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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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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도 시를 보고 도망치고 있다...
2017년 03월 10일 19시 47분  조회:2646  추천:0  작성자: 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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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들이 도망치는 공간은 결코 추억이나 상징 혹은 초월처럼 안락하거나 안전한, 그래서 조용한 곳이 아니다. 단조로운 부정의 한 곡조만 되풀이되지도 않으며 자기 소멸로 향한 일정한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소멸하고 싶은 자가 왜 도망을 치겠 는가? 도망이란 생에 대한 강력한 집착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서 언급한 유하나 박청호가 탈출하는 개인적인 공간 이 정적이고 움직임이 없는 봉쇄라면, 여기에서 논하는 젊은 시인들이 도망치는 공간은 그 역시 비좁고 개인적인 공간이기는 해 도 쉼없는 움직임과 들락거림이 있는 곳, 그야말로 도망가서 숨는 공간이 아니라 도망치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은 시끄럽고 불안 하다. 도망쳐 들어오고 싶은 욕망과 도망쳐 나가고 싶은 욕망 그리고 도망쳐 들어온 자를 밀쳐내고 싶은 욕망이 와글와글 뒤엉키 면서 싸움박질을 한다. 이선영은 이러한 분열된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선영은 자신을 '구겨넣어서라도' 글자 속으로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선영이 진정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싶은 공간은 '사랑'이다. 더욱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글자에 대한 사랑만이, 육체에 대한 사랑만이, 당 신에 대한 사랑만이 가능한 곳, 글자와 육체와 당신이 각각 완전한 존재로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꿈꾼다 글자, 네가 나의 육체를 파기하고
내 육체의 황홀한 폐허 위에 견고한 글자의 집을
짓기를
그리고 나는 꿈꾼다 글자, 내 육체에 더께처럼 내
려앉은 너를 낱낱이 파기해버리고
내 육체만의 홀가분한 길을 떠나기를
-------- [글자 밖에서]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글자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면서 글자의 안과 밖을 들락거린다. 그에게 있어서 글자와 육체와 당신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글자는 육체를 가로막고 육체는 글자를 비집고 나오며 당신은 나를 글 자 밖으로 불러낸다.

당신은
당신의 육체가 닿을 수 없는 나의 글자 밖에서,
나는
나의 완고한 글자들이 가로막는 당신의 육체 밖에서 
나는
나의 육체 뒤로 뒤죽박죽 글자들을 몰아넣었다

나는 나의 글자로 육체를 지웠다가
다시 나의 육체로 글자를 지웠다
-------- [글자 밖에서]

그런데 문제는 오직 육체로만 당신 앞에 서고 싶은 나를 가로막는 글자의 벽이다. 아니, 사랑을 글자로밖에 풀지 못하는, 당신 과 희희낙락하다가도 글자를 잊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선영은 '글자 속에 당신을 가'두었다가 '그 글자를, 아니 당신을 내 문장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어한다. 때로는 '새로 만들어지는 글자들마다에' 육체의 새로운 집을 지었다가 '육체 자옥이 먼지 낀 글자들'을 털어내어 '글자의 나목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글자 속에 육체를 넣어 보아도 당신 속에 나의 육체를 넣어 보아도 글자 속에 당신을 넣어 보아도 단 한 순간도 평화로 운 공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글자와 육체와 당신이 서로 화해하는 공간, 그곳이 바로 이선영이 진정으로 원했던 '단 한 권의 시집'일 것이다.'단 한 권의 시집으로 그러나 강렬한 하나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 그러나 육체와 글자와 당신 사이를 맴돌면서 도망치던 이 선영은 결국 '종이 안에 내 생을' 집어 넣는다. 실패한 사랑을 종이 안에 쓰고 종이 밖에서 사랑한 당신을 종이 안에 남긴다. 종 이는 그 단 한 권의 시집을 얻기까지 어쩔 수 없이 두 권, 세 권, 네 권 거듭 써나가는 시지푸스의 시집이다. 시인의 욕망이 세 계를 분열하고 좌절된 욕망이 시/글자를 낳는 것이다.

여기에 시인의 딜레마가 있다. 절대적인 실체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 때
문에, 아니 그 욕망의 지점에 도달하고 싶어서 시를 쓰는 데 사실상 시는 그 욕망의 좌절로만 생성되는 것이다. 삶을 초월하고 욕망을 버린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숱한 침묵의 언어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시는 멀리 사라진다. 글자에서 육체로 그리고 당신에게로 끊임없이 도망치는 시인의 움직임은 아직까지도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글자'가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절대적인 실체 ---- 사물 그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진정 초월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 아직도 도망치고 있는 자의 몫이다.

이선영이 분열된 개인의 공간 속에서 맴돌고 있다면, 성윤석은 나와 너
와 모든 시간이 분열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 속에는 90년
대의 공간은 물론, 이미 지나간 80년대와 70년대 심지어 60년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까지도 다 함께 살아서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비틀즈가 신곡을 발표하고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이 보존되어 있고 모짜르트가 작곡을 하고 죽은 친척들이 아직 신혼의 비디오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에선가 본 듯한 이미지,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한 말, 낯익은 귀절들이 무의미하게 결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생산 
양식이다.

---- 담당을 만날 거예요.
---- 오래된 애기가 아냐.
---- 단지 매독과 같은 병일 뿐이야.
---- 동호회를 만들어야지요.
-------- [지하 3미터]

이러한 도시의 '거리에서 겨우 살아나온/경력을 갖고 있'는 성윤석은 '연분홍 얼굴로/그 거리에 다시 갔다/슬그머니 돌아오곤 하는 습관을'([흉터 있는 남자])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때 거리에서 투쟁을 혹은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르는 그는, 겨우 살아남아 이제는 수줍은얼굴로 살짝 거리에 나갔다가도 행여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이는 것이 싫어서 슬그머니 도망치는 것이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도망의 형식은 요란스러운 질주나 뱅뱅 맴돌기가 아니라 '슬그머니'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때때로 그의 도망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마치 문지방에 다리를 걸쳐놓은 채, 우리를 향해 자신 이 지금 나가고 있는 것인지 혹은 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 가령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아도/그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어두어진그가 돌아보지 않도록/나는 소리를 내야 한다.'(['그 날'])와 같은 시에서 그는 계속해서 앞선 연의 정보 에 따른 당연한 기대(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아도/나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어두어진 그가 돌아보지 않도록/나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를 역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시에서 이런 식의 배반은 너무나 슬그머니 왔다가 사라지기 때문 에 좀처럼 눈치를 채는 것조차 어렵다.

5

그는 '사랑하는 애인을 눈치채지 않으려고' 지방관청과 이층 산동반점 사이를, 다방과 햇빛이 잘 드는 골목길을, 공장과 사무실 을,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를 왔다갔다하면서 누비고 있다. 아니, 그의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왔다 간다. 그리고 갔다 온다 .

지구의 운동에 따라
세월이 가고 왔다. 나의 운동에 따라
그녀가 오고 갔다. 그녀의 운동에 따라
내 이념이 달라지고 유리집 박씨의
운동에 따라 옛추억의 창문들이 갈아
끼워졌다. 바람의 운동에 따라
재해 예방 축대가 세워지고
협회의 운동에 따라 회원들은
달라졌다. 운동을 따를 때마다
붉은 사람의 얼굴
------- [회계 사무소가 있는 거리]

이러한 '왔다 갔다' 하는 진자운동 속에서 '운동'의 의미는 순간순간 흔들린다. 수많은 운동들의 배경에는 분명히 80년대의 폭 풍처럼 강렬했던 '운동'이 운동하고 있다. 거대하고 단일했던 그 시절의 '운동'은 세월의 운동에 따라 유리집 박씨에게로 바람으 로 협회로 흩어진 것이다. 80년대의 패러다임은 성윤석의 시에서 이런 식으로 종종 사용된다. 굳이 작은 따옴표를 붙인 ['그 날' ]이란 시에서 ''그 날'이 오면/'그 날'은 다시 '그 날'을 향해 갈 것이다.'라는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한때 그토록 많은 희망과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던 '그 날'이란 말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한다. '그 날'이 다시 '그 날'을 향해 이동하는 운동, 지구의 운동이 세월의 운동로 이어지고 나의 운동이 그녀의 운동으로, 그녀의 운동이 내 이념의 운동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움직임 그리 고 오다가 가버리며 가다가 돌아오는 배반, 이러한 도망이 바로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에서 성윤석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공간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곳을 벗어나 구름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사막의 길을 걸어가는 시 인과 같은 초연함이나 목적지에 반드시 도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이 도시 어디로든지 주저하지 않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비디오나 극장, 골목길, 신데렐라, 지하 3미터, 공장 굴뚝, 회계사무소가 있는 거리, 심지어 인디언표 티셔츠 속으로까지. 그가 도망쳐 들어가는 곳은 어디든지 시의 공간이 되고 시끄러운 소리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는 말 을 하는 입이나 글을 쓰는 손이 아니라 혹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눈이 아니라, 삶의 모든 소리를 듣고 마침내 온 우주를 뒤흔드는 '귀'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귀는 우리에게 전할 거야 편지할게,
라든지 안녕, 귀는 우리가 잠들어도
한 동네의 입구를 넓히고 들어오는 바람과
비를 막을 거야. 두고 온 말씀들과 정신으로
기울여야 할 침묵들을 조용히 나누고 어디
서건 쉽게 붐비는 우리의 사랑 따위 죽음 따위
운명 따위로 오늘도 고막을 울리며 나에게
알릴 거야. 나는 삶을 향해 노래부르며 박수치며
자랐을 뿐, 그 동안 누구의 귓바퀴 하나 울려놓지
못했지만 귀는 계속해서 스스로 떨며 아침과
밤, 가을 잎 접는 소리까지 전할 거야.
조심해, 분명 귀는 어딘가에 동굴을 가지고
있을 거야. 박쥐를 날리며 적막강산을 넘기며
돌아가는 눈보라 가라앉는 먼지들의 발신음을
내고 있을 거야. 밤말을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 해도 우리의 귀는 우리가
숨겨왔던 말조차 한번도 숨겨놓지 않고
후후 불며 온 우주를 흔들고 있을 거야
-------- [귀]

성윤석이 꿈꾸는 귀는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만 들을 뿐, 나머지 모든 소리들을 소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분열된 귀가 아니다. 그의 귀는 '편지할게, 라든지 안녕'하는 일상적 대화에서부터 동네 입구에 불어오는 바람과 침묵, 우리의 사랑, 죽음, 운명 따위까지 모두 듣고 전하는 그런 귀다. 그 귀는 '계속해서 스스로 떨며 아침과 밤, 가을 잎 접는 소리까지'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성윤석은 귀를 듣기 위한 수동적 기관으로 보지 않는다. 귀의 진정한 역할은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소리를 '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열린 입은 아무리 '삶을 향해 노래부르며 박수'를 치더라도 '누구의 귓바퀴 하나 울려놓지' 못했 다. 아무리 입으로 화려하게 떠들어도 그 말이 귀를 울릴 수 없다면 그 소리는 침묵일 뿐이다. 문명의 위기,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의 술책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문학이라는 지평 위에서 오고 갔지만, 과연 누구의 귀를 울렸는가?

80년대는 입의 시대였다. 수많은 말들이 떠돌았지만 그것은 결국 침묵이나 소멸을 낳고 말았다. 반면에 90년대로 넘어오는 길목 은 눈의 시대였다. 그 눈은 80년대의 폐허 혹은 텅 비어있는 중심을 응시하면서 추억이나 상징의 숲으로 돌아갔지만 미래를 발견 할 수는 없었다. 좌절한 눈은 현실을 떠나 구름이나 하늘로 그 시선을 옮겨 놓았다. 하지만 성윤석은 삶과 시선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이제 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의 귀는 그저 들려오는 대로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떨면 서 소리를 낸다. '박쥐를 날리며 적막강산을 넘기며/돌아가는 눈보라 가라앉는 먼지들의 발신음을' 내는 것이다. 이 귀의 진동은 '우리가 숨겨왔던 말조차 한번도 숨겨두지 않고 후후 불며 온 우주를 흔'든다. 성윤석의 도망은 마치 이 귀의 진동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잠들어도 스스로 진동하고 공명하면서 우주를 울린다.

도망치는 시인들은 세상을 벗어나려고 하는 도피자가 아니라, 거리가 사라져버린 이 도시의 전사들이다. 전사들이 달려나가서 싸움을 벌일수 있는 거리는 이미 사라졌다. 현대 문명은 거리의 곳곳에도 빅브라더의 얼굴인 대형 텔레비전을 세워 놓고 우리를 지배한다. 젊은 시인들은 이 거리에서 이리 저리 도망친다. 그것은 분명히 가슴이 숙연한 투쟁, 당당한 정면 대결은 아니다. 그 러나 도망은 적어도 우리가 무엇에  기고 있음을, 아직은 한 곳에서 머무를 때가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그리고 안주하려는 우 리에게 무엇이 그들을 쫓고 있으며 왜 도망치는지를 자문하도록 만든다. 막연하게 가슴 떨리는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이 멈추어 있었다는 사실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지금까지는 적어도 시의 세계에서만큼은 절망과 부정은 만연된 질병이었다. 아니, 차라리 시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었다. 그러므로 이제 문제는 '절망이나 부정'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수렴되는 개념이 아니라 절망으로부터 달아남이다.

희망은 획일적으로 제시될 수 있다. '이것이 희망이다'라는 집단적인 혹은 정치적인 선언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절망은 그에 대한 역으로 존재한다. 희망이 하나일 때, 절망도 하나이다. 하나로 수렴된 절망은 바로 죽음, 침묵이다. 그러나 도망은 개 인적이다. 그것은 단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며 매순간, 모든 경우에 각기 다른 독특한 경험으로 다가오고 또한 독 특한 경험으로 남아있어야만 한다. 이 도망의 독특성이야 말로 타자의 이타성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삶의 결정의 순간들을 획일 적인 한 개념에 수렴하지 않고 겪어낼 수 있게 한다. 도망의 경험은 개별적인 것이며 심지어 '나'로 의해서도 통합될 수 없는 것 이다. 바로 다음 순간에 내 앞에 어떤 도망의 길이 펼쳐질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므로 도망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나와 공간( 구체적인 역사와 현실이 담겨진)이 만나는 그 순간인 것이다. 매순간 구별되고 매번 새롭게 대응하려는 감성적 독특성이 없다면 획일화와 대중화, 균등화, 그 화려한 이익성을 추구하는 질서라는 절대적 명제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한 시인의 시가 이 시대로부터 가장 개인적이고 독특한 공간 속으로 달아날 때, 우리는 자신과의 변별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리고 하나의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그 차이점이 우리를 깨어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주어야 할 것은 명제나 결론적인 진리가 아니다. 단지 흔들림,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의심하도록 만들고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움직임, 도망의 글쓰 기인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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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이 피면  - 곽재구(1954~ )


앵두꽃이 피면

가시내야

북한 가시내야

너에게 첫 입맞춤을 주랴

햇살도 곱디고운

조선 청보리 햇살 거두어다

바람도 실하디 실한

남도 산머루 바람 거두어다

너의 속살 고운 치마폭에 널어놓고

돌산머리 애장터

아메리카나 소비에트나

팔푼 얼간패 좀 보라고

앵두꽃이 피면

가시내야

북한 가시내야

너에게 오천 년 조선 머스마의

 

 


까치동 첫사랑을 주랴.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시 ‘사평 역에서’는 1981년 새해 벽두를 떠들썩하게 했지요. 그해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었습니다. 그 곽재구 시인의 다른 시편 ‘앵두꽃이 피면’을 읽습니다. 돌산머리에 앵두꽃이 피면 북한 가시내와 남한 머스마의 첫사랑이 이루어지겠네요. 오롯이 우리가 자주적으로 이룬 통일, 그것을 염원하는 시인의 말이 달콤합니다. 2만 달러 이상 국민소득에 5000만 인구를 가진 강국. 세계 일곱 나라밖에 없다는 강국들의 클럽인 2050. 우리나라도 그 클럽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6·25전쟁으로 초토화된 지 60년 만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들 기적이라 말합니다. 이제 통일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남과 북 모두에게 ‘대박’입니다. 앵두꽃만 피면 됩니다. < 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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