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아흐마토바1889년 6월 23일 ~ 1966년 3월 5일는 소련의 여류 시인이다. 아흐마토바는 필명이며, 본명은 안나 안드레예브나 고렌코이다. 러시아 제국에 속하는 오데사(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함)에서 태어났다. 11세부터 시를 썼으며, 키예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의 차르스코예 셀로에서 교육받았고, 차르스코예 셀로에서 니콜라이 구밀료프를 만났다. 1910년 구밀료프와 결혼했고 1912년 아들 레프를 낳았다. 남편 및 다른 시인들과 함께 모더니즘적 시문학 운동인 아크메이즘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남편과 결별하고 아크메이즘 운동은 러시아 혁명으로 소멸되었다. 《저녁(ВЕЧЕР)》(1912), 《Anno Domini MCMXXI》(1922) 등의 초기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소련 당국으로부터 부르주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활동을 거의 중단해야 했다. 1940년에야 새 시가 몇 편 출간되었고 전쟁 중 사기를 돋우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거나 시선집을 출간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도 스탈린주의의 영향속에 비판과 찬양이 반복되었다가 스탈린 사후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여 여러 시선집과 평론을 발표하여 큰 호평을 받았고, 여러 외국의 시를 번역·소개하는 일도 하였다. 그의 명성은 국제적으로도 높아져,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도 국제 문학상을 수여하였다. 1966년 레닌그라드에서 76세로 사망하였다. 사망 후 더욱 높이 평가되었으며, 20세기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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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нна Андреевна Ахматова (1889-1966)
1. 아흐마토바의 생애
안나 아흐마토바는 1889년 6월11일 남러시아 오데사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퇴역한 해군의 조선기사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페테르부르크에서 보냈고, 1907년 키예프 고등학교를 마치고 키예프 여자대학 법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법률사와 라틴어에는 흥미를 느꼈으나 딱딱한 법룰과목에는 곧 흥미를 잃었다고 한다.
아흐마토바는 1910년 아크메이즘 시인인 구밀료프와 결혼했다. 1912년 구밀료프와의 사이에서 아들 례프를 낳았다. 그녀의 삶에서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구밀료프와 이혼후에도 두 차례나 재혼을 하지만 역시 행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첫번째 남편인 구밀료프가 볼세비키 혁명 와중에 반혁명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으로 종신형이 처해졌고, 그 여파로 아흐마토바와 그녀의 아들 례프도 감시를 받게 된다. 아들 례프는 이후 체포되어 시베리아 수용소라 끌려가기도 했다.
그녀의 시도 많은 제재를 받았다. 이 시기에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 작품을 번역하는 데 할애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의 시도 러시아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잇다. '당의식'이 강조되던 시기에 그녀는 '에로티시즘과 신비주의에 빠진 예술지상주의적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작가동맹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죽고, 아흐마토바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해빙기의 물결을 타고 그녀의 시집들은 간행되었다. 시인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아흐마토바는 1964년 이탈리아에서 시인상을, 그리고 1965년에 옥스포드 대학의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3월5일 모스크바 근교 도모제도바에서 사망하였다.
2. 아흐마토바의 시세계
그녀의 첫번째 시집 "저녁"(1912)에는 아크메이즘이 주장한 선명함, 정교함, 간결함, 치밀한 세부묘사가 잘 나타나있으며, 인생, 사랑, 슬픔, 고독감, 상실감의 모티브가 담겨있다.
그녀의 초기 서정시는 주로 사랑과 이로인한 슬픔의 테마를 뛰어난 시적 기교로 그리고 있다. 아크메이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그녀는 정확한 감정묘사를 통해 구체적인 대상과 그 내면을 깊이 있게 전달하며, 사랑을 주제로 한 서정시들을 극도로 절제된 감정, 정교한 장치, 다듬어진 이미지로 묘사하며 그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건대출판부 "러시아 문학감상" p195 발췌정리
마지막 만남의 노래
안나 안드레예브나 아흐마토바
가슴은 어쩔 수 없이 차가웠지만
나의 발길은 가벼웠다.
나는 오른손에
왼손 장갑을 끼어 보았다.
여러개 있는 듯 싶은 계단
알고보니 세개 뿐이다.
단풍나무 사이로 가을 소리가
나를 부른다. : "함께 죽어요!
나는 슬프고 변덕장이인
사악한 운명에 속았어요..."
나는 대답했다. : "사랑하는 사람아!
나도 그래요. 같이 죽어요..."
이것이 마지막 만남의 노래다.
나는 어둠에 잠긴 집을 바라보았다.
침실에서만 촛불이
노란 불꽃을 내며 무심히 타고 있었다.
1911.9.29
@ Анна Андреевна Ахматова (1889-1966)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는 1889년 6월11일 남러시아 오데사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퇴역한 해군의 조선기사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페테르부르크에서 보냈고, 1907년 키예프 고등학교를 마치고 키예프 여자대학 법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법률사와 라틴어에는 흥미를 느꼈으나 딱딱한 법률과목에는 곧 흥미를 잃었다고 한다.
아흐마토바는 1910년 아크메이즘 시인인 구밀료프와 결혼했다. 1912년 구밀료프와의 사이에서 아들 례프를 낳았다. 그녀의 삶에서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구밀료프와 이혼후에도 두 차례나 재혼을 하지만 역시 행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첫번째 남편인 구밀료프가 볼세비키 혁명 와중에 반혁명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으로 종신형이 처해졌고, 그 여파로 아흐마토바와 그녀의 아들 례프도 감시를 받게 된다. 아들 례프는 이후 체포되어 시베리아 수용소라 끌려가기도 했다.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 시를 보면 알겠다. 살벌한 공산국가에서 자유를 노래하고 사랑을 구가한 시인 아흐마토바, 그녀의 시는 짙붉은 핏덩이다. 그녀의 삶은 사흘이나 고아 줄인 진액의 뼈이기도 하다.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길에서 처절하게 절규하는 한 여성이 보인다. 자유와 사랑을 불 지르는 시인이 보인다.
<신달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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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ечером
Звенела музыка в саду
Таким невыразимым горем.
Свежо и остро пахли морем
На блюде устрицы во льду.
Он мне сказал: "Я верный друг!"
И моего коснулся платья.
Как не похожи на объятья
Прикосновенья этих рук.
Так гладят кошек или птиц,
Так на наездниц смотрят стройных...
Лишь смех в глазах его спокойных
Под легким золотом ресниц.
А скорбных скрипок голоса
Поют за стелющимся дымом:
"Благослови же небеса -
Ты первый раз одна с любимым".
Март 1913
저녁
뜨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말할 수 없는 슬픈 곡조로 울린다.
얼음 접시에 놓인 생굴은
신선하고 짜릿한 바다 내음을 풍긴다.
"당신의 진실한 벗은 나야!" 하며,
그는 내 옷자락을 매만진다.
이 손길
포옹과는 너무도 다르다.
고양이나 새들을 바라보듯,
날씬한 여자 조련사를 바라보듯..
조용한 그는
눈이 부드런 금빛 눈썹 아래 웃고 있을 뿐이다.
바이올린의 구슬픈 선율이
떠도는 연기 사이로 흐른다.
"처음으로 연인과 함께 있음을,
하늘에 감사하라..."
Хорони,хорони меня,ветер!
Родные мои не пришли,
Надо мною блуждающий вечер
Дыхание тихой земли.
Я была,как и ты, свободной,
Но я слишком хотела жить.
Видишь,ветер,мой труп холодный,
И некому руки сложить.
Закрой эту черную рану
Покровом вечерней тьмы
И вели голубому туману
Надо мною читать псалмы.
Чтобы мне легко одинокой,
Отойти к последнему сну,
Прошуми высокой осокой
Про весну,про мою весну.
1909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정든 이 아무도 오지 않고
떠도는 저녁과
대지의 고요한 숨결만 찾아든다.
너처럼 자유로웠던 나
너무도 살고 싶었다.
바람아, 보아라.
아무도 돌볼 이 없는 차디찬 내 육신을
저녁이 만든 어둠의 옷으로
이 검은 상처를 덮어다오.
그리고 푸른 안개가 나에게
송가를 읽어주게 해다오,
마지막 잠이 들
외로운 내 영혼을 위하여.
키다리 사초처럼 울어다오,
봄을 위하여, 나의 봄을 위하여.
1909
***
О тебе вспоминаю я редко
И твоей не пленяюсь судьбой,
Но с души не стирается метка
Незначительной встречи с тобой.
Красный дом твой нарочно миную,
Красный дом твой над мутной рекой,
Но я знаю, что горько волную
Твой пронизанный сердцем покой.
Пусть не ты над моими устами
Наклонялся, моля о любви,
Пусть не ты золотыми стихами
Обессмертил томленья мои -
Я над будущим тайно колдую,
Если вечер совсем голубой,
И предчувствую встречу вторую,
Неизбежную встречу с тобой.
1913
***
나는 당신을 간간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의 운명에도 끌리지 않아요.
하지만 영혼에서 당신과의 사소한
만남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을거예요.
당신의 붉은 집을 일부러 지나가죠.
흐린 강가 위의 당신의 붉은 집을.
그러나 나는 당신의 평정이 스며드는 태양으로
상당히 동요하고 있음을 알지요.
당신이 사랑을 기원하며 내 입술 위로
숙이지 않았을지라도
당신이 나의 고뇌를 시로서 영원히
남기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비밀스레 미래에 마법을 걸 것이고
만일 완전히 푸르러진 저녁의
두번째 만남을 예감한다면
당신과의 만남을 피하지 않겠어요.
1913
Лотова жена
Жена же Лотова оглянула
позади его и стала соляным столпом.
(Книга Бытия )
И праведник шел за посланником бога,
Огромный и светлый, по черной горе.
Но громко жене говорила тревога:
Не поздно, ты можешь еще посмотреть
На красные башни родного Содома,
На площадь, где пела, на двор, где пряла,
На окна пустые высокого дома,
Где милому мужу детей родила.
Взглянула - и, скованы смертною болью,
Глаза ее больше смотреть не могли;
И сделалось тело прозрачною солью,
И быстрые ноги к земле приросли.
Кто женщину эту оплакивать будет?
Не меньшей ли мнится она из утрат?
Лишь сердце мое никогда не забудет
Отдавшую жизнь за единственный взгляд.
24 февраля 1924
롯의 아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도다
(창세기)
외로운 자는 어두운 산길을 따라
거대하게 빛나는 신의 천사를 뒤따라 간다.
그러나 아내에게 불안의 소리가 들린다.
"늦지 않았다. 당신은 아직 돌아볼 수 있다.
고향 소돔의 붉은 탑과
당신이 노래부르던 광장과, 뛰어놀던 뜨락과
사랑하는 남편의 아이를 낳은 곳
그 커다란 집의 텅빈 창문을"
그녀가 얼핏 돌아보자, 죽음의 고통으로
두 눈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몸뚱이는 투명한 소금 기둥이 되고,
민첩라던 두 발이 땅에 박혔다.
누가 이 여인을 위해 슬퍼할까?
조금이나마 그녀의 상실감을 생각해 줄 이는 누구인가
내 마음만은 잊을 수 없다.
순간의 시선에 삶을 바친 그녀를
Было душно от жгучего света,
А взгляды его - как лучи.
Я только вздрогнула: этот
Может меня приручить.
Наклонился - он что-то скажет...
От лица отхлынула кровь.
Пусть камнем надгробным ляжет
На жизни моей любовь.
2
Не любишь, не хочешь смотреть?
О, как ты красив, проклятый!
И я не могу взлететь,
А с детства была крылатой.
Мне очи застит туман,
Сливаются вещи и лица,
И только красный тюльпан,
Тюльпан у тебя в петлице.
3
Как велит простая учтивость,
Подошел ко мне, улыбнулся,
Полуласково, полулениво
Поцелуем руки коснулся -
И загадочных, древних ликов
На меня посмотрели очи...
Десять лет замираний и криков,
Все мои бессонные ночи
Я вложила в тихое слово
И сказала его - напрасно.
Отошел ты, и стало снова
На душе и пусто и ясно.
1913
곤혹
1
강렬한 빛으로 숨이 막혔다.
그의 눈길은 마치 광선같다.
나는 겨우 몸을 떨었다. 이것이
나를 길들일지도 모른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뭔가를 말할 것이다.
피가 얼굴로 역류했다.
사랑이 내 삶에 묘석처럼
놓이게 해다오.
2
사랑하지 않는가? 보고싶지 않은가?
오, 저주받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난 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난 날개가 있었다.
안개가 내 눈에서 빛을 가릴 것이고,
사물들과 얼굴들이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다만 붉은 튤립만이
당신의 튤립만이 단추구멍에 있다.
3
소박한 말투가 명령하는 듯이
내게 다가와 웃었다.
조금은 게으르게, 조금은 상냥하게
그는 손에 키스를 했다.
알 수 없는 오래된 얼굴들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감각을 잃고 외쳐온 10년동안
계속되는 나의 잠못 이루는 밤을
나는 조용한 말 속에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말했다.
- 헛되도다. 당신은 떠났다.
그리고 또 다시 내 영혼은 텅비고 명료해졌다.
1913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바람아 나를 묻어다오!
정든 이 아무도 오지 않고
떠도는 저녁과
대지의 고요한 숨결만 찾아든다.
너처럼 자유로웠던 나
너무도 살고 싶었다.
바람아, 보아라.
아무도 돌볼 이 없는 차디찬 내 육신을
저녁이 만든 어둠의 옷으로
이 검은 상처를 덮어다오.
그리고 푸른 안개가 나에게
송가를 읽어주게 해다오,
마지막 잠이 들
외로운 내 영혼을 위하여.
키다리 사초처럼 울어다오,
봄을 위하여, 나의 봄을 위하여.
/안나 아흐마토바
[시가 있는 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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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안나 아흐마토바(1889~1966)
공포가, 어둠 속 뭔가를 더듬으며,
달빛 이끈다 도끼한테로
벽 뒤로 들리는 불길한 소리 -
뭐지, 쥐, 유령 아니면 도둑?
(…)
윤기 있는 검은 수염 사내
다락 창 밖을 휙 지난다 -
그리고 조용. 어찌나 사악하고 능란한지,
그가 성냥 숨겼고 촛불 껐다.
(…)
더 낫지 차라리 잔디 광장이리면
(…)
붉은 피 쏟다가 죽어버리는 것이
DA 300
(…)
부패의 냄새, 현기증 날 정도로 달콤한 그것
인다 서늘한 시트에서.
1921년 아직 발칙하고 강건한 러시아 여성 자유연애주의자였던 시인의 초기 소비에트 사회 체험. 체질적인 불화가 예리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1935~40년 쓰여진 스탈린 시대 ‘진혼곡’은 유례없는 격조와 깊이의 슬픔에 달하고, 그 에필로그는 이렇게 시작된다. ‘배웠다 나, 어떻게 떨어지는지 얼굴이,/어떻게 눈꺼풀 아래에서 엿보는지, 공포가,/어떻게 딱딱한 쐐기문자 페이지를/고통이 입히는지, 뺨 위에,/(…)/미소가 복종의 입술 위에서 시들고,/마른 웃음으로 몸을 떠는지, 두려움이/(…)’ <김정환·시인>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기념박물관
러시아 문학의 거장 중 한 명을 기리는 이 박물관에서 매혹적인 문학적 저항의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얻어 가세요.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기념박물관은 제2차 세계대전과 스탈린의 공포 정치에 대한 그녀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유명한 여류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아흐마토바가 밟은 것과 같은 마루를 밟아보고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스탈린 대숙청을 비판하는 고발장적 성격을 띈 그녀의 레퀴엠 시로 제일 유명한 저자가 쓴 원고를 읽어보세요.
안나 아흐마토바는 안나 안드레예브나 고렌코의 필명이었습니다. 오데사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했습니다. 아흐마토바는 1966년에 사망할 때까지 지금의 박물관에서 살았습니다. 그녀와 사실혼 관계인 니콜라이 푸닌의 소유였습니다. 미술사가 푸닌은 당국과 문제가 생겨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사망했습니다. 그의 투옥은 레퀴엠에 대한 영감의 주요 원천이 되었습니다. 한두 시간 정도 보내면서 아흐마토바의 삶과 작품에 대해 배우고 러시아 문학 풍경에 기여한 그녀의 업적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스탈린주의가 온 나라를 사로 잡았던 밤에 그녀가 영국 대사관의 서기관 이사야 벌린과 유명한 대화를 나누던 거실에 들어가 보세요. 그녀의 삶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예술 작품을 살펴보고 그녀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던 가구들 사이를 걸어가 보세요. 전시는 전체주의 소련 상태에서 당국에 의한 검열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어떻게 생존하고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지에 대해 조명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아흐마토바의 아들인 역사가 레프 구밀레프와 그녀의 동료 시인이자 제자 조지프 브로드스키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기회를 가져 보세요. 아파트에서 구밀레프에 대한 전시를 찾아보고 재현된 브로드스키의 매사추세츠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는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아흐마토바의 제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세요. 아흐마토바를 만났을 당시에는 젊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지만 나중에 브로드스키는 노벨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기념박물관은 마야코브스카야 또는 블라디미르스카야 및 도스토예프스카야 지하철 역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습니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됩니다. 소정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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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아흐마토바 박물관의 역사
1989년, 러시아 국민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녀의 박물관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세레메체프스키 궁전 남쪽에 세워 졌다. 세레미체프스키 궁전은 18세기 페테르부르크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의 하나이며, 폰탄카 운하 34번지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이 안나 아흐마토바가 살았던 유일한 곳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그녀는 생애의 가장 중요한 기간을 보냈고, 특별히 이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세레미체프스키 궁전이 그녀의 창조적 영감을 자극했음에 분명하다.
안나 아흐마토바의 남편은 당시 유명한 예술 비평가이자, 러시아 미술 협회원이었던 니콜라이 푸닌이였는데, 1920년대 중반 그들은 이곳으로 이사해 왔고, 1952년까지 이곳에 살았다.
안나 아흐마토바의 박물관에는 13,500 편 이상의 작품과 25,000 편이상의 습작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박물관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애서가 M. S. Lesman이 모아놓은 서적 3,000 여권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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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아흐마토바의 시는 고난과 슬픔으로 점철된 자신의 생애와 그녀가 살던 성·페테르부르그를 노래한 것이 많다. 지난 세기 러시아 시유파 ‘아크메이즘(acmeism)’의 대표적 시인이자 당대에 풍미했던 상징주의에 반하여 자신의 생활주변의 일들을 ‘아크메’에서 포착함으로써 ‘아름다운 정확성’을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문학기념관을 찾아 그녀가 살다간 발자취를 찾는 것은 그 시심을 헤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문학관이 있는 리테이니거리의 모습은 영락없는 유럽이다
4, 5층 건물이 가지런히 이어져 있고 여기저기 있는 동네 가게들 가운데는 예외 없이 미국식 속성음식체인점이 한두 개 끼어있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 건물이 입구에 들어서면 큰 정원을 가운데 두고 대저택이 ‘ㅁ’자로 둘러 쌓여 있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수목이 가득차 이곳이 대도시 안이라는 것을 잊게 하고 있다.
이 저택은 2백년동안 제정러시아의 한 귀족가문이 살던 곳인데 볼셰비키혁명 때 박물관과 아파트로 개조되었다.
이 저택의 좌측에 1989년 개관된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 2층에서 시인은 그의 남편인 미술사가美術史家 니콜라이 푸닌과 함께 살았다.
건물에 들어서면 매표소, 비디오 쌀롱과 기념품 코너 등과 시인의 소개를 한 패널이 잘 정돈되어 있다. 전쟁 전후의 러시아 지성인들의 생활상과 아흐마토바의 생애와 문학을 소개한 패널들도 벽공간을 잘 이용해서 붙여져 있다. 2층에 들어서면 대저택 안에서 갑갑함을 느낀다. 높은 천장에 방들이 졸망졸망한 것이 어색하다. 혁명 이후 평등을 외치며 인민들이 닥쳐들어 큰 방들을 쪼개어 살았던 것이다. 〈닥터 지바고〉 영화가 실감나게 나타낸 그 으시시하고 우스꽝스런 장면이 연상된다. 그런 졸망졸망한 방 몇 개에 시인이 살던 자취가 남아 있는데 특별한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엌, 침실, 거실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비좁다. 부엌에는 벽난로 페치카가 보이는데 옛 귀족들의 화려함보다는 격동기의 어려웠던 살림이 엿보인다. 당시 쓰던 등유통, 러시아의 차주전자 사모바, 식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침실과 거실의 가재도구들, 가족과 친지들의 사진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 성·페테르부르그의
안나 아흐마토바 문학관 정문
큰 저택에 여러 가구들이 들어서 살았다는데 목욕탕과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공용화장실이 건물 어느 구석인가에 있었다는데 사람사는 것이 참 불편했을 것이다. 시인은 이 집에서 1922년부터 30년간을 살았는데 남편 푸닌과 별거를 한 후에도 한 집에서 살았다. 스탈린 시절 사는 것이 어려워 별거한다는 것이 바로 옆방으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이 집에서 시인은 대표작 〈진혼곡〉을 완성하고, 〈주인 없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진혼곡〉은 스탈린의 학정을 비판하는 작품이었고 〈주인 없는 시〉는 이 집을 떠나서도 10년 후에 완성한 대하 서사시이다. 이러한 시들이 스탈린정권 눈에 들 리가 없었다. 그녀는 ‘침대와 교회를 오가는 미친 여인’으로 낙인찍히고 많은 박해를 받았다. 공산주의 치하에서는 체제찬양에 가담하지 않으면 작가들이 아흐마토바처럼 박해를 받았다. 이를 견디지 못하여 많은 작가들이 서방으로 피신을 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야스코프같은 혁명 초창기때 깃발을 올렸던 시인도 스탈린의 학정을 견디지 못해 37세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
▲ 안나가 말년을 지낸 문학관
그 와중에서도 아흐마토바는 이 집을 떠나 중앙아시아로 쫓겨갔다가 성·페테르부르그에 다시 돌아와 77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만큼 러시아를, 성·페테르부르그를 사랑한 것이다. 시인이 떠난 지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녀의 간결하고도 깊이 있는 시정신이 이제 이렇게 좋은 문학관에 이어지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맞는다. 시인과 예술가들을 박해하던 ‘혁명전사’들을 누가 작아 보였던 옛날의 피압박예술가들만큼 따뜻한 마음으로 기억해 줄 수 있을 것인가.
(/ 김호기 한무숙문학관 관장)
안나 아흐마토바
러시아의 위대한 여류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도 호된 시련을 겪었습니다.
첫 남편과 재혼한 남편 모두 처형을 당했고, 그녀의 아들은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수용소에서 보냈습니다.
혁명 이전에 이미 유명한 시인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1925 ~ 1952년까지 정치적인 박해를 받아 푸시킨에 관한 학술논문 몇 편과 번역 작품,
2차 세계대전 중 즉흥적으로 쓴 몇 편의 애국시 외엔 아무것도 출판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스탈린 치하의 삶을 주제로 한 그녀의 대작<레퀴엠>은 1966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러시아에서 출판되지 못했다고합니다.
러시아의 시인. 죽은 뒤에야 비로소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여류시인으로 인정받았다.
롯의아내
- 안나아흐마토바
(스탠리쿠니츠, 맥스헤이워드공역)
그리하여그죄없는남자는빛을발하는천사의
거대한자취를쫓아검은산을넘었다.
그러는동안에도한음성이끊임없이이여인을괴롭혔다.
“아직너무늦은건아냐. 지금돌아보면볼수있어.
네가태어난고향소돔의붉은성채들이며,
네가한때노래불렀던광장, 물레질하던헛간,
이제내다보는사람없을그높다란집의창문들
자식을낳아준네부부의침상이있는그집을.”
한차례힐끗돌아본순간, 무슨소리도내기전에
날카로운고통이바늘처럼여인의두눈을찌른다. . .
여인의몸뚱이는하얗게바스러져투명한소금기둥이되고
서둘러걷던여인의두다리는땅에뿌리박혀버렸다.
누가이여인을슬퍼해줄것인가? 이여인은
우리의관심을끌기에너무하찮은존재같지않는가?
하지만내마음은이여인을결코나무랄수없다.
돌아보기를택했다는이유로죽음을당한이여인을
[천양희의 문학의 숲] 슬픔으로 피워낸 꽃
나는 가끔 말을 거꾸로 읽는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 싶을 때 답답함을 푸는 한 방법이다. 가령 정치를 치정으로, 교육을 육교로, 작가를 가작으로, 사설을 설사로, 시집을 집시로, 가출을 출가로, 입산금지를 지금 산에 들어감으로, 자살을 살자로 읽어보는 것이다.
읽고 나면 무엇이든 본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좋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방법이 아름다운 봄꽃들 때문에 다른 생각으로 바뀌었다. 꽃들은 아무리 무리지어 피어나도 저마다 홀로 아름다운데 나는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홀로 아름다웠나 하는 반성 때문이다. 내가 회복해야 할 것은 거꾸로 읽는 말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름다움이라고 처음부터 그냥 아름다움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아름다움도 그 나름대로 숱한 상처를 지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이란 상처가 피워낸 꽃이라 말하고 싶다. 상처를 알고 슬픔을 삭인 사람만이 아름다움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상처 때문에 많이 아프거나, 슬픔 때문에 끝도 없이 무너질 때 러시아의 여성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내 목소리는’을 읽으면서 지금 내 목소리는 어떨까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내 목소리는 가냘프지만/ 의지는 약하지 않네/ 사랑이 없으니 내 마음 오히려 가벼워졌네/ 하늘은 드높고/ 산바람 불어오니/ 티 하나 없는 나의 생각들/ 불면증을 돌보던 간병인도 다른이에게 가버렸고/ 나 이제 회색빛 재를 갈망하지 않으니/ 시계탑 문자판의 휘어진 바늘이/ 죽음의 화살로 보이지도 않네/ 과거는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네/ 자유는 눈 앞에 와 있으니/ 나는 모든 것 허락하네/ 햇살이 촉촉한 봄의 담쟁이 덩굴을 따라/ 뛰어내리는 것을 지켜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이란 그녀는 역사의 격랑과 개인의 상처로 파란만장하게 살았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살다간 시인이다.
▲ 천양희 시인
[천양희의 문학의 숲] 슬픔으로 피워낸 꽃
그는 여섯 살 때부터 시를 쓴 신동이었고 23세 때 첫 시집 ‘저녁’을 냈으며 다섯 살 때부터 톨스토이의 철자교과서에 따라 글 읽는 법을 배웠고 프랑스 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세기 초 20년 동안 러시아의 가장 인기 있었던 시인이기도 한 그에게도 16세 때 부모의 이혼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좋은 시를 만나면 ‘나는 감동에 젖어 모든 슬픔을 잊고 그것을 읽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이 한마디로도 그가 얼마나 시를 사랑했고 운명처럼 생각했는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슬픔이라며 슬픔을 시로 꽃피운 그를 생각해 보는 아침. 비로소 나도 슬픔만한 거름이 없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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