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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한 경고!!!" ㅡ 노래가 곧 詩, 詩가 곧 노래
2016년 10월 19일 21시 25분  조회:5239  추천:0  작성자: 죽림

bob dylan


10월 13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는 선정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소식은 우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역사학자, 정치인, 철학자, 논픽션 작가 등이 노벨문학상을 탄 적은 있었지만, 가수가 이 상을 탄 것은 처음이니 말이다. '문장'이 아닌 '노래'가 문학의 범주에서 평가 받은 사건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일이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잠시 '문학'이란 따옴표를 걷어내고 과거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어쩌면 우리는 돌고 돌아 다시 문학의 처음으로 되돌아왔을 뿐일지도 모른다.

 

 

1. 고대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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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책, 즉 파피루스를 재료로 한 두루마리 책이 문학 소통의 주요한 매체가 되었다. 이보다 기껏해야 300년 전에 글자가 단지 생산 활동에 도입되긴 했지만 아직 문학의 소통을 위해 쓰이지는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며 다만 '공연되는 현장'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전문학이 문자 기록으로 전환되면서-기원전 5세기부터 뚜렷이 드러나는데-상고기 전체를 통틀어 문학이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그제야 문학은 서책에 담겨 늘 눈앞에 펼쳐 볼 수 있는 실물로서 활발히 연구되었다. 문화사의 관점에서 이러한 전환 과정의 의미는 자못 심대하여 아마도 오늘날 불기 시작한 컴퓨터 시대로의 변화만이 거기에 견줄만할 것이다." (책 '희랍문학사', 마틴 호제 저)

고대 그리스에서 글자로 '문학'이란 것을 따로 기록했던 시기는 기원전 5세기부터다. 책에선 고대 그리스 문학의 시작을 기원전 8세기부터로 보니, 적어도 처음 300년 동안 '문학'이라는 것은 모두 '노래로 불려지는 것'들을 의미했다. 숱한 축제에서 영웅이나 신을 찬양하기 위한, 혹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노래들이 바로 '시'였고, 이 노래들을 악기 연주와 함께 부르고 연기하는 자들은 곧 '시인'이었던 셈이다. '서정시'를 뜻하는 말 ‘뤼릭(Lyrik)’ 또한 '칠현금과 어울려'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뤼리코스(Lyrikos’)에서 왔을 정도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영웅서사시의 대가 호메로스, 서정시의 대가 사포, 신들을 찬양했던 헤시오도스 등도 알고 보면 당대를 주름잡던 '콘서트 스타'에 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촛불의 밤'이 아닌 열광의 '락 콘서트장' 무대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밥 딜런이야말로 시인의 원초적 모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2. 고대 중국

"'시경(詩經)'은 기원전 12세기경부터 시작되는 중국 서주(西周)에서부터 춘추 초기까지 불렸던 노래 가사의 모음집이다. 내용은 궁중의 향연이나 제례에서 불리던 노래 가사나 민간에서 불리던 민요의 가사로...각국의 민요...조정의 음악...종묘 제사 때 연주하던 음악의 가사다."(책 '시경 강설', 이기동 역)

노래가 곧 '시(詩)'와 마찬가지였던 역사는 서양에만 있는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공자님이 편찬한 ‘시경(詩經)’은 처음엔 그저 ‘시(詩)’라고만 불렸는데, 이 안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애초에 노래였다. 동양 최초 시집은 곧 '가사집'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운율과 후렴구까지 맞춰 놓아 분명 입으로 불려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을 내용의 '시(詩)'들이 가득하다. 입에서 입으로 불려져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들이 최초의 '시(詩)'라면, 연주와 목소리가 있어야 마침내 온전해지는 밥 딜런의 노래들 또한 '시(詩)'로 불리는 게 크게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3.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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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직업적인 소리꾼이 관중들 앞에서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말과 창을 번갈아가며 구연하는 한국의 전통 구비서사시다...판소리 사설은 서사문학으로서 주인공의 처지나 상황이 변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며, 이에 따라 청중들의 정서적 반응도 변화한다...그래서 명창이 되려면 작품의 문학적 이해와 이에 바탕을 둔 음악적 표현은 물론 연행자로서의 자질이 동시에 요구되었다...판소리는...문학과 음악과 연극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다."(책 '한국문학강의', 조동일 외 저)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조선에선 문학에 공연적 요소까지 더한 '종합예술'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판소리이다. 문학이 음악, 연극과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합쳐진 경우가 고대 그리스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판소리는 장르 구분 상 '구비서사시'와 '공연서사시'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유력한 견해가 그렇다. 이 내용은 책 '판소리 문학의 비평과 감상'(정충권 저)에 있다.). 서사시로 불리니 분명 문학적 요소를 띠고 있긴 한데, 언어적 표현만 뛰어나다고 완성되진 않는 문학, 음악적 표현력에 더해서 공연자로서의 '쇼맨십'까지 요구되는 문학. 이 묘한 중첩을 문학상을 탄 밥 딜런의 노래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목소리와 악기가 필요하면 문학이 아닌 것일까? 혹 가사와 연주를 따로 떼어내면 밥 딜런의 '문학성'과 '음악성'은 분리되는 것일까?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이 놀랄 일은 아니지만 당혹감을 주는 건, 돌고 돌아 다시 처음의 자리에 선 문학이 우리에게 잊혀졌던 문학의 정의를 다시 요구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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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언론인이자 르포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에 이어, 스웨덴 한림원이 가수 밥 딜런을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신선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찬사에서부터 대중음악의 가사는 시가 아니라고 하는 고루한 반론에 이르기까지, 세간의 예상을 뒤집은 한림원의 이번 결정이 분분한 이견들을 불러올 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짐 모리슨의 노랫말을 살부(殺父)의 염으로 가득한 장정일의 시편들에 견주어 읽었던 나에게는, 그 결정이 그렇게 의외의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인식의 문이 닦여지면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짐 모리슨이 월리엄 블레이크의 이 시구에서 그룹의 이름인 '도어스(The Doors)'를 가져왔던 것처럼, 밥 딜런의 이름에는 그가 사랑했던 웨일스의 시인 '딜런 토마스'가 아로새겨져 있다. 불문학자 월리스 파울리는 랭보와 짐 모리슨의 관계를 다룬 그의 저서 한 곳에 이렇게 적었다. "밥 딜런은 자신을 알리고 강렬한 이미지를 심기 위해 자신의 노래에서 랭보를 이야기한 최초의 록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짧은 생을 살다 간 반역의 시인 랭보는 어떤 도취와 반항의 감수성으로 1960, 70년대 앵그리 영맨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니까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로' 돌려야 한다고 외쳤던 세대의 정신은, 시적인 것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시적인 열정을 모르고, 문학을 읽지도 않는 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을 염원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노벨상에 대한 우리 국민의 열망이 유별나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세계적인 인정을 갈구하는 그 강렬한 선망이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우리 근대성의 공허한 결핍에 대한 하나의 증상이다. 그러니까 노벨상에 대한 그 이상한 열기는, 우리들의 미숙한 근대화가 낳은 집단적 내상의 쓰라린 증후이다. 노벨상에 대한 이런 이상한 욕망과는 별개로, 이번 선정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던 어떤 통념들을 뒤흔든다. 그리고 그것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대적인 물음을, '무엇이 문학인가'라는 또 다른 물음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민요 판소리 무가 가사 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문학의 갈래론을 정립한 조동일은, 민요의 장르적 성격을 서양의 발라드(ballad)에 견주어 논의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시와 노래가 본디 하나로서 시가(詩歌)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던 것을 생각할 때, 밥 딜런의 노랫말을 문학의 범주에서 제외하려는 의욕은 가소롭다. 그럼에도 그것이 논란으로 비등할 만큼 대중가요에 대한 문학 쪽의 견제는 심오하다. 노랫말이 문학인가 아닌가의 사실 여부와는 별도로, 그것을 문학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이들의 그 단호함을 떠받치는 그 무엇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것, 그런 사정이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보수적 심사를 더욱 자극해 격렬한 반론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문학'이라는 관념이 근대라는 특정한 시기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안된 일종의 제도이자 이념이라는 것을 폭로함으로써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근대에 유효했던 문학의 정치적 기능이 퇴색하고 있는 지금, 그의 진단이 대체로 옳았다는 것은 부정하기는 어려운 사실이 되었다. 문학이 권력화되었다는 시비가 가능한 것은, 시비를 걸어도 될 만큼 그 권력이 쇠락했음을 방증한다. 작가들을 결속시켰던 문인 단체의 기능이 예전만 못하고, 따라서 문단이라는 길드적인 체제가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정전화된 문예지들의 권위가 도전받으면서 각종 대안 매체가 등장했고, 기존 문예지들도 그 운영진과 잡지의 형식을 완전히 쇄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학의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가 통폐합되거나 융합적인 학제로 해소되어가는 것도, 문학이라는 근대적 통념의 해체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바야흐로 우리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그 근대적 질문이 무망해져가는 전환기의 도정에 있다. 춘원 이광수가 '문학이란 하(何)오?'를 발표한 지가 올해로 정확히 100년이 되었다. 이 글은 문학을 'Literature'의 번역으로 수용하면서, 시 소설 희곡처럼 감정의 상상적 형식을 그 나라의 국어로 표현한 것이 근대적인 의미의 문학이라고 정의한 획기적 문건이다. 한림원의 결정을 춘원이 정의했던 바로 그 문학이라는 통념의 해체는 물론, 근대적인 것에 대한 발본적인 의문의 제기로써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밥 딜런이 즐겨 했던 말 'I'm Not There'를 속으로 깊이 음미해 본다.

/ 전성욱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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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해 칼럼)=

'밥 딜런'이 안겨준 노벨문학상의 색다른 의미
 

“밥 딜런의 노래는 ‘귀를 위한 시’다.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리듬을 만들었고 인내를 승화시켰으며 획기적인 사고를 보여줬다.”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선정한 이유다. 지난 13일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미국에서는 1993년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23년 만인 데다 그것도 작품 활동을 하는 문학인이 아닌 대중가수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사상 처음있는 것이어서 충격파는 더 강했다.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올해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강한 충격파만큼의 달라진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는 방증으로도 보인다. 한 분야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더구나 고고한 문학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금방 이해하기는 힘든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번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더욱 값지고 빛나 보인다.
그의 노래 중 우리에게 친숙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는 지금껏 여러 가수가 인기리에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다.
엄마, 내 옷에 달린 이 배지를 떼어 줘요(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
난 더이상 이걸 쓸 수 없어요(I can't use it anymore )
보이지 않을 만큼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요(It's getting dark, too dark to see)
내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느껴봐요(Feel I'm knocking on heaven's door)
두드리고 두드리고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Knockknockknocking on heaven's door). 젊디 젊은 두청년이 뇌종양과 골수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며 서로를 위로하며 나누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시적으로 표현한 대중가요는 1970년대 우리나라 포크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 생활을 오래하며 한때 한국의 밥 딜런으로 불렸던 한대수는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딜런 이전에는 이런 시적 표현의 노래가사가 없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1970년대 한국 포크계를 이끌었던 가수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도 딜런의 저항정신 노랫말이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다고 전한다.
사실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데 대한 낯선 반응들은 곳곳에서 새나오고 있지만 그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미상, 아카데미상, 퓰리처상에 이르는 다방면의 상을 차지할 만큼 다재다능한 그는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으로 2004년 뉴욕타임스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됐을 정도로 문학에도 뛰어나 음악이면 음악, 영화면 영화, 사진이면 사진, 문학이면 문학, 말그대로 천재성을 타고난 팔방미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딜런은 아니었다. 러시아계 유대인 촌뜨기에 불과했던 딜런의 운명은 엘비스프레슬리의 영향을 받아 가수가 되지만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다. 초창기에는 그랬던 그가 영국의 비틀즈도 미국의 열광적이었던 팝가수 마이클잭슨도 넘지 못했던 것을 해낸 이유가 따로 있다. 
그들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거나 화려하진 않았지만 대중가수가 의외일 정도로 꾸준하게 사회저항 운동에 나서며 바른길을 인도하고 그런 일부를 가사에 담고 가슴으로 노래한 음유시인였기에 그들과 달랐고 이에 노벨문학상이라는 최고의 영광까지 누렸다.
스웨덴 한림원의 선정 배경도 어쩌면 이런 점에서 내다본 문학과 사회변화의 관점과 일치하는 점이 아닐런가한다. 시나 소설도 세상이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랫말을 통해서도 삶과의 소통을 하고 공감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하지 않았나 싶고 이점에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 
물론 문학의 가치성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사 내용이 시어(詩語)처럼 신비롭고 삶의 일부나 사회적 반향의 꿈틀대는 그대로를 적시하고 이야기한 용기와 자유로운 표현은 멋지고 세상의 화두가 될 만하다.
“나는 먼 길을 왔고 가야 할 먼 길을 출발했다. 그런데 지금 운명이 그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운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서처럼 딜런이 먼길을 찾아서 최고의 명예로운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아무튼 올해 노벨문학상 선정은 문학의 영역이나 편견에서 몸체까지 탈바꿈한 사건이라는 게 공통분모다. 특히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문학계의 충격은 그야말로 멘붕 상태로 빠지게 한 것도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우리나라 문학계에서도 밥 딜런의 노래가사가 노벨문학상을 탈만큼 문학성이 있느냐에 대한 반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웨덴 한림원이 심사숙고해서 115년 만에 대중가수 밥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선정, 수여한 것에는 그만한 깊숙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기에 그것을 인정을 하고 축하를 해줘야하는 게 중요하다. 노벨상은 한 개인의 명예이기도 하지만 한 국가의 염원이 담겨있다.

/연규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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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젊은 시절. 그는 미네소타 대학을 중퇴한 뒤 자신의 우상이던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를 찾아간다. 그는 1960~1970년대 '비트세대'와 긴밀하게 교류하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창조해낸다. /사진=밥 딜런 공식 페이스북
밥 딜런의 젊은 시절. 그는 미네소타 대학을 중퇴한 뒤 자신의 우상이던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를 찾아간다. 그는 1960~1970년대 '비트세대'와 긴밀하게 교류하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창조해낸다. /사진=밥 딜런 공식 페이스북

‘노래가 문학인가’라고 물으며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반기를 드는 이들을 설득시키는 명확한 해답은 역설적으로 노래 가사다. 딜런 음반 중 최고의 평가와 높은 인지도를 얻는 ‘블론드 온 블론드’(Blonde On Blonde, 1966)만 거론하면, ‘사랑 타령에 무슨 노벨?’이라는 의문에 공감을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 장의 음반(가사는 사적인 사랑 노래를 하지만, 음악 전체는 실험적인 시도로 평단의 호평을 받음)을 제외하고 그의 노래는 대부분 ‘문학적 테두리’에 머물러 있다.

대표작 ‘바람에 실려서’(Blowin’ in the wind, ‘바람만이 아는 대답’으로 의역, 1963)에서 그의 가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야 어른이라고 불릴까/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사장에서 잠들 수 있나/몇번의 대포알을 쏘아야 탄환이 멈출까/친구여, 답은 바람속에 있다네/그 답은 바람 속에 있다네’

◇ 짧은 가사에도 폭넓은 해석력 갖춰…‘문학의 결’ 놓지 않아

아주 짧은 가사지만, 운율의 묘가 시처럼 들어맞고 주제 의식을 향한 깊은 사례의 연결이 표현 이상의 상상력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문학적 결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 문장 ‘답은 바람속에 있다’에서 보여주는 미묘하면서도 은유적 상상력은 읽는 이의 해석을 열어놓음으로써 가장 시적인 완결성을 보여준다.

전쟁 반대와 인권, 평등의 메시지를 전파한 이 노래의 사회 참여적 정신은 그러나 ‘질문만 하고 답을 주지 않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직접적 현실참여보다 문학적 은유에 더 기댔다.

딜런 곡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알려진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 1965)은 한 여인을 계속 조롱하는 불편한 가사로 점철됐다. ‘~느낌이 어때/느낌이 어때/홀로 그렇게 되는게/집으로 가는 방향조차 없이/완전한 무명처럼/구르는 돌처럼 있는게’

선뜻 보면 ‘그 외교관이랑 같이 크롬마에 타는게 더 익숙했지’하는 가사처럼 허영에 대한 조롱으로 비칠 수 있지만, 자본과 길들여진 가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읽힐 법하다.

딜런의 문학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노래는 ‘괜찮아요, 엄마’(It’s alright, Ma, 1965)다. 딜런의 전기작가 하워드 사운즈가 ‘냉혹한 명작’이라고 평가할 만큼 그의 시퍼런 문학성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구절구절이 모두 ‘명언’으로 기억돼 옥스퍼드 사전과 대통령 수락 연설에서 쓰일 정도였다. ‘돈은 말하지 않는다, 선언할 뿐이지’, ‘광고는 그대가 대단히 특별하다고 생각하도록 속이지’, ‘설령 주인이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와 같은 규칙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같은 구절은 지금도 계속 회자된다.

밥 딜런을 스타로 만들어 준 두번째 앨범 '프리윌링 밥 딜런'(왼쪽)과 히트곡 '라이크 어 롤링스톤'이 담긴 앨범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
밥 딜런을 스타로 만들어 준 두번째 앨범 '프리윌링 밥 딜런'(왼쪽)과 히트곡 '라이크 어 롤링스톤'이 담긴 앨범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

◇ 구절구절이 모두 ‘명언’…‘아웃사이더의 미학’이 펼치는 ‘냉혹한 명작’

이 노래 가사는 위선과 상업주의 등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냉혹한 비판을 문학적 언어로 이용하고 있다. ‘바삐 태어나지 않은 자는 바삐 죽는다’ 같은 구절은 지미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작가이자 언론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식도암으로 죽기 전 쓴 마지막 기사에서 각각 인용했다.

‘음유시인 밥 딜런’의 저자인 손광수 동국대 영문과 강사는 딜런의 작품 세계에 대해 “난해하다”는 말로 압축했다. 손 강사는 “딜런의 문학 세계는 연구하면 할수록 어렵다”며 “쉽고 상투적인 가사와 난해한 가사 두 측면이 공존하는 데다, 스스로 답을 주지 않아 권위적인 해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탄 이유로 노벨상위원회가 적시한 “호머와 사포가 연주를 위한 시적 텍스트를 썼고, 밥 딜런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에 손 강사도 동의했다. 그는 “딜런의 가사는 지면으로 읽었을 때 혹평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구조적 결함이 엿보인다는 의견도 있다”며 “그의 가사는 가창과 사운드로 연결될 때 시로 온전히 발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시인 로버트 로웰이 “밥 딜런은 기타라는 목발을 짚고 있어야 하는 시인이다. 음악이 없으면 그의 시는 불구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손 강사는 딜런의 가사를 ‘공연되는 시’로 명명했다. 시처럼 ‘연’ 구조가 아닌 ‘절’ 구조를 갖춘 노래는 악보에 맞추는 형식의 한계 때문에 다른 음악적 재료와 결합할 때 문학적 상징성이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13일 (현지시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가사는 음악과 결합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갖는 '공연되는 시'라는 평을 받는다. /사진=머니투데이DB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13일 (현지시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가사는 음악과 결합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갖는 '공연되는 시'라는 평을 받는다. /사진=머니투데이DB

◇ 리얼리즘부터 내면의 자아까지…“문학과 대중문화의 경계 사라져”

‘포크’에 집중한 딜런의 초기 작품은 저항과 반전, 사회 비판 등 리얼리즘을 중시한 가사로 채워졌지만 ‘록’으로 방향을 튼 후기 작품은 실험적인 예술적 시도와 내면의 자아로 모인다. 프랑스 시인 랭보를 새로운 자아의 모델로 삼은 딜런의 후기 가사가 철학적인 모호함으로 채워진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손 강사는 “‘블로잉 인더 윈드’의 포크부터 ‘잇츠 올라잇, 마’의 록까지 관통하는 가사의 일관적 태도는 ‘아웃사이더의 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며 “사회비판에서 내면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기성 사회가 규정하는 질서에 반기를 들고 정체성에서 벗어나려는 일련의 시도를 통해 일관된 주제에 몰입했다”고 설명했다.

딜런의 수상에 대해 ‘문학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이택광(문화평론가) 경희대 영문과 교수는 “지금의 문학이 대중성을 잃었기 때문에 농담이 현실이 된 사례로 봐야 한다”며 “농담처럼 밥 딜런의 수상 얘기가 자주 나왔는데, 실제로 일어났으니 결국 위원회가 문학에 대해 경고를 보낸 결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편으로는 문학과 대중문화의 경계가 없어진 상황을 반영했다”며 “무엇보다 세계대전이 만들어 놓은 전후 체제에 사는 우리는 그가 던진 메시지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이번 수상이 상징적”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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