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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말은 풍성한 시의 원천
2017년 04월 03일 01시 09분  조회:2135  추천:0  작성자: 죽림
 

<어머니의 말은 풍성한 시의 원천> 
-이근배-

우리 나라의 시는 옛날 [찬기파랑가], [제망매가] 등의 [향가(鄕歌)]에서부터 고려 가요나 속 
요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손으로 이루어진 노래들이 많습니다. 
병자호란 때 '가노라 삼각산아'를 쓴 김상헌의 형 김상인이 쓴 시조에 이런 게 있습니다. 그 
는 강화도로 피난차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모시고 갔는데, 오랑캐가 갑자기 쳐들어오는 통 
에 화약으로 폭사를 한 분입니다. 대단한 기상이 있는 남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런데 이분은 그의 시조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임 사랑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꿈에 와 뵈온 말이 그 더욱 거짓말이/날같이 잠 아 
니오면 어느 꿈에 뵈오리' 
시인 황동규는 이 시조를 가리켜 사랑시 가운데서 최고의 으뜸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우 
리 나라 여류 시인들이 한때는 황진이 '동짓날 기나긴 밤에'를 으뜸으로 치다가, 김상인의 
시조를 최고라고 견해를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언뜻 이 시조를 보면, 아녀자들이 안방에서나 
할 소리지 오랑캐와 맞싸우다가 나라를 못 지킨 것이 한스러워 자결하고 만 헌헌장부가 쓴 
글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소월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이며, 김영랑의 '나는 기두리고 있을 테 
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또 만해 한용운의 절창들도 지극히 여성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조시대에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의 와중에 서 있던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도 
여성적인 정조에 바탕하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시에 한결같이 여성적인 정서가 넘치는 것은 어머니의 말을 갖고 쓰기 때문입니다. 아 
무리 헌헌장부라도 그가 쓰는 시는 여성적인 대목이 많습니다. 

정몽주 선생은 다 알다시피 고려 오백 년 왕조를 한몸으로 지탱하려가 목숨을 던진 분입니 
다. 그분이 남긴 시조에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 

쳐 죽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노래했는데,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는 춘향이가 변학도 앞에서 해도 그만인 노래가 아닙니까. 다 이게 여성적 
입니다. '임'은 연모의 대상일 뿐 아니라 '나랏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시가는 모두 여성적인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에는 겉말과 속말이 있습니다. 중국 청나라의 문인 '원매(袁枚)'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언제언(言制言) 의제의(意制意) 경제경(景制景), 이것이 아니면 시는 납을 씹는 거와 같다." 
즉 "말 밖의 말, 뜻 밖의 뜻, 풍경 밖의 풍경, 이런 것이 아니면 시는 납을 씹는 거와 같다." 
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시의 속내를 다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파고들어가고 그 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 
을까 합니다. 

지금 강남 성모병원에는 미당(未堂) 서정주 선생께서 누워 계시는데 저한테는 은사이십니다. 
제가 그분께 처음으로 시를 배웠고, 1960년에 제가 처녀 시집을 낼 때 서문도 써주셨고, 세 
계여행 떠나실 때 동국대학교에서 그분이 하는 '시론(詩論)'을 제가 한 학기 동안 대강한 
적이 있을 정도로 깊은 인연이 있는 어르신이십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그분의 시집을 통 
째로 한 권을 외운 일이 있습니다. 1966년에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 현대문학 5월호에 [동천 
(冬天)]이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1936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이 되어서 시 
단에 나오셨으니 그로부터 만 30년 뒤의 일입니다. 오늘로부터 34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니 
까 미당 선생의 시작 활동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절정기에 한 것입니다. 지금도 평론가 
들이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를 이야기 하려면 {동천}을 반드시 들춰냅니다. 며칠 전에도 제 
가 나가는 한 학교에서 젊은 시학 교수가 뭘 자꾸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동천}이라는 시를 놓고 중얼중얼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줄 안 
되는 걸 가지고 그러느냐고 제가 했습니다만 우선 {동천}을 가지고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동천] 전문 

이것은 7.5조입니다. 너무 시를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동천은 겨울 하늘인데 거기에 
눈썹을 하나 심어놨다는 겁니다. '즈믄'이라는 것은 천인데 그냥 많다는 겁니다. 많은 밤의 
꿈으로 그 눈썹을 씻고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동지섣달 나 
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서 시늉하며 비끼어 간다고 노래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들 논의가 물끓듯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그 속내를 알면 간단합니다. 
미당 선생은 어느 자리에선가 이렇게 글로 밝혔습니다. 질마재가 있는 고창의 수대동이 당 
신의 고향인데, 고향 마을에 살 때 열여섯 살쯤 되는 한 처녀의 눈썹이 유난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모시밭 사잇길로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집 할머 
니가 자기 집에 들락날락 하는 것을 봤는데 아마 혼삿말이 오가는 것 같았답니다. 미당 선 
생이 고향을 떠나 대처로 나오는 통에 결국 혼인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평생 미당 선생은 
눈썹만 찾아다니는 겁니다. 1966년 현대문학 5월호에 {동천}을 썼는데, 같은 해 9월 29일자 
중앙일보에 {추석}이라는 시를 발표합니다. 그것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대추 물들이던 햇볕에 눈 맞추어 두었던 눈썹 
고향을 떠나올 때 꾸려 가지고 온 눈썹 
열두 자루 빗은 날에 숨기어져 살던 눈썹 
비수들 다 녹슬어 
시궁창에 버리던 날 
삼시 세 끼 굶던 날에 
역력하던 너의 눈썹 
안심찮아 먼 산 바위에 박아넣어 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추석이라 밝은 달아 
먼 골방에서 한잠도 안 자고 앉았다가 
그 눈썹 뽑아들고 
기왓장 너머 오는고 

신문사에서는 추석 이야기를 써달라고 청탁했는데, 미당은 '대추 물들이던 햇볕에 눈 맞추 
어 두었던 눈썹'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고향을 떠나올 때 꾸려 가지고 온 눈썹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미당의 [수대동시]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속옷 
초록 저고리 금녀 나와 둘이 있던 곳 / 머잖아 봄은 다시 오리니/ 금녀 동생 나는 얻으리 / 
눈썹이 검은 금녀 동생'이라고 노래했는데, 여기에도 '눈썹이 검은 금녀 동생'이 등장합니 
다. 
미당은 어느 글에서 술회하기를 낙원동에 있는 밥집에 자주 들렀답니다. 선생은 밥집 여자 
의 손목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데, 그 여자에게 예의 고운 눈썹이 있었답니다. 이를 통해 확 
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미당은 여자의 미를 고운 눈썹에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마음에 두는 것은 '눈썹'으로 되어 있다는 거죠. 또 [여행가]라는 시에서는 '어젯밤 
내 꿈 속의 네 눈썹이 무거워/그걸로 여기 한 채의 절간을 지어두고 갔느냐'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미당에게는 눈썹이 모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천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선 겨울 하늘에 눈썹 같은 달이 하나 떠 있었겠지요. 밝은 달을 
보며 미당은,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겨 심어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새가 나는 걸 보면 마치 눈썹같이 날고 있었고, 반달도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 
끼어 간다고 노래한 겁니다. 그것만 가지고 무슨 뜻인가 하겠지만, 거기에는 미당 선생 개인 
의 눈썹에 대한 의지가 여러 가지로 환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눈썹은 눈썹으로 있지 
않고, 열두 자루 빗은 날에 숨기어져 살던 눈썹도 되고 삼시 세 때 굶던 날의 눈썹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그 시의 비밀을 알았을 때 [동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 
다. 

1964년에 박목월 선생이 {가정}이라는 시를 발표를 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박목월 선생이 
대학 교수도 하시고 유명한 시인으로 책도 많이 낼 무렵이었는데, {가정}을 읽고 시의 내용 
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 구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 구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최근 우리 사회에도 고개 숙인 아버지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 시에 보면 시라는 것은 멀 
리서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도 흔히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을 
움파는 일이다라고 말해 줍니다. 박목월 선생의 '가정'이라고 하는 말은 아홉 식구의 가장으 
로서 그 힘이 얼마나 드는지를, 십구문반의 신발에다 얹힌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시에서 
보면 박목월 선생의 십구문반의 신발은 짚신도 아니고, 구두도 아니고, 운동화도 아닌 그 시 
대 고무신의 단위입니다. 그 신발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면, 지상에는 아 
홉 켤레의 신발로 시작하죠. 지구 위, 하늘 아래는 모두가 지상입니다. 이 지상에 아홉 켤레 
의 신발이 있습니까. 지금 같으면 60여 켤레의 신발이라고 해야 되는데, 그건 다 필요 없습 
니다. 박목월 시인의 어깨에는 오직 아홉 켤레의 신발만이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신발과 
등가성을 갖는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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