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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관찰력과 상상력이 진부해서는 절대 안된다...
2016년 12월 09일 21시 48분  조회:2268  추천:0  작성자: 죽림

좋은 시가 갖고 있는 덕목들
  ―등단작을 중심으로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여러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저를 여름 문학캠프 강연자로 초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한편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작년보다 더 알찬 내용으로 강연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써 3년째 계간 {미주문학}의 시 부문 작품평을 써오고 있는 저이기에 초청장을 받고서는 그 지면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직접 해드려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는 것을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계간평을 죽 써오면서 제가 느낀 아쉬움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미주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는 시인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부족하구나 하는 점입니다. 연세도 대개 높고, 새로운 자극을 받을 기회도 적고, 한국 현대시의 동향에 대해서도 어둡고, 남들보다 뛰어난 시를 써야겠다는 경쟁의식도 적고, 미국에서 살기에 신간 시집이나 문예지를 사서 보기도 쉽지 않고……. 뭐 이런 이유들로 고국에 있을 때 보았던 그 시풍으로 지금껏 쓰고 계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의 애송시며 명시는 아직도 1920∼30년대의 시입니다. 만해와 미당, 소월과 영랑, 백석과 상화, 윤동주와 이육사, 청록파 3인 등. 자, 그런데 우리 시단에는 모더니즘의 세례를 확실히 받은 김수영과 김춘수가 있었고 '후반기' 동인으로 대표되는 모더니스트들도 있었고, 80년대의 해체시가 있었습니다. 해체시는 실험시, 포스트모더니즘 시, 형태파괴시 등의 명칭으로 불리면서 80년대를 풍미하였고 90년대에도 적지 않은 작품이 씌어졌습니다. 천재시인 이상(李箱) 이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뭇 시인이 시 창작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미주한국문인협회의 일원으로 시를 쓰고 계시는 여러분은 과거의 시 창작 방법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날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과거로 도피하거나 현재에 안주한다면 여러분의 시는 답보상태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미주문학}이 동인지의 성격에 머물지 않고 한국 시단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만 그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 '충격'을 주는 시

  시가 지향하는 것에는 '감동', '충격', '깨달음' 같은 것이 있을진대 우선 '충격'에 무게중심을 둔 것을 몇 편 살펴보겠습니다. 고국의 일간지 가운데 중앙일보는 여름에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하는데, 지난해에 당선작으로 뽑힌 시를 읽어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여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 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 쳐요
  더 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 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 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 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 몸에 흘러와 머물지
  모르죠, 해바라기들이 모가지를 꺾는 가을도
  궁금해하며 몇 번은 내 안부를 묻겠죠
  그러나 이제 나는 멍든 새벽길, 휘어진 계단에서 
  늙은 신문배달원과 마주쳐도
  울지 않아요 
                           ―박연준, [얼음을 주세요] 전문

  저는 이 시가 수천 편이 투고된다는 신춘문예에 당당히 당선될 만큼 뛰어난 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시, 혹은 좋은 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방황하는 젊은이의 내면세계를 다룬 시로서, 신세대적인 감각과 문체, 발랄한 어법과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무척 신선한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생리혈을 손에 묻혀/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만큼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요, 도발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는 하지만 성욕은 함부로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러운 본능입니다. 그런데 성 담론을 하면서 박연준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떳떳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시인의 자기독백체의 어투에는 당당함과 아울러 반항기도 배어 있습니다. 기성세대를 향한, 기성시인을 향한 반항기 말입니다. 따뜻한 차 대신에 얼음을 달라고 하는 신세대의 어법 속에는 분명히 도발적인 것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은 이런 도발과 반항기를 높이 샀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문예지 당선작을 보겠습니다.

  여름 학기
  여성학 종강한 뒤, 화장실 바닥에
  거울 놓고 
  양다리 활짝 열었다.
  선분홍
  꽃잎 한 점 보았다.
  이럴 수가!
  오, 모르게 꽃이었다니
  아랫배 깊숙이
  이렇게 숨겨져 있었구나
  하얀 크리넥스
  잎잎으로 피워낸 꽃잎처럼
  철따라 
  점점(點點)이 피꽃 게우며, 울컥울컥
  목젖 헹구며, 나
  물오른
  한 줄기 꽃대였다네. 
                           ―진수미, [바기날 플라워] 전문

  1997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여성학 강좌를 지도한 교수가 이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랑스럽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었나 봅니다. 여성의 자궁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거룩한 곳이기에 위대한 모성의 상징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강좌를 들은 여대생 진수미는 화장실 바닥에 거울을 놓고 양다리를 활짝 열어 자신의 성기를 비춰보고 감탄을 합니다. 아랫배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자궁의 입구인 외음부를 보고 "철따라/점점이 피꽃 게우며", "울컥울컥/목젖 헹구며" 운운하는 내용으로 시를 써 당당히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인의 부모님은 이 시를 읽고 조금은 놀랐을 것입니다. 이 시 역시 후세에 남을 명시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수미라는 사람은 남들 다 아는, 혹은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색다르게 자신의 신체 일부에 대해 담론을 펼쳤기에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인의 관찰력이 무뎌서는 안 되며, 상상력이 진부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사물과 이 세계, 인간과 자연, 이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재구성해 내는 자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계간지 당선작을 봤으니 이번에는 월간 문예지 {현대시}의 2000년도 신인추천 작품상 수상작을 봅시다.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시간은 검은 칠로 보디 페인팅한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혼의 춤,
  그보다는 조용한 몸짓, 
  창백한 미소와 예리한 눈빛,
  추락하는 펀드매니저는 자기 운명을
  손가락 끝에 건다. 자기 몸의 끄트머리에
  그의 믿음의 섬이 있다. 배반의 해일.

  닉 리슨이 니께이 선물로 베어링 사를 망가뜨릴 때
  나는 (주)대우의 해외 DR을 팔아먹으려고
  자정까지 야근했다.
  검은 하늘에 뜬 달이 파리하게 아름다웠다.

  블랙 후라이데이의 후장(後場),
  주식시장이 설사했다. 주루룩 흘러내리는 블루칩.
  미수에 걸려 있는 나의 심장에 지진의 자장(磁場)이 흐른다.
  펀드매니저의 몸에서 몸으로 흐르는 
  검은 영혼의 전류, 아랫배가 짜르르 아프고
  허한 가운데 어떤 알 수 없는 후련함도 지나갔다

  깊게 아프게 패일수록 그곳에 진한 자장(磁場)도 고인다.
  그 독한 취기로 내일도 금융시장의 페달을 돌릴 
  빠른 손놀림들. 세계의 비틀거리는 자전거는
  어느 내리막길을 지나 평지에 다다를까. 낡은
  페달과 고장난 브레이크를 달고.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매일 번갈아 피는 목련, 장미, 난초, 국화, 동백
  주말에는 견디기 어려운 폭설이 내릴지 모른다
  너희들은 독한 자장(磁場)의 술을 마셔두렴. 
                           ―이명훈, [블랙 후라이데이] 전문

  한국 금융시장의 현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선물시세·주식시세·외환시세 따위에 울고 웃습니다. 유가는 또 어떻고 금리는 또 어떤가요.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우리는 바로 현대인입니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일상성'과 '현대성'입니다. 시인이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외면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면 일단 10대와 20대는 시를 읽지 않습니다.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 채팅을 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가 시를 읽지 않는 데는 기성세대 우리 시인들의 잘못도 조금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혹 그 동안 현실감 없는 시를 써온 것이 아닐까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고 인정 미담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이렇게 일상성과 현대성을, 현실의 잡사와 생활의 이모저모를 시에 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2000년도 월간 {현대시학} 신인작품 공모 당선작을 봅니다. 

  무등산에 올라
  바다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은
  광주 사람은 아니다

  슬픔이 목까지 부풀어 숨이 막힌 광주를
  대신 울어주려고
  산짐승의 작은 것까지도 다 파도 한 음절씩 들메주는 바다
  
  아무리 어두운 밤에도
  태양을 품속에 꼭 껴안아 재우고는
  첫 새벽이면 흔적 없이 서석대 위에 올려놓는 바다
  
  아직도 가파른 능선을 타고 역류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합창, 한 물결 아니었으면
  이미 불모의 사막이 되어 있을 바다
  
  장불재 억새 한 잎, 세인봉 노송 한 그루 고인 이슬이
  한여름에 소신공양하여 일군 칠산바다 천일염 맛인지 모르는 이들은
  옷깃 여미고 다시 무등산에 올라가 보라
                           ―[무등산 2000] 전문

  무등산을 역사의 수난지로 설정하여 애향의 의지를 담은 이 시는 소재며 주제가 무난합니다. 문제는 표현에 있어 새로운 구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하고 있기에 저에게는 별다른 울림을 주지 않습니다. 시가 가슴을 벅차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잔잔한 울림으로 와 닿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의 공감대는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얼음을 주세요]와 [바기날 플라워]는 적어도 동년배의 독자에게는 공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시인이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지 않는다면 기발한 상상력을 펼쳐 보여주거나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 감각으로 시를 읽는 묘미, 즉 언어의 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고 있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사물의 이면을 볼 줄 아는 견자이며, 이 세계의 온갖 사물에 새롭게 이름을 붙이는 명명자입니다. 또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기꾼이며 '역설'과 '반어'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소재와 주제가 낡디낡은 것, 혹은 너무나 뻔한 것이라면 표현이라도 좀 새로워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소개해 드릴 시는 소재가 낚시여서 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새로움을 추구한 시입니다.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

  바다가 변한다
  영등철이 지나 바다가 몸을 바꿔 체온을 올리고
  파도가 깃을 세우면
  그들은 산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곶부리를 휘어감는 곳
  빠른 리듬을 타고 온다
  영등 감생이의 시즌이다
  
  바닷물의 출렁거림은 흐름과 갈래를 지녔다
  가장 강한 놈은 가장 빠른 곳에서만 논다
  릴을 던져라 저기 분류대를 향해
  가쁜 숨 참으며
  마음속 깊이로 채비를 흘려라
  거칠고 빠른 그곳
  거기 비늘을 펄떡이는 완강함
  릴을 던져라
  
  바다는 몸을 뒤채며 이리저리 본류대를 끌고 움직이지만
  큰 놈은 언제나 본류에 있다
  본류는 멀고
  먼 데서부터 입질은 온다
  바다의 마개를 뽑아 올릴 힘으로 나를 잡아채야 한다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발밑에까지 끌려온 마찰저항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언제나 거기 있다
  막, 채비를 흘려보냈다

  온다
                                     ―윤성학, [감성돔을 찾아서] 전문

  강 낚시이건 바다 낚시이건 낚싯줄은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지요.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의 강점은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꽉 짜인 플롯입니다. 짧은 문장이 연속되고 명령형이 적절히 구사됩니다. 첫 연은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는 짧은 문장인데 끝 연은 "온다"라는 단 두 음절의 문장입니다.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시를 갓 잡힌 물고기처럼 퍼덕거리게 할 수도 있고 배를 뒤집고 죽어 있는 물고기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언어가 지닌 싱싱한 힘을 십분 느끼게 해줍니다. [감성돔을 찾아서]는 언어의 선택과 배치가 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소재와 주제가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라도 표현을 잘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감칠맛 나는 표현은 치밀한 묘사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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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꽃 ― 고은(1933∼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그 꽃’이라는 시는 단 세 줄로 되어 있다. 어쩐지 말이 부족할 듯도 싶다. 하지만 읽고 나면 여기에 무슨 말을 더 얹어야 좋을지 찾기 어렵다. 짧지만 여운이 깊다. 오히려 짧기 때문에 생기는 장점도 많다. 외우기 쉬운 데다가 시의 여백이 많아 행과 행 사이사이에 내 인생, 네 인생의 장면들이 끼어들기 좋다. 

 이 시는 인생의 여름을 맞이한 젊은이들보다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지내는 사람들에게 더 간절하게 읽힐 작품이다. ‘올라갈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꽤 살아온 덕에 삶과 육체의 내리막길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이 시의 울림이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인생의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오르는 것만을 생각한다. 저기 머나먼 정상 위에는 아주 중요한 목표 몇 가지만이 빛나고 있으니 그것을 향해 직진하지 않을 수 없다. 올라가야 하는 마음이 절실할 때에는 급하기도 하고, 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먼 곳의 환한 빛을 따라갈 때는 발밑의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정상의 별을 땄든, 따지 못했든 간에 시간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인생의 내리막길은 찾아온다. 별을 향해 뻗을 튼튼한 팔과 다리는 굽어지고, 사회적인 나이와 육체의 나이는 제멋대로 늘어만 간다. 그럴 때는 꼭 사람의 삶이 부스러져서 점차 폐허가 되어가는 듯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원한 것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려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시는 큰 위로가 되어 준다. 시인에 의하면 내려가는 것은 지는 것도, 잃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새로운 국면일 뿐이다. 게다가 내려갈 때에는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꽃을 발견한다는 말은 사람이 고개를 숙일 줄도 알고, 허리를 굽힐 줄도 알고, 작고 고운 것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가을과 겨울, 내리막길의 어느 때는 크게 황량한 것만은 아니다. 그때는 그때 나름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귀한 무엇이 있어 내려갈 때 하나씩 찾는 삶은 쓸쓸하지 않다. 그렇게 찾아낸 꽃들은 인생의 보물 상자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읽어보기@---

   
▲ 공강일 서울대 강사
 

학생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시작할 때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각오로 써야 하는지를 말해주기 위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정작 나는 그렇게 못 쓰지만, 학생들이 나 대신으로라도 이런 글을 써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 이야기는 우주의 어둠으로부터 시작한다. 
 
우주에는 숱한 별들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은하가 존재하며, 또 태양과 같은 행성이 은하 속에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주엔 태양과 같이 빛을 뿜어내는 별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빛들에 의해 밤도 낮처럼 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밤하늘은 어두운 것일까? 
 
이 문제는 1820년대에 활동했던 독일인 물리학자 올버스 혹은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올베르스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올베르스 역시 나름의 답을 내 놓았는데, 먼지와 가스층이 빛을 모두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다른 행성이 내는 열과 빛을 먼지와 가스층이 흡수하고 있다면, 이러한 먼지와 가스층 역시 빛을 방출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열역학 제1법칙이 말해주듯 에너지는 보존되기 마련이며 그렇게 흡수된 빛은 어떤 식으로든 방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먼지와 가스층이 빛을 흡수한다고 해도 거기에 방출된 빛에 의해 밤하늘은 밝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대로 된 답일 수 없다. 

이 문제에 해법의 실마리를 던져 준 사람은 물리학자도 그렇다고 과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밤하늘의 신비에 매료되었던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였다.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유레카`, 1848 



포는 이런 답변을 내놓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당차게 말했다. 저 오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실제로도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방출된 빛이 왜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정도. 대부분의 어려운 문제가 그러하듯 이러한 문제는 인식의 지층에서 몇 발자국만 벗어나도 금방 답을 얻을 수 있다. 

1800년대만 해도 사람들은 우주가 무한히 넓고, 무수히 많은 별들이 균일하게 퍼져 있는 정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나 균일한 별이 있다면, 거기에는 태양과 같이 빛을 내는 별들 역시 균일하게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을 등지고 있는 밤중에도 다른 항성이 내는 빛에 의해 밤하늘은 밝아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인식에 가로막혀 과학자들은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포는 사유를 통해, 글쓰기를 통해, 당대적 인식을 무참히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 “새 신발을 샀다며 /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 나는 마침 면도를 막 끝낸 참이었다. / 두 사람은 교외로 / 가을을 툭툭 걷어차며 걸어갔다.” 이것은 일본 시인 가야마 쇼헤이가 1938년 발표한 짧은 작품이다. 지금 산은 온통 가을이어서 가을을 툭툭 걷어차며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 “새 신발을 샀다며 /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 나는 마침 면도를 막 끝낸 참이었다. / 두 사람은 교외로 / 가을을 툭툭 걷어차며 걸어갔다.” 이것은 일본 시인 가야마 쇼헤이가 1938년 발표한 짧은 작품이다. 지금 산은 온통 가을이어서 가을을 툭툭 걷어차며 걷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 속에는 빛이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조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왜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대의 우주관을 완전히 뒤집는 인식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은 우주가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동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무한한 우주가 아닌 분명히 한계를 가지는 유한한 우주를 사유하게 되었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멀어지고 있는 것이 진실이다. 그러니 행성의 빛은 멀어지는 우주공간 속에서 영원히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끝끝내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포는 이러한 사실의 언저리에 비슷하게 가닿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유가 가능했던 것일까? 오로지 언어로. 포는 언어가 만드는 아름다움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에 통념이나 상식이라는 인식 너머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가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밀고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통 `미쳤다`고 말하는 그 상태 말이다. 글쓰기는 인식 내부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바깥을 지향한다. 그것이 글 쓰는 자의 윤리이며 존재론적 사명이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법, 도덕, 윤리, 나아가 사실이라고 불리는 것들까지도 넘어서는 일, 가로막힌 인식을 문장과 문단을 이용해 도약하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허리`이며, 글쓰기의 `자궁`이다. 이런 글쓰기가 아니라면 무엇 하러 글쓰기를 감행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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