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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테네 학당에 모인 사람들은 모일 수가 없는, 라파엘로 당시에는, 지성의 드림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모델들도 다양했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모델로 플라톤을 표현하였고, 미켈란젤로는 헤라클레이토스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라파엘로는 상상화를 그린 것이고, 필기구는 당시에도 떠올릴 수 있는 도구들로 생각됩니다. 이 도구들에 대한 설명이 어디에도 없어서(없는 것이 아니라, 못찾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몇가지 추측을 해보려 합니다. 1. 일단 책은 종이가 아니고 양피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종이의 전파와 피타고라스라는 인물의 무게, 그리고 그 앞에 있는 판과 들고 있는 펜의 형태등을 고려한 것입니다. 2. 종이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물론 파피루스가 쓰이기는 했지만, 보관용 책이나 소중한 책인 경우 양피지가 쓰였습니다. 그 까닭은?... 3. 종이가 전파되는 시기를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750년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에 이슬람 연합군에게 패배하면서, 제지 기술을 가진 포로들이 이슬람제국에 넘겨지게 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탈라스 전투는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전투입니다.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지휘관이었기 때문입니다.) 4. 종이가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전파되는 시기는 12세기 이후입니다. 10세기 경에야 비로소 이집트에 전해졌고, 12세기에 스페인으로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유럽에 널리 퍼져서 지금처럼 활발하게 사용하게 된 것은 17세기 무렵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라파엘로가 살던 시절에 굳이 양피지 대신 종이를, 존경하고 존경하는 피타고라스 손에 쥐어주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라파엘로가 살던 시대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반이었고, 아테네 학당도 그 무렵의 작품이었습니다. 6. 펜은 거위깃펜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잉크의 역사는 전문가가 따로 계시니까 부연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라파엘로는 당시의 관념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분명합니다.(중세에 그려진 대부분의 작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모 그림을 보시면, 절대로 2000년전 유태인들의 일상생활 모습이 아닙니다.) 7. 앞에 있는 것은 피타고라스의 음향학과 관련된 그림을 밀랍서판에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밀랍서판은 지금의 연습장처럼 사용되었는데, 여기에 밑그림이나, 미리 적기를 하고, 양피지에 옮기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필기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음향학이란 것은 추측한 것입니다.) |
사람들은 왜 디오게네스를 개와 그렇게 비교하려는 것일까요? 대표적인 견유학파로 평가하고 있고, 사실 개의 성질이나 생활과 연관시키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그는 개의 덕(德)을 공공연하게 칭찬한 철학자입니다. 개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성질이나 생활패턴을 좋아했지요.
개의 德을 칭송한 철학자
이는 디오게네스의 인간이 너무 가식적(artificially)이고 위선적(hypocritically)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의 생활을 공부하고 그 덕을 따른다면 사람이 가식과 위선에서 벗어난 진정한 내면의 세계, 진리,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개의 찬사’ 철학을 들어볼까요? “개에 대해 아무런 압박을 가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이나 먹는다. 그리고 어디에서 잘 것인지 잠자리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개는 주어진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걱정 없이 살아간다. 아는척하면서 어렵고 추상적인(abstract) 철학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덕목(德目)들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다. 개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누가 친구인지, 적인지를 분간하는 능력이 있다. 또 자신이 사기를 치고 있는지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개는 진리를 향해 정직한 소리로 잦는다.”
“개는 가식과 위선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개를 찬미하는 노래라고 할까요? 이런 이유로 개의 철학을 죽을 때까지 고집하면서 살아 간 거겠죠. 그에게는 가식과 위선이야말로 진리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겁니다.
자신을 스스로 개라고 자처하면서 돌아다니는 디오게네스를 보고 한 시민이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개라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는 사람에게는 꼬리치면서 반기고,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시끄럽게 짖어대고, 내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달려 들어 물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는 정말 개의 철학을 고수했습니다. 아무런 방해 받지 않고 한가롭게 거닐고 낮잠을 잘 수 있었고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도둑 당한 염려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해방을 만끽하면서 산 거죠.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이 내킬 때 아침 식사를 하게 되지만, 나 디오게네스는 내가 내킬 때 아침 식사를 한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의 스승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잘 차려 입은 사람을 만날 때 즐거워지는 것은 내 눈이지 그 사람의 눈이 아니다. 그 사람은 나의 남루한 누더기를 보게 되겠지만 나는 그 사람이 걸친 훌륭한 옷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생쥐와 나는 같다. 운명의 덫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그는 또한 어느 날 밤 돌아다니는 생쥐들 보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둠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잠잘 곳을 필요로 하지도 않으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생쥐처럼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말합니다. “운명의 덫에 걸리기 전까지 생쥐와 나는 이 세상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겠지.”
디오게네스는 그러나 그야말로 거지처럼 구걸하면서 공짜로 빌어먹은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이 나를 거지로 부르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하시오. 그러나 나는 좀 별난 거지라오. 빵 한 조각을 줄 때마다 지혜의 말을 건네 준다오.”
부와 명예보다 한 줄기 햇살을 사랑한 디오게네스는 역사상 최초의 세계주의자로 코스모폴리탄(cosmopoitian)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 엉뚱한 철학자에게 어떤 사람이 “당신은 출신이 어디요?”라고 묻습니다.
디오게네스는 “I am a citizen of the world(cosmopolites). 난 세계의 시민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주의의 시조가 바로 아테네의 거렁뱅이 철학자 디오게네스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세계주의를 최초로 부르짖은 철학자
이 부분은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수 많은 폴리스(city)로 이루어진 그리스사회에서 세계주의라는 말은 일종의 다른 폴리스와 내통을 하거나 자신이 속한 폴리스에 반기를 든 사람이나 철학을 지칭하해서 ‘위험한 단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디오게네스의 이야기를 해석해 본다면 “나는 걸핏하면 서로 싸우고, 인종이나 믿는 신이 서로 다른 그러한 폴리스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우주, 자연에서 온 자유인”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한 폴리스에 소속감을 느끼는 사회적 정체성(social identity)가 없다는 이유로, 오늘 같으면 반체제인사로 망명을 하거나 추방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과감하게 그 말을 썼습니다.
그렇다고 정치적 압박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아테네에서 머물던 그가 코린토스(Corinth)로 가게 된 게 그와 같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알렉산더를 만난 거죠.
미친개에 물려 죽은 아테네의 개
재미 있는 일화들로 기억되고 있는 디오게네스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일화들도 남겼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낙지를 먹고는 체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개와 인연은 죽을 때까지도 계속 된 건가요? 개를 너무 좋아하다가 일어난 일인지 광견병에 감염된 미친 개에 물려 걸려 죽었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임종이 다가오자 주위 제자들이 어떻게 장사를 지내주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부탁합니다.
“내가 숨을 거두면 성벽 밖으로 던져버려라. 그러면 들짐승들이 내 몸을 갖고 축제를 한바탕 벌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묻습니다. “(성밖으로 버려도) 정말 괜찮은 지요?”
“괜찮아, 나에게 그 짐승들을 다그쳐 쫓아낼 몽둥이를 주지만 않는다면 말일세”
그러자 또 묻습니다. “(죽으면) 의식이 없는데도 몽둥이를 사용할 수 있겠어요?”
“내가 (지금) 의식이 없다면 왜 내가 죽어서 어떻게 될 지를 걱정하겠는가?”
내 죽거들랑 성 밖으로 던져 들짐승들 축제하도록…
약간 아리송한 선문답처럼 들리나요? 그러니까 지금은 의식이 있으니까 걱정을 하는 거고, 의식이 없게 되면 빈 껍데기 송장이니깐 걱정하지 말고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성밖으로 던져버리라는 뜻인 것 같네요.
아마도 죽음을 앞두고 지나치게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농담을 던진 것인지도 모르고요. 어쨌든 이렇게 해서 아테네의 거지는 80세의 생애를 마칩니다. 당시로 본다면 천수(天壽) 이상을 누렸다고 할 정도로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죠.
숨을 거두자 코린토스 사람들은 평생 개의 철학을 고수했던 디오게네스가 평안히 쉴 수 있도록 개 모양으로 된 대리석 베개를 만들어 무덤 앞에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전해내려 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소설가 정비석씨의 이야기대로 “고작 70세의 생애로 희로애락을 각축하다가 한 줌의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고작 1평 땅에 묻히는 것이 인간이며, 세월과 함께 한 줌의 재도 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땅을 빼앗아 영웅으로 칭송 받고 있는 알렉산더보다 디오게네스가 더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들이 준 선물은 간단한데, 인간이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어!”
그를 견유학파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베게 삼고,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육체까지 헌신짝처럼 버린 디오게네스에게 학파를 굳이 따진다는 것은 위대한 성인인 그에 대한 모욕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소유로 평생을 살아간 그가 남긴 명언 한 가지만을 소개하면서 디오게네스를 끝마치겠습니다.
“Humans have complicated every simple gifts of gods. 인간은 신들이 준 모든 간단한 선물들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설명이 없는, 아테네의 거지에 아주 걸맞는 명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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