물면 그늘에 빛을 던지네
흰달이 흰물결 뒤로 떨어질 때까지
다소곳이 서서 뉘여진 갈대 잎사이로
속소리 바람도 스치다가
사쁜사쁜 그림자로 물러앉네
고요보다 더 아득한 정적의 속삭임을 눕히고
끝끝내 들키고마는 흰머리 쓰다듬는 소리
빠져나가네
바람만 빠져나가네
내 마음 울음이 포개진 듯 산란하게
술렁이는 마음 감았다가
얼르는 내음까지 빠져나가네
-손광은 시 <순천만 갈대> (시와 상상) 

시상(詩想)의 전개와 어조가 음악적이고 전형적인 서정시의 정서와 표현을 담고 있다. 인간의 내면심리를 갈대와 흙두루미, 바람, 자연에 빗대어 묘사하고 노래한다. 귀가 열려 있으니 진양조 중중모리 장단으로 들리고, 풍요로운 감성으로 자연 그 자체가 예술로 다가와 기쁨을 낳는다. 누가 누구를 엿듣는가? 갈대가 만나는 나는 또 누구인가? 이런 물음은 사색(思索)의 즐거움을 주며 의인화된 표현들과 함께 시의 깊이로 자리 잡는다.







바람이 분다
내 몸 속에 낡은 집
잡소리를 낸다

덜컹거리고, 삐걱이고
구들장까지 찬 소리를 내는
썰렁한 집
화사한 그림이나
가는 날짜 바라볼 달력 한 장
버젖이 걸
성한 벽면 한 곳 없구나

어느 세상에 
낡지 않는 집 있던가
집 지은 지 60여년
낡은 소리가 없다면
그것은 집이 아니라
상하지 않는 시간의 집일뿐이지

살만큼 산 집
내 대신 낡은 소리를 낸다
-박명용 시 <낡은 집> (시와 상상)

‘낡은 집’ ‘낡은 것’의 잠재된 아름다움을 간결한 어조로 보여준다. 삶의 체험을 드러내지 않고, 몇 개의 시어들을 성한 것 없는 벽면에 배열하고 잡소리가 정녕 잡소리가 아니 잖느냐고 되묻는다. 낡고 허물어진 집이라도 지니고 살았다면 아니 살아있다면 다행으로 여기고, 어쩌겠는가? 살만큼 산 집,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손질하면서 노년(老年)에 올 여러 일들을 기꺼이 맞이하겠노라는 뜻도 감지된다. 이 시(詩)는 경륜과 말이 잡소리 혹은 잔소리로 취급되는 사회 인식의 문제를 행간의 바닥에 두텁지 않게 깔고 절제하면서 지혜를 주고 시의 맛을 낸다.

큰 너럭바위 끝에 아슬아슬
한쪽 엉덩이만 걸친 작은 바위가 기우뚱
떡갈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바위 모서리에 나무는
서서히 옆구리가 패여 들어간다
옆구리가 쑤셔도 가슴은 뿌듯하다는 듯
나무는 팔 한껏 벌리고 바위를 내려다본다
그가 바위로 있게 하는 일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일
부서져 날 세운 돌이 되지는 않게 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나무는 통증을 견딜 수 있다고
비바람을 또 하루 버틸 수 있다고
하루에도 수차 갈잎 엽서를 띄운다

올해도 떡갈나무는 한 말 가웃
차돌 같은 도토리를 낳았다
-정채원 시 <연분> (정신과 표현)

화자는 떡갈나무와 작은 바위의 관계에서 상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서로 의지하면서 통증을 견디고 하루를 버티고 결국 차돌 같은 도토리를 낳고 옆구리가 쑤셔도 가슴은 뿌듯하고 하루에도 수차 갈잎 엽서를 띄우며 보람을 느낀다. 각박한 현대인들도 시를 읽으며 일상을 헹구고 맑아진 마음으로, 너럭바위와 작은 바위, 크기가 문제 되지 않는 화목한 세계를 가꾸고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휴경지가 늘고 산천(山川)이 각종 폐기물로 오염 되며 젊은 영농 후계자들이 빚더미에 허덕이는 피폐한 현실을 작가는 ‘문학이라는 그릇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 를 심각하게 고뇌할 필요성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그렇다고 작가마다 리얼리즘이나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작품을 쓴다면 문학의 심미적 즐거움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니 그 또한 삭막하지 않겠는가?
꽃 봄을 맞으며 갈등처럼 내린 폭설 속에서 내면의 성찰로 문학적 성과를 얻은 작풍을 여러 편 읽을 수 있었음에 보람을 느끼며 작가의 소임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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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가을’ 하면 김현승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가을의 기도’라는 시 때문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작품인데, 누구 시인지 몰라도 익숙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가을의 기도’ 말고도 유독 김현승의 시 중에는 가을에 어울리는 작품이 많다. 그중에서 한 편을 고르자면 ‘아버지의 마음’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여준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아버지들이 있다. 바쁜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굳센 아버지, 바람과 같은 아버지도 있다. 폭탄을 만드는 아버지, 감옥을 지키는 아버지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있다는 점 말이다. 애당초 ‘아버지’라는 말은 자식이 없으면 성립이 될 수 없는 단어이다. 자식이 있어서 아버지가 된 모든 사람은 한마음으로 자식을 기르고 사랑한다. 난로에 불을 피우고, 참새처럼 조바심 내며 아이의 앞날을 걱정한다. 밖에서는 독한 사람도, 무서운 사람도 아버지가 되면 똑같이 자식바라기가 된다는 시인의 표현이 참 공감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확하게 아버지를 파악한 부분은, 눈물은 없지만 외로운 사람이라는 부분, 그리고 아버지의 때가 아이를 통해 씻긴다는 부분이다. 아버지는 오욕과 술에 젖어 밤늦게 돌아오지만, 잠에 든 자식을 보면 세상만사 무슨 일이든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 아버지들은 이렇게 살아왔다. 이런 아버지를 좀 안아 드려야 할 것 같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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