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적인 맥락에서의 평등이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식이며 우리들은 모두 사람으로서 신성한 자질을 나누어 가졌으며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개인들간의 차이는 각기 존중받아야 하며 우리 모두가 하나이지만 우리들 개개인은 독특한 실체이고, 그 자체로서 하나의 조화로운 우주라는 사실도 의미하고 있다. (중략)
개성 발달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평등은 또한 서구 계몽주의 철학의 평등 개념의 의미이기도 했다. 칸트에 의해 매우 명확하게 설명된 그 평등 개념은 인간은 타인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은 그들이 목적인 한 동등하며 오직 목적으로서, 서로에게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계몽 철학의 사상을 따라, 다양한 학파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평등을 착취의 폐지, 즉 그 이용이 잔인한 것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간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이용을 폐지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평등의 의미는 계속 변화되어 왔다. 이 사회에서 말하는 평등이란 자동 인형의 평등, 즉 자신의 개성을 상실해 버린 사람들의 평등을 의미한다. 오늘날 평등은 '일체성'보다는 '동일성'을 의미한다. 즉 평등은 추상적인 동일성, 곧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오락을 즐기며 똑같은 신문을 읽고 똑같은 느낌, 똑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들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시대의 진보의 징표라고 찬양되어지는 몇 가지 업적들, 예를 들면 남녀 평등 같은 것들에 대해 약간의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초월에의 욕구는 인간이 자기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 즉 인간은 피조물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으며 던져진 주사위로서의 자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인간은 창조자로서, 즉 창조되었다는 주동적인 역할을 초월한 존재로서 느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창조의 만족을 느끼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쉬운 방법은 어머니의 창조물에 대한, 즉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보호와 사랑이다. 어머니는 아기를 통해 자신을 초월하고, 아기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삶에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해 준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자신을 초월할 수 없는 남자에게 있어서는 사물이나 사상을 창조함으로서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자신의 전체적인 인격을 발달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사랑을 위한 모든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확신시켜 주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즉 저마다의 개인적인 사랑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이는, 그리고 진정한 겸손과 용기,신념과 철저한 훈련이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싶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서문 中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랑받는'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태도의 배경에 깔려 있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고, 오히려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찾는 일이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 <사랑의 기술>
* 현대 문화의 특징적 성격-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 상호간의 균등한 교환이라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대인의 행복은 상점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드릴과 현찰이든 할부이든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사 버리는 데 있다. - <사랑의 기술>
* 사랑에 빠졌다는 느낌은, 자신의 교환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인간 상품들과 관련지어서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물건을 사러 나갔다고 하자. 상대는 사회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아 바람직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가 나의 드러난 혹은 숨겨진 자산과 가능성을 고려하여 나를 쓸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두 사람이 자신들의 교환 가치의 한계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냈다는 느낌을 갖게 될 때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사랑의 기술>
*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세 번째 잘못은, 사랑에 '빠진다'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다'는 영속적인 상태, 좀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랑에 '머물러 있다'는 상태를 혼동하고 있는 데 있다. - <사랑의 기술>
* 그들은 심취, 즉 서로에게 '미쳐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의 강도를 나타내는 증거로 여기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이 전에 얼마나 고독했었는가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되어 왔다. 사랑처럼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반드시 실패하고야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없을 것이다. - <사랑의 기술>
*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다. - <사랑의 기술>
* 인간 존재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인간이 동물 세계로부터, 본능적인 적응의 세계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결코 떠날 수 없고 비록 일부분일지라도 그 자연을 초월해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렇지만 일단 자연과 결별하게 되면 인간은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즉 자연과의 원시적 합일 상태인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은,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칼을 가진 케루빔 천사(아홉 천사 중 제2위로, 지식을 맡은 천사)가 돌아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인간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잃어버린 전인간적인 조화 대신에 자신의 이성을 발달시키고 새로운 조화, 인간적인 조화를 찾음으로써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든 인류이든간에 인간은 일단 태어나게 되면, 본능처럼 철저하게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추방된다. 확실한 것은 오직 과거에 대해서 뿐이고, 미래에 대해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은 죽어야 한다는 사실 뿐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자신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고독이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려는 욕구이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곧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완전한 고립에 대한 공포감은 분리감이 사라져 버리도록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으로써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분리되어 있는 그 외부 세계마저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황홀경을 추구하는 모든 형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그 강도가 매우 강렬하여 때로는 난폭하다는 것이며, 둘째로 전인격에 걸쳐서, 즉 몸과 마음 모두에서 일어난 다른 것이며, 세째는 일시적이며 주기적이라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현대 서구 사회에서도 집단과의 일치는 분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것은 개인의 자아가 대부분 사라지고 또한 그 목적이 군중에 소속되어 있는 일치이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고 나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하는 감정이나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며 관습,의복,사상 등을 집단의 유형에 동조한다면 나는 구제된다. 즉 고독이라는 무시무시한 경험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이다. 독재적인 체제는 이러한 동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위협과 공포를 사용하며 민주주의 국가는 암시와 선전을 사용한다. - <사랑의 기술>
*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동조하기를 '강요받는' 정도보다 훨씬 더 동조하기를 '원하고' 있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동조하려는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기의 생각과 기호에 따르고 있고 자기는 개인주의자이며, 스스로의 사고의 결과로 현재의 의견에 도달했으며 어쩌다 우연히 자기 생각이 대다수의 생각과 같아졌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다른 사람과의 의견 일치라고 하는 것은 자기 생각이 옳다는 증거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개인성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욕구는 근소한 차이점에 의해 충족된다. - <사랑의 기술>
* 성숙한 사랑은 '개인의 통합성, 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 있어서의 일치'이다.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능동적인 힘이다. 즉 인간을 타인과 분리시키는 벽을 허물어 버리고 타인과 일치시키는 힘이다. 사랑은 고독감과 분리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각자에게 자기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지만 동시에 따로따로 남는다는 모순이 성립한다. - <사랑의 기술>
* 현대 사회는 개성화되지 않은 평등의 이상을 가르친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는 인간으로 하여금 대집단 속에서 자기의 기능을 원활하게, 아무런 마찰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그것도 그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따르고 있다고 확신하며 모두 똑같은 명령에 복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의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상품의 표준화가 필요한 것처럼, 사회적 과정은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하고 있고 이 표준화가 '평등'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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