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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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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빈 그릇"이다...
2017년 02월 28일 17시 55분  조회:2406  추천:0  작성자: 죽림

1,일상성과 시

인간의 삶은 일상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일상성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말하면 인간이 노동을 하고 소비 생활을 하고 가족-사회생활 등을 영위해나가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의미를 지니는 정상적이고 반복적인 생활과정의 특성을 말한다. 일상성은 일반적으로 비일상성에 대비되는 개념이지만, 종종 미적, 예술적 창조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인식되거나, 성(聖)에 대한 속(俗)으로, 공적인 것에 대한 사적인 것으로, 놀이나 축제에 대비되는 노동이라는 특성을 지닌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처럼 일상성은 우리의 삶 속에서 폭 넓은 의미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상성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일상성’을 사회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도입하면서부터 였다. 그 이후 인류학, 역사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일상성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성이 일정한 범주에 머물러 있지 않고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현대에 이르러서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과거 농축업 중심의 사회에서 컴퓨터와 자동차, 휴대폰,고속전철 등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정보-소비중심의 사회로 급속하게 변모되어 왔다. 이러한 변모는 르페브르가 제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상성의 세 가지 단계, 즉 일상적 삶의 성격과 리듬이 자연의 성격과 리듬과 구별되지 않았던 시기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맹렬히 추진되고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대체함으로써 상품, 시장, 기표, 화폐의 논리가 일상의 삶을 지배하던 시기를 거쳐서, 일상이 프로그램화되고 집단적으로 관리되고 행정화되는 시기에 이르는 과정과 대체로 일치한다. 최근에는 일상성이 광고에 의해서 과장, 조작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일상성이 단순히 생존의 문제에만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루하루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은 단순히 생존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의미의 차원에까지 확대된다. 인간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면 인간이 삶을 영위해야 할 당위성은 없어지게 된다. 
문학에 있어서 일상성은 인간의 생존의 문제와 더불어 의미의 문제를 주요 주제로 삼고 있다. 문학에서 나타나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주제가 확장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시에서의 ‘낯설게 하기’는 일상성의 메너리즘을 극복하고 자아와 세계를 새롭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일상성의 비일상성화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이 일상성을 비일상성화 하려는 노력은 일상적 삶의 세계가 차츰 광고, 언론, 미디어 등에 의해 포위되어서 일상이 물질문명의 식민지로 전락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낯설게 하기’야말로 일상성에 매몰되어 가는 삶을 새롭게 조명해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해내려는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시인들은 누구나 일상을 시적 소재로 삼고 싶어한다. 흔히 환상이나 꿈, 축제나 놀이의 세계를 지향하는 시들에서 볼 수 있는 비일상성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상성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점에서 일상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2.일상에서의 비일상성 찾기-박소원의 시 

박소원의 시는 일상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상성을 뛰어넘어서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러한 노력은 일상성을 의도적으로 허물어서 우리가 일상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비일상적인 세계를 제시하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다. 

생수 한 병 들고 앞산을 오른다 
누가 베어 놓았을까 
아카시아 나무가 한 짐 꽃을 짊어지고 
중턱에 탁,하니 누워 있다 
그다지 크지 않던 나무 한 그루가 
유월의 가슴을 펑 뚫어 놓았다 
그 곳에선 
바람만이 부지런히 길을 넓히는 중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 자리처럼 
저 나무의 몸이 언제 저렇게 거대했던가 
한 세상을 짓고도 터가 남겠구나 
매일 산행을 하면서 
몸 기대 쉬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다 
(중략)
오늘 내린 비는 범람한 홍수처럼 아카시아꽃을 
휩쓸고 지나간다 
마지막 몇 몇 꽃들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고 
천진하게 누워 비에 젖는다 
자작자작 굴러 떨어지는 빗방울을 따라 
떨어진 꽃잎들이 우루루 몰려나간다 

때, 아닌 봄 홍수다 

―「봄, 홍수」부분

시인은 매일 생수 한병을 들고 산행을 하다가 어느날 문득 한짐 꽃을 짊어지고 산 중턱에 누워있는 아카시아를 발견하다. 평소에는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던 나무가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거대하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무가 서있던 하늘이 새삼 커다란 구멍으로 보이고 시인에게는 그것이 유월의 가슴이 펑 뚫린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시인의 인식은 쓰러져 누운 아카시아가 돌아가신 아버지로 겹쳐보이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자연적 대상을 인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시의 일반적인 문법이지만, 시인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이 시의 후반부에서 오늘 내린 비가 아카시아 꽃을 휩쓸고 가는 상황을 제시한다. 그런데 몇몇 꽃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천진하게 누워 비에 젖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상황의 대비는 아카시아 나무(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심각한 상황이 아카시아 꽃(자식)에게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여기서 비가 아카시아 꽃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은 실제적인 상황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필자의 눈으로는 시인의 내면적인 상황으로도 읽힌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지막 연 “때, 아닌 봄 홍수다”를 읽으면, 쓰러진 아카시아를 보면서 아버지의 빈 자리를 느낀 시인이 돌연 눈물을 쏟는 것으로도 보인다. 흔히 봄에는 홍수가 나지 않는데, 시인은 낯설게도 봄과 홍수라는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일상적인 문법을 허물고 상황을 새롭게 읽어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비가와서 홍수가 나는 것은 아카시아가 쓰러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죽은 아버지와 연관된다. 시인은 쓰러진 아카시아, 즉 일상성의 세계를 죽은 아버지, 즉 비일상성의 세계와 연관시킴으로써 ‘봄-홍수’의 의미를 전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의 다른 시에서도 보인다. 

불을 끄고
바닥에 등짝을 붙이고 가만히 
혼자가 되면 
잔꽃무늬 벽지를 바른 천정과
흰색 북박이장 문짝이
60럭스를 한 순간
꿀꺽 삼키고 어머나 잔꽃무늬들
자취없이 몸색이 사라진다
실컷 먹었으니, 입맛이 없다는 듯
마음속에 그어 놓은 금들도
자취없이 쿨럭 사라진다는 듯

돌아 누워 벽에 이마를 붙인다
나에게도 진정 세월이 약이 되어줄까
세월의 차디찬 가슴에 머리묻고 있으면
이상하게 아늑해져요
그의 등뒤에는
덩어리 몇 개 꿀꺽 넘기는
배고픈 누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또르륵, 또르륵, 킁
또르륵, 또르륵, 킁
좀체 잠을 못 이룬다 

―「소등」부분

인용 시에서 불이 켜있는 상태가 일상적인 세계라면 소등한 상태는 비일상적인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은 불을 끄고 바닥을 등짝에 붙이고 천장을 본다. 그 순간 불이 켜져 있을 때 보이던 금들과 잔꽃무늬들이 자취없이 사라진다. 이러한 현상은 시인에게 “마음속에 그어놓은 금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겹쳐져 보인다. 시인은 돌아누워 벽에 이마를 붙이고 “나에게도 진정 세월이 약이 되어줄까”를 생각한다. 이러한 시인의 소망은 그의 등 뒤에서 “또르륵, 또르륵, 킁”하는 문짝 소리를 내면서 시인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는 장롱의 독백, 즉 “세월의 차디찬 가슴에 머리묻고 있으면/이상하게 아늑해져요”라는 진술과 맞물려서 은연중에 해답이 제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술은 단순히 긍정의 차원에 서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진술은 “세월의 차디 찬 가슴”이 풍겨주는 뉘앙스처럼 따뜻하지 않고 냉소적이며 역설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런 시인의 관점을 감안해 보면, 시인의 마음 속에 있는 상처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시 「나무 도마」에서도 시인은 “평생 칼질을 당하다가 죽어서도/ 또 칼질을 당하는/ 나무도마”를 보면서 자신의 “엇나간 두 번의 수술자국”을 더올리며, “서른이 넘어가면 線이 점차 흐려진다”는 사실을 들어 “모든 상처는 스스로의 치료방법을/ 들고 오는 것일까”를 자문하고 있다. 이 시 역시 그 주제나 기법 면에서「소등」의 연장선상에서 읽혀진다는 점에서 박소원시인의 시적 성향을 대변해주는 작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박소원의 시들은 일상성을 이미지를 통해서 낯설게 부각시킴으로써 관습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비일상성의 세계를 전경화시켜서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고 있는 비일상성의 세계는 그다지 과격하지 않아서 마치 일상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3.일상의 병치와 진실찾기-정호의 시

일상이 우리의 삶과 너무 밀착되어 있을 때 우리는 일상의 관습 속에 숨어있는 허위성이나 모순을 발견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헛점 투성이라서 매일매일의 일상에는 우리가 극복해 나가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숨어있다. 정호 시인 역시 그의 시를 통해 일상에 숨어있는 허위성이나 새로운 진실를 탐색해 나간다. 그런데 정호 시인의 일상 바라보기는 나란히 놓고 보기, 즉 병치를 통해서 구현된다.

빈 들 밭둑 뽕나무 가지 끝에 꿰어진
개구리 몸통 하나
두 눈 툭 불거진 채 하늘 나르듯 
앙상한 사지 쭉 뻗어있다
지난 가을에 꿰논 것 깜빡 잊어먹은,
아니다 그게 아니다
홀어미 늙은 까치 봉양하느라 여기저기 몰래 감춰둔,
아니다 그게 아니다
죽은 어미 생각날 때마다 뽕나무 밭둑 찾아와 
저 조촐한 제물 앞에 머리 조아리며 우짖는, 
그 슬픔 겨울 한 철 상고대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끝내는 가지째 굳어버린 제망모가(祭亡母歌). 

어머니 제사상을 거두며 장롱 위에 올려둔 
제삿밥 한 그릇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경칩날 상추씨앗 봉지 찾느라 깨금발로 딛고 보니 
놋뚜껑 한 쪽으로 나둥그라져 있고 
밥알이 개구리처럼 말라비틀어져 있다

―「파제(罷祭)」전문

정호의 시 「파제(罷祭)」는 시인이 평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밭둑 뽕나무 가지에 꿰어 걸어둔 개구리 몸통과 “어머니의 제사상을 거두며 장롱 위에 올려둔/ 제삿밥 한 그릇”을 나란히 병치 시킴으로써, 파제 후 어머니를 잊고 지내온 자신의 무관심을 스스로 비판하고 있는 시이다.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까치’는 시인이 봉양하고 싶어하는 “홀어머니 늙은 까치”이다가, 뒤에는 “조촐한 제물 앞에 머리 조아리며 우짖는” 자식 까치로 전이된다. 이렇게 볼 때, 1연의 ‘개구리 몸통’이 2연에서 시인과 어머니를 연결해주는 ‘제삿밥 한 그릇’과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연에서 말라 비틀어진 개구리는 “두 눈 툭 불거진 채 하늘 나르듯/앙상한 사지 쭉 뻗어있”고, 2연에서 장롱 위에 올려둔 밥그릇은 “놋뚜껑 한 쪽으로 나둥그라져 있고/밥알이 개구리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다”는 점에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이처럼 ‘개구리’와 ‘제삿밥 한 그릇’을 비일상적인 형태로 나란히 제시 함으로써 자신의 그동안의 무관심과 불효를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재촉하듯 서둘러 꽃피워 놓고
이제 겨우 손바닥 내미는
연두색 라일락 이파리 틈새로 
고개 삐쭉 내미는 
저 봄의 꼬투리 
보일락,
4월의 새끈한 숨소리 
가냘프게 들릴락, 

순간 확 끼쳐오는 알싸한 내음
화장 짙은 여인의 농염이다 황홀이다
어느새 탱탱해진 내 아랫도리
봄이 질펀하게 올라오고 있다

―「라일락 꽃잎에 숨다」전문 

시인은 산수유와 개나리와 진달래처럼 일찍 피는 꽃들을 피워놓고 이제 막 이파리 내미는 라일락 이파리 틈새로 보이는 ‘봄의 고투리(꽃봉오리)’를 보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일찍 피는 꽃들에 주목하지 않고 늦게 피는 라일락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라일락이 시인 자신의 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의 제목이 ‘라일락꽃잎에 숨다’인 것은 시인 자신이 라일락이 되고 싶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즉 시인은 라일락이 되어 ‘보일락’ ‘들릴락’하는 라일락의 자태와 숨소리를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연에서 시인이 화장 짙은 여인의 농염과 황홀을 맛보고, 탱탱해진 아랫도리로 올라오는 봄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단순히 보면 시인이 라일락 꽃을 보면서 자신의 청춘의 봄을 새삼 깨닫는 것으로 읽히지만, 더 나아가서 보면 늦깎이 시인으로서 희열을 늦게 피는 라일락꽃에 비유해서 읊은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정호 시인의 또 다른 시「소사에서 듣다」역시 “물속에서 기다린 몇 년”을 오직 ‘짝짓기’에만 바치고 소사나루 “물가 젖은 돌에 하얗게 들러붙은 채 죽어있는” 하루살이의 삶을 자신의 삶과 나란히 놓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읽은 시들과 동일한 관점에 놓여있는 시이다. 정호의 시들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두가지 상황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깨닫게 되는 삶의 허위성이나 진실성을 천착해 내는 특성이 있다. 

4.일상이라는 단면 들여다 보기-한영숙의 시 

한영숙의 시들은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시인이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일상이야말로 시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삶의 터전이며 문학적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시만 보더라도 시적 모티브가 노래방(「유정천리」),인터넷 경매(「하루」), 산불(「자화상」), 수선 (「이별 뒤에는 반드시 수선자국이 남는다」)등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시인은 일상을 들여다 봄으로써 때로는 자신이 그동안 모르던 것을 깨닫기도 하고, 일상의 애환이나 피말리는 삶의 생존경쟁을 전경화시켜서 보여주기도 한다. 

눈 뜨면 컴퓨터 모니터부터 켠다
갓 잡아올린 자연산 활어들이 HTS*에서 퍼덕거린다 
산지에서 직송한 한정된 횟감들을 
서로 낙찰 받으려고
떼개미들 경매꾼처럼 수신호를 보내며 시커멓게 몰려든다 
한바탕 폭우가 쏟아질 듯 장관이다
전날 시세보다 후한 값을 치룬 도다리 
알고 보니 양식종.
감칠맛 나는 미끼에 제대로 아가미 꿰인 
그 개운찮은 뒷맛이 
계좌잔고 구석구석 거미줄처럼 처져있다
어닝쇼크니 블랙 먼데이니 
검은 뉴스들로 
온 세상 신문과 인터넷이 24시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오히려 대범하게 
실탄 비축한 조사들을 여(洳)*까지 출조 시키는, 
간 졸이는 
모니터 속 전광판을 숨도 못쉬고 바라다본다 
어쩌다 
대박에 눈 멀어 고,고하다 졸지에 피박에 쪽박까지 쓰지만
그래도 쥐젖만한 미련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산지에서 낚아올린 몇 수 안되는 자연산 횟감 맛에 
오늘도 모니터부터 켠다

*HTS: 홈트레이딩시스템 
*여(洳):썰물 때에는 바닷물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잠기는 바위

―「하루」전문 

시인은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활어 경매 사이트를 열고 산지에서 직송된 횟감들을 낙찰 받으려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일상의 단면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일상은 낭만적이거나 명상적인 쪽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이 느끼는 일상은 그야 말로 피 말리는 경쟁이 펼쳐지는 곳이며,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허위와 속임수가 판을 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날 시세보다 후한 값을 치룬 도다리”가 “알고보니 양식종”임이 드러나고, 경매꾼들은 “감칠맛 나는 미끼에 제대로 아가미 꿰인/ 그 개운찮은 뒷맛”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도박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쉽게 손 놓을 수 없는 생존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박에 눈 멀어 고,고 하다 졸지에 피박에 쪽박까지 쓰지만”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삶의 방식을 비판하기 보다는 그냥 바라보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태도는 본질적으로 삶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다. 그의 또 다른 시「유정천리」에서 “기생 두엇 불러 장구 치며/낭창한 세월 몇 줄기 끼고 한가락 하던”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일흔 훌쩍 넘긴 어머니”가 노래방에서 한 섞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도, 어머니의 고생과 한에 대한 시인 자신의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인의 연민은 타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연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볼만하다.

고작 1m 쇠사슬에 묶여
저 불길 속을 정녕 탈출할 수 없었단 말인가
산불 화마가 지나간
아침 한나절
뚝딱 비우고 간 임자 없는 개밥그릇 하나 
덩그러니, 

비로소 자유다

―「자화상」전문

얼마 전에 있었던 낙산사 산불을 연상시키는 이 시는 어떤 장소라든가 어느 시간은 생략하고, 단지 “1m 쇠사슬에 묶여” 불길 속을 탈출하지 못하고 불길 속으로 사라져 버린 개와 임자 잃은 개밥그릇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개와 개밥그릇에 주목하는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지막 연에 한 줄로“비로소 자유다”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산불 화마 속에서 죽어간 개에 대한 연민뿐만 아니라 개밥그릇의 자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시인에게 있어서 일상은 1m 쇠사슬에 묶여 있는 개와 개밥그릇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시인은 1m 쇠사슬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에 묶여 있는 것들을 연민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속에는 그러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이 ‘자화상’인 것은 일상에서 느껴지는 연민과 자유야말로 시인의 삶의 본질이며 자화상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시의 마지막 연의 ‘자유’는 문맥상으로 보면 개밥그릇의 자유이지만, 그것은 더 나아가서 개의 자유도 될 수 있고, 개 주인의 자유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다른 시「이별 뒤에는 반드시 수선자국이 남는다」에서 장롱속의 해묵은 바지의 “겅중 올라간 목마른 바짓단”을 보면서 한번 제대로 터뜨리지도 못했던 자신의 “애써 억누른” 사랑의 절제를 탓하고 있는 것도, 시인의 절제된 사랑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자유’의 본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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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소주 ―김완(1957∼ )

벚꽃잎 분분분 날리는
부곡정에 들어선다

연탄불 돼지 삼겹살 구이
상추에 마늘, 매운 고추 얹어
된장 쌈 하니
세상살이 여여(如如)하다

도가지 헐어 내온 갓지에
소주 한 잔 하니
가야 할 길들 환해진다 


‘부곡정’은 광주 무등산 초입에 있는 식당이다. 아무래도 유적지는 아닌 듯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바로 나온다. ‘연탄불 양념구이’로 광주시민의 발길을 끄는 곳이란다. ‘벚꽃잎 분분분 날리는’ 참 좋은 시절, 화자는 ‘부곡정에 들어선다’. ‘연탄불 돼지 삼겹살 구이/상추에 마늘, 매운 고추 얹어/된장 쌈 하니’, 대개 한국인이라면 듣기만 해도 ‘회가 동할’ 맛일 테다. 그 모양 눈에 선하고, 그 냄새 코에 선하고, 그 맛 혀에 선하다. 가볍게라도 산행을 마친 뒤라면 더 입맛이 당겼겠다. 화자가 산행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행은 있을 것 같다. 어째 이 메뉴는 화기에 찬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가. 아니, 화자가 혼자일 것 같기도 하다. 뭔가 심경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이 있어서, 세상살이가 여여(如如)하지 않아서, 터벅터벅 무등산을 찾았을지 모른다. 그래 머리도 좀 가벼워지고 마음도 좀 눅어진 참에 식욕을 돋우는 상을 받으니 ‘세상살이 여여(如如)하다’! 화자는 이 식당의 단골인가 보다. ‘도가지 헐어’서까지 ‘갓지(갓김치)’를 내온다. 돌산갓김치일까, 토종갓김치일까. 귀한 대접을 받은 화자, 소주 한 잔 안 할 수 없다. 식욕은 생명력! 맛있는 음식이 주는 행복감은 비할 데가 없어라. ‘가야 할 길들 환해진’단다!

심장내과 전문의이기도 한 시인이 이 시에 앞서 썼을 듯한 시 ‘환자가 경전이다’를 소개한다. ‘봄 들녘에 아지랑이 피어오른다//레지던트 수련 중에/스트레스 견디지 못하고/병원을 떠나는 전공의들/4월 초 담장마다/목련 두근두근 벙그는데/떠나는 이들의/까만 눈망울이 젖어 있다//유구무언//그럼에도 불구하고/환자가 우리들의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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