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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청송화백의 유언을 두고
일전 필자는 한국 《연합뉴스》 왕길환기자가 쓴 “24억원 아래로는 팔지 말라…기회가 되면 그림을 팔아 좋은 일에 써달라”는 제목의 고 전청송화백(1946-2013, 연변일보사 미술편집) 유작전시회 관련 기사를 읽었다.
연변일보사 전임사장 오태호(고)가 김영삼대통령에게 전화백의 그림작품 “장백산천지”와 서예작품 “무실력행”을 증정한후 담화를 나누고있다. |
고 전청송화백은 필자와 같은 도문사람으로서 연변일보사에서 근무했고 한 아빠트에서 함께 지낸 친구이며 동료이다.
고 전청송은 1989년에 대폭의 참대나무그림에 필자의 이름까지 화폭에 박아서 선물한적이 있고 연변일보사 전임사장 오태호가 한국 김영삼대통령에게 증정할 서예작품 사자성어 “무실력행”(務實力行)을 쓰기도 했다.
전청송은 손그림 재간이 좋기로 곁군들로부터 “그 손을 보험하라”는 권고를 들을 정도였고 또 애주가로 중풍으로 입원치료를 받으면서도 생선료리 술안주를 만나면 큰 수건을 곁에 놓고 줄땀을 흘리며 “당신들은 중풍에 걸려봤냐?” 며 목숨 걸고 술을 마시는 한심한 술군이였다.
그런데 이런 대범한 애주가가 “짠돌이”라면 당신은 믿겠는가?
전청송은 확실한 “짠돌이”이다.
아무튼 필자는 물론 그와 함께 술자리를 한 사람들도 그가 언제 한번 선뜻이 술값을 계산하는것을 거의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 “짠돌이”가 죽기전에 한국에 있는 지인 전원식씨(63)를 자기 집에 초청해 “이제 나는 그림을 못 그리니 남아있는 그림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기회가 되면 그림을 팔아 좋은 일에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니 필자로서는 실로 불가사의라 하겠다. 아니면 하나 밖에 없는 딸한테 유산으로 넘겨줄수 있는데 말이다..
전청송화백이 부탁한 좋은 일은 “한국내 조선족들의 권익 향상과 복리 증진, 미술에 재능을 가진 청소년들을 양성하는것”, 이에 비춰 전원식씨는 “화백의 고향인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계획도 추진할것”이라고 했다.
전원식씨는 2000년에 중국에 진출하여 광채(光彩)인 코리아대표리사로 중국내에 430여개 계렬사를 갖고있는 사업가이다. 지인의 소개로 2008년 환갑이 지난 전청송화백을 알게 되였을 때는 이미 당뇨병, 뇌졸증, 전립선암 등 병으로 치료중이였다. 전화백이 전원식씨 한테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전원식씨는 한국에 모셔 사비로 근 6개월간 병치료를 도와 나섰다.
1989년 전청송친구의 그림작품 선물을 받은 필자
올해 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전청송화백 유작 전시”에 전화백이 “한국돈 24억원 아래로는 팔지 말라”고 유언한 “백두정기”(242cm ×95cm)를 비롯해 “금강만물상기봉”, “정정적추산”, “아미연운”, “운문산중” 등 63점이 전시되였다.
고 전청송화백의 작품은 그의 생전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 대구 《매일신문》 등에서 전시되였고 모택동기념관,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등에 걸려있으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증정되기도 했다.
왕길환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중국 쉐프비예술품경매총회사는 전화백의 작품 경매가격을 한호(엽서 한장)당 인민페 5000원으로 정했고 중국국제문화예술련합회는 전화백을 “중국에서 가장 소장가치가 있는 예술가”로 평가했다.
고 전청송화백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장백산에 150여차례 올랐고 그의 작품 “백두정기”는 “중박국제” 경매때 락찰가가 517만 8000원이였다.
“아무리 뛰여난 예술작품도 작가는 그 작품에 절반의 혼밖에 불어넣을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나머지 절반의 혼은 소장자 즉 그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잘 활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 한다.
필자는 고 전청송화백의 “좋은 일에 쓰라”고 남긴 유작들이 그 유작을 사랑하는 소장자들을 통해 유작에 담은 전화백의 수정 같은 혼을 곱절 이상 완성할것이라 기대한다.
//오기활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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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중국의 10대 화가 반열에 오른 조선족 화가 전청송(1946∼2013년)의 유작전시회가 22∼28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회는 2008년부터 전 화가가 작고하기 전까지 5년 넘게 교류해온 대중국 사업가 전원식(63) 광차이(光彩) 인 코리아 대표이사가 마련했다. 광차이는 중국 내에 430개 계열사를 둔 그룹이다.
유작전에는 생전 작가가 "한국 돈 24억 원 밑으로는 팔지 말라"고 유언한 '백두정기'(242X122cm)를 비롯해 '금강만물상기봉'(176X95cm), '정정적추산'(164X95cm), '아미연운'(137X68cm), '운문산중'(127X69cm) 등 63점이 소개된다.
이들 작품은 전 작가가 "좋은 일에 써달라"고 유언을 남긴 후 전 대표에게 남긴 것이다.
전 대표는 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의 유지를 받들어 판매 수익금은 한국 내 조선족들의 권익향상과 복리증진, 미술에 재능을 가진 청소년들을 양성하는 데 쓰일 것"이라며 "작가의 고향인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계획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0년초 중국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시와 선전시에 진출해 사업한 전 대표가 전 작가를 만난 것은 2008년. 지인인 중국 검찰의 조선족 부장 검사가 그를 소개했다. 환갑을 막 넘긴 나이였던 전 작가는 당시 '중국 10대 화가' 반열에 올라 있었다.
전 대표가 그를 만났을 때에는 당뇨병, 뇌졸중, 허리협착증,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살려달라"는 애원을 듣고 전 대표는 한국으로 그를 데려와 사비를 들여 홍익대 병원· 서울대 병원 등을 다니며 치료해 줬고, 6개월 만에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다.
전 대표 자택에서 살기도 했던 그는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술·담배를 멀리하라는 의사들을 경고를 무시하고 생활하다 전립선암이 재발해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전 작가는 죽기 전 전 대표를 중국에 있는 집으로 초청해 "이제 나는 그림을 못 그리니 남아있는 그림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기회가 되면 그림을 팔아 좋은 일에 써달라"고 유언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백두산을 150차례 올랐다는 그의 작품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게 증정됐고, 현재 대한민국 국회도서관과 중국의 마오쩌둥기념관, 북한 김일성 주석궁 등에 걸려 있다.
생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 대구 매일신문 등에서 초청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중국 쉐프비예술품경매총회사는 그의 작품 경매 가격을 한 호(엽서한장) 당 '5천 위안'으로 정했고, 중국 국제문화예술연합회는 전 작가를 '중국에서 가장 소장 가치가 있는 예술가'로 평가했다.
이번 유작전이 열리기 전 국영기업 '중박국제'는 그의 작품 63점 가운데 48점을 경매에 부쳐 23점이 낙찰되기도 했지만 시간 내 수수료를 내지 않는 바람에 모두 유찰됐다.
경매 당시 '백두정기'의 낙찰가는 517만5천 위안(8억6천458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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