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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카 크래시〉를 제작할 무렵인 1963년에 앤디 워홀은 ‘죽음과 재난’ 외에도 ‘대중 스타’라는 주제를 즐겨 택했다. 〈여덟 개의 엘비스〉는 이 무렵 나온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안니발레 베를린지에리라는 유명한 컬렉터가 40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11월에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이 작품이 개인 거래로 1억 달러(1049억 2000만 원)에 팔렸다고 보도하면서 거래 가격이 알려졌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매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워홀의 단골 소재였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이 이미 유명한 미술관들에 전시돼 있어서 이 작품의 이미지가 사람들 눈에 익숙하다. 게다가 가로 길이가 무려 3.7미터에 이르는 대작이어서 1억 달러(1049억 2000만 원)에 팔렸다는 것은 믿을 만한 보도였다.
워홀의 작품이 비싸게 팔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시장에 나올 만한 작품의 수가 많아서 꾸준히 거래된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다. 비슷한 정도의 작품성을 지닌 피카소와 워홀의 작품 두 점을 놓고 같은 값으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 피카소의 작품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의 대표작은 시장에 그렇게 자주 나올 수가 없다. 그에 비해 워홀의 대표작은 주요 경매 때마다 고가의 대표작이 하나씩 나온다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거래 작품 수가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수작이 비싼 가격에 팔려 뉴스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이다.
피카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워홀을 피카소와 비교해 보자. 앞서 피카소를 이야기할 때 그의 작품이 비싼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카소의 역사적 중요성 때문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워홀의 작품이 비싸게 거래되는 것도 미술사적인 이유가 제일 크다. 서양 미술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가 20세기 초반에 피카소였다면, 20세기 후반에는 워홀이었다.
워홀은 1960년대 미국 미술의 핵심이던 팝 아트의 대표 주자다. 상업 디자이너 출신의 워홀은 코카콜라, 캠벨 수프 깡통, 매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 이미 널려 있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작품에 사용했고, 제작 방법도 기계처럼 찍어 내는 실크 스크린 기법을 선호했다. 그럼에도 그의 대표작들은 1000억 원 이상에 팔린다. 워홀이 이처럼 유명한 작가가 된 비결은 그가 시대상을 민활하게 반영한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워홀은 1963년에 미술 평론가 G. R. 스웬슨과 했던 인터뷰에서 “나는 사람들이 모두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은 이후 워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로 매우 유명해졌다.
왜 그는 사람들이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했을까?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며 살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현대인들은 똑같은 대중 스타를 좋아하고, 똑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서로서로 별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 개개인의 생활을 들여다보아도 큰 변화 없이 매일 거의 똑같은 생활을 되풀이한다. 이런 기계 같은 현대인의 삶을 반영하는 미술은 기계 같은 미술이어야 한다는 게 워홀의 주장이다. 미술 작품은 작가의 손끝과 영혼으로 만들어 내는 창조품이라는 과거의 미술 개념을 뒤집어엎는 희한한 발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인의 특징을 족집게처럼 집어낸 것이기도 했다. 워홀은 한마디로 “살기는 그렇게 살면서 왜 예술은 다른 걸 추구하느냐?”라고 주장한 것이고,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은 소비재가 넘쳐 나고 대중문화가 폭발하던 사회였다. 싸구려 이미지를 고급 예술의 소재로 사용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가질 수 있도록 마구 찍어 내는 제작 방법을 쓴다는 것은 미국이 앞세우는 민주주의와도 들어맞았다. 그러니 워홀은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던 시대상을 아주 잘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피카소 이후 작가들이 피카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워홀 이후 현대 작가들은 지금까지도 워홀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워홀이 반영한 1960년대 미국 문화는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화다. 그 때문에 워홀은 영원히 살아 있는 작가처럼 느껴진다. 워홀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자신이 살던 시대를 대변하면서 이후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속 살아 있는 신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워홀은 대중문화를 찬양하는 동시에 비판했다. 대중 스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중 스타는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환상에 따라 만들어 낸 상품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여덟 개의 엘비스〉에 사용된 이미지는 1960년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했던 〈불타는 스타(Flaming Star)〉라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당시 이 영화의 홍보용으로 여기저기에 뿌려졌던 이미지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1963년에 엘비스 프레슬리는 스물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세계적 팝 스타로 살아 있는 전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권총을 들고 서부 카우보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미국적인 영웅의 이미지를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딘지 약해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이 모습에 미국인들과 전 세계인들이 그렇게 숭배할 만한 진정한 파워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이미지다.
슈퍼스타의 이중적 면모라는 주제로 다루기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매릴린 먼로는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그래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다룬 작품은 매릴린 먼로가 나오는 작품과 함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워홀의 대표적인 시리즈가 되었다.
워홀은 엘비스 프레슬리 이미지를 가지고 스물두 점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중 아홉 점은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 작품 하나를 가지면 세계적인 컬렉션 수준에 올라갈 수 있다는 심리적 보상 때문에 컬렉터들은 이 그림에 아낌없이 거액을 지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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