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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尹東柱)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尹東柱,1917.12.30~1945.2.16)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자퇴하고, 광명중학교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자화상」「쉽게 쓰여진 시」을 발표하였고 문예지 『새명동』발간에 참여하였으며, 대학시절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중이던 1945년 2월,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그의 사후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에 출간되었다. 1968년 연세대학교에 시비가 세워졌으며, 1985년부터 한국문인협회가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인 「연변문학」에서도 동명의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십자가」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이같은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빼어나고 결 고운 서정성을 빛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서정적 민족시인'이라는 평가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부끄러운 삶을 경계했던 시인은 그 댓가로 일제에 의해 젊은 나이, 스물 여덟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출처: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윤동주 유고시집>
윤동주 시인의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출처: 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
은진중학교
"은진중학교는 미션스쿨로서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우리는 거기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애국가를 목청껏 부를 수 있었다.
동주와 나에게 이것은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숭실중학시절 조부 윤하연 장로의 회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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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중학교 때의 그의 취미는 다방면이었다.
축구 선수로 뛰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교내 잡지를 내느라고
등사 글씨를 쓰기도 하였다.
기성복을 맵시 있게 고쳐서 허리를 잘룩하게 한다든지
나팔바지를 만든다든지 하는 일은 어머니 손을 빌지 않고
혼자서 재봉틀로 하기도 하였다.
2학년 때이던가, 교내 웅변대회에서
「땀 한 방울」이란 제목으로 1등 한 일이 있어서
상으로 탄 예수 사진의 액자가 우리 집에 늘 걸려 있었다.
절구통 위에 귤 궤짝을 올려놓고
웅변 연습을 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 윤일주, 「윤동주의 생애」, 『나라사랑』, 23집(외솔회, 1976)
<출처: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 2009. 9. 9., 나무이야기>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
「별 헤는 밤」을 완성한 다음 동주는
자선 시집을 만들어 졸업기념으로 출판을 계획했다.
「서시」까지 붙여서 친필로 쓴 원고를 손수 제본을 한 다음
그 한 부를 내게다 주면서
시집의 제목이 길어진 이유를 「서시」를 보이면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처음에는(「서시」가 완성되기 전) 시집 이름을
「병원」으로 붙일까 했다면서
표지에 연필로 ‘병원’이라고 써넣어 주었다.
그 이유는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리고 병원이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혹시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느냐고
겸손하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의 일들」, 『나라사랑』, 23집(외솔회, 1976)
<출처: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 2009. 9. 9., 나무이야기>
병 원
<출처: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 1941.11
'병원'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었던 시집은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처: YES24>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윤동주, '병원'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한없는 부끄러움을 이야기했던 젊음.
출간하고팠던 시집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어 원고를 서랍장 깊이 넣어야 했던
그는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손석희
<출처: JTBC>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 병원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에
혹시 이 시집이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윤동주
[출처]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작성자 참예쁜세아이
윤동주 : 서시(序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