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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의 음주시 연구
려원
초 록
세인들이 다 알다시피,당시(唐诗)는 중국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특히 이백의 시작품들은 당시에서 한마디로 평판할 수 없는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걸작들은 현재 약900여수가 유전되고 있다. 이런 시 들은 이백의 평생의 포부와 미학사상을 표현하였으며 성당시기 사회 현실 과 정신 생활을 예술적으로 집중화하고 있다. “성당지음”의 걸출한 대표로 되어 있는 그의 시작품들은 독특한 낭만 적 풍격으로 하여 천고절창이 되었고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다.그는 초당이래 시가 혁신의 역사적인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성하였는데 중국 고전시가의 혁신과 중국고전문학의 발전에 크게 탁월한 공헌을 하였다. 이백의 시창작 풍격을 연구하는 것은 당조시기 시가의 기본면모를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뿐만 아니라 중국고대 시가들을 한걸음 더 이해할 수 있고 미래 시가의 발전을 위한 방향을 가일층 모색할 수 있다. 이백의 시가들은 이미지가 아주 많은데 본고는 이백의 음주시 중의 낭만주의와 호방표일한 풍격을 재조명하려 한다. 키워드: 이백 시풍격 음주시 호방표일 낭만주의
차 례 논문초록…………………………………………………………………………1~2 제1장 서론……………………………………………………………………4~5 제2장 본론……………………………………………………………………6~10 2.1이백의 생애…………………………………………………………………6~8 2.2대표적인 음주시의 분석…………………………………………………8~10 2.2.1 장진주(将进酒)의 분석 2.2.2 월하독조(月下独钓)의 분석 제3장 결론………………………………………………………………… 12~13 감사의 말………………………………………………………………………14 참고문헌………………………………………………………………………15
제1장 서 론
본 고는 이백의 생애와 그를 대표하는 음주시를 둘러싸고 이백의 창작 사상과 그의 문학관에 대해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백은 중국 시가사에서 대표적 시인이다. 흔히 당시를 중국 문학의 꽃으로 비유하는데 이백이야말로 당시 가운데 꽃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이다. 또한 이백의 시는 다른 시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월등한 위치에 있으며 현전하는 이백의 시는 약 천 수에 달한다. 이백의 시는 당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백은 천재시인이라 불린다. 그는 시를 지을 때 퇴고 없이 일필 휘지로 써 내려간다. 이백은 호방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시를 썼으며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이백하면 음주 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백의 시가들 중에서 많은 것이 정치서경시이다, 이것들은 시인의 비범 한 포부,분방한 격정, 호쾌한 기개를 충분히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당 (盛唐)시가 앙양되고 분발한 전형적인 음조를 집중으로 대표하였다. 이백 의 시가 제재는 아주 다양한데 7언절구,5언절구와 고체시등 있다. 이백은 술의 친구이어서 음주시는 대표적이고 유명하다. 이백은 성당문화 속에서 배출된 천재적 시인이어서 성당시가의 기(气)와 정이 이백의 시가들에서 남김없이 표현되고 있다. 그의 시가창작은 열정 으로 넘치고 있으며 기특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장쾌한 경치 도 있고 자연스러럽고 명쾌한 경지도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래서 이백의 매력은 바로 성당의 매력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이백의 강렬한 감정의 분출에 의해 과장된 비유,풍부한 상상 등 낭만주의 표현 기법과 신화전설을 능란하게 운용해서 호방한 기개, 앙양된 정조, 기특한 형상과 비범한 경지를 개척하고 있어서 강렬한 예술감화력을 발산한다. 게다가 생생하고 명랑하고 우미하고 청신 한 언어를 구사하였기에 아름답고 눈부시여 이목을 끌며 천고에 길이 이름 을 남기게 되었다. 본 고에서는 이백의 많은 작품중에서 음주시를 위주로 고찰하고 있다. 이백의 시의 제재는 어느 누구보다도 다양하지만, 그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백은 직감적으로 술고래를 떠올리 게 된다. 그것은 이백은 시선인 동시에 주선이라는 두 이미지가 결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부는 이백을 평하여 ‘술 한 말에 시 백 편(李白斗酒詩百篇)이라 하였다. 이렇듯 이백과 술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따라서 이백시에서 음주시가 차지하는 영역은 초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본 고에서는 이백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이백의 음주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2. 본 론
2.1 이백의 생애 술과 달의 시인 이백은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이며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로 당대 가장 뛰어난 시인이자 중국 문학사상 굴원 을 잇는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위대한 시인으로 ‘시선(詩仙)’ 이라고 불린다.(이백은 시선, 두보는 시성, 왕유는 시불이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꿈에서 태백성을 보고 출산했기 때문에 자를 태백이라 했다.) 그의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한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조상이 농서 성기(현재 감숙성 천수현 부근)사람, 조상이 수나라 말엽에 서역으로 흘러들어감, 이백은 중앙아시아 쇄엽에서 출생,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면주(지금의 사천 면양지방)에 거주하여서, 어릴 때부터 촉나라에서 수학,유람함. 25세 때에 혼자 몸으로 촉나라를 나와서 임협방도(의협을 신뢰하고 도리를 찾는것)와 교유간알(신분이 높은 사람과 사귀는 것)을 통해 벼슬의 고위직에 올라,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 들을 평안하게 하는" 큰 뜻을 실현하기를 희망했다. 그는 동정, 금릉, 양주 등지를 유람했으며 수년후, 전 재상이었던 허어사 의 손녀와 결혼을 하여 안륙(지금의 호북 안륙)에 머물러 살았으며,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양양,낙양,태원 등지를 유람했다. 후에 또한 공소 부등 "죽계육일"이라는 칭호를 가진 사람과 함께 동노에서 은거하였다. 천보 초기에 오균이라는 도사의 추천으로 임금의 부름에 장안으로 들어가, 한림으로 봉해졌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귀족들로 여러 차례 비방을 받아, 천보 34년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와 개봉을 중심으로 제, 노, 회, 사, 강동사이 북으로는 유연 일대까지 왕래하였다.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이백은 노산에 은거하였으며 계속해서 국가와 백성의 운명을 면밀히 주시하였고 후에 영왕 인의 막부에 참가하게 되었다. 숙종 지덕 2년 영왕 인은 패배하고 이백은 연루되어 욕양에서 옥살이를 하게되고 이듬해 야랑으로 유배가는 도중에 사면을 받고 무창, 욕양, 의성 각지를 전전했다. 대종 보응 원년에 친척 아저씨인 당도(지금의 안휘성 당도현)현령인 이양빙의 집에서 병사했다. 그는 불운을 겪었고 복잡한 사상을 가진 천재적인 시인이며 또한 자객, 은사, 도인 등과 같은 기질을 지니기도 했다. 유가, 도가 그리고 협객 등 세 가지 사상을 몸소 실천했는데, ‘공성신퇴 (功成身退:공을 세운 후 물러 나자)’ 는 그의 일생을 지배한 주도적 사상이었다. 불우한 생애를 보내었으나 이백은 그의 천거로 43세 때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장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던 1, 2년이 그의 영광의 시기였다. 이백은 너무 기뻐 ‘남릉에서 애들과 이별하고 서울로 가노라 [남릉 별아 동입경]’라는 시에서 양천대소하면서 문을 차고 나가노라. 이 장부가 아무 렴 촌에 묻혀 살소냐? 라고 호기롭게 읊었다 도사(道士) 오균(吳筠)의 천거로 궁정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정치적 포부 의 실현을 기대하였으나, 한낱 궁정시인으로서 지위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는 궁정시인으로서의 그가 현종· 양귀비의 모란 향연에서 지은 시이다. 이것으로 그의 시명(詩名)은 장안을 떨쳤으나, 그의 분방한 성격은 결국 궁정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이백은 그를 ‘적선인(謫仙人)’이라 평한 하지장(賀知章) 등과 술에 빠져 ‘술 속의 팔선(八仙)’으로 불렸고, 방약무인한 태도 때문에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장안을 떠났다. 현종 의 마음에 들어 호탕하고 방탕한 생활을 3년간 지속하며 당시 권력가인 환관 고력사(高力士)에게 신을 벗기도록 하였으며, 현종의 애첩 양귀비 (楊貴妃)에게 벼루를 들고 서있게 했던 기인이다. 장안에서 보낸 3년의 정치 생활은 이백의 창작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정치적 이상과 암울한 현실은 첨예한 갈등을 보였으며, 가슴 속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과 불만이 쌓였다. 분노는 훌륭한 시를 낳았고, 그래서 <행로난>, <고풍> 등의 시에는 옛 선인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으 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명작들을 써나갔다. 이백은 후세 사람들에게 9백여 편의 시를 남겼다. 이렇게 빛나는 작품 들은 그 일생의 마음 역정을 표현한 것으로, 성당(盛唐)시기 사회의 현실과 정신생활 모습의 예술적인 묘사이다. 이백은 일생동안 원대한 포부를 품고 한치의 속임도 없이 업적을 쌓으려는 바램을 표현했다. 어려서부터 협객 을 좋아해서 그에 대한 많은 시를 썼는데, <협객행>이 그중 대표작이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으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때로는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쓰촨성 각지의 산천을 유력(遊歷)하기도 하였으며, 민산(岷山)에 숨어 선술 (仙術)을 닦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랑은 단순한 방랑이 아니고, 정신의 자유를 찾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이었다. 그의 본질은 세속을 높이 비상하는 대붕, 꿈과 정열에 사는 늠름한 로맨 티시스트에 있었다. 또한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익사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에게도 현실 사회나 국가에 관한 강한 관심이 있고, 인생의 우수와 적막에 대한 절실한 응시가 있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방식과 응시의 양태는 두보와는 크게 달랐다. 두보가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에 침잠하는 방향을 취한 데 대하여, 이백은 오히려 인간을 초월하고 인간의 자유를 비상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까지도 그것을 혼돈화 (混沌化)하여, 그 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하였다. 술이 그 혼돈화와 비상의 실천수단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닥에서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俠氣)와 신선(神仙)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만년에는 신선이 보다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술은 생애를 통하여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두보 의 시가 퇴고를 극하는 데 대하여,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 (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 ‘성당(盛唐)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 시대 자기에 대한 커다란 기개·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의 부패·오탁의 현실에 젖어들어, 사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은 동시에 ‘만고(萬古)의 우수’를 언제나 마음 속에 품지 않을 수 없었다. 2.2 대표적인 음주시 이백이 술을 좋아하였다는 사실은 그를 주선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에서 충분이 증명된다. 그의 벗 두보가 “이백은 술 한 되에 시를 백 편이나 쓴다”고 읊은 사실과 이백 자신이 “백년은 삼만 육천일, 하루에 삼백 잔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 사실에서도 음주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음주는 삶의 충족을 위해 마신 것만은 아니였다. 영원한 것으로의 지향, 유한한 인생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마셨다. 이백은 술을 마시 면 마음이 쾌활하고 호방해졌다. 취중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았고 도취 속에서도 각성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술에 대한 시를 볼 때 잠꼬대 같은 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은 결국 그 표현 속에 엄연한 객관화 정신이 있었으며 동시에 정확한 작시 기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2.2.1 “장진주(将进酒)”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그대 보지 않았는가 황하수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奔流到海不復回 기운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그대 보지 않았는가 고당의 밝은 거울에 비친 백발의 슬픔을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에 푸른 실 같은 머리 저녁에는 눈같이 되었다 人生得意須盡歡 인생이 뜻을 얻었을 때엔 모름지기 환락을 다해야 하며 莫使金樽空對月 황금 술단지 공연히 달빛 아래 버려두지 말아라 天生我材必有用 하늘이 나에게 재능을 주었으니 반드시 쓸데 있을 것이다. 千金散盡還復來 천금 다 써버려도 다시 손에 돌아올 날 있으리 烹羔宰牛且爲樂 양고기를 삶고 쇠고기를 저며서 술 잔치를 즐겨보자 會須一飮三百杯 모름지기 술은 한 번에 3백잔은 마셔야지 岑夫子 잠부자여 丹邱生 당구생이여 進酒君莫停 지금 곧 술을 권하여 하니 잔을 멈추지 말아요 與君歌一曲 그대 위해 한 곡조 시를 읊으리니 請君謂我傾耳聽 청컨대 그대는 나를 위해 귀 기울여주오 鏡鼓饌玉不足貴 아름다운 음악 맛 좋은 음식은 귀한 것이 못된다 但願長醉不用醒 다만 소원은 오래 취하여 깨지 말기를 古來聖賢皆寂寞 옛 성현들은 죽으면 그뿐 잊혀지지만 惟有飮者留其名 술 잘 마시는 사람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 陳王昔時宴平樂 옛날 진왕은 그의 평락관에서 주연을 베풀고 斗酒十千愁換謔 두주를 만금에 사서 마음껏 즐기고 노닥거렸다. 主人何爲言少錢 집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 말하겠는가 徑須沽取對君酌 모름지기 술을 사서 그대에게 권하겠노라 五花馬 다섯가지 꽃 무늬의 말 千金衣 천금의 모피 呼兒將出換美酒 아이 불러 끌어내어 맛 좋은 술과 바꾸어 與爾同銷萬古愁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우수를 쫓아 버리자
이 시에는 인생의 무상함을 개탄하고 술을 마셔야만 우수를 잊을 수 있다는 이백 특유의 술철학이 담겨있다. 황하가 분류하는 것 같은 웅대한 시, 자유분방, 종횡무진으로 구사한 화려한 시구에는 억제하기 어려운 인생의 비애가 넘쳐 흐른다. 이 시와 비교하여 이백의 음주시에서는 내용상 이질적인 면이 보이고 있 는데 예하여“조여청실막성설(朝如靑絲暮成雪)”에서‘아침에 푸른 실같은 머리 저녁에는 눈같이 되었다’라고 표현하고 《對酒》에서는 어제의 홍안 소년 오늘은 백발(昨日 失顔子 今日白髮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내용 상에 있어서도 대조를 보이고 있는 곳이 있는데 (莫使金樽空對月) 황금 술단지 공연히 달빛 아래 버려두지 말아라 하고 《把酒問月》에서는 바라 는 것은 노래 부르고 술 마실때 달빛이여 깊이 비쳐다오 금술독 속 (唯願當歌對酒時 月光長照金樽裏 ) 까지 라고 표현하고 있다. 달과 술은 서로 이질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한 데 묶어서 다루어 보려는 의도는 그만큼 이백의 시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 편의 시 속에서 그는 달과 술을 동시에 소재로 활용하는 경우가 다른 시인에 비하여 많을 뿐만 아니라 이 계열의 시가 유명하다. 이백의 시에는 달과 술이 동시에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시 제목에서도 이러한 현상 이 나타나고 있는데 月下獨酌등이 바로 그런한 예이다.
2.2.2 <<월하독조(月下独钓)>>
<月下獨酌> 달 아래에서 혼자 마시다
花問一壺酒 꽃나무 사이에 놓인 한 단지 술은 獨酌無相親 서로 친한 벗도 없이 혼자 마신다 擧杯邀明月 술잔을 들고 밝은 달 맞으니 對影成三人 내 그림자까지 모두 셋이 되었다 月旣不解飮 달은 이미 술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그림자는 부질없이 내 하는 대로 따른다 塹伴月將影 얼마 동안 달과 그림자를 벗으로 行樂須及春 행락은 오로지 봄이 가기 전에 즐기는 것 我歌月徘徊 내가 노래하니 달은 바장이고 我舞影凌亂 내가 춤추니 그림자 어지럽게 흔들린다 醒時同交歡 술이 깨어서는 함께 즐기고 醉後各分散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진다 氷結無情遊 길이 무정한 놀이를 그들과 맺어서 相期邈雲漢 아득한 은하수에서 만나기를 기약한다.
밝은 달 아래 꽃나무 사이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 마음이 내키는 대로 술을 마시며 즐기는 심경을 독특한 기법으로 노 래하고 있다. 전부 4수로 되어있는 이 시들은 각각 착상이 다르다. 중국문화는 장르중에 시는 역사적으로 주총을 이루었고 특히 당대에 있어서는 최성기를 이루었다. 당대에서도 성당이 당시의 절정기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은 이백이다. 이백은 진보적인 낭만주의 시인이었다. 그는 진보적인 낭만주의를 굴원 이래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당조때 두보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하나의 경향을 이루어 기봉을 이루었다면 이백은 진보적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하나의 경향을 이루었다. 이백은 반평생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는데 전국 수많은 명산과 대천을 다니며 조국의 자연을 찬미하는 많은 분량의 우수한 시들을 썼고, 시를 통해 자유를 사랑하고 해방을 갈망하는 심정을 표현했다. 이러한 작품 속에 기묘한 산천은 거스르고 머무르지 않으려는 그의 성격과 완벽 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백은 조국을 매우 사랑하고 백성을 보살폈으며 현실을 인식했던 위대한 시인이였으며, 전쟁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변방을 지키는 장수에게는 열정을 담아 보내는 노래를, 통치자들의 불쌍한 병사 들에 대한 무정한 채찍질을 담은 시들을 썼다. 이백은 또한 많은 악부시를 지어, 노동자들의 힘든 생활을 묘사하고 그들에 대한 관심과 동정을 표현 했다. 이백의 시는 ‘붓이 떨어져 비와 바람을 놀라게 하고 시가 되어 혼을 울리는’ 예술적 매력을 담고 있는데, 이것도 이백 시의 가장 뚜렷한 예술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풍부한 자아실현의 주관적 정서의 색채가 매우 강하고, 감정표현에 있어 위세당당하고 일사천리한 기세를 담고 있다. 시는 항상 상상, 과장, 비유, 의인 등의 기법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신기하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경지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이백의 낭만주의 시가 사람들에게 자유분방함과 신선같이 뛰어난 운치를 주는 원인이다. 이백의 시는 이전 낭만주의 창작의 성과를 이어받아 반역사상과 호방한 풍격으로 성당시대의 낙관적이고 진보적인 창조정신 및 봉건질서에 만족 하지 못한 잠재된 역량을 반영하며, 낭만주의 표현영역을 넓히고 기법을 풍부하게 하는 동시에 상당한 수준까지 낭만주의와 현실주의의 결합을 실현시켰다. 이런 한 성과로 인해 그의 시는 굴원 이후 낭만주의 시가의 새로운 절정이 되었다. 이백은 당대 시가의 혁신에 대해서 뛰어난 공헌을 했다. 그는 진자앙 시가의 혁신적인 주장을 계승하여 이론과 실천에서 시가혁신의 최후 성공을 거두었다.
3. 결 론
이백의 위대한 시편들은 성당시대의 상승발전하는 기백을 반영하였다.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그는 극대한 용기로써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항에 몰두하였고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질책과 열려있는 밝은 정치를 하고자 이에 투쟁하였다. 이러한 완강한 투쟁정신과 자유해방의 열정에 대한 추구는 그의 시가에서 적극적인 낭만주의 정신의 핵심이었다. ‘성당 (盛唐)의 기상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의 이백은 한편으로 인간· 시대· 자기에 대한 커다란 기개·자부에 불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개는 차츰 전제와 독재 아래의 부패· 오탁의 현실에 젖어들어, 사는 기쁨에 정면으로 대하는 시인은 동시에 ‘만고(萬古)의 우수’를 언제나 마음 속에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이백의 음주시에서는 짧은 일생에 천만고의 시름을 안고 있는 인생, 무엇으로 그 시름을 잊고 이 인생의 무상을 극복할수 있을가 술이 야말로 바로 그 시름을 녹여 없애는 것이며 선물이라는 대 전제하에 과연 이백다운 종횡무진의 낭만과 과장으로 호기로운 음주예찬을 펼쳐가는 작품이다. 취중인 만큼 과장도 호기도 백배로 부풀어 있는 가운데 또한 은근히 때를 얻지 못한 자신의 불우의 분한을 시종 그 밑바닥에 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백의 음주시에서는 자연과 인생은 하나의 사랑으로 귀의가 되어있다. 산천초목이며 일월신성이다. 그러한 중에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달과 꽃과 새와 바람과 구름은 그의 술자리에 동참하여 항상 이백과 함께 하였다. 이백에게 있어서 자연은 적극적 능동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에 있어서 이백의 음주시는 그저 단순한 작시하는 그러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천인하일의 경지로 들어가는 입장에서 파악 될 수 있다고 보며 이러한 면에서 새로운 각도로 해석을 시도해 보아야 하며 이백의 음주시를 더욱 더 음미해보아야 한다.
감사의 말 논문집필 과정에서 최균선선생님의 사심없는 지도를 받아 순리롭게 완성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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