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절은 비용을 안 들이고도 모든 것을 얻는다. - C.E.몬터규(에이레 작가:1867~1928)
* 밤마다 네 하루를 검토하라, 행위와 성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는지, 기뻐했을만 하였는지를. - 헤르만 헤세(1877~1962)
* 오층이나 육층 높이에서 인간의 모습을 내려다보자. 그들은 보도 위를 당당하게 걸어다니 지만, 하나같이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흉측하게 불거진 엉덩이며 가슴, 그리고 연신 앞뒤로 뻗치는 팔과 다리, 모든 게 꼴불견이다. 그들의 위대한 눈과 코, 그리고 입은 어디로 갔는가. 인간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하게 눌려서, 마치 게처럼 땅 위를 기어다니고 있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동아일보 '98 신춘문예 당선작)>
* 그는 책을 덮고 소파에서 일어선다. 해는 아직도 아파트 옥상에 걸려 있다. 물탑 뒤로
몸을 숨긴 채 쏟아내는 햇빛은 투명하다 못해 예리하다. 그 빛을 타고 물탑의 그림자가 옆 건물 벽으로 날아가 박힌다. 하늘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물탑은 톱날의 날카로운 음영으로
옆 건물 벽을 자르고 있다. 엷은 미색의 아파트 벽은 잘리기 직전의 마디카나무처럼 위태롭다. 그 밑으로 고압 전선이 늘어져 있고, 전선에 매달려 있는 애자가 보인다. 해는 아주 조금씩 물탑 뒤로 숨어들어간다. 그는 창가에 서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해의 움직임과 물탑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비가 그친 공터는 물기를 머금은 풀들로 싱그럽다. 고양이는 유난히 물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앞쪽으로 몇 걸음 가지 않아 발을 흔들며 물기를 털어낸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나는 갈 곳이 없다. 어디를 가든 기지와 재치에 번뜩이는 인간들만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아이큐가 1백50 이상이거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다. 나는 이제 살아갈 의욕조차 상실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도 어려웠고, 끝까지 버텨봐야 결국 이용만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이차로 도로 가장자리에 벤치가 있고, 거기에 남자가 앉아 있다. 남자의 모습은 마치 벤치 위에 놓여 있는 정물처럼 보인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남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를 아무런 표정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러한 남자의 모습은 마치 아파트 담과 함께 굳어버린 콘크리트 조형물처럼 보인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언제부턴가 나는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어둠과 죽음의 공포에 익숙해졌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이란 그다지 무섭지도 않고, 또 슬프지도 않은 것
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니까.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어느날 나는 알지 못할 힘 같은 걸 느꼈다. 마치 오랫동안 땅 속에 숨어 있다가 기어나온 매미와 같은 힘이었다. 그렇다. 나 자신이 매미 같은 존재였다. 몇 주일을 살기 위해 수천
일을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나는 이제 어둠을 뚫고 나가 화려한 삶을 끝마치는 그날까
지 마음껏 날며 소리지를 것이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밖으로 나온 그는, 맑고 싱그러운 공기에 취한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파릇한 풀과 나뭇잎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가슴을 펴고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어디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긴다. 매미는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에서 울고 있다. 그는 눈이 부신 듯 나뭇잎 사이를 올려다본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그는 개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둬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누군가 아파트 창문을 열고 홑이
불을 털고 있다. 하얀 천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처럼 퍼덕인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그는 한참 동안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인 다. 그러나 매미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옆에 앉아 있던 개가 컹 짖는다. 그와 동시에 매미가 푸드득 날아간다. 매미는 검은 점을 남겨놓으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진다. 개는 매미가 사라진 하늘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다시 벤치 아래 웅크리고 앉는다. - 김정진 <비어있는 방>
* 새벽 4시 차는 정시보다 10분쯤 늦어서 눈에 불을 켜 단 밤 맹수처럼 빗속을 덜컹덜컹 산굽이를 돌아왔다. - <살아있는 늪>
* 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또는 커피 한 잔이 가능케 해 주는 친밀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나는 커피에 관해 쓰여진 어떤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은 커피가 건강에 좋다고 말하고 있었다. 커피는 인간 육체의 모든 기관을 촉진시킨다고 말이다.
- 리처드 브라우티건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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