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는 무너진 축대(築臺)에서 잠을 자고 토끼는 황폐한 전각(殿閣)에 달음질치니. 아! 이는 당년(當年)에 가무(歌舞)하던 터전이로다. 이슬은 황국(黃菊)에 싸늘하고 연기는 마른 풀에 감도나니 이 모두 다 그 옛날 전쟁하던 땅이로다. - <채근담> 自然篇
* 한가히 뜰 앞에 꽃이 피고 짐을 보노라. 가고 머무름에 뜻이 없거니 부질없이 하늘 밖에 구름이 뭉치고 흩어짐을 보노라. 하늘 맑고 달 밝은데 어딘들 날지 못하리오만 부나비는 홀로 촛불에 몸을 던지나니. 맑은 샘, 푸른 줄기 있거니 무엇인들 먹지 못하랴만 올빼미는 썩은 쥐를 즐기나니. 슬프다! 세상에 부나비와 올빼미 되지 않는 이 몇 사람이뇨.
- <채근담> 自然篇
* 흉중(胸中)에 반점의 물욕도 없으면 눈이 숯불에 녹고 얼음이 햇볕에 녹음과 같도다. 눈 앞에 일단(一段)의 공명(空明)이 있으면 때로 달은 청천(靑天)에 있고 그림자 물결에 있음을 보는도다. - <채근담> 自然篇
* 세상 맛을 속속들이 알면 손바닥 뒤집듯 덧없는 세태에 다 맡기나니 눈 뜨고 보는 것도 귀찮은 일이로다. 人情이 무엇임을 다 알고 나면 소라고 하거나 말이라고 하거나 부르는대로 맡기나니 그저 머리만 끄덕일 뿐이로다. - <채근담> 自然篇
* 사람의 마음엔 하나의 진실한 묘경(妙境)이 있으니 거문고나 피리 아니어도 절로 고요하고 즐거우며 향 피우고 차 끓이지 않아도 스스로 청향(淸香)이 일어난다. 모름지기 생각을 조촐히 하고 듣고 봄에 사로잡히지 말라. - <채근담> 自然篇
* 황금은 광(鑛)에서 나오고 백옥(白玉)은 돌에서 생기나니 환(幻)이 아니면 眞을 구할 수 없도다. 道를 술잔 속에 얻고 신선을 꽃 속에서 만남은 비록 풍아(風雅)할지라도 능히 속됨을 면하지 못하리라. - <채근담> 自然篇
* 정신이 왕성하면 베 이불 덮고 자도 天地의 중정(中正)하고 청화(淸和)한 원기(元氣)를 얻을 것이요 맛 없는 음식이라도 만족한 마음으로 먹으면 명아주국 보리밥 뒤에 人生 담박(澹泊)의 참 맛을 안다. - <채근담> 自然篇
*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 하면 족하도다.
* 좁은 방이라도 오만 시름 다 버리면 단청(丹靑) 올린 들보에 구름 날고 구슬발 걷어 올리고 비를 본다는 얘기는 다시 하여 무엇하랴. 석잔 마신 후에 하나의 진심(眞心)을 스스로 얻으면 거문고를 달 아래 비껴 타고 피리를 바람에 읊조리는 것만으로 족하리라.
- <채근담> 自然篇
* 만상(萬象)이 적적한 가운데 문득 한 마리 새 소리를 들으면 허다한 유취(幽趣)가 일어난다. 모든 초목이 잎 떨어진 뒤에 문득 한 가지의 꽃이 빼어남을 보면 무한의 생기(生機)가 움직인다. 가히 볼지로다. 마음은 항상 매마르지 않고 움직이는 정신은 매양 물(物)에 부딪쳐 나타나는 것임을. - <채근담> 自然篇
* 백낙천(白樂天)은 이르되 "몸과 마음을 다 놓아버린 다음 눈 감고 절로 되는대로 맡기는 게 제일이라."하고 또 조보지(晁補之)는 말하기를 "마음과 몸을 말짱 거두어 움직이지 말고 적정(寂靜)으로 돌아감이 제일이라" 하였다. 다 놓으면 흐르고 넘쳐 미치광이가 될 것이요 말짱 거두면 따분하고 막혀서 생기가 없을 것이니 心身을 잘 가누자면 그 자루를 잡아야 놓고 거둠이 自在할 것이다. - <채근담> 自然篇
* 흰 눈 위에 밝은 달 비치면 마음이 문득 맑아진다. 봄 바람 화한 기운(和氣)을 만나면 뜻이 또한 부드러워진다. 조화(造化)와 인심(人心)이 한데 어울려 틈이 없음이여!
(解義:사람을 작은 우주라 부른다. 우주의 한 分身이면서 사람은 그 우주의 모든 작용을 줄여서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천지간의 만상의 변화는 그대로 사람의 심신에 조응하여 자연과 인간은 구별이 없어진다. 맑고 밝은 것을 보면 마음도 맑아지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만나면 뜻이 또한 부드러워진다. 천지에 風雨霜雪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에는 喜怒哀樂이 있지 않은가.) - <채근담> 自然篇
* 글은 拙함으로써 나아가며 道는 拙함으로써 이루어 지나니 이 하나의 拙字에 무한한 뜻이 있다. 도원(桃源)에 개가 짖고 상전(桑田)에 닭이 운다 함은 이 얼마나 순박하뇨! 한담(寒潭)에 달이 비치고 古木에 가마귀 우짖음은 공교(工巧)롭기는 하지만 쓸쓸하고 가벼운 기상이 있다. (解義:글과 道와 사람은 능란한 것 보다 拙한 것을 높게 친다. 능한 것은 속되기 쉽고 아(雅)한 것은 拙에 가깝기 때문이다.) - <채근담> 自然篇
* 남의 조그만 허물을 꾸짖지 않고 남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으며 남의 지난 날 잘못을 생각지 말라. 이 세가지는 德을 기를 것이며 害를 멀리 할 것이다. - <채근담>
* 늙어서 나는 병은 이 모두다 젊었을 때 불러온 것이며 쇠(衰)한 뒤의 재앙도 이 모두다 성시(盛時)에 지은 것이니 그러므로 "君子는 가장 성할 때에 더욱 조심하느니라."
- <채근담>
* 쓸쓸한 모습은 무르익은 속에 있고 자라나는 움직임은 스러지는 가운데 있나니 그러므로 君子는 편안할 때에 마땅히 한 마음을 잡음으로써 후환(後患)을 생각할 것이요, 마땅히 백번을 참더라도 일 이룸을 도모하라. - <채근담> 修省篇
* 도덕을 지키는 이는 한 때만 적막해도 권세에 붙좇는 이는 만고(萬古)에 처량하다. 달인(達人)은 '나타나고 변하는 사물(事物) 뒤에 숨어서 불변하는 理'를 보는지라, 살아 있는 몸보다도 '죽은 뒤의 이름'을 생각나니 차라리 한 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萬古의 처량(凄凉)을 취하지 말라. - <채근담> 修省篇
* 귀 가운데 항상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마음 속에 항상 마음에 거리끼는 일을 지니면 이는 곧 德行을 닦아 빛내는 숫돌이 되리라. - <채근담> 修省篇
* '명아주 먹는 입 비름 먹는 창자'에는 얼음 같이 맑고 구슬처럼 조촐한 사람이 많지만 '비단 옷 입고 쌀밥 먹는 사람'은 종 노릇 시늉도 달게 여긴다. 대저 뜻은 담박(淡泊)함으로써 밝아지고 절조(節操)는 기름지고 달콤한 맛 때문에 잃어지는 까닭이다. - <채근담> 修省篇
* 사람되어 아주 고원(高遠)한 사업은 없을망정 세속의 情만 벗을 수 있으면 이내 명류(名流)에 들 것이요, 학문을 닦아 특출한 공부는 없더라도 물욕(物慾)의 누(累)만 던다면 이내 성인의 경지를 넘으리라. - <채근담> 修省篇
* 세상을 뒤덮는 공로도 '자랑할 긍(矜)'字 하나를 못 당하고 하늘에 가득찬 허물도 '뉘우칠 회(悔)'字 하나를 못 당한다. (공로를 세운 사람들은 자랑하지 말고, 죄 지은 사람들은 뉘우치라는 의미) - <채근담> 修省篇
* 일마다 하나의 넉넉함이 있어 다하지 않은 뜻을 남기면 조물(造物)이 나를 미워하지 못할 것이요, 귀신도 나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약 일은 반드시 가득함을 구하고 공도 반드시 가득함을 구한다면 안으로부터 변란이 일어나거나 바깥으로부터 근심을 부르리라.
- <채근담> 修省篇
* 굼벵이는 더럽건만 변해서 매미가 되나니 가을 바람에 이슬을 마신다. 썩은 풀은 빛이 없거늘 변해서 반딧불이 되나니 여름 밤에 빛을 낸다. 조촐함은 항상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음은 항상 어둠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알 것이다. - <채근담> 修省篇
* 뽐내고 건방진 것은 객기(客氣) 아님이 없나니 客氣를 항복받은 뒤에라야 正氣가 나타날 것이요, 情慾과 分別은 모두다 망심(妄心)이라 망심(妄心)을 없이 한 다음이라야 眞心이 나타날 것이다. - <채근담> 修省篇
* 객기(客氣)와 만용(蠻勇)은 바깥으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거짓되다.
* 배부른 다음에 음식을 생각하면 맛있고 없음의 구별이 사라지고 色을 쓴 다음에 淫事를 생각하면 사내 계집의 좋고 나쁨이 다 끊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일 뒤의 뉘우침으로써 일 앞의 어리석음을 깨뜨리면 그 본성이 바로 잡힐 것이요 움직임이 바르지 않음이 없으리라. - <채근담> 修省篇
* 근심하고 부지런함은 美德이지만 너무 고뇌하면 本然의 性情을 즐겁게 할 수가 없다. 담박(澹泊)함은 고풍(高風)이거니와 지나치게 고담(枯淡)하면 사람을 건지고 사물을 利롭게 할 수가 없다. - <채근담> 修省篇
* 부귀한 집은 너그럽고 후(厚)하여야 하거늘 도리어 각박함은 곧 부귀하면서 그 행실을 가난하고 천하게 함이니 어찌 능히 복을 받으리오. 총명한 사람은 거두고 감춰야 하거늘 도리어 자랑함은 곧 총명하면서도 그 병이 어둡고 어리석음에 있나니 어찌 패하지 않으리오.
- <채근담> 修省篇
* 낮은 데 살아야 높은 곳 오르기가 위태한 줄 알 것이요, 어두운 데 있어야 밝은 곳이 눈부심을 알 것이며 고요함을 지켜 보아야 움직임 좋아함이 부질 없음을 알 것이요, 말이 없어야 말 많음이 시끄러운 줄 알 것이다. - <채근담> 修省篇
* 부귀공명(富貴功名)의 마음을 다 놓아버려야 범속(凡俗)의 자리를 벗어날 것이요, 인의도덕(仁義道德)의 마음을 다 털어버려야 비로소 성현(聖賢)의 자리에 들어갈 것이다.
- <채근담> 修省篇
* 마(魔)를 항복시키려면 먼저 스스로의 마음을 항복받으라. 마음이 항복하면 군마(群魔)가 곧 물러나리라. '길 안든 마음'을 제어하려면 먼저 마음 속의 객기(客氣)를 제어하라. 氣가 평정하면 '날뛰는 마음'이 침입하지 못 하리라. - <채근담> 修省篇
* '욕정(慾情)에 관한 일'은 비록 쉽게 얻을 수 있더라도 즐겨하지 말고 조금이나마 '손끝에 물들이지 말라'. 한번 손 끝에 적시면 이내 만길 벼랑 아래로 떨어지리라. 도리(道理)에 대한 일은 그 어려움을 꺼리어 조금이라도 물러서지 말라. 한번 물러서면 문득 멀리 千山을 격(隔-막힐 격)하리라. - <채근담> 修省篇
* 마음이 농후(濃厚)한 사람은 스스로를 후대(厚待)할뿐 아니라 남도 또한 후대하는지라 곳곳마다 세밀하며, 마음이 담박(淡薄)한 사람은 스스로를 박대(薄待)하고 남도 또한 박대하는지라 일마다 담박(淡泊)하다. 군자는 평상의 기호를 너무 농염하게 해서는 못 쓰며 또한 너무 고적(枯寂)하게 하여도 못 쓴다. - <채근담> 修省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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